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 13번 사찰엔 한국인 주지 스님이…

젠콘야도 스다치칸에서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선다. 13번 다이니치지(大日寺)로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강을 낀 차로를 따라 가느냐, 고개를 넘어가는 옛 순례길을 따르느냐.

쇼산지를 넘느라 산길은 지긋지긋하기에 차로를 따라 편하게 걸을까 하다가 지도를 보니 산을 넘어가는 게 아무래도 조금 더 빠르다. 스다치칸 할머니께서도 고개가 험하지 않으니 그냥 고갯길을 넘을 것을 추천하신다. 그래, 어제 산 두 개를 넘었는데 오늘 고개 하나 못 넘으랴 하고 고갯길로 길을 튼다.

어제 산을 타면서 산길에 익숙해서일까. 삼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아침햇살과 아직 선선한 기운이 남아있는 길을 걸어가노라니 마지막 고개 ‘타마가도게(玉ヶ峠)’로 올라가는 길에 들어섰다.

순례 13번째 사찰인 ‘大日寺’
한국인 묘선 스님이 주지 맡아
승무 조교였으나 日스님과 결혼
남편 입적 후 출가해 주지까지

13~17번까지는 하루 순례 가능
‘5개소 참배’라는 풍습도 있어

길  옆의 냇물에 수건을 적실 겸, 손으로 참방거리려니 웬 게가 놀라서 도망간다. 이 깊은 산골에 게라니? 하도 신기해서 잠시 보고 있으려니 뒤에서 어제 같이 묵은 순례자가 와서 힐끗 보고는 “저거 맛없어요”하곤 말을 붙인다. 이 녀석을 잡으려는 것으로 생각했나보다.

“저 게는 먹을 수 있는 건가요?”
“먹을 수는 있는데, 살도 없고 흙내가 심해요. 대신에 해감을 좀 해서 육수를 내는 용으론 그만이죠.”

‘어른 손바닥 1/4만한 걸 잡아다 육수를 낼 것까지야’라고 생각을 하며 다시 고갯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래된 순례길이라 그런지 길 중간 중간 작은 석불들이 모셔져 있고, 사람이 쌓은 축대도 간간히 있다. 마지막 급경사를 낑낑대고 올라가니 포장도로와 만나고 ‘타마가도게’라고 쓰인 안내판이 나온다. 고갯길을 다 넘은 것이다.

허리를 펴고 숨을 돌리려니 뒤에서 청아한 종소리가 들린다. 인적 없는 산길에 울리는 종소리에 놀라 고갯길을 굽어보니 아까 그 순례자가 올라오는 게 보인다. 산길에 뱀이나 짐승을 쫓으려고 허리춤에 달아둔 요령이 울리는 소리였던 것이다. 문득 길가에 보았던 싯구가 생각났다.

‘순례자의 방울소리, 이 하늘을 따라가는 참회의 길’
시코쿠 순례란 스스로가 사자(死者)가 되어 걷는 길. 새로운 탄생을 위한 참회의 길이다. 산 속에 울리는 맑은 종소리가 그야말로 시가 되는 풍경이었다.

시코쿠 순례 13번 사찰인 ‘다이니치지(大日寺)’ 주지는 한국인이다. 법명은 묘선 스님이며, 원래는 이매방류 승무 조교였다. 다이니치지 주지였던 코에이 스님과 결혼했지만 2007년 입적했다. 이후 출가해 1년만에 주지 자격 시험을 통과했다. 사진은 필자(사진 왼쪽)과 묘선 스님(사진 오른쪽)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구불구불 길을 다 내려오니 강 옆으로 난 작은 마을에 들어선다. 이제부턴 편안한 평지길이다. 강을 따라 한참을 걷는다. 마을에서 5㎞가량 걷고 강을 건너는 다리를 넘어서니 ‘토쿠시마시(德島市)’라는 경계판이 나온다. 도쿠시마역에서 순례를 시작한지 닷새 만에 다시 토쿠시마시로 돌아 온 것이다. 곧 13번 사찰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로 힘차게 걸음을 서두른다.

