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이와 함께 살고 싶어요!”
“제 아이와 함께 살고 싶어요!”
  • 정리=김지원 기자
  • 승인 2018.09.2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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⑱ 산모 사형수 박순희

1970년 어느 날, 여자사형수의 처절한 절규소리가 집행장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4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때만 떠올리면 착잡한 심경이 다시 일어난다. 그 여인은 교도소에서 몸을 푼 사형수 박순희였다. 박 씨의 기구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박 씨는 22세에 명문고 영어 교사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선남선녀였던 두 사람은 주위의 축복을 받으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해나갔다. 박 씨와 그의 남편은 금슬이 무척 좋았다. 둘은 그렇게 행복한 삶만 계속될 것이라 굳게 믿었다.

20년간 아이 안 생겨 남편 외도 허락
이혼하자는 남편 독살한 사형수
수감 후 임신 4개월 사실 확인
출산 3주 만에 아들과 이별, 형 집행


그런데 그들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 결혼 초기만 하더라도 박 씨의 남편은 “당신이 있는데 아이 없어도 살지, 없으면 어때”라며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만큼 박 씨를 위해주던 남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남편의 뜨거운 사랑도 해가 거듭될수록, 시댁의 눈칫밥이 늘수록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갖은 노력에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박 씨는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박 씨 부부는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는 두 사람 모두 불임은 아니라는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대학병원에 가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명확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42세가 될 때까지 임신 소식이 없으니 박 씨는 스스로를 옥죄었다. 자신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한 박 씨는 갖은 강박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린 박 씨는 남편의 외도를 허락하며 대를 이을 것을 제안했다. 박 씨의 남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젊은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 여자는 임신을 하게 된다. 남편은 박 씨를 두고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새로운 여인과 새 살림을 차릴 생각이었다.

결국 박 씨의 남편은 위자료를 조건으로 박 씨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남편을 철썩 같이 믿었던 박 씨에게는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박 씨는 애써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사랑하는 남편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이를 낳아서 데리고 오세요. 제가 평생 잘 키워드릴게요. 그리고 그 여자를 나에게 소개하세요. 제가 잘 설득해볼게요.”

하지만 남편은 새로운 여인을 택했다. 박 씨가 아무리 사정해도 그의 남편은 끝내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에 박 씨는 쥐약을 탄 주스를 남편에게 먹이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남편을 독살한 죄로 사형수가 됐다.

운명의 장난이 바로 그런 것일까. 형 집행 대기 중이던 박 씨는 문득 자신의 배가 불룩 나온 것을 느끼고 몸에 무슨 혹이 생겼나하고 의무실을 찾았다. 의무실에서 내려진 진단의 내용을 들은 박 씨는 숨이 턱 막혔다. 20년간 자신이 석녀(石女,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인 줄 알았건만 그녀의 뱃속에는 그토록 원하던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자신이 죽인 남편의 아이. 4개월 차였다. 임신사실을 알게 된 박 씨는 복받쳐 오르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그 무렵 박 씨는 불교에 귀의할 뜻을 두고, 나와 만나게 된다. 산달이 가까워질수록 박 씨는 나에게 자신의 기구한 삶에 대해 하소연했다.

“제가 임신을 할 줄 알았다면 남편을 죽일 일도, 사형수가 될 일도 없었어요. 그렇게 바랄 때는 온갖 노력을 해도 생기지 않던 아이가, 어찌 이제 생긴답니까.”

산모 사형수는 원칙상 교도소에서 출산한 아이를 3주 뒤 보육원에 보내야 했다. 아이와 3주 만에 헤어져 영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 씨는 밤낮없이 오열했다.

교도관이 지켜보는 여사에서 박 씨는 아들을 낳았다. 아들이 보육원으로 보내지던 날, 박 씨는 나를 붙잡고 호소했다.

“나중에 애가 커서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묻는다면, 내가 제 아버지를 죽인 사형수였다는 이야기만은 하지 말아주세요.”

박 씨의 사형집행 당일, 나를 포함해서 현장에 있던 이들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최후의 집행까지도 울부짖던 박 씨의 모습을. 박 씨의 마지막 유언은 “살고 싶어요. 아이와 함께 살고 싶어요. 살려 주세요”였다. 처절한 절규를 끝으로 박 씨는 생을 마감했다.

아이를 갖지 못해 남편의 외도를 허락했지만 끝내 배신감에 사랑하는 남편을 독살한 아내. 교도소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 임신 사실은 박 씨가 죽는 그 순간까지 그녀를 괴롭게 했다.

끝없는 윤회를 통해 이번 생에 박 씨는 기구한 삶을 살다 갔다. 나는 박 씨의 내생은 이번처럼 기막히고 또 기막힌 삶 대신 다른 모습이 펼쳐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한편 박 씨의 이 같은 이야기는 MBC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각색돼 세간에 알려진 바 있다. ‘석녀’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해당 편에서는 배우 김혜자가 주인공 여자사형수 역을 맡았다.

아이를 갖지 못해 살인까지 저질렀던 여인이 사형집행 전 교도소서 아이를 낳았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 ‘수사반장’ 촬영현장.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김혜자(왼쪽 두 번째).
아이를 갖지 못해 살인까지 저질렀던 여인이 사형집행 전 교도소서 아이를 낳았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 ‘수사반장’ 촬영현장.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김혜자(왼쪽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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