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진치. 불교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3가지 번뇌로서 탐욕, 노여움, 어리석음이다. 이 3가지 번뇌가 중생을 해롭게 하는 것이 마치 독약과 같다고 하여 삼독이라고 한다. 중생을 생사의 윤회 속으로 빠뜨리는 근원이자, 중생의 고통을 유발하는 근본 원인으로 해석되는 게 삼독이다. 삼독을 제거하면 고(苦)를 떠나서 열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불자로서 열반의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를 최소화하고자 수행의 의지를 불태우지만 자꾸 삼독의 그 두 번째 것, 진을 녹이는 것을 우리 사회는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 모양새다. 진은 마음에 맞지 않는 상대와 대상을 미워하고 성내며 분노하는 것인데, 지금 우리 사회에는 시기와 증오가 용광로처럼 끓어 넘치는 혐오 현상이 곳곳에서 뚜렷이 목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男76%, 女86% ‘혐오 심각’ 응답
혐오, 대상 비하해 차별하고 배제
불평등 따른 분노 약자들에게 표출

언론 보도 대안보다 갈등만 조명
본질 분석한 기사는 찾기 어려워
갈등 관련 보도는 대안 제시 방점

불자들은 진실한 말 실천 노력해야
미래에 혐오사회 아닌 불국토 전해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86%, 남성 76%가 각각 우리 사회의 혐오표현이 심각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우월주의 사상을 가진 한국 남자를 지칭하는 ‘한남충’, 청소년 집단에 대한 ‘급식충’, 노인을 겨냥한 ‘틀딱충’ 등의 표현은 대상을 벌레로 비유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미래의 꿈과 희망을 키워야 하는 청소년, 어린이들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

또한 혐오표현은 대상을 비하함으로써 그들을 단지 분노하게 하려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의도가 대상을 차별하고 배제하려 함으로써 그들의 삶에 위협과 불안을 가져다준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따라서 혐오현상은 그저 감정조절에 실패한 개인들의 문제로 치부되어서는 안 되며,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발생하는 민주사회를 위협하는 현상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런 집단적 혐오 현상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사회학자들은 경쟁이 심화되는 사회구조를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불평등의 심화로 경쟁자들을 견제 대상으로 간주하면서 자신의 분노를 그들과 약자들에게 표출하게 된 것이 혐오현상의 배경이라는 것이다.
 

이화행 동명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언론학자로서 필자는 혐오 확산의 원인이 잘못된 언론의 보도행태에도 있다고 본다. 원래 각종 혐오 표현의 발상지는 인터넷이다. 여성 혐오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에서부터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남성 혐오 커뮤니티 ‘워마드’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은 혐오발언의 온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인터넷 커뮤니티는 속성상 소수의 마니아가 지배하는 공간이어서, 이슈의 확장성 면에서 제한적이다. 온라인 기반의 이슈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은 제도권 언론을 통해서다. 이 갈등적 이슈가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다. 따라서 언론이 어떻게 혐오이슈를 다루어야하는가가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혐오 이슈에 대한 언론보도는 갈등 측면에 지나치게 초점을 두고 있어서, 과장적이고 선정적인 경향을 보인다. 혐오 문제의 본질에 대한 분석적 보도, 혐오 현상에 대한 대안 제시는 찾아보기 힘들다. 혐오 표현의 문제와 같은 사회갈등적 이슈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분석과 해설을 통한 대안 제시에 방점을 두어야한다. 이것이 언론이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서 성숙한 시민사회에 기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진실한 말을 하면 진언이 되고 하치않은 말을 하면 구업(口業)이 되도다.” 우리 불자들은 이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 진실한 말을 하고, 부드러운 표현을 실천하려 노력한다. 이 실천행을 통하여 사회 정화에 기여하고, 미래 세대에게 혐오사회가 아닌 불국토를 가져다줄 수 있도록 불자들은 오늘도 탑돌이 하듯 간단없이 자신의 언행을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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