진짜로 믿고, 죽고 사는 거를 겁내지 마시고 하세요!

 

여러분한테 먼저 한마디 여쭙겠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전 세계적으로 발판을 세우기 위해서 지금 현대불교신문사를 출범시켰습니다. 그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한마음 한뜻으로 동참해서, 신도들은 물론이거니와 직장에 나가든 사업을 하든, 모두 인연 닿는 대로 구독을 하게끔 여러분이 권유하셔야 되리라고 믿습니다.

신행회장이나 여러분이 이렇게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서 돌아가지 않는다면 이 마음공부를 할 수 있게끔 모두에게 징검다리를 놔 주지 못합니다. 또 이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한마음으로 보살행을 하게 하면서, 이 한국의 불교를 좀 알아야 되겠다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전 세계 어디서든지 그 자리에 앉아서 곧바로 볼 수 있게끔 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정신계의 발전을 위해서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도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은 입력을 하는 컴퓨터를 쓰지만 앞으로는 입력을 하기 이전에 내 마음에 의해서 그대로 컴퓨터를 쓰게끔 되는 시대가 온다는 얘깁니다. 그럴 때 우리가 정신계를 발전시키지 않고, 내 마음의 발전을 시키지 않는다면 이 불어나는 인구와 더불어 발전하는 시대를 뒤따르지 못합니다.

시대를 따라서 우리는 부처님의 법을 배우고, 부처님의 행을 배우고,
부처님의 마음의 종지를 따라서 근본적으로 둘이 아닌 까닭에
내 마음부터 알고, 내 마음부터 찾아야 하고, 내 마음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처님께서는 언제나 실천궁행을 수범하셨고 그것을 가르치셨지, 공(空)에 빠지거나 물질에 허덕이라고 한 게 아닙니다. 내가 내 마음을 가지고도 자유자재할 수 없다면 안 되기 때문에, 물질세계와 정신세계가 둘 아니게 자유자재권을 얻어서 스스로 그 빛을 발하라 하신 것입니다. 만물만생이 다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고 뜻으로 통하고 말로 통합니다. 항상 여러분한테 말씀드리듯이 그것이 바로 교(敎)입니다. 또는 일체 만물만생의 생명이, 하다못해 곤충에 이르기까지 생명은 불(佛)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종교라 할지라도 불교 안에 있지 바깥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반드시 우리의 한마음으로서 한바다에 들어서, 그 바다 가운데서 불뚝 솟아서 만물만생을 다 이끌어 줄 수 있고, 먹여 줄 수 있고, 먹여 주고도 되남을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공부는 이 공부밖엔 없습니다.

또 신행 회장님들이 회의를 하거나 할 때도 견지동(한마음 불교회관)을 좀 찾아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가 내고 거둬서…, 지금 우리는 여러 사람들이 알게 보시를 하는 게 아닙니다. 알게끔 보시하는 것도 더러 있지만, 장학금이라든가 많은 보시들을 지금 우리 선원에서는 모르게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기가 죽을 테니까 말입니다. 뭐든지 공개하고 주게 된다면 나부터라도 창피하고 괴롭게 생각되고 모자라고 어리석다고, 자기가 자기 원망을 무수히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남이 모르게, 공개하지 않고 이끌어 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모릅니다만 일체 한마음은, 일체제불의 마음은 아마도 다 잘 알고 ‘허허,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도 없고 받는 사람도 없구나! 참 착하다. 착하니라.’ 이렇게 하실 겁니다.

지금 시대가 변천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공개하고 그렇게 하는 거를 좋아하지만, 뜻으로 본다면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서 자기를 구덩이에 넣을 수도 있고 구덩이에서 나오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걸 공개했다가 만약에 잘못 받아들여지면 정말 지옥에서 나오지 못할 행위를 저지를지도 모릅니다. 그건 스스로 속마음에서 일어나는, 그 뿌리에서 일어나는 불행한 점이 있으리라고 생각되므로 그렇게만은 안 하고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안 하고 있는 거를 이해해 주십시오.

