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명교계숭 삼교일치(三敎融合)

삼교융합… 불교 생존의 문제
문서·체계화한 첫 인물

 

중국불교에서 심성론은 중국 전통사상인 철학사상이 계합된 사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이다. 심성론은 중국 불교철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북송 때의 유명한 선사인 계숭선사는 심성론을 기초로 해서 삼교를 융합하였다. 삼교융합은 당시 불교의 생존과 발전에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때문에 계숭선사의 심성론 사상에 대한 이해는 곧 북송불교의 전면적인 이해와도 깊은 연관성이 존재한다. 계숭선사의 심성론 사상의 근원은 당연히 유불도(儒佛道) 삼가에 기초하고 있다.

명교계숭의 중요한 사상적 특징은 ‘삼교합일(三敎合一), 삼교융합’이다. 물론 삼교합일 사상을 그가 처음으로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문서화와 체계화를 수립한 인물은 불교역사에서 그가 처음이다. 삼교합일은 곧 유(儒)ㆍ불(佛)ㆍ도(道)의 삼교 조화 내지 융합 통일을 말한다. 이 내용을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집대성한 책은 바로 〈보교편(輔敎編)〉이다. 계숭선사는 이 책에서 삼교가 지향하는 목표와 사람을 교화하는 목적은 같지만, 다만 사람을 교화하는 방법과 형식의 차이점은 분명히 존재하며,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쓰임새에서 용공과 심천(深淺)의 차이점이 존재한다고 여겼다.

그는 “옛적의 성인의 말씀에 의하면, 유ㆍ불ㆍ백가(百家)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의)마음은 곧 하나이다. (그러나)그 자취는 곧 다르다. 대저 하나는 무엇인가? 그것은 모두 사람을 선하게 하기 위함이다. 다르다는 것은, 곧 분가(分家ㆍ역할이 다르다. 혹은 역할을 나누다)로서 각기 그 교화를 말한다. 성인들은 각자의 가르침이 있다. 고로 사람을 선한 방향으로 교육한다. (다만)얕고(淺), 심오하고(奧), 가깝고(近), 먼(遠) 것이 있다. 대체로 악을 끊고 사람을 서로 교란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곧 그 덕이 같다”고 하고 있다. 비록 옛적의 성현들이 지향하고 실현하고자 했던 이상과 이념은 모두 같지만, 다만 심천원근의 차별이 존재했다. 그러나 악을 끊고 선을 향하게 하고 동시에 사람들을 번뇌로부터 구제하려는 마음은 모두 같다는 것이다. 또 그는 삼교합일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대개 천하에 유가(儒家)가 없어서는 안 되고, 백가(百家)가 없어서는 안 되고, 불가(佛家)가 없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천하에 하나의 가르침이 부족하면, 천하에 하나의 선도(善道)도 손해를 보고, 하나의 선도를 손해 보면 곧 천하의 악이 더 증가되는 것이다”고 하였다. 즉 그는 삼교의 경전을 널리 인용해 서로의 가르침을 통해서 불국토를 이루고자 했다. 그가 논증했던 ‘삼교합일’의 관점을 정리 해보면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그 삼교합일의 기본 바탕은 ‘심성론(心性論)’을 기초로 건립된 것이다.

그림, 강병호

첫 번째, 그는 ‘심(心)’을 이용해서 삼교를 회통하고 있다. 계숭선사는 석가모니불이 전한 심(心)은 불교의 성인이 성취한 심(心)이며, 삼교 내지 백가의 성인들의 심(心)이며, 또한 천지(天地)의 심, 또한 중생심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어느 종교를 신봉하든지 모두 자기의 본성을 신봉하는 것이며, 자심(自心)을 신봉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고 보았다. 그는 〈담진문집(津文集)〉에서 말하기를 “성인은 그 마음을 믿음으로써 대(大)로 삼는다. 성인은 이것(心)을 넓다고 설하고, 이것을 지킨다고 설하고, 이것을 직시(直示)한다고 설하고, 이것을 교시(巧示ㆍ교묘하게 나타냄)한다고 설하고…, 사람이 성인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은, 이에 그 마음을 믿지 않는 것일 뿐이다. 스스로 버리고 스스로 미혹한 것이다. 어찌 명철하다고 할 것이며 현명하다고 할 것인가?”라고 하였다. 즉 삼교 내지 백가의 성인들의 마음의 중요성 내지 중생들의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곧 불교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만법유심(萬法唯心) 등의 확고한 관점을 피력한 것이다. 특히 이 심(心)을 강조한 것은 바로 그가 선종의 입장에서 선종에서 강조하는 ‘이심전심’을 바탕으로 한 관점이라고 하겠다. 특히 그는 ‘도편일체(道遍一切)’ 이론을 바탕으로 삼교일체의 합리성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사실 이 관점은 화엄사상인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의 법신불 사상과도 깊은 연관성이 있다.

