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식의 불교 속 부자되는 법] 작은 소비에 방심하면 종잣돈 없다
[윤성식의 불교 속 부자되는 법] 작은 소비에 방심하면 종잣돈 없다
  • 윤성식 고려대 교수
  • 승인 2018.09.1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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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자리이타의 불교경제

돈이 돈을 버는 시대다. 돈이 돈을 벌기 때문에 부자가 되어 그들만의 리그에 진입하는 게 필요하다. 눈 빤히 뜨고 돈 버는 길을 놓치는 게 보통 사람이다. 돈이 없으면 돈 벌 수 있는 길을 알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 미국의 CNN을 소유하고 있는 테드 터너는 처음 목돈 마련이 어려웠고 그 다음은 사업이 너무 쉬웠다고 고백했다. 내 주변에서도 그런 말을 하는 사업가를 여럿 봤다.

근면절제가 바로 자리이타
희생이 중생구제 아냐
소임 최선 다할 때 이타행 실현

가난한 사람이 목돈 마련하기는 정말 어렵다. 가난한 사람이 목돈 마련하는 방법에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가난하면 담보도 없기에 아주 높은 이자를 내고도 소액밖에 빌리지 못한다. 그렇게 마련한 돈을 목돈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누가 돈을 불쑥 증여한다면 몰라도 저축밖에 다른 길이 없다. 아무리 먹고 살기조차 힘들다고 해도 저축이 아니면 어떻게 목돈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커피가 아프리카에서 유럽에 처음 들어왔을 때 유럽인은 열광했다. 커피가 이교도의 음료수였다는 사실 때문에 악마의 음료수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에게 브레이크가 걸렸다. 교황이 커피를 마셔보고 ‘악마가 마시기에는 너무 맛있다’라고 말하면서 드디어 커피는 공식으로 허용된 음료수가 됐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바하는 수많은 칸타타를 남겼는데 그 중에는 ‘커피칸타타’라는 유명한 곡도 있다. ‘커피칸타타’에는 딸이 아버지에게 커피가 너무 좋아 시집을 안 가도 좋다고 말하는 구절이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에 커피에 매료된 것 같다. 커피 전문가인 바리스타까지 등장할 정도다. 2011년 20살 이상 한국인은 한 명당 100잔이 넘는 원두커피를 마셨다. 커피 가격을 생각하면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우리가 커피 전문점에 가는 이유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해서일 수도 있다. 점심 먹고 남는 시간에 쉴 공간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는 커피 전문점에서 노트북 켜 놓고 공부하는 것이 새로운 풍속도다. 어쩌면 도서관보다 색다른 분위기에 공부가 더 잘 될 수도 있다. 젊은이가 많이 가는 스타벅스나 카페베네는 커피를 마시는 장소라기보다는 공부하고 대화하는 장소다. 비싼 커피값은 가난한 봉급쟁이와 학생에겐 큰 금액이지만 음료수를 마시는 장소가 아니라 사교와 공부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비싼 것은 아니다.

나는 커피값이 비싸다고 생각한다. 커피를 꼭 마셔야 한다는 사람이 충분히 이해가 되면서도 그들에게 ‘가능하면 다른 대안을 찾으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좋은 연구실을 가진 덕분에 가끔 점심 식사를 한 후에 내 연구실에 가서 차를 대접하곤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커피 전문점을 더 선호하는 것 같아서 자주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 커피를 커피집에서 마시지 않고 사무실에서 마시면 한결 돈이 절약될 거다. 커피값이 얼마라고 그걸 절약하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매일 5천원이라면 일주일에 2만5천원 한 달이면 10만원이다. 목돈을 마련하기엔 부족한 금액 같지만 이런 식의 지출이 늘어나면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다. 한 달에 몇 십만원은 훌쩍 넘어간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다. 목돈의 구성요소는 생각보다 작은 지출로 이루어진다.

