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능엄경(楞嚴經) 1

〈능엄경〉은 사랑하는 제자 아난을 위한 가르침이다. 물론 처음 불교를 만나서 참다운 수행을 시작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들려주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이 경의 원명(原名)은 〈대불정여래 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印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이다. 〈능엄경〉으로 줄여 부르며 한글대장경 173책 〈수능엄경〉에 실려있다. 한국인이 애송하는 경전이라 강의록이 많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송찬우거사의 강론을 좋아한다. 읽다가 보면 번쩍이는 깨침이 눈 끝으로 들어와 마음을 새겨져 실천의지를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여름 난생처음 만난 더위 속에 〈능엄경〉을 읽기 시작했다. 더위 때문에 편히 숨을 쉴 수도 없었지만 수행자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주술에 걸려 음욕의 늪에 빠지는 상황은 등골이 서늘해지니 이게 바로 납량경전이 아닌가 싶다.

〈능엄경〉에서 아난은 부처님을 따라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법문은 언제나 들었지만 자신의 지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 생각했다. 시자로서의 소임에 충실하느라 언제나 듣는 것에 만족하고 이 가르침에 의지해 수행할 마음을 내지 않았다. 그런 아난에게 ‘아난, 마등가녀의 유혹에 빠지다’는 희대의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부처님은 즉각 아난구출작전을 통해 구해낸 다음 다시는 그런 일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실천수행을 일러주었다.

이 사건은 출가자 전원에게 자신의 공부법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다. 법문을 많이 듣는 것만으로는 이런 난관과 장애를 극복하는 데 전혀 도움이 못되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으니 아난의 희생으로 많은 이들을 실천수행의 길로 이끈 멋진 경전이 됐다.

그 내용은 이렇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이 여름안거를 마치고 3일에 걸쳐 안거 중에 일어난 서로의 허물을 지적하고 경책하는 자자일에 대중을 위하여 미증유의 법문을 설하셨다. 법회를 마치자 빠세다닉왕이 부왕의 기일에 천도재를 베풀고 부처님과 제자들을 왕궁으로 초청한다. 사위성의 모든 이들도 부처님과 제자들을 공양하기 위하여 다 왕궁으로 모여들었다.

그 때 부처님의 시자인 아난은 멀리 공양청을 받고 1박2일간 다녀오고 있었다. 보통은 공양청을 받으러 갈 때는 행동거지를 근엄하도록 만들어주는 상좌스님과 잘못된 실수를 방지해 주는 궤범사와 함께 길을 나서는데 어쩐 일인지 그 날은 아난이 홀로 떠났던 것이다. 아난이 기원정사에 도착했을 때는 부처님과 대중들이 모두 공양과 제를 받으러 떠났기 때문에 공양거리도 없고 스님들도 없었다. 아난은 발우를 들고 탁발을 나오며 생각했다.

‘오늘 처음으로 불자가 되어 첫 공양을 올리는 신도를 만나면 그의 신분이나 빈부에 대한 차별 없이 평등하게 그를 위하여 법을 설하리라.’

아난의 고요하고 정갈한 자태로 탁발하는 모습에 반한 아가씨 하나가 어머니인 마등가에게 달려가 저 분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마등가는 부처님의 제자는 결혼하지 않는다고 하며 반대하자 딸은 목숨을 버리겠다고 겁박했다. 이에 딸을 살리려고 마등가는 자신의 전공인 주문, 사비가라선범천주로 아난을 홀렸다.

일촉즉발, 아난의 운명이 위급한 순간, 부처님이 아시고 빠세다닉왕가의 천도재를 마치고 아난을 구하기 위해 설법하지 않고 바로 기원정사로 돌아오셨다. 법문을 듣지 못한 왕과 함께 모든 이들이 부처님을 따라 왔다. 그 때 부처님은 자리에 앉으시고 정수리에서 모든 보배로 장엄하여 두려움 없는 광명을 놓으셨다. 그 광명 속에선 천 개의 잎으로 이루어진 보배연꽃이 출현하더니 연꽃 속에서 화신불이 등장하여 능엄주를 설하였다. 부처님은 문수사리보살에게 명령하여 능엄주를 가지고 가서 음실에 빠진 아난을 구하라고 하셨다. 문수사리보살이 즉시 가서 염불하자, 마등가가 행한 악한 주문은 순간 힘을 잃어버렸다. 문수사리보살은 아난과 마등가의 딸을 함께 데리고 왔다. 아난은 부처님을 뵙자 엎드려 서럽게 울었다.

“그동안 부처님께 항상 들어 온 삼관법문(三觀法門)을 수행하지 않아 도력을 이루지 못해 오늘 이런 수모를 당하였습니다. 제가 지금 마군의 세력에 갇히고 나서야 법문을 많이 들었다고 수행의 힘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애욕의 번뇌는 삼관수행인 사마타, 삼마, 선나가 아니면 녹일 수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아난은 부처님께 삼관법문을 수행하는 최초방편문을 청하였다. 애욕을 끊는 가르침, 능엄의 가치는 청정계율이이며, 음욕을 끊는 일을 가장 우선시하는 가르침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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