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식의 불교 속 부자되는 법] 불교경영 전문화, 불교 미래 희망
[윤성식의 불교 속 부자되는 법] 불교경영 전문화, 불교 미래 희망
  • 윤성식 고려대 교수
  • 승인 2018.09.1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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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불교경영학의 필요성

 

조계종 총무원에는 많은 직원이 근무한다. 만약 총무원 직원에게 성과급을 실시한다고 하면 불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는 모두 불교는 성과급 같은 경영기법과는 거리가 먼 출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성과급을 실시하면 성과급을 받은 소수의 사람은 당연히 자기가 잘나서 받았다고 생각해서 고마워하지 않고 성과급에서 제외된 다수는 기분 나빠하니 결국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 성과급을 실시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삼성계열사의 사장으로부터 성과급에 대해 직접 들은 말이다.

성과·분배의 경영 선택 기로
불교에서 지혜 찾을 수 있어
불교경영의 필요성 높아지는 추세

오늘날 많은 기업이 성과급 제도를 실시하고 있고 공직사회도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성과급을 실시한지 상당한 기간이 흘렀다. 구성원의 성과를 측정하기 힘든 정부조직에서 성과급의 효용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상대적으로 성과를 측정하기 용이하다는 민간기업에서조차 성과급의 효용에 대한 의문은 끊이지 않는다. 성과급은 과연 불교적 관점에서 허용될 수 있는 제도일까, 불교적 관점과 어긋나는 잘못된 제도일까?

불교는 평등을 지향하므로 성과급과 부합하지 않는 종교처럼 보인다. 부처님은 당시에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사, 수드라의 4계급으로 엄격하게 나뉘어 있던 인도 사회의 계급제도를 불합리하다고 보았다. 인도의 계급제도는 4계급 밑에 불가촉 천민이라는 계급이 있었기에 5계급제도라고 볼 수 있다. 내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어떤 파티에 초대된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들을 초대하여 국제적인 교류도 하고 외국인 학생을 이국 생활의 피로에서 조금이나마 위로해주려는 좋은 배려였다. 파티에는 여러 명의 인도 사람이 초대되었는데 인도 사람들이 무언가 자기들끼리는 잘 어울리지 않고 말도 잘 안하고 다른 국적 사람들하고만 교류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계급이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였기에 서로 불편해했다고 한다. 그때 처음으로 계급제도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에 놀랐다.

불교 교단에 출가한 사람은 무조건 출가한 순서대로 존경을 받았다. 따라서 뒤에 출가한 사람은 앞에 출가한 사람을 수행의 선배로서 그리고 스승으로서 존경해야했다. 자신의 노예가 먼저 출가하고 자신이 뒤에 출가한 경우 자신의 노예에게 예를 갖추어야 한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먼저 출가한 자기의 노예에게 예를 갖출 수 없다고 저항하다가 결국 부처님의 뜻에 따라 예를 갖춘 사례도 경전에 기록되어 있다. 불교교단에서는 인도의 계급제도를 무시하고 새로운 위계질서가 성립된 것이다. 먼저 출가한 사람이 무조건 우선권을 갖는다면 성과급과는 거리가 있다. 이런 방식을 연공서열이라고 한다. 성과급이란 연공서열이나 위계질서가 아니라 능력과 노력에 의해 분배하는 방법이다. 〈장아함경〉은 “깨끗한 재물을 얻어 여럿과 함께 나누어 평등하여 차별이 없는 것이다.”고 설한다. 이 구절은 평등하게 분배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비록 위계질서가 있어서 예를 갖출지라도 재물을 분배할 때는 위계질서가 아니라 평등하게 나눈다. 이 구절도 성과급과는 거리가 멀다. 평등하게 나눈다고 되어 있지 누구에게 더 준다는 표현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과측정의 어려움

오늘날 성과급제도를 시행하는 조직도 모든 사람에게 성과급을 적용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많은 조직이 성과를 객관적으로 측정 용이한 영업부서에만 성과급을 적용하기도 한다. 성과급이란 능력과 노력에 비례하여 주어야할 때 실시하는 제도인데 성과를 측정하기 어려우면 능력과 노력이 얼마나 투입되었는지 알기 어렵다. 영업부서는 상대적으로 능력과 노력이 객관적으로 성과에 반영된다.