두 번째, 삼교일치의 회통 및 조화의 수단으로 ‘성정(性情)’을 사용하였다. 불교와 유교는 각각 성정(性情)에 관한 자기들의 관점이 있다. 불교에서 성(性)은 진실의 체, 불변의 체로 인식하고 있으며, 다른 말로 불성, 여래장, 진여, 자성 등으로 표현한다. 정(情)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ㆍ根)의 대상세계를 말한다. 즉 불교에서 정(情)은 오욕칠정을 말하며 윤회의 근원이 된다고 여긴다. 물론 불교의 근본은 본래 성과 정을 둘로 나누어보지는 않는다.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로 보기 때문에 최종에는 이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유교의 성과 정에 대한 입장은 극명한 차이점이 보인다. 유가도 ‘정출어성, 성은어정(情出於性, 性隱於情)’을 말하기 때문에 완전한 극단적인 이분법은 아니지만, 유가에서 성(性)은 선(善)의 근본으로 보았고, 정(情)의 근본은 악(惡)으로 보았다. 정확한 이분법이다. 물론 이 근거는 순자의 성악설과 맹자의 선성설을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유가 역시 이 이분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설정을 통해서 악은 교육과 교화를 통한 변화를 지향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고, 선은 그것을 증장하고 육성해서 호연지기의 상태에 도달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즉 유가의 목적은 교화를 통한 인간의 심성개조를 강조하고 있다. 반면에 불교는 현실을 초월하는 해탈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렇듯 양가의 ‘성정(性情)’에 관한 문제는 각기 해석하는 바에 따라서 차이점은 존재하지만, 계숭선사는 양가의 이러한 관점을 잘 조화시킬 수 있다고 여겼다. 그가 주목한 점은 역시 ‘성인의 심’이었는데, 이 심(心)은 양가가 서로 상통하는 심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양가의 역할 분담을 제안하였는데, 불교는 수적(垂迹ㆍ불보살이 중생의 교화를 위해서 무수한 방편을 보이는 것)으로, 유가의 ‘제정(制情)’으로 가르침을 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더욱이 이러한 교화를 펼치는 데 있어서 상대방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여겼다. 즉 성인의 가르침에는 각각 나름대로 그 교화의 방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고로 “그 가르침은 사람들을 선의 방향으로 이끌기 위함이다”고 하였다. 불교의 교화 측면에서 보면, ‘제정(制情)’을 다스리는 것은 오승(五乘ㆍ人乘, 天乘, 聲聞乘, 緣覺乘, 菩薩乘)을 사용해서 가르친다는 것이다. 중생은 “그 이루어진 바의 습기가 엷은 사람이 있고, 두터운 사람이 있다. 근기에도 대자와 소자가 있다. 성인은 이것을 마땅하게 하는 것이다. 고로 그 법을 말하면 오승이 된다”고 하였다. 유가의 ‘제정(制情)’은 ‘예(禮)’로서 다스린다고 하면서, “고로 예악이라는 것은 왕도를 의지해서 생성되는 것이다. 예라는 것은 인정(人情)을 인해서 제제를 진행한다. 인정(人情)은 후생(厚生ㆍ산림을 안정시키거나 넉넉하게 한다)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악을 기르는 것이며, 인정(人情)은 죽음을 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예정의 상(禮正之喪)이다. 인정(人情)에 남녀가 있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예를 바르게 펴는(禮宜之正) 것이며, 인정(人情)에 친소가 없지는 않지만, 예에 적합한 뜻(禮適之義)이다. 인정(人情)에 희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예리의 마땅함(禮理之當)이다. 인정(人情)에 재물의 이익을 품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예로서 조절한다”고 하였다. 또 그는 결국은 출세법은 출세법대로 존재하는 이유와 쓰임새가 있고, 세간법은 세간법대로 사용처와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유자의 성인은 세간을 다스리는 자요, 불교의 성인은 출세간을 다스리는 자이다”고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있다. 즉 서로 이러한 자기의 역할을 잘 지키고 서로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이 곧 조화요 일치라는 것으로, 곧 이러한 관점이 바로 그가 주장하는 삼교합일의 내용이다.

