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 스님

스님이 계시는 절은 높은 산이나 심산유곡에 있는 절이 아니다. 꽤 오래된 나무 한 그루와 서로 곁을 내어주며 물에 젖은 솜을 건져 짜내어 말려 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사시는 스님이다. 가끔 도심 속에서 살며 지내는 사람들에게 짧지만 오랜 여운의 청량감을 주시니 감사하다. 마냥 앉아 있는 게 아니었구나 하고 털고 일어나는 그날, 앉고 서고가 없는 그 자리가 여여(如如)하다고 일어나 걸으실 그날을 기다린다. 선선(禪禪)한 바람이 불어오기를.

 

삼현거사

삼현거사는 나의 둘째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병원놀이를 즐겨하며 자랐다. 내가 일하다 다치면 반창고를 붙여 주고 빨간약(머큐롬)을 발라 주며 호호 불어 주곤 했다. 초등학교 입학 후 어느 날, 일기장을 보여 주었다. 위 칸에는 약통을 옆에 놓고 약을 발라주며 진찰하는 그림을 그려놓고, 아래쪽 네모 칸에는 공부 잘 하면 ‘닥터, 리’라 불러주고 못하면 ‘닭다리’라고 불러 달라 적어 놓았다. 그날부터 ‘닥터, 리’, ‘닭다리’라 번갈아가며 불러주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아들은 성형외과 의사가 되겠다고 했다.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기에 몸 보기와 마음 보기에 관해 이야기하며, 의사는 나눔과 봉사를 같이 해야 하는 업이니 부처님 시봉도 잘 하도록 일러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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