경전은 평등한 분배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성과급도 이야기한다. 〈사분율〉은 “그 곳에 믿음 있는 우바새나 동산 지키는 사람으로서 상을 줄만한 이가 있든지 집을 떠난 다섯 무리로서 맨 먼저 온 사람이 있거든 주라.”고 설한다. 이처럼 평등하게 주기도 하지만 차별되게 나누어줘야 할 때의 기준이 경전에 제시되어 있다. 믿음 있는 사람이나 상을 줄만한 이가 있으면 주라 했으니 성과급과 같다. 즉 남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어도 된다는 명백한 규정이다.

경전에 의하면 출가자의 경우에도 성과급적인 요소가 적용되고 있지만 재가자의 경우에도 성과급이 적용되고 있다. 이에 대한 단서는 〈별역잡아함경〉에 있다. 〈별역잡아함경〉은 “비유컨대 어느 한 사람이, 날쌔고 용감하고 큰 힘 있으며, 겸하여 쏘는 기술 잘 알고, 온갖 기술을 모두 알았다면, 전투함에는 이런 사람 필요하나니, 응당 재물로 후히 상을 주며, 그 벼슬과 녹봉을 내려 주되, 그 성바지를 가릴 것 없이, 그 사람의 공훈만을 기록하리니, 대왕(프라세나짓왕)도 으레 그와 같이 하시리.”라고 설한다. 성바지를 가릴 것 없다고 말하고 있으니 계급을 무시하고 오직 공훈에 따라 상을 주는 성과급을 말한다.

불교는 일단 평등하게 분배하되 능력과 노력을 측정할 수 있다면 성과급에 따라 분배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현실은 어떨까? 대한민국의 많은 기업들이 명백하게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분야에서도 성과에 따라 분배하지 않는가하면 성과를 측정하기 어려운 분야에서 비합리적인 성과급을 강행하여 조직에 해를 끼치고 사기를 저하시키기도 한다. 불교의 관점에서 성과급이 허용된다고 해서 무조건 실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불교교리에 비추어 합리적인 성과급만이 허용된다고 보아야 한다.

〈사분율〉은 화합할수록 많이 주라고 규정한다. 즉 ‘화합하거든 꼭 같이 나누어주고, 화합하지 않거든 반만 주고, 더 화합하지 않거든 3분의 1만 주라’고 설한다. 승가는 화합을 위해 만장일치라는 의사결정방법을 채택했다. 만장일치가 되려면 소수의 의견을 다수가 수렴하거나 소수가 다수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 만장일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만장일치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있었다. 조직의 화합이 이처럼 중요한데 성과급은 조직의 화합을 훼손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된다. 성과급을 실시하면서도 화합을 이룬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다.

불교에서의 경영기법

성과급은 경영기법인데 우리는 성과급 이외의 경영기법도 배워야할까? 나는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불교를 처음 공부할 때 부처님은 과연 경영에 대해 어떤 사고를 가지고 계셨을까 궁금했다. 내가 배운 경영학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불교교단을 경영하셨을까 혹은 아주 유사한 방법으로 경영하셨을까 알고 싶었다. 성경에는 예수의 경영 사례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경전에는 부처님의 경영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사례가 많이 설해져 있고 부처님이 곳곳에서 경영에 대해서 직접 언급하셨다. 불교적인 관점에서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지만 내가 배운 경영학의 중요한 원칙들이 경전 곳곳에 설해져 있어 참으로 흥미로웠다.

부처님은 출가자들이 돈이나 재물에 개입하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하였다. 예를 들어 출가자들은 돈을 만져서도 안 되고 돈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려서도 안 된다. 돈뿐만이 아니라 귀금속도 마찬가지다. 〈사분율〉에는 “비구들이 과일밭을 얻었는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받아도 좋다’하시고 누가 관리할지 모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절을 지키는 사람이나 사미나 우바새를 시키라’하셨다. 그들이 지킨 삯을 받으려 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밥 값과 일한 삯을 계산해서 주라’하셨다.”고 설해져 있다.

