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執着)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하니 소설 〈폭풍의 언덕〉이 떠오릅니다. 에밀리 브론테(1818~1848)가 쓴 이 소설은 주인공 히스클리프의 사랑과 증오, 분노와 복수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광적인 집착은 자신과 이웃의 삶을 폭풍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워더링 하이츠(폭풍의 언덕)’라는 저택에 사는 언쇼는 어느 날 고아 소년을 데리고 옵니다. 그는 죽은 큰아들의 이름 히스클리프를 소년의 이름으로 주고 아들 힌들리와 딸 캐서린과 함께 키웁니다.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괴롭히고 미워했습니다.

집착은 속박·苦의 원인
가장나쁜 집착은 ‘아집’
무아·보시행이 무착의 길

아버지가 죽자 힌들리의 학대는 더욱 심했습니다. 캐서린을 사랑한 히스클리프는 참고 견딥니다. 그러나 캐서린이 대저택의 아들과 결혼을 약속하자 그는 떠났습니다. 그 후 부자가 되어 돌아온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자식들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캐서린은 그에게 사랑을 고백한 후 딸을 낳고 죽습니다. 복수를 끝낸 히스클리프는 캐서린 옆에 잠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죽어서도 사랑의 끈을 놓지 못해 유령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종종 나타납니다. 마침 올해가 에밀리 브론테의 탄생 200주년입니다. 영국 문학걸작 10선으로 꼽히는 〈폭풍의 언덕〉을 소재로 집착을 공부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집착은 얽매임이고 속박입니다. 스스로 만들어놓은 잘못된 생각에 얽매이기도 하고 주변의 모든 대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집착은 무지가 마음을 뒤덮은 현상으로 갈애(목마름) 또는 욕망이라고도 합니다. 히스클리프의 캐서린을 향한 사랑은 목마름 갈애였으며 자기를 얽어맨 속박이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욕망이 채워지지 않자 그는 분노하고 복수합니다.

집착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은 ‘나’를 내세우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아집입니다. 아집에 사로잡히면 공정하지 못하고 폐쇄적이며 병이 생깁니다. ‘나’라는 아집병을 고치려면 ‘나’라는 것이 빠진 보살이 되어야 합니다. 보살의 집착은 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원행입니다.

*아집을 버리되 그 가르침과 깨달음에 집착하는 것이 법집(法執)입니다. 집착을 없애겠다는 생각조차 놓아버릴 때 법집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10지 보살도 법상이 일어나면 지옥입니다.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존경을 기대하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분노가 일어납니다.

*독립적인 나는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무아이므로 관계 속의 나만 있습니다.

나에 대해 집착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보시를 하고나서 칭찬을 기대하거나 생색을 내면 집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집착은 비움을 방해합니다.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 반야 지혜입니다.

집착은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그러나 ‘번뇌 즉 보리’라고 했습니다. 집착의 에너지를 통찰지의 에너지로 바꾸면 보리가 나옵니다. 욕망 에너지를 무탐·무착 에너지로 잘 쓰면 미래가 열립니다. 불교는 그 방법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무상·무아의 가르침과 8정도·6바라밀 수행으로 마음을 바꿀 때 나와 이웃이 함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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