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허 스님

산에 가서 나무 해다 불 때고 아궁이 불꽃 보며 놀다가 고구마 구워 껌정 묻히고 입가 데어도 그 맛이 산해진미, 더는 없다고 혼자 노시며 가끔 소식 주시는 스님이다. 그 중 한 소식 지면에 실어 본다.

지난번 백양사에 오셨다가 여기까지 이 소납을 찾아오시니 옛 도반이 온 듯 정회가 깊었습니다. 지난해 서울에서 이 시골 산중까지 몸 다친 변변찮은 중을 위하여 끓여 오신 죽은 아직도 몸속에서 식지 않고 자비의 맛을 지니고 있으며 나무에 박힌 공이처럼 뚜렷합니다. 업장을 짓지 않는 것이 향상의 길이라 하나 선업은 지어 보는 것이 무방하다 할 것이고 밋밋한 나무보다 어쩌다 공이가 있는 나무가 품위가 있다 할 것입니다. 늘 감사해 합니다. 감사를 달리 대할 일은 없고 금둔사 바람 한 자락을 보냅니다.

 

 

야채 장수 아저씨

트럭을 개조하여 여러 가지 야채를 싣고 동네 골목골목을 다니며 한 가지를 사더라도 덤을 얹어 주는 선량한 얼굴을 가진 아저씨다. 외출하려다 급한 마음에 3천 원어치를 외상으로 사면서 나중에 돈을 지불하면 되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수첩에 ‘불교인의 집 3,000원’이 적혀 있는 걸 보고 순간 당황한 적이 있었다.

‘보살’이란 이름도 남이 불러주고 ‘불교인의 집’이라는 문패도 남이 달아준다는 것을 나에게 각성시켜준 고마운 아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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