만약 출가자들이 돈이나 재물에 개입하지 않으려면 누군가 사찰에서 대신 관리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대신 관리해줄 사람은 재가자나 왕이 파견한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이었는데 이들을 정인(淨人)이라고 불렀다. 정인에게는 반드시 대가를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니 아무리 신도라 할지라도 정인이 되면 자원봉사의 개념에서 일하는게 아니고 결국 관리자의 입장에서 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종교 조직에 경영이라는 개념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교회에서도 경영개념을 도입하려고 하는 사람과 ‘신성한 신의 전당에 웬 경영?’이라며 반발하는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다고 한다. 사찰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조계종에서 실시하는 주지 교육과정에 경영학 관련 과목이 개설되는 것을 보면 불교에서는 이제 사찰 경영에도 경영기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충분히 퍼져 있다고 생각된다. 부처님은 과연 경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혹시 언급이라도 하셨을까? 아예 침묵하고 계신걸까? 〈증일아함경〉은 소를 잘 관리하면 6마리의 소가 6년만에 60마리가 된다고 설한다. 어떻게 경영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부처님이 강조하신 것이다.

부처님 당시에 출가자들이 머물었던 사찰은 경전에서 ‘장자’로 표현되는 부자나 왕이 지어준 건물이었다. 장자나 왕은 건물을 지어 보시하면서 관리도 책임졌다. 경전을 보면 왕이 수백명의 관리자를 파견하고 비구가 선발한 책임자가 이들을 지휘했다. 아무리 왕이 관리자에게 정성껏 출가자들을 모시라고 명령해도 잘 지켜지지 않을 수 있지만 최고 책임자를 사찰에서 임명하면 관리자는 출가자에게 소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고 책임자를 왕이 임명하면 출가자보다는 왕의 눈치를 더 보겠지만 출가자가 임명하면 출가자를 위해 일하게 된다. 비록 대부분의 경영이 출가자에 의하지 않고 정인에 의해 수행되었지만 출가자가 부분적으로 경영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찰에서 여러가지 업무를 담당하는 비구를 지사(知事)비구라고 했는데 방을 분배하는 비구, 보시물을 수령 보관 분배하는 비구, 창고를 지키는 비구, 옷감을 지키는 비구도 있었다. 경영에 참여하는 비구들이 자신의 권세를 이용해서 특권을 누리자 그러면 안 된다고 부처님은 엄격하게 금지하셨다. 따라서 기업이나 기타 조직에서 경영을 책임지는 임원들이 더 좋은 시설에서 더 많은 봉급을 받는 것은 불교교단에서는 금지되고 있는 것이다.

불교 교리 근간한 경영 필요

불교교단의 경영은 돈에 관한 특별한 원칙과 기법이 필요하다. 만약 우리가 경영을 세속적인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배척한다면 부처님의 의도에서 벗어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세간에서 공부하는 경영학이 불교교단의 경영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불교교단의 경영은 종교조직으로서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세속의 경영학을 불교에 맞추어 수정하지 않으면 자칫 불교교리의 핵심을 어기게 된다. 불교교리에 근거한 가칭 ‘불교경영학’을 정립한다면 반대로 세속의 경영학에 많은 지혜와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불교교단의 경영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불교경영학은 불교교리에 부합하는 세속 경영학 기법을 도입하지만 불교교리에 적합한 불교적 경영기법의 수립이 더 중요하다. 세속 경영학 중에서 불교교리에 부합하는 기법만을 추려 불교경영학이라고 한다면 기독교인도 세속 경영학 중에서 기독교교리에 부합하는 기법만을 추려 기독교경영학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다. 불교만의 독특한 경영이론이 없으면 불교경영학은 성립할 수 없다.

최근에 영성경영(spiritual management)라는 새로운 개념이 주류 경영학에 등장하였다. 주로 기독교적 성향의 이론이 주된 내용이므로 자칫 ‘영성’이라는 종교적 단어 때문에 불교경영학이 가야할 길이 아닌가 오해할 수 있어 걱정이다. 불교는 영성경영을 참고만 하면 된다. ‘경영학이 한계에 부딪히니 온갖 노력을 다 해보는데 이젠 영성경영까지 등장했어요’라는 어떤 경영학자의 한탄이 떠오른다. 한계에 부딪힌 자본주의에 불교자본주의가 갈증을 해소해 주듯이 한계에 부딪힌 세속 경영학에 불교경영학이 한 줄기 빛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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