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의 필요성

조계종의 삼보륜

 

TI는 Temple Identity의 약자로 기업의 CI(Corporate Identity)에서 차용된 용어이다. CI는 기업 이미지를 통합적으로 만들어 내는 디자인 전략이다. 기업의 시각적 상징을 만들어 기업 이미지의 통일화를 꾀하는 것이다. CI의 대표적 사례로는 로고(logo)를 들 수 있으며, 흔히 CI를 로고라고 부른다. 애플, 삼성, 나이키, 아디다스, 샤넬, 스타벅스, 코카콜라 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은 저마다 로고가 있다. 사람들은 로고만 보고서도 해당 기업을 알아본다. 때문에 기업들은 CI에 기업의 가치와 철학, 그리고 고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담아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한다.

불교적으로 이해하면, ‘만(卍)’자는 불교의 대표적 로고이다. 하지만 만(卍)자는 개별 사찰을 독립적으로 상징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 전체를 상징하는 만(卍)자와는 달리 개별 사찰의 정체성을 알릴 수 있는 TI가 필요하다. TI는 개별 사찰의 고유 문장(紋章)을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이 각각의 사찰을 구별하여 인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상징인 것이다.

불교 종단별 상징 큰 효과
재가수행단체도 TI도입
사찰별 특성 반영해 개발해야

각 불교종단의 문장을 연상하면 TI에 대한 이해가 보다 쉽다. 사람들은 종단 고유의 문장만을 보고서도 각각의 불교 종단을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삼보륜’ 마크를 종단 문장으로 사용한다. 삼보륜은 조계종의 이미지를 대표적으로 표현한 상징으로, 삼보의 신앙과 선교양종의 조계종의 이념을 담았으며, 사부대중의 화합 그리고 신앙과 포교를 통한 불국정토의 구현을 의미한다.

대한불교천태종은 금강저와 삼제원융이 결합된 문장을 사용하고 있는데, 세 개의 청색 원을 포개어 놓은 위에 황색 금강저(金剛杵: vajra)를 상하로 세워 놓은 문양이다.

대한불교진각종은 금강계구회만다라(金剛界九會曼茶羅)를 원(圓)으로 표현하고 그 가운데 5불(佛)을 표시한 ‘금강륜상’과 전체적으로 사각의 다이아몬드(金剛)에 범어 ‘옴’ 자를 새긴 형상을 TI로 사용하고 있다.

요즘에는 종단 이외에 개별 사찰과 재가수행단체들에서도 TI를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다. 봉은사는 좌선하고 있는 모습을 심플하게 표현한 TI를 홈페이지는 물론 명함, 공문서, 사보 등에 사용하고 있다. 수원 봉녕사 TI는 800년간 봉녕사를 지킨 향나무 위로 봉황이 날고, 아래에는 부처님이 앉아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한마음선원 TI는 한마음선원의 칠보탑을 형상화한 것으로 세 개의 원은 과거·현재·미래가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는 삼세(三世)가 공한 이치를 의미한다. 한마음선원은 TI를 상표·서비스표로 등록해 국내외 지원에서 발행되는 책과 정기간행물 등 각종 인쇄물과 판촉물, 웹사이트 등에 활용하고 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법륜 스님이 이끄는 정토회도 연꽃을 단순화한 TI를 플랜카드, 홈페이지, 포스터 등 다양한 홍보물에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TI를 단순한 시각적 미술품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TI는 사찰(Temple)의 정체성(Identity)이 담긴 대중적 이미지의 총체이다. 해당 사찰의 고유한 특성을 하나의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대중들에게 사찰을 친근하게 알리는 것이다.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선 TI에 사찰의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함축되어 있어야 한다. 사찰의 과거와 현재의 역사, 그리고 미래의 비전이 담겨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TI의 제작은 시각적 디자인 작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찰의 역사와 비전을 담아내는 이념적 작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각종의 심볼마크

왜 TI가 필요한가?

첫째, TI는 사찰 브랜드 포교이기 때문이다. 브랜드(brand)란 특정 조직이 다른 조직과 구별되기 위해 사용되는 이름이나 기호, 의장(意匠)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바로 심벌마크, 로고, CI, 그리고 TI가 곧 브랜드다. 사람들은 브랜드만 보고서도 해당 기업과 상품을 떠올린다. 브랜드가 인지도를 높여주는 것이다.