하여튼, 그러니까 회의를 갖더라도 견지동 장소를 찾아 달라고 하는 것은…, 나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그런 데서 나오고 저런 데서 나오는 것들, 부처님의 말씀 그대로 여러분이 정말 피땀 흘려서 가져오시는 돈이라는 것이 바로 그 업의 덩어리라는 것입니다. 얼른 쉽게 말하면 쓰레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가 안 되실는지 모르지만 쓰레기 덩어리를, 고(苦)의 덩어리를 갖다가 준 것을 만약에 함부로 아무 데나 쓴다면, 그쪽 고덩어리도 제거를 못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받은 것이 되기 때문에 자기도 고를 면치 못할 겁니다. 고를 안 당하려고 애를 쓰는 게 아니라 진리, 이치가 그러하니까 말입니다. 우리가 돈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얘깁니다. 얼른 쉽게 말해서, 돈이 고덩어리로 보이고 돌로 보이고 그래야 된다는 얘깁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럼으로써 우리는 비록 가난하지만, 좀 더 생각한다면 욕심을 과하게 부리지 않는다면, 발 편안히 공부할 수 있고 순수한 인간성을 가지고 참되게 영원히 살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제일 무서운 것은, 우리가 사람이라고 언제까지나 사람 그대로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자기가 찰나에 옷을 벗으면 금방 그냥 오간지옥에서 데려가기에 바쁩니다. 그래서 다시 모습을 가지고 나올 때에 자기 살던 차원에 따라서 그냥 모습을 쓰고 또 나오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두려운 거보다도 나 하나면 족하지만 나 하나뿐이 아니라, 내 배 속에, 내 육체 속에 있는 그 모든 씨앗이 전부 그 뿌리를 좇아서 악연이 된단 말입니다. 그뿐입니까? 내가 또 바깥으로 배출해 낸, 즉 말하자면 자식들을 어떻게 합니까? 구덩이에 들어가면 그 구덩이에 역시 또 좇아 들어가게끔 돼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이 생각을 깊이 하셔서 부처님의 법이 에누리가 없다는 사실과 우리들의 법과 부처님의 법이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꼭 아시면서 증명해야 하고, 또 우리는 스스로 느껴야 하고, 스스로 감지해야 하고, 감응이 돼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법형제법회를 통해서 우리가 토론 겸 서로가 모르는 게 있으면 질문을 하되, 알더라도 질문을 하라고 했습니다. 왜냐?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나 하나가 나 하나가 아닙니다. 이 몸뚱이 속에 모든 생명체들이 같이 들어 있기 때문에 더불어 하나지, 개별적인 하나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더불어 하나기 때문에 보는 것도 더불어 보는 거고, 듣는 것도 더불어 듣는 거고, 가고 오는 것도 더불어 가고 오는 것이고, 움죽거리는 거 하나하나, 마음 내는 거 하나하나가 더불어 같이 마음을 내는 거기 때문에 한마음입니다. 그러니까 혼자, 내가 했다, 내가 알았다, 내가 잘한다 못한다 이게 없다 이 소립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색(色)이 공(空)이요, 공이 색이니라. 그 가운데에 바로 참너가 허공에 꽃을 피울 수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모두가 사람으로 이끌어 주시기 위해서 노력하신 부처님의 뜻이고 이에 순응하되, 우리는 시대를 또 무시 못 합니다. 시대를 따라서 우리는 부처님의 법을 배우고, 부처님의 행을 배우고, 부처님의 마음의 종지를 따라서 근본적으로 둘이 아닌 까닭에 내 마음부터 알고, 내 마음부터 찾아야 하고, 내 마음부터 깨달아야 한다 이겁니다. 내 마음을 깨닫기 이전에, 바깥으로 찾지 말고 안으로 찾으라는 그 자체…, 저 나무뿌리를 보세요. 만날 여러분한테 말씀해 드리듯이 나무뿌리에 의해서만이 싹이 살고, 나무뿌리가 싱싱해야 바로 나무 싹이 싱싱해서 거기에서 꽃도 피고 열매도 맺습니다. 그래서 옛날 선조들의 말씀처럼 제 나무가 제 뿌리를 믿고, 제 뿌리는 제 나무를 서로 위하면서 상응하고, 정맥 동맥이 서로 돌아가듯 함으로써 일체 만물만생에게 만 가지 맛을 보여 줄 수가 있다 이런 말입니다.