강을 따라가는 길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아무리 걸어도 사찰이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사찰의 지붕이라 생각한 곳은 다른 신사거나, 규모가 큰 농가였다. 지도로 보기엔 금방인데 아직도 멀었나 보다. 휴게소 앞의 표석에는 13번까지 3km남짓이라고 일러준다. 넉넉잡아 1시간은 더 걸어야 한다.

다시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나선다. 오늘은 다이니치지에서 묵기로 했다. 주지 묘선 스님과 인연이 깊기 때문이다. 나와 묘선 스님과의 인연도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묘선 스님이 시코쿠 영장 13번의 주지가 되신 것도 참 기이한 인연이다.

묘선 스님은 무형문화재 제27호 이매방류 승무의 전수조교로, 원래는 공연을 위해 1995년에 토쿠시마를 방문하신 것이 인연의 시작이다. 당시 13번의 주지였던 오쿠리 코에이 스님이 이 공연을 보고 그 춤사위에 반해 2년간 열렬한 구애 끝에 결혼에 성공, 이듬해엔 아들도 태어났다. 코에이 스님의 적극적인 후원 덕에 묘선 스님은 아무 걱정 없이 한국무용을 일본과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미국 명문대 UCLA의 객원교수로도 출강했다.

코에이 스님은 한국의 무형문화재를 전수한 사람으로서 귀화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몇 차례 일본에서 출가하여 승적을 취득하라고 권하셨다고 한다. 묘선 스님은 그때 그 권유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2007년 돌연 뇌경색으로 코에이 스님이 입적했고, 갑자기 홀로 된 묘선 스님에게 온갖 공격이 들어왔다. 스님은 “그때는 너무 무서워서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밤에 도망갈까 생각했지”라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아들이 묘선 스님을 이곳에 붙들어 잡았다. 신도회가 다 모인 총회의석에서 겨우 열 살배기였던 아들이 “내가 출가해서 절을 이을 나이가 될 때까지, 어머니가 주지로서 절을 맡아주시길 바란다. 신도회 분들께서 많이 도와달라”라고 당당히 선언한 것.

이 이야기는 묘선 스님이 늘 자랑스러워 하는 이야기다. 필자도 여러 차례 들었지만 참 대단한 일이라고 감탄한다.

스님은 남편이셨던 코에이 스님의 장례를 마치고, 교토의 다이카쿠지(大覺寺)로 출가했다. 다이토쿠지가 코에이 스님의 출가본산인 인연이다. 스님은 밤잠을 아껴가며 정진에 정진을 거듭해 단 8개월 만에 모든 기초교육과정을 끝내버리고, 이어서는 1년 만에 주지 자격 시험을 통과했다.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초고속 통과였다.

본산과 종단에서는 갑론을박이 일었다. 한국 국적에 한국이름을 가진 여성에게 시코쿠 순례지라는 중요한 절을 맡길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결국 다이니치지의 주지로 묘선 스님을 임명했다. 한국무형문화재 전수조교라는 특수한 신분을 인정해 이례적으로 속명이었던 김묘선을 그대로 법명으로 인정, 삭발도 면제 되었다.

그때부터 스님은 13번 절의 주지와 승무 전수조교라는 두 생활을 빈틈없이 해나갔다. 일본에서도 묘선 스님은 춤추는 스님으로 유명하다. 그 춤도 어디 보통 춤인가? 바로 승무 아닌가. 스님의 춤 스승이셨던 故 이매방 선생은 “중이 돼서 진짜 승무를 추니 복 받았다”고 말하셨단다.

다이니치지에 도착하자 묘선 스님께서 직접 나와 맞이해 주신다. 오늘 온다는 연락에 일부러 기다리고 계셨단다. ‘난 대체 무슨 복으로 시코쿠 순례 사찰의 주지 스님에게 환영을 받나’는 생각에 부끄럽기만 하다.