부자에게 소욕지족 권하는 사회

어떤 사람이 스님의 거처를 방문했는데 방에 그야말로 물건과 가구가 하나도 없더란다. 텅 비어 있는 곳에서 어떻게 생활할까 궁금했었다고 한다. 우리는 스님이 호화로운 물건과 가구로 가득찬 방에 살면 존경하지 않는다. 물건과 가구의 소유 여부에 의해 판단하는 것은 결코 불교적이라고 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님에게 금욕적일만큼의 절제를 기대한다. 불교는 소욕지족의 종교이다. 가난한 사람이 물건과 가구가 없는 방에서 살고 있다고 우리는 그를 존경하지 않지만 스님이 그렇게 산다면 존경한다. 만약 부자가 그렇게 산다면 어떨까? 당연히 존경할 것이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불교신자였다. 결혼도 불교식으로 했고 그가 세상을 떴을 때 미국의 ABC 방송은 그가 선불교적으로 애플을 운영했다고 평가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그가 결가부좌를 하고 명상하고 있는 사진을 볼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살았던 동네는 부자 동네였지만 미국 기준으로 그의 집은 결코 세계적 부자의 집이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의 집을 방문했던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는 집이 너무 작아서 놀랐다. 빌 게이츠는 스티브 잡스에게 이렇게 작은 집에서 모든 식구가 사느냐고 물었다. 스티브 잡스의 방에는 사진 하나와 가구 하나만 있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검은색 터틀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유명하다. 검은색 터틀셔츠를 고집하다보니 여러 벌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가 입은 옷, 안경, 신발의 합계가 언론에 보도된 적도 있다. 부자가 소박한 삶을 살면 우리는 그를 존경한다. 어쩌면 우리나라에도 소욕지족하는 부자가 있을텐데 언론이 외면하여 보도되지 않았던 것일까?

불자는 아니지만 워런 버핏은 소욕지족의 기업인이다. 워런 버핏은 오직 주식투자만으로 세계적인 부자가 된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가 현명한 것에 감탄하여 그를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부른다. 오마하는 네브라스카주의 도시인데 시골 중의 시골이다. 나는 한 번 그곳을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너무나 시골이어서 지금 기억나는 것은 옥수수밭뿐이다. 주식투자로 부자가 된 사람들은 거의 모두 주식거래소가 있는 뉴욕 월스트리트 근처에 사는데 그는 네브라스카 시골 동네에서 주식투자를 했다.

워런 버핏은 맞춤 양복이 아니라 기성복을 사 입는데 최근에 중국 기업의 기성복을 사 입어서 그 회사의 주가가 크게 올랐다고 한다. 워런 버핏은 양복이 헤지면 기워 입는데 양복 기워 입는 버릇이 부인이 고치지 못한 워런 버핏의 버릇의 하나라고 한다. 워런 버핏은 햄버거와 콜라를 즐겨마시고 동네 식당에 자주 들려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그가 직접 운전하는 자동차는 링컨 타운카인데 좋은 자동차이기는 하지만 부자들이 소유한 최고급 승용차와는 거리가 멀다. 그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롯데 호텔에 묵었다. 손님 접대 때문인지 그는 방과 거실이 있는 스위트룸을 예약했다. 롯데호텔의 스위트룸은 5등급이 있었는데 그는 그 중 최하등급을 예약했다. 워런 버핏이 롯데호텔에 숙박한다는 사실은 롯데호텔에게는 엄청난 홍보효과가 있는 사건이었지만 최하등급의 스위트룸을 예약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고민에 빠진 모양이다. 결국 최고급 스위트룸을 최하등급인 5등급 요금으로 제공했다.

