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당신이 그립습니다”

“작은 이익 때문에 얼굴을 돌리는 이웃들에게조차 미완의 여래(如來)를 읽던 ‘중’이었다. 두두물물(頭頭物物)에서 절대적 가치를 찾아내던 무산당 그가 그립다.”

지난 5월 26일 원적에 들은 조계종 제3교구본사 신흥사 조실 설악당 무산 대종사<사진>를 그리는 평생 도반 정휴 스님(강원 화암사 영은암 암주)의 글이다.

무산 대종사가 생전 발간했던 불교계 유일 학술 계간지 〈불교평론〉은 최근 발간한 가을호에서 ‘설악무산 스님, 그 흔적과 기억’을 주제로 추모특집을 실었다.

추모특집에는 정휴 스님(화암사 영은암 암주)·성우 스님(BTN불교TV 회장)·우송 스님(신흥사 주지) 등 도반과 후학을 비롯해 이근배(예술원 회원)·권오민(문학평론가)·최정희(본지 前 편집이사)·신달자 시인 등 18명의 사회 각계 인사들이 무산 대종사와의 추억담을 쏟아냈다.

정휴·성우 스님 등 도반부터
정치·문학·언론계 인사들까지
무산 대종사와의 추억담 소개

정휴 스님 “우린 한산과 습득”
칼이 들어와도 담담했던 장부


스님과 각계 인사들이 풀어놓은 추억 이야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무산 대종사의 면면들이 담겨져 있다.

대종사 열반 당시 호상을 맡았던 도반 정휴 스님은 무산 대종사와의 첫 만남부터 평생 도반이 된 이야기를 술회했다. 무산 대종사가 주석했던 금무산 약수암에서 목도한 천진하고 소탈한 모습부터 자신에게 어려운 부탁을 청했던 것까지 절절한 반세기의 인연담은 대종사가 정휴 스님에게 건넨 일구(一句)로 정리된다. “우리는 한산(寒山)과 습득(拾得)이다.”
중국 당나라 시대 선승인 한산과 습득은 기행으로 유명한 수행자였으며, 돈독한 우의를 나눈 지음(知音)이기도 했다. 무산과 정휴, 두 스님의 평생 도반의 길은 이때부터 이뤄졌을지 모른다.

같은 시조시인으로 문학적 동지였던 성우 스님은 담대했던 무산 대종사의 일화를 소개했다. 청도 신둔사의 객실에 하룻밤 머물렀던 두 스님은 취침 중 강도를 맞이하게 됐다. 당시 강도는 두 스님에게 칼을 들이대고 “가진 것을 내놓아라”고 협박했고, 성우 스님은 걸망 속에 있는 것들을 내놓았다. 하지만 무산 대종사는 달랐다. 가진 것이 없으니 죽일 테면 죽이고 살릴 테면 살리라고 배짱을 부렸고, 결국 강도는 눈만 부라리고 나갔다. 강도가 나가자 무산 대종사는 성우 스님에게 “그래봐야 죽기밖에 더 하겠냐 뭐할라고 강도에게 다 바치냐”고 한 마디를 던졌다. 이에 대해 성우 스님은 “‘이 사람은 어떤 두려움도 없이 자기만의 길을 갈 사람’임을 그때 알았어야 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신흥사 주지로서 무산 대종사를 모셨던 우송 스님은 지난 2016년 5월 21일 봉행됐던 설악산문 현판 제막법회에서 자신에게 전한 대종사의 말을 잊지 않고 있다. 당시 무산 대종사는 우송 스님에게 “나는 이제 설악산에 와선 할 일을 다했다. 혹시 훗날 문도들 사이에 시빗거리가 생기면 이 현판을 한 번 쳐다보아라. 그러면 나의 뜻을 알 것이다”고 말했다.

최정희 본지 前 편집이사는 1984년 〈불교신문〉 재직 당시 주필 겸 편집국장이었던 무산 대종사와의 인연을 풀어놓았다. 그리고 대종사를 “이산 교연 선사의 발원문처럼 약풀이 되고 쌀이 되어 이웃을 돕고 나누었던 분”이라고 회고하며 “행원(行願)의 삶이면서 바람처럼 걸림없는 삶이었다. 그 이타행은 ‘머문 바 없이 내는 마음(應無所住 而生其心)의 자비’였다”고 상찬했다.

가톨릭문인회장까지 지낸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신달자 시인과 무산 대종사의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2001년 남편을 떠나 보내고 우울증에 시달렸던 신 시인은 수서역 주변 포장마차에서 술을 자주 마셨고, 이를 토대로 ‘저 거리의 암자’라는 시를 세상에 내놓았다. 우여곡절 끝에 대종사를 친견하기 위해 동안거 해제법회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대종사는 젊은 납자들에게 ‘여러분이 3개월 수행한 것보다 이 시 한편이 더 불경에 가깝다’고 신 시인의 시를 소개했다. 신 시인은 “그 무렵 나는 시가 잘되지 않아 절망하고 있었다. 그런 터에 스님의 한 마디는 큰 힘이고 위로였다”고 술회했다. 이를 통해 신 시인은 대종사에게 ‘남암(南庵, 이조 혜가가 달마를 찾아가기 전 수행하던 토굴)’이라는 법호를 받기도 했다.

문학평론가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는 백담사에서 대종사와의 만남을 잊을 수 없다. ‘문학평론가’라는 자신의 소개에 대종사는 “허망하기 짝이 없는 언어의 그물질”이 평론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요즘 평론이라는 것은 남이 만들어놓은 방법론으로 다른 사람이 쓴 작품을 왈가왈부 시시비비만 하지요. 그러니 허망할 수밖에”라고 한 마디를 더 했다. 당시를 권 교수는 “마치 크게 한 번 ‘할방’이라도 당한 듯한 느낌”이라고 술회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