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당송시대 선종사원의 소임(1)

지사 : 사무·행정, 두수 : 교육·수행
당송시대 소임, 이·사판 구분 없어

선종사원에는 주지(방장) 밑에 상위 요직으로 6명의 지사(知事)와 6명의 두수(頭首)가 있다. 지사는 사무·행정·경제(재정) 등 운영 일체를 담당하고 있는 소임으로서 조선시대 사판에 가깝고, 두수(頭首)는 교육과 수행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소임으로서 이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송시대 선종사원에서는 그런 구분이나 차별이 없었다. 사판 쪽인 지사가 이판 쪽인 두수의 소임을 맡기도 하고, 두수가 지사의 소임을 맡기도 한다. 지사를 동서(東序), 두수를 서서(西序)라고 한다.

당말오대와 북송시대에는 4지사, 5두수(五頭首, 5명의 두수) 제도였고, 남송ㆍ원대(元代)에는 6지사, 6두수 제도였다. 먼저 4지사(당, 북송시대)와 6지사(남송시대)에 대하여 설명하고 다음 회에서 5두수, 6두수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북송시대 4지사는 감원(監院)ㆍ유나(維那)ㆍ전좌(典座)ㆍ직세(直歲)이다. 4개의 지사 소임이 남송ㆍ원대에는 2개의 소임이 증설되어 6지사 제도가 되었다. 감원의 업무가 과다하여 남송시대에는 도사(都寺)ㆍ감사(監寺)ㆍ부사(副寺)로 나누어서 6지사가 된 것이다.

〈당, 북송 총림의 4지사〉

감원(監院)-서무, 행정, 재정, 업무 감독 일체 총괄
유나(維那)-규율, 기강, 법회, 행사 총괄
전좌(典座)-주방, 식사 담당. 별좌와 같음
직세(直歲)-건물, 산림 등 사찰관리

〈남송-원대 6지사〉

도사(都寺)-행정·사무·살림 일체 관리 총감독
감사(監寺)-도사 보좌역
              행정·사무·살림 관리 집행
유나(維那)-규율, 기강, 법회, 행사 총괄
부사(副寺)-금전, 곡물 출납 등 재무 담당
전좌(典座)-주방, 식사 담당, 별좌
직세(直歲)-건물, 山林 등 사찰 관리
※(소임명은 시대에 따름)

우리나라 선원에서 안거 결제 또는 불사가 있을 때 대중의 소임을 적어놓은 용상방.

 

(1)감원(監院)

감원(監院)은 서무·행정·재정 등 사원 관리 일체를 총괄·감독하는 소임으로 승당(僧堂, 선당)의 책임자인 수좌(首座)와 함께 선원총림의 양대 요직이다. 행정적으로는 주지 다음으로서 승당의 수좌와 함께 제2인자라고 할 수 있다.

당대(唐代)에는 주로 ‘원주(院主)’ ‘원재(院宰)’ ‘사주(寺主)’라고도 했고, 당말오대와 북송시대에는 감원, 남송·원대에는 도사(都寺)였고, 명대에는 다시 감원, 또는 ‘감사(監寺)’라고 불렸다.

감원은 4지사(감원·유나·전좌·직세) 가운데 서열 제1위이다. 남송시대에는 도사가 감원과 같은 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감원은 수좌의 직무 영역인 승당과 관련된 일을 제외하고는 총림의 모든 일을 총괄·감독한다. 따라서 두수 가운데 서기·지장·지객·지욕·지전의 일도 부분적으로는 감독 관장할 수밖에 없다. 감원의 임무에 대하여 장로종색의 〈선원청규〉에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감원이라고 하는 직책은 선원총림의 모든 일을 총괄한다. 관청에 나아가는 일, 관리나 시주들이 찾아오면 영접하는 일, 길흉 등 경조사, 그리고 재정의 출입과 회계, 금전과 곡식의 유무(有無), 수입과 지출 등 모두 담당한다.”(장로종색, 〈선원청규〉 3권)

(2)도사(都寺)ㆍ감사(監寺)ㆍ부사(副寺)

도사(都寺)ㆍ감사(監寺)ㆍ부사(副寺)는 앞에서 이미 고찰한 바와 같이 감원에서 분리된 소임이다. 남송 때에 이르러 감원의 업무가 많아지자 셋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도사(都寺)는 북송 시대 감원과 같다. 주지, 즉 방장을 대신하여 행정, 서무, 재정 등 서무 일체를 총괄·감독하는 소임이다. 오늘날 총무와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실제는 방장 밑의 주지와 같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

감사(監寺)는 도사(감원)의 업무를 실질적으로 집행하는 실무자이다. 감사는 한 때 감원과 같은 경우도 있었다.