워런 버핏의 집은 스티브 잡스의 집에 비하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다. 오마하라는 곳은 부자 동네가 있을까 싶은 시골 도시인데 워런 버핏이 부자가 되기 이전에 구입한 집에서 아직까지 살고 있다. 사진을 보고서 너무나 평범한 주택의 모습에 놀랐다. 그는 거의 전재산을 자신이 만든 재단이 아닌 빌 게이츠와 부인 멜린다가 만든 재단에 출연했다. 그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은 세상이 맡긴 것이라는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의 뜻과 유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내가 돈을 이렇게 많이 번 것은 자본주의 덕분이다”고 고백하였다. 그는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버핏세를 주장하기도 했다. 어떤 학생이 가난하다면서 자주 택시를 타기에 내가 꾸짖은 적이 있다. 만약 보통 사람이 스티브 잡스나 워런 버핏과 같은 생활을 한다면 목돈을 마련하기가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도 이롭게하는 불교경제관

오늘날 모든 사람이 ‘돈, 돈’하며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무조건 희생하라고 요구하면 절대 먹히지 않는다. 불교는 다행히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교리에 기초하기 때문에 시장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삶의 지혜를 제공한다. 대승불교는 중생구제를 목표로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고 남을 위한 헌신과 봉사만을 일방적으로 요구하지는 않는다. 자리이타라는 대승불교의 쌍방향적 정신은 현대인에게 더 말할 나위 없는 지혜로운 행동지침이다. 자리이타란 나의 이익과 남의 이익이 별개가 아니며 자기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한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깨달음에만 몰두하는 소승의 수행자가 아니라 타인의 이익도 염두에 두는 대승의 수행자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의 열반도 포기한다는 보살이다. 내 돈 내가 마음대로 하는데 누가 시비야’라는 태도는 불교의 연기사상을 모르는 무지의 증거이다.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된 것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이 아니라 수많은 정부의 지원, 특혜 그리고 국민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자는 세금 이외에도 자발적 보시를 통해 자신의 능력과 노력 이상으로 축적된 재산을 세상에 되돌려주어야 한다. 이게 부자의 자리이타다.

오늘날 중산층이 가난한 사람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일을 맡을 수는 없으며 세금을 통해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 평범한 국민이라면 세금을 내는 일 이외에 남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근면이다. 최선을 다해도 가난하다면 정부에서 복지로 생존기본권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게으르게 노는 사람에게 정부가 돈을 준다면 뭐가 잘못된 것이다. 오늘날 모든 나라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복지국가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에 근면하지 못한 사람에게 복지를 주는 정책은 세금을 내는 사람의 불만을 초래한다. 부처님은 근면을 수없이 강조하고 계신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까지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면 불교경전에서 말하는 복지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다. 남에게 보시하려고 궁리할 필요도 없이 내가 근면하면 정부의 세금을 절약할 수 있고 절약된 세금은 남을 위해 쓸 수 있으니 자리이타이다.

절제는 부자만이 아니라 중산층과 서민도 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이 돈이 없다면서 택시를 타고 다니면 결국 파산하게 되고 정부가 부채를 탕감해주니 그 피해는 타인에게 미친다. 절제야말로 자기에게도 이익이지만 남을 위해서도 이익인 자리이타이다. 불교는 소욕지족을 강조하는 종교이며 돈에 대한 집착을 고통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절제야말로 돈에 대한 집착에서 떠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근면과 절제 못지 않게 중요한 의무가 있다. 자신이 맡은 업무를 성실하고 바르게 수행하는 것이다. 합법적이며 공정하게 자신이 맡은 임무만 수행해도 세상은 엄청 좋아진다. 기부를 하고 자원 봉사를 하기 전에 자기 의무를 다하자. 기업인은 소비자를 속이지 않고 세금을 정직하게 내며 종업원을 착취하지 않아야 한다. 종업원도 회사돈 빼먹지 않고 납품업자와 결탁하여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 공무원도 부패에 연루되지 않고 국민을 위해 바른 정책을 펴면 된다. 교수도 성실하게 학생을 가르치고 공정하게 성적을 매겨야 한다. 우리 모두가 근면하고 절제하며 자신이 맡은 임무를 다할 때 자리이타의 기본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 이후에 기부와 자원봉사를 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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