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명’ 피하려다 ‘토막살해범’ 돼
‘누명’ 피하려다 ‘토막살해범’ 돼
  • 정리=김지원 기자
  • 승인 2018.09.0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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⑰ 사형수 이양길

아동성폭행, 토막살해 등 죄질이 고약한 흉악범들은 수감자들 사이에서도 기피의 대상이다. 이들은 구명(救命)운동 대상이 될 수 없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의 생명을 늘려주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싶겠지만, 나는 토막살해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이의 구명에 나섰던 적이 있다. 사형수 이양길이다. 40년도 넘은 일이다. 그때 나는 사형수 이양길의 목숨을 연장해달라고 탄원서까지 썼다. 모든 일의 시작은 이양길의 남동생 이명호 씨와의 인연이었다.

자살 동거녀 시신 훼손·유기
수감 중 기독교 귀의 깊은 참회

동생의 눈물겨운 구명운동
“참회할 시간이라도 더 주세요”
강신명 목사 탄원서 동참
형 집행 이례적 연장, 5년 걸려


1979년 10월 김천 개운사 주지 시절, 다리를 심하게 저는 한 청년이 나를 찾아왔다. 이양길의 동생 이명호였다. 동생 이 씨는 억울한 형 대신 몸이 불편한 자신이 죽을 수는 없느냐며, 처음 보는 나에게 형을 구해달라고 다짜고짜 매달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동생 이 씨는 나를 만나러 오기 전 대구교도소 근방서 유명했던 모양이다. 형 이 씨가 수감된 이후, 그는 날마다 교도소를 찾아 철문 앞에서 형을 살려달라고 통곡했다. 다리 한 쪽을 거의 못 쓰는 장애인이 본인 형님을 살리겠다고 나뒹구는 모습이 딱했던지, 어떤 사람이 동생 이 씨에게 삼중 스님을 찾아가보라고 일러줬다고 했다.

나는 그야말로 곤혹스러웠다. 당시 부산 토막살해범 이양길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주요 언론사는 동거하던 여자를 살해하고 시체를 훼손한 이 씨에 대해 대서특필했다. 나 역시 언론을 통해 사형수 이 씨 소식을 접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사형수 일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나는 동생 이 씨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했다.

그러자 동생 이 씨는 나를 설득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자초지종을 들어달라고 했다. 나는 할 수 없이 반신반의하며 사형수 동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동생 이 씨에 따르면 사건 발생 이전부터 형 이양길과 동거한 여자는 가출을 일삼았고, 형 이 씨는 집 나간 여자를 다시 찾아 데려오는 일을 수차례 반복했다. 또 다시 여자를 찾아 집으로 데리고 온 어느 날, 형 이 씨는 소리소리 지르는 여자의 입을 막고 묶어둔 뒤 외출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돌아온 형 이 씨는 여자가 혀를 깨물고 자결한 현장을 발견한다. 평소 내성적인 성격의 형 이 씨는 자신이 살인죄를 뒤집어쓸 것이 두려웠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형 이 씨가 술을 마시고 한 선택은 좋지 못했다.

이 씨는 죽은 여자의 시신을 숨기기 위해 여러 궁리를 하던 중 여자의 시신을 훼손·유기해버린 것이다. 이후 검거된 이 씨는 1977년 사형이 확정됐다.

동생 이 씨는 죽은 여인은 형이 죽인 게 아니고 자살한 것이며, 알려진 사실과 다르게 경찰이 억지로 만들어 낸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동생 이 씨는 사형수가 된 형이 교도소에서 기독교에 귀의하고, 다른 재소자들의 발을 씻겨줄 정도로 참회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불편한 몸으로 형을 살리겠다고 고군분투하는 동생 이 씨의 간절한 형제애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나는 그 길로 대구교도소로 갔다. 다른 재소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사형수 이 씨를 만나보니, “이전의 삶을 후회하는 만큼 남은 시간 속죄를 계속 하겠다”는 그의 진심을 믿게 됐다.

동생 이 씨와 무작정 상경한 나는 사형수 이양길의 형 집행을 미룰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었던 나는 문득 강신명 목사가 떠올랐다.

강 목사는 광화문 새문안교회를 세운 기독교의 거목으로, 정부 고위급 인사들과 가까운 사이였다. 사형수 이 씨가 기독교인인지라 나는 강 목사가 이 일에 협조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어렵게 연락이 닿아 만난 강 목사는 사연을 듣더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스님이 하고 계시는 군요”라며 나와 동생 이 씨를 도와주었다. 나는 강 목사에게 사형수 이 씨를 무기수로 감형해달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탄원서를 써갔다. 이 씨의 사형 집행이 조금이라도 미뤄져 자기가 지은 죄를 원 없이 참회할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는 취지였다. 강 목사는 내 탄원서를 손수 퇴고해주는 등 이 씨를 구명하는 일에 여러모로 힘을 써주었다.

강 목사가 직접 제출한 탄원서는 청와대를 거쳐 주무부서인 법무부로 넘어갈 것이었다. 그런데 동생 이 씨는 부산서 김천까지 여러 번 나를 찾아왔다. 법무부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형 걱정에 마음 편할 날이 없다는 그의 말을 들은 나는 또 다시 강 목사를 찾았다. 강 목사 편에 알아보니, 내가 쓴 탄원서가 전달되지 않은 듯 했다.

우리 두 사람은 법무부를 직접 찾아가 탄원서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나와 강 목사는 당시 이영욱 법무부 차관을 만났다. 차관은 서로 다른 종교인이 함께 손을 잡고 들어서는 우리 두 사람을 보고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 자리서 강 목사와 나는 이 차관과 사형수 이 씨의 구명에 대해 논의했다. 그리고 이 차관에게 사형수 이 씨의 집행을 미루겠다는 확답을 받아냈다. 통상 사형 선고부터 집행까지 걸리는 시간은 2년 이내였다. 하지만 사형수 이 씨의 형 집행은 5년이 걸렸다.

형의 목숨을 연장해달라며 빌던 동생의 우애와 무명의 생경한 스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준 원로 목사의 마음이 있었기에 사형수 이 씨는 참회의 시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사형수 이 씨가 묵묵히 봉사하면서 담담히 죽음을 준비하다 떠날 수 있었던 건 동생 이명호 씨와 강신명 목사와의 인연 덕분이다.
 

사형수 이양길의 형 집행 연장을 위한 탄원서 제출을 도와 준 강신명 목사(사진 오른쪽).
사형수 이양길의 형 집행 연장을 위한 탄원서 제출을 도와 준 강신명 목사(사진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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