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콘텐츠 확보가 사찰 미래 담보

서울 불광사가 진행하는 어린이 생태체험 현장 모습. 사찰이 각종 체험학습 활동으로 진출한 선사례로 꼽힌다.

 

절에 가면 신도의 대부분은 노인들이다. 중년이면 젊은 편이다. 노인 신도가 많다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 수 있겠는가. 신도가 많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젊은 신도, 특히 어린이 불자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어떤 조직에서든 어린이는 그 미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린이가 자라서 결국 그 조직의 중추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종교시장은 불교, 개신교, 가톨릭의 과점 구조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종교인구 중 세 종교의 인구비율은 낮을 때는 95%에서 높을 때는 98%이상이라고 한다. 우리사회가 다종교 사회임은 분명하지만,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절대 다수가 불교, 개신교, 가톨릭 중 하나를 믿고 있는 것이다. 종교는 포교를 두고 담합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들 세 종교, 특히 불교와 개신교는 경쟁 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어린이법회 활성화는 포교 첫 걸음
어린이 프로그램 확대가 최대 관건
명상·체험활동 등 적극 활용해야

그런데, 개신교 전래 이후 현재의 상황을 보면, 불교 인구는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반면에 개신교 인구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성장세를 유지해왔다. 지금은 개신교가 불교의 신도 수를 추월하여 종교인구 1위가 된 상황이다. 어린이 불자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간극은 줄어들기 보다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어린이 포교의 부진도 간과할 수 없는 주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교회는 주지하다시피 예전부터 주일학교, 성경학교, 방학캠프 등 어린이들이 즐기며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행사를 꾸준히 지속해왔다. 예전 어린이들이 이제는 부모가 되어 자신의 자녀들을 교회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교회가 미래의 씨앗을 뿌린데 비하여 불교는 당장의 열매를 따는데 급급해서 불교 인구가 감소했다고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어린이 포교는 당장의 지출은 발생하는데 비해 즉각적 수입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찰은 ‘아이들은 시끄러워서 기도에 방해가 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서 어린이를 절에서 멀어지게 하였다. 그리고는 당장에 수입이 생기는 노인과 부모들만 절에 잡아두고자 하였다. 어린이 포교는 돈이 안 되는 일이라서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당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세상을 등지고, 당시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이제 노인이 되었다. 이 노인들이 오늘날 한국불교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아이들은 이제 경제력이 있는 부모가 되었으나 절에 다니지 않으며, 그 영향을 받은 자녀들 역시도 절에 다니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불교 신도는 줄고 절 살림은 더욱 궁핍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불교의 기사회생을 위해선 이제라도 어린이 포교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오늘의 투자가 내일의 결실인데 한국불교는 이를 간과해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린이 포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전에 먼저 한국사회 종교시장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현대사회의 탈종교 현상이 심화되면서 우리사회의 종교인구는 감소하고 있다. 그 이유로는 종교 자체에 대한 관심의 감소와 종교에 대한 불신과 실망 등이 손꼽힌다. 먹고 사는 경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종교가 대안이나 위안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이 힘들면 힘들수록 종교에 대한 근원적 갈망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불확실한 미래, 그리고 삶과 죽음의 문제는 여전히 인간의 실존적 고민이기 때문이다.

이에 모 교수는 “전통적 종교는 쇠퇴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종교적 관심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종교는 인류의 지혜이자 역사적 자산이다. 보존과 성찰을 통해 거듭나야 한다”라고 진단한다. 인문학, 템플스테이, 명상 등 종교와 유관한 행위들이 대중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것이 전통적 종교의 쇠퇴 속에서도 사람들의 종교적 관심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에 한 종교학자는 “근대 이후 한국종교가 마치 사회와 분리되는 폐쇄공간인 것처럼 집단의 양적 팽창에만 집중하고 있다. 개인의 영적 욕구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모색할 때이다”라고 주장한다.

정리하면, 종교인의 비율은 줄었으나 종교심은 여전하다. 현실이 분주해서, 종교가 믿음을 주지 못해 종교를 떠나 있지만 종교를 향한 인간의 근원적 심정은 변함없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깊은 본성과 욕구를 헤아려 충족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 각박한 현실에 지친 사람들에게 다정다감한 이웃으로, 언제나 인간을 품어주는 너그러운 큰 산처럼 그렇게 존재하고 다가가야 한다. 그래서 세상의 풍파에 찌든 인간들이 편안하게 기대어 쉴 수 있는 안식처이자 귀의처가 되어야 한다.