신문 구독하는 그런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불교신문사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신계의 계발을 시키면서 나아가려고 합니다. 우리가 각 사찰의 어떠한 비리를 파헤쳐 내는 게 아니라 그것을 다시 뒤집어서 정신계로 나갈 수 있게끔 하고, 또 아주 평등한 법으로써 불교를 숭상시키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싸우는 것도 발전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지, 허허허…, 움죽거리지 않는다면 생산이 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싸움으로써 생산력이 아주 화산처럼 터질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이 다 흉이 아니라 우리의 발전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믿어 마지않습니다. 그러니까 될 수 있으면 거기를 회의하는 장소로 쓰고, 아끼지 말고 전부 구독을 시켜서 그 구독자로 하여금 이익이 갈 수 있게 하셨으면 합니다. (합장하시며) 한마음으로 해 주시기를 여러분한테 부탁드립니다.

그럼 질문들 하십시오. 적어서 가지고 오지 마시구요, 생각나는 대로 그냥 하셔도 좋습니다.

질문자1(남) 대구에서 왔습니다. 저는 20년 전 사구체신증후군이라는 종합병원의 진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방과 양약으로 치료한 결과 지금 양쪽 콩팥이 다 망가지고 일주일에 세 번씩 피를 거르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까지 나빠서 지금 이런 상태입니다. 좋은 말씀 주시기 바랍니다.

큰스님 제가 좋은 말씀을 대리로 이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이건 부처님의 뜻으로서 둘 아니게 말씀드릴 테니까 잘 들어 보세요. 내 몸뚱이 속에 자생중생들이 헤아릴 수 없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믿음을 가질 때에, 예를 들어서 나무 싹이 딴 싹과 딴 이름을 믿는다고 해서 내 뿌리에 에너지가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 거와 같이 지금 내 몸뚱이 속의 모든 자생중생들, 그게 업식입니다. 악업 선업이 들어 있는 업식입니다. 이것이 왜 업식이냐고 한다면 앞서 다 설법을 해 드렸으니까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그 업식들이 컴퓨터에 입력이 돼서 나오듯이 차례차례로 나옵니다, 그게.

그런 거니까 단지 자기 참주인공의 선장밖에는 그거를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마음은 마음이 다스려야지 말이 다스릴 수가 없고 이론이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내 주인공 그 자체 뿌리만이 할 수 있다. 너만이 네 시자인 육신을 다 깨끗이 청산할 수 있어!’ 하고 거기다가 맡기십시오. 진실히 맡겨야 거기에서 통신이 돼서, 대뇌로 해서 사대(四大)로 통신이 되면 작용을 해 줍니다. 거기서 작용을 안 해 준다면 아무리 병원에 가서 100% 낫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힘듭니다. 내 속에서 내 생명체들이 작용을 안 해 준다면 그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진짜로 믿고 ‘나를 이끌어 가는 영원한 나의 주인공, 너만이 나를 이끌어 갈 수 있고, 나를 낫게 할 수 있고, 나의 가정을 화목하게 할 수 있고, 내 자식들을 잘되게 할 수 있다.’ 하고 거기다 맡겨 놓으세요. ‘애당초에 피를 거르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만 어차피 그렇게 됐으니까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거르는 것을 일주일에 한 번 거르다가, 이 주일에 한 번씩 거르다가, 이렇게 할 수 있게끔 만드십시오. 그건 본인이 안 하시면 안 됩니다.