세 번째는 ‘충효(忠孝)’로서 삼교를 통일 했다. 사실 그는 유교 논리에 매우 통달해 있었다. 그가 말하기를 “나는 유가를 좋아한다. 대개 내가 그것을 취하는 것은 도에 합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고 하면서, 앞서 언급하였듯이 불교의 오계와 십선계를 가지고 유가의 오상(五常)을 비교분석하기도 하였다. 즉 유가에서 말하는 인ㆍ의ㆍ예ㆍ지ㆍ신은 불교의 자비ㆍ보시ㆍ공경(恭敬)ㆍ무아만(無我慢)ㆍ지혜ㆍ불망어기어(不妄言綺語)라고 여겼다. “비록 목적은 같지 않지만 그것을 세운 것은 성실한 수행을 해서, 세상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어찌 다름이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다시 말하기를 “성인의 마음은 모든 사람들을 선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반드시 죄악을 없애기 위함이다”고 했다. 유가의 가장 기본적인 논리의 구조는 바로 유가의 윤리의 준칙이다. 특히 효는 인륜의 근본으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도리이자 최고의 덕목이다. 그래서 유가에서 ‘효’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기초가 된다고 여겼다. 그는 또 “대개 효라는 것은 모든 교(儒佛道)가 이를 존중한다. 그러나 불교는 다르게 존중한다”고 하였다. 때문에 “대저 효는 하늘의 길이며, 땅의 뜻이며, 사람들의 행이며, (그래서)매우 큰 것이다”고 하면서, 불교는 “대개 효로써 계의 발단(시작)을 삼고(蓋以孝而戒之端也)…, 효는 대계보다 우선하며, 계는 많은 선을 탄생시키기도 한다(夫孝也者大戒之所先也. 戒也者善之所以生也)”고 효와 계를 대비시켜 효계일치(孝戒一致)를 논증하고 있다.

계숭선사가 처했던 당시는 봉건사회로서 통치자가 우선하는 시대로 불교적인 활동은 당연히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당시 풍토는 사대부들의 적극적인 불교에 대한 비평 내지 배불의 환경 풍토 속에서 그가 승려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불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그가 외쳤던 삼교일치의 구호가 어떤 면에서 전통불교를 위배하는 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가 처했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해 못할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유가의 〈효경〉에 보면, ‘불효유삼, 무후위대(不孝有三, 無后爲大)’라는 말이 있다. 불교의 승려는 출가하면 반드시 독신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유가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이것은 현실과는 괴리가 있으며, 자연의 섭리를 위배하는 처사였을 것이다. 이 점은 바로 불교와 유교가 수천 년 이래로 논쟁이 끊이지 않는 부분이다. 때문에 이러한 모순적인 현실을 조화롭게 통합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계숭선사의 삼교일치 삼교융합사상은 역사상 삼교관계가 중국불교 및 중국 전통문화 속에서 장기간 발전해온 역사의 산물이다. 송대 이전에도 간간이 선사들이 삼교일치를 주장하면서 대체적으로 삼교를 간단하게 비교했던 적이 있지만, 계숭선사처럼 진일보해서 유불(儒佛)을 깊이 연구하고 분석해서, 체계적인 논증을 통해 사상적으로 체계화시킨 인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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