부사(副寺)는 회계, 금전 출납ㆍ쌀ㆍ천ㆍ곡식 관리 등 수입 지출을 맡고 있는 소임으로 오늘날 재무에 해당한다. 부사를 고두(庫頭, 副寺의 고칭)ㆍ궤두(櫃頭)ㆍ재백(財帛)ㆍ부사(副司)ㆍ부원(副院) 등으로도 불렀다. 북송 때 장로종색의 〈선원청규〉에는 고두(庫頭)가 나오는데, 이 고두가 부사의 고칭이다.

남송 원대에 편찬된 청규에서는 도사와 감사를 한 장(章, 도감사)에 묶어서 설명했는데, 도사의 직무에 대해서만 명시하고 감사의 업무에 대해서는 조금도 명시하지 않았다. 이것은 감사의 업무가 도사와 구분되는 특정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즉 감사는 도사의 지시사항이나 업무를 집행, 보조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여러 청규에서 도사와 감사를 한데 묶어 ‘도감사’ 장(章)에서 설명한 것이다. 우리나라 사찰 소임 가운데에서 도감(都監)은 아마 여기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명말ㆍ청대에 이르러서는 도사(都寺)가 없어지고 감사 하나로 통합된다. 명말에 편찬된 행원(行元)의 〈총림양서수지(叢林兩序須知)〉 항목에는 감사수지(監寺須知)만 있고, 도사수지(都寺須知)는 없다. 따라서 ‘도사’라는 명칭과 직책은 사라지고 감사가 모든 기능을 총괄했다. 여기의 감사는 북송시대 감원과 같은 것이다.

근대 우리나라 사찰의 직책 가운데, 3직으로 감무(監務), 감사(監寺), 법무(法務)가 있었다.(오늘날 총무ㆍ재무ㆍ교무의 전신) 감무는 3직 가운데 최고 자리로서 모든 사무를 총괄ㆍ감독했다. 이 감무가 바로 북송 때 감원, 남송 때 도사이고 오늘날 총무와 같은 소임이다. 또 감사는 감무를 보좌하는 직책으로 재무인데, 북송 때는 감원의 업무 속에 포함되었고 남송 때는 부사(副寺)의 소임과 같다. 법무는 교무로 개칭되었는데, 이 법무가 송대의 유나와 같은 소임이다.

(3) 유나(維那)

유나(維那)는 법도(法度)를 뜻하는 강유(綱維, 三綱ㆍ四維)의 ‘유(維)’와 범어 갈마다나(karma-danaㆍ磨陀那, 일을 지시하다)의 ‘나(那)’자를 따서 만든 중인(中印) 합성어이다.

유나는 선원총림의 기강과 규율, 그리고 법회 등 행사 진행을 담당하는 소임이다. 총림의 사법권(司法權)과 판결권을 가지고 있는데, 오늘날로 말하면 검찰 수장과 법원 수장의 기능을 합한 것과 같다. 그리고 총림의 각종 법회와 행사도 유나가 담당하고 사회도 유나가 본다.

중국불교에서는 유나를 ‘열중(悅衆)’이라고 한다. ‘대중을 기쁘게 한다’는 뜻이다. 유나가 기강과 규율에 치중하다 보면 대중은 경직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대중생활이 힘들게 되므로 대중을 기쁘게도 해야 한다는 뜻에서 ‘열중(悅衆)’이라고 한 것이다. 기강(유나) 확립과 대중의 화합(열중)을 운용의 묘(妙)를 통해 조화롭게 이끌어 가고자 한 것이다.

유나는 대중 가운데 살(殺)ㆍ도(盜)ㆍ음(淫)ㆍ망(妄)ㆍ주(酒)를 범하거나 횡령ㆍ착복하여 사찰의 재정을 축내거나 화합을 해치는 등 청규를 위반하는 일을 하고도 참회하거나 승복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들을 추방할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었다.