TI는 사찰의 인지도를 높여줄 수 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국보 및 보물이 없는 사찰의 이름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차별성 있게 인지되지 못한다. 불국사의 이름을 대면 석가탑과 다보탑이, 해인사의 이름을 대면 팔만대장경이 연상되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 사찰의 이름을 대면 그냥 별 차이 없는 절로만 인식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사찰이 TI가 있다면 사람들은 그 TI로써 해당 사찰을 인지할 수 있게 된다. 대중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짐으로써 그 만큼 포교에 유리해지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포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여 교화하는 것이지만, 그러기 위해선 우선 대중에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TI는 사찰의 막연한 이미지를 구체화하여 인지도를 높여줌으로써 사찰의 대중 접근성을 강화시켜준다. 그리고 사찰의 대중 접근성은 포교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는 TI가 사찰 브랜드로서 사찰의 인지도를 높여주는 만큼 포교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TI가 신도들에게 소속감과 자긍심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과 단체의 로고를 보면 소속감과 자긍심을 느낀다. 외국에서 태극기를 보거나 국내 기업의 브랜드를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도 그와 같다.

불자 역시 자기 사찰의 TI가 있다면, 그것을 보고 소속감과 자긍심을 느낄 것이다. 아마도 아파트 현관문에 붙어있는 교회의 CI(Church Identity)는 교인들에게 그와 같은 느낌을 주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국불교에 TI가 보편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술한 각 종단의 문장들은 신도의 소속감과 자긍심을 함양시켜주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한국불자들은 일 년에 한 번씩 범종단적인 행사인 ‘연등축제(Lotus Lantern Festival)’를 한다. 여러 종단이 모인 이 행사에서 각 종단의 신도들은 자기 종단의 문장에서 소속감과 자긍심을 느끼게 된다. 종단에 대한 종도 의식이 별로 없는 한국불교의 상황에서 이는 특별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자동차에 붙어있는 종단 문장의 스티커를 보고 느끼는 반가운 감정도 소속감과 자긍심의 발로라고 하겠다.

셋째, TI는 고급 디자인된 사찰 관련 상품의 개발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종교조직, 더구나 무소유로 인식되는 불교교단에서 상품을 개발한다는 자체가 어색하게 들릴 수 있다. 숭유억불의 조선시대 이후 우리불교는 무위도식(無爲徒食)한다는 사회적으로 왜곡된 인식을 극복하고자 선농불교와 생산불교를 도모하여왔다. 그리고 현대사회에 들어서는 수행만으로는 교단과 사찰이 운영되지 못하는 실존의 문제로 인하여 사찰에 경영이 실재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현재 사찰들은 전통적인 목탁, 염주, 부채, 열쇠걸이를 비롯하여 최근에는 머그컵, 에코백, 핸드폰 케이스 등에 이르기까지 불교 문양이 새겨진 각종 불교문화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상품들은 사찰별 특성이 없다. 전국 어느 사찰에서나 대동소이한 상품들을 사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고급스럽게 디자인된 TI가 로고로 찍힌 불교문화상품은 매력적인 기념품이 된다. 사찰에서 판매되고 있는 불교용품들이 고급스런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고급 디자인이 새겨진 기념품은 눈에 띄는 차별성을 줄 수 있다. 또한 TI는 사찰의 불교용품점에서 팔고 있는 중구난방인 상품들에 통일감을 주는 효과도 있다. 사실 불교용품점의 상품들은 종류가 다양하고 그 진열도 전문적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정돈된 느낌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동일한 TI의 로고가 상품마다 새겨있다면 여러 상품이지만 단일한 통일감을 줄 수 있음은 물론 사찰의 로고로 인하여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감까지도 주게 될 것이다.

TI를 도입한다고 하여서 당연히 사찰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TI의 도입 못지않게 그 운용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일단 TI가 도입되면 종무원은 물론 신도들에게 그 의미를 우선 상세히 설명해 주어야 한다. TI는 말 그대로 사찰(Temple)의 정체성(Identity)이 통합된 이미지이기에 그 안에 담긴 사찰의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사찰이 소식지인 사보(寺報)를 간행하고 있다면 그 곳에 게재하는 것이 전달에 보다 효과적이다.

TI는 지속적인 관심과 관리를 필요로 한다. TI 도입 시에는 많은 관심을 보이다가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TI는 일시적인 쇼(show)가 아니라 사찰의 이념과 행동 그리고 비전이 담긴 정신 운동이자 이미지 운동이므로 사찰의 대중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관리를 하여야 한다. 이는 TI가 절대불변이 아니라 수정보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영원불변이지만 TI는 시대환경에 따라 변화할 수 있으므로 본질이 손상되지 않는 선에서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다. 물론 너무 잦은 수정과 보완은 사람들의 혼동을 초래하기에 지양해야 한다.

기업의 이미지 통합 작업으로 금융권에서 시작된 CI가, 이제는 전자, 패션, 유통, 건설 등의 회사를 거쳐, 지방자치단체, 교육기관은 물론 대학(UI, University Identity)에까지도 확산되었다. 현재는 종교단체, 특히 교회에서 CI도입이 활발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대사회 사찰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올바른 사찰상을 정립하고, 그에 부합하는 TI를 도입하여 브랜드 포교를 통한 사찰성장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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