인간이 본성적으로 갈구하는 다정함과 너그러움이 아니라 이익이 되면 품고 그렇지 못하면 내치는 종교가 어찌 포교에 성공할 수 있겠는가. 한국불교는 이런 입장을 어린이 포교에 대입할 수 있어야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사찰에 당장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하여 어린이 포교를 피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우리사회 종교시장에 대해 이해를 했으므로 지금부터는 보다 구체적으로 어린이 포교의 실천 방안을 모색해보기로 하자. 우선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어린이 법회다. 법회는 부처님을 예경하며 부처님 법을 배우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법회를 하는 사찰을 주변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어떤 종교의 신도가 된다는 것은 그 종교의 의식에 동참하는 것이 전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법회에 참석해야 진정한 불자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 법회는 아이들이 불교 신도로서의 첫걸음이다. 이 첫걸음을 통하여 사찰과 스님에 대한 거리감이 해소되고 불교에 대한 친밀감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법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함으로써 소속감을 느끼고 사찰과 하나 된 불자가 되는 것이다.

어린이 법회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아이들의 시각에서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법회는 지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법회의 핵심인 법문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 인생에 대한 법문의 내용도, 무상이니 공이니 연기니 하는 용어도 아이들에게는 도통 와 닿지 않는다. 아이들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법회가 필요한 것이다.

어린이 법회가 열린다면 아이들을 편안하게 이끌어 줄 수 있는 지도교사가 있어야 한다. 물론 스님이 어린이 법회의 지도교사 되어준다면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스님이 아이들을 직접 지도해주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종립대학의 불교 전공 학생 또는 대학생불교연합회 학생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이들은 여타의 불자에 비하여 불교 전공 지식이 풍부하고 신심도 갖추었기 때문이다.

어린이 법회, 지도교사와 더불어 필요한 것이 어린이 프로그램이다. 법회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법회 말고도 관심을 갖고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활동들이 있어야 한다. 방과 후 활동과 각종 캠프 등을 프로그램으로 고려할 수 있다. 방과 후 활동과 캠프는 학교의 정규수업 이후 학생들이 인성개발을 도모할 수 있는 제반 활동을 의미한다. 다만 방과 후 활동은 장기적, 상시적인데 비하여 캠프는 단기적, 임시적이다. 하지만 양자 모두 수업이 아닌 체험과 놀이에 기반한 인성교육이 되어야 한다. 방과 후 활동과 캠프의 운영을 위해서는 콘텐츠가 필요한데, 사찰의 장점과 아이들의 호기심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활동이 효과적이다.

명상은 그 누가 생각하더라도 사찰 친화적인 콘텐츠이다. 다만 명상은 자칫 아이들이 지루해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정적(靜的)인 참선 수행보다는 정중동(靜中動)할 수 있는 ‘숲길걷기 명상’과 ‘명상 체조’, 그리고 허공을 응시하는 것이 아닌 대상이 있는 ‘만다라 명상’과 ‘별빛 명상’ 등이 좋다. 명상과 더불어 사찰의 또 다른 장점은 자연 친화이다. 농촌 체험, 염색 체험, 숲 체험, 별자리 탐방, 생태과학관 탐방 등 자연을 탐방하고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가 좋다. 이외에 풍물, 도예, 운동 등도 사찰의 장점을 살려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이끌 수 있다. 실제로도 이 콘텐츠들은 사찰에서 아이들의 호응이 높은 편이다. 어떤 콘텐츠가 되었든 학교와 학원의 연장이 아닌 수업으로부터의 탈출이 되어야 한다.

어린이는 한국불교의 미래다. 그리고 불교신도의 감소와 출가승려의 감소는 현재 한국불교의 최대 과제이다. 불자가 줄고 스님이 줄어드는데 어찌 불교가 존속할 수 있겠는가. 이 문제는 하루 이틀 만에 해결할 수 없다. 당장에 불교에 귀의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리도 없고, 스님이 되겠다고 출가하는 사람들이 급증할 리도 없다. 한국불교가 불자와 스님이 모두 감소하는 위중한 상태에 놓여있기에 마음이 급하지만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세우는 심정으로 어린이 포교에 전력해야 한다. 다시금 강조하거니와 ‘어린이는 한국불교의 미래다.’ 어린이가 사찰에 다녀야 불자가 늘고, 불자가 늘어야 스님도 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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