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밀린다팡하 1

〈밀린다왕문경〉 혹은 〈나선비구경〉으로 불리는 이 책은 ‘여시아문(如是我聞)’의 부처님 설법 경전은 아니다. 후대에 성립된 대론서(對論書)의 형식으로 경율론 삼장의 스타일을 벗어났지만 모두 부처님의 법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후대 경전에 포함시켜 유통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론은 주로 인생에 관한 혹은 철학적인 주제로 서로 의심이 나는 것을 서로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여러 주제를 이렇게 토론하다보면 철학적 소양이 깊어지는 소통방식이다.

〈밀린다팡하〉는 기원전 150년 경 서북인도를 지배한 그리스왕 메르난데스가 당시 최고의 불교지도자인 나가세나 스님에게 ‘불교란 어떤 가르침인가?’를 질문하면서 시작된 내용이다.

메르난데스는 인도에 알려진 그리스왕 40여 명 중 문헌에 등장하는 유일한 왕인데 정복자가 인도인의 역사에 긍정적인 의미로 등장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마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훗날 평등한 정치를 위해 노력한 왕이기 때문일 것이다. 알렉산더에 의해 세워진 굽타왕조부터 서북인도를 침입한 이후 그리스인들에 의해 세워진 박트리아왕조의 메르란데스는 지금으로 말하면 아프가스니탄 카불 근처에서 태어났다. 왕위에 오른 뒤 영토 확장에 힘을 쏟아 여러 나라를 합병하면서 유화정책으로 민중의 선망을 얻었으며 타고난 경제적 감각으로 부강한 나라를 건설했다. 그 시대에 국제무역에 통용되었던 화폐가 22종이나 되었다. 그가 죽인 뒤 200년 후에 제작되어 통용되었던 동전이 1942년에 발견되었다. 거기에 메르난데스를 ‘정의를 수호하는 왕’이라 새겨져 있었다. 이 책의 첫 장은 그의 전생스토리로 시작된다.

과거 가섭불시대에 갠지스 강가에 비구들이 수행하고 있었다. 계율과 수행을 잘 하는 비구들의 첫 일과는 빗자루를 들고 마음속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며 번뇌를 쓸어내듯 경내 청소를 하는 것이다. 어느 날, 쓰레기가 엄청 쌓여 있어 한 비구가 지나가는 어린 사미에게 치우라고 말하지만 사미는 못 들은 척하고 가자 화가 난 비구는 쫓아가 빗자루로 사미를 때렸다. 사미가 억울한 마음에 울며 청소를 하면서 스스로를 달래려 마음속으로 발원을 한다.

“이렇게 청소를 한 공덕으로 열반에 이르기 전에 어디에 태어나더라도 빛나는 태양처럼 커다란 위력과 광채를 갖게 해주세요.” 청소를 다 마치고 나무에 기대어 세차게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큰소리를 내어 또 발원을 하였다.

“다음 생에 어디에 태어나더라도 갠지스 강이 저렇게 막힘없이 세차게 흐르는 것처럼 변재(辯才)를 얻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해주소서.” 그때 마침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던 비구가 그 말을 듣고 어린 사미도 강물을 보고 저런 발원을 하는데 나도 발원하리라 생각하고 흘러가는 물살을 손으로 만지며, “열반에 이르기 전에 어디에서 태어나더라도 갠지스 강의 이 힘찬 물결처럼 막힘없는 변재를 성취하여 반드시 저 사미가 내게 묻는 질문에 막힘없이 다 대답하고 난제를 풀어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주소서!”

세월이 흘러 그 때의 비구는 나가세나, 어린 사미는 메르난데스 왕으로 태어났다. 왕은 어느 날 군사의 사열을 마치고 태양을 바라보며 신하들에게 지혜를 찾아 수행하는 성현들에게 인생에 대하여 토론하고 싶다며 현자를 찾아오라고 명령한다. 명령을 받고 떠난 사람들이 모셔온 모든 철학자들은 몇 마디 나누자마자 말문이 막혀 스스로 떠났다. 왕은 더욱 교만해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분노했다.

그리고 철학자, 수행자, 바라문들을 매일 괴롭혔다. 불교 교단에서도 많은 토론자를 보냈지만 한 방에 말문이 막혀 돌아왔다. 아라한과 장로들이 나가세나를 찾아와 날마다 난해한 질문으로 수행자를 괴롭히는 왕을 굴복시켜달라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나가세나가 왕을 만나러 출발을 하니 그를 따르는 제자들과 이 엄청난 토론의 장소에 빠질 새라 함께 길을 나서는 비구들이 모두 8만 명이었다. 그 무렵 왕도 나가세나의 이름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가 매우 유능하고 지혜로우며 용기도 있고, 공부도 많이 하여 담론에도 뛰어나서 어떤 질문에도 시원시원하게 답을 하여 모든 이들의 갈증을 해결한다고 하자 무작정 500명의 군사를 데리고 나가세나 스님을 뵈러가겠다고 출발한다. 서로 출발하여 중간에서 만나게 되니 영겁의 세월을 지나 비구와 어린 사미가 드디어 만나게 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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