배낭을 방에 풀어두고 다시 길을 나선다. 아직 해가 중천이니 짐은 풀어두고 이어지는 절들을 순례하기 위해서다. 12번에서 13번까지의 거리가 좀 길다 뿐이지 13번부터 17번 절까지는 서둘러 가면 그날 안에 다 순례할 수 있다. 실제 도쿠시마에는 ‘5개소 참배(五ヶ所まいり)’라고 하여, 13번부터 17번까지 5개소를 하루 안에 순례하는 풍습이 전해진다. 

5개소 참배에 들어있는 절들은 모두 각각 특색을 가지고 있다. 오늘 묵는 13번은 원래 신사와 함께 있던 사찰로, 중세에는 절이 아니라 신사가 순례처였다. 그러던 것이 메이지 시대에 신불분리령(神佛分離令)으로 신사에 모시던 11면 관음상을 절로 이운해 본존으로 모시게 된 것이 지금에 이른다.

14번 죠라쿠지(常樂寺)는 절 전체가 마치 파도치는 것 같은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어 인상 깊다. 또 특히 ‘떡갈나무 대사(あららぎ大師)’라는 코보대사상이 유명하다. 절에는 옛날 코보대사께서 떡갈나무 잎을 달여 당뇨로 고생하던 노인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때의 떡갈나무가 지금의 대사당 앞에 서있는 나무라는 것이다.

15번 사찰은 절 전체가 사적(史蹟)이다. 바로 고쿠분지(國分寺)라는 절이다. 옛날 나라시대(奈良時代)의 왕이었던 쇼무(聖武) 천황의 발원으로 일본 전국 66개의 쿠니(國)에 세운 관사(官寺)가 바로 고쿠분지다. 실제 경내에 당시 목탑이 서있던 터와, 여러 건물유적들이 남아 있어 당시의 사세를 짐작할 수 있다.

16번 칸온지(觀音寺)는 백의에 광명진언을 찍어주기로 유명하다. 납경소에 부탁하고 별도의 보시금을 내면 백의의 옷깃에 광명진언을 찍어 준다. 절의 설명으로는 코보대사가 친필로 남긴 광명진언을 판목에 새긴 것으로 절의 보물이라 한다. 시코쿠를 순례하다 보면 옷깃에 광명진언이 찍힌 백의가 종종 보이는데 모두 이곳에서 찍은 것이다.

17번 이도지(井戶寺)는 7분의 약사여래를 본존으로 모시고 있다. 시코쿠에 88개소 중에서는 유일하고, 일본에서도 매우 드문 본존이다. 또 절 이름에 맞게 경내에 코보대사가 팠다고 전하는 우물이 있는데 지금도 수량이 풍부해서 물을 떠가는 순례자들이 많다.

5개소를 모두 참배하자 어느덧 시간이 오후 5시를 지나있었다. 버스를 타고 돌아갈까 했더니 묘선 스님이 차를 끌고 데리러 오셨다. 그날 저녁공양을 받을 때 내 상엔 슬그머니 스님이 담그신 배추김치가 올라와 있었다. 김치 한 쪽에 한국인의 정을 온 몸으로 느낀다.

방에 돌아와 지도를 펴본다. 오늘 17번 절까지 모두 순례했으니 내일은 곧장 18번 절로 향한다. 목표하기론 19번을 지나서 있는 휴게소를 가늠해본다. 순례자가 잘 수 있게 이부자리까지 마련되어 있는 곳이다. 대략 계산해보니 오후 6시나 되어야 도착할 예정이다. 내일 아침 예불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순례의 Tip

- 12번 절 하산길에서 13번 절까지 마땅한 식당이 없다. 타마가도게 고개를 내려간 마을의 슈퍼나 가게에서 먹거리를 마련하도록 하자. 계속해서 걷다보면 머리에 열이 올라 쉽게 지친다. 가능하면 물에 적신 수건 등으로 식혀가며 걷는 것이 좋다. 간혹 순례길 이정표나 표석에 쓰여진 거리나 방향이 틀린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도로안내판을 보거나 지역주민에게 길을 묻는 것이 좋다. 가끔 지름길을 알려주시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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