유나의 권한은 광범위하다. 예컨대 주지가 공무(公務)로 바빠서 보청(울력)에 나올 수 없을 때에는 주지를 대신하여 시자(侍者)가 나오도록 되어 있는데, 시자가 나오지 않을 때엔 주지의 시자를 추방하거나 문초ㆍ전출시킬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었다. 실제로 주지의 시자를 전출하거나 추방시킨 사례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규정을 두었다는 것은 사법권이 독립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공동체 속에서 사법(司法)의 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총림의 기강은 해이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나는 소직(小職)에 대한 인사 제청권도 갖고 있었으며, 각종 행사 진행과 사회, 그리고 망승(亡僧)의 장례도 유나가 관장한다. 특히 새로 들어오는 입방승이나 객승에 대하여, 도첩ㆍ계첩ㆍ면정유(免丁由, 병역ㆍ노역 면제증)ㆍ안거증 등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조사권)도 갖고 있었다.

(4) 전좌(典座)

전좌는 대중들의 식사, 즉 공양 일체를 관장하고 있는 소임이다. 주방장인 셈인데, 우리나라의 별좌(別座)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전좌의 임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을 정갈하고 맛있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전좌는 대부분 음식 솜씨가 있는 나이 지긋한 고참이 담당하는데, 대중들의 공양을 담당한다는 자부심과 작복(作福) 개념에서 자원하는 경우도 많다.

음식을 맛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 음식 만드는 것을 수행의 하나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 자세가 보살이어야 하고 대중을 위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전좌에 대하여 간혹 어떤 글에는 공양주(供養主)ㆍ공두(供頭)ㆍ반두(飯頭)라고 설명한 곳도 있는데,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정확하다고도 할 수도 없다. 공양주(공두), 채두(菜頭, 菜供), 갱두(羹頭, 국을 끓이는 소임), 미두(米頭, 쌀을 관리하는 소임) 등은 전좌 밑에 딸린 소직(小職, 하급직) 소임이다. 반면에 전좌는 이들을 통제ㆍ관장하는 상위직으로 6지사 가운데 하나이다.

전좌는 본래 대중의 침상(寢牀), 좌구(坐具, 방석 등)ㆍ와구(臥具, 침구), 그리고 음식(飮食)을 맡았던 소임이었는데, 선종사원(총림)에서는 주방의 일을 중시하여 음식을 전담하게 된 것이다.

당말의 유명한 선승 설봉의존(雪峰義存ㆍ822~908)은 가는 곳마다 전좌 소임을 자임했다. 원오극근은 〈불과격절록(佛果擊節錄)〉에서 “설봉은 행각할 때 조리(籬, 쌀을 이는 도구)와 목표(木杓, 주걱)를 매고 다녔다. 가는 곳마다 전좌가 되었다(雪峰, 擔籬木杓行脚, 到處作典座).”고 기록하고 있다.

(5) 직세(直歲)

직세는 도량, 당우, 산림(山林)의 관리, 보수 등을 맡고 있는 소임이다. ‘직세(直歲)’라는 말은 ‘바로 그 해’를 뜻하는데, 처음에는 1년마다 돌아가면서 이 소임을 맡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선원청규〉 ‘직세’ 장에는 직세의 소임에 대하여 “무릇 선원과 관련된 작무(作務, 보청, 울력)는 모두 직세가 맡는다. 직세의 직무는 요사(寮舍)ㆍ창문ㆍ담장 등 당우 수리(修理)를 담당한다. 그리고 방앗간(정미소)ㆍ유방(油坊, 기름 짜는 건물)ㆍ농막ㆍ마구간ㆍ전원(田園)ㆍ선거(船車) 등을 관리하며, 산림(山林)을 보호하고 도적을 방호(防護)한다.(장로종색,〈선원청규〉 3권. 直歲. (〈신찬속장〉, 63권, p.531a).”

직세의 업무 영역을 열거하고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직세가 보청(작무, 울력) 동원권을 갖고 있었다는 것과 총림의 산림(山林) 및 도적을 막는 임무도 맡고 있다는 점이다.

송대에는 황실과 사대부들의 기증으로 인하여 사원의 전답이 광대해져서 장원 담당인 장주(莊主) 소임을 신설(新設)했다. 장주 소임이 신설된 이후에는 농장관리, 소작관리, 방앗간ㆍ유방(油坊)ㆍ농막ㆍ마구간ㆍ전원(田園)ㆍ선거(船車) 관리 등은 장주에게 이관되었다.

남송 원대 선종사원(총림)에서는 6지사나 6두수 등 요직을 3회 이상 맡았던 이들에 대해서는 별도로 예우하여 단독 요사(寮舍)나 방사(房舍, 독방)가 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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