이 부처님 법이라는 게 딴 사람이 갖다 주고 뺏어 가는 게 아닙니다. 사대 성인들도 그렇게 말씀하셨죠. ‘너부터 믿고 너부터 알라. 너부터 돌아다보아야 주인이 있어서 네 집을 지킬 수 있느니라.’ 하고요. 집이 비었으면 영계가 천차만별로 드나들어! 그래서 내 집이 망가지고, 내 일이 망쳐지고, 내 하는 일이 안 되고 그런 거지만 내 집에 주인이 있다면 감히 어디를 비집고 들어올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과학 과학” 하지만, 그 과학을 깨뜨려야 진짜 과학이 나옵니다. 고정되게 못을 박아서 개념화하는 과학을 해체시켜야만이 진짜 과학이, 천차만별의 과학이 터지게 됩니다. 이 진짜 과학적인 것, 심성의학이라든가 심성과학 또는 심성천체물리학, 심성천문학, 심성공학, 심성철학 등 모두가 다 한군데서 배출됩니다. 움죽거리지 않고 에너지를 배출시키기만 하는 그 가운데서 바로 모든 분야가 배출됩니다. 배출만 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현실적으로 연구해서 다 발전시킬 수 있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 집을 자기가 고치지 누가 고칩니까. 우리도, 가만히 보세요. 집을 짓고 사는데 집이 망가진다면 주인이 고쳐야지, 딴 사람이 와서 고쳐 줍니까? 자기 집은 자기가 고쳐야 하고, 제 나무는 제 뿌리를 믿어야 하고, 제 뿌리는 제 싹을 도와줘야 하는 것이죠. 그게 상례로 돼 있죠. 나무뿌리는 수분과 지분, 철분을 위로 공급하고, 위에서는 태양력과 공기력을 또 흡수시켜서 내려보내고, 이렇게 해서 서로 상응하면서 푸르르게 살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그렇게 애탄지탄하시지 말고, 죽는다 산다 이런 거를 두려워하지 마시고,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죽이는 것도 너고 살리는 것도 너다!’ 하고 탁 맡기시지 죽는 것이 뭐가 그렇게 두렵습니까? 이 옷을 입었다가 벗어 놓고 새 옷을 입는 거나 똑같습니다. 우리의 근본은 영원한 겁니다. 그러니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서 바로 대우가 정해지죠, 차원이 정해지고. 우리가 개나 소나 돼지나 이런 모습을 가진 생명들이라면 그 대접밖에는 못 해 주는 것이지 인간 대접을 해 줄 수는 없는 겁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차원도 스스로 기르는 거고, 스스로 구덩이에 빠져서 헤매는 거지, 누가 그렇게 해 주고 뺏어가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진짜로 믿고, 죽고 사는 거를 겁내지 마시고 그렇게 하십시오.

질문자2(남) 큰스님, 이렇게 친견하게 돼서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광주지원에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이천만 불자가 불교를 믿고 있는데 부처님 말씀을, 진리의 말씀을 실천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혹자는 참선을 통해서, 또 혹자는 염불을 통해서, 또 혹자는 기도를 통해서 부처님 진리를 터득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느 절에 갔을 때는 어느 스님께서 17년 동안 기도를 하시고 계시는 것을 봤습니다. 또한 우리 한마음선원에서는 모두 이 한마음의 주인공에 일체를 맡기고 또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이천만 불자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공부를 해 나가야 할지 큰스님께서 한 말씀 해 주십시오.

큰스님 예, 행주좌와 관법(行住坐臥觀法)으로! 허허허…. 우리가 말입니다, 부처님 법 아닌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왜 행주좌와 관법이냐 하면 자기의 관법이기 때문이에요.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까 상대가 있는 거고 세상이 벌어진 거지, 자기가 없는데 뭐가 있습니까? 무효지. 안 그래요? 예, 그런데 말입니다, 자기로 인해서 모두가 벌어지니까 자기부터 알아야 하는데, 자기의 생산된 이 육체가 바로 화두입니다. 화두인 것입니다. 옛날에는 화두를 잡아서 해도 돌아갔지만, 그게 먹혀들어 갔지만 지금은 안 그렇습니다. 왜냐? 겉돌아서요. 왜 겉도느냐? 세계를 안방에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움죽거리는 모든 걸 안방에서 볼 수 있는 데다가 핑핑핑핑 돌아가는 그 머리 때문입니다. 육체가 탄생한 것도 화두이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하는 것도 화두인데, 그 화두에다가 관법을 또 받아 가지고 하니까 겉돌 수밖에요. 행주좌와 관법은 시대가 요하는 겁니다. 시대가 발전하고 문명이 발전하고 그럴 때는 반드시 시대를 순응해서 돌아가야 합니다. 뒤를 쫓아가라는 게 아닙니다, 앞장서란 거지. 불을 밝혀서 앞장서란 거지. 그렇기 때문에 행주좌와 관법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허허허….

지금 쉬지 않고 지구가 돌아가는가 하면 우주도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도 그냥 있는 게 없어요. 그런 데다가 내 이 육체 속의 자생중생들도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여러분 육체가 쉬면서 돌아갑니까? 이거 보세요. 자는 것도 자는 게 아니고 눈을 뜬 것도 뜬 게 아니에요. 보는 거, 듣는 거, 먹는 거, 하는 거, 만나는 거, 가고 오는 것이 어느 하나도 고정된 게 없어요. 그랬으니 공했지. 내가 한 게 따로 없으니 물 한 컵을 마셔도, 아니, 더불어 같이 마신 거기 때문에 공식(共食)이지. 보세요. 공생(共生)·공심(共心)·공용(共用)·공체(共體)·공식화(共食化)하고 돌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어떤 거 먹을 때, 어떤 거 할 때, 어떤 거 봤을 때, 어떤 거 움죽거렸을 때 내가 했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이라는 이름을 정한 겁니다. 일체 만물만생이 모두 같이 한마음으로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 여래지, 개별적인 하나가 깨달았다고 해서 여래가 아니에요. 개별적인 하나가 깨달으면 전체가 다 들려야만이 그것이…, 깨달은 사람이 수만 명이다 할지라도 깨달은 그 한마음 처에 같이하기 때문에 여래인 겁니다.

여러분이 배울 때 잘 배워야지, 예를 들어 처음에 피아노 배울 때 처음 배우는 거라고 아무렇게나 생각해서 ‘삐뚤게 앉아서 해도 괜찮지. 요다음에 배워서 잘하지.’ 이럭하면 안 됩니다. 앉음앉음이가 굳어져서요, 제대로 배울 수가 없죠. 그와 같이 인간도 마음의 오계(五戒)에, 오계향(五戒香)에 첫째, 내 마음으로부터 다져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내 탓으로 돌리는 것이 우선이죠. 모든 게 나로 인해서 생긴 거니까, 소가 언덕이 있어서 비비는 거지 언덕이 없다면 비빌 수가 없고 소가 없다면 비벼지지도 않죠. 그와 같이 인간도 내가 있어서 상대가 있기 때문에, 잘했든 못했든 내 탓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잘했으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못했으면 ‘못한 것도 거기서 나오는 거니까 잘하게 하는 것도 너밖에 없다!’ 하고 거기 놔라 이런 겁니다. 이렇게 모든 생활에서 관한다 하는 것은 쉴 사이 없이 생각나는 대로 그대로 관하는 거지, 관하는 장소가 따로 있고 기도하는 장소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나는 기도라는 말을 안 합니다. 관이라고 그러죠. 기도는 상대가 있기 때문에 기도라는 말을 안 합니다. 그래서 이 법당에 오더라도 부처님 앞에 삼배를 올리든 일배를 올리든, 내가 부처님 앞에 한마음으로 넣고 일배를 올려도 올리고, 일어날 때는 한마음으로 나와 같이 하고서 일어나라 이겁니다. 그러면 이리로 가도 하나요, 저리로 가도 하나죠.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깨달을 수도 없거니와 이 진리를 파악할 수도 없고, 전에도 얘기했지만 우리가 버스간에 몽땅 타고 앉아서 버스가 어디로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살아서야 되겠느냐 이런 소리죠.

질문자2(남) 질문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큰스님 또 하실 게 있어요? 허허허….

질문자2(남) 예,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오늘 전국 각지에서 우리 불자들이 큰스님 친견이 있어 새벽부터 왔습니다. 또 오지 못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저희 군은 전방과 후방에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 오건 못 오건, 우리 모든 군인들에게 한마음 크게 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큰스님 그럽시다. 허허허…. 부처님의 마음은 저 좁쌀 알갱이만 한데다가 넣어서 천 리든 만 리든 가깝고 먼 것도 없이, 빛보다 더 빨리 추진한다면 거기서 두 개도 되고 세 개도 되고 만 개도 되고 천 개도 되고 헤아릴 수 없이 허공을 뒤덮을 수도 있는 그런 숫자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묘하고 광대한 거죠. 그러니까 마음법을 꼭 배우시도록 하세요.

(다음 호에 계속)

※위 법문은 1994년 10월 2일 대행 스님께서 법형제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 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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