當機一句千古輝(당기일구천고휘)臨機不變是丈夫(임기불변시장부)로다

기틀을 당한 일구는 천년토록 빛남이요 위태로움에 다다라 변치 않아야 장부로다.

 

금일은 삼복폭염(三伏暴炎)의 하안거(夏安居) 결제를 마치는 해제일((解制))이라. 구순(九旬)의 날들을 유례(類例)없는 무더위 속에서 화두와 씨름하고 더위와 싸우면서 안거를 마치게 되었다.

추운겨울이 되어야 상록수(常綠樹)의 진가(眞價)를 알 수 있듯이, 금년의 무더위 같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정진일여(精進一如) 하여야만, 본인의 살림살이가 드러나고 공부의 진취(進就)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수행자라면 추위와 더위, 주림과 포만, 풍족과 궁핍 등 환경과 무관하게 정진에만 몰두하여야 할 것이다.

금년의 안거기간을 반추(反芻)하여 이번 무더위에 과연 자신의 정진(精進)은 어떠했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보아야 할 것이라.

이 더위에 화두가 순일하지 않았다면 죽음의 고통에 이르러서는 어찌 할 것인가! 혹서(酷暑)의 무더위동안 이 더위가 지나면 가을에는 열심히 정진하리라는 생각으로, 미루고 게으른 마음을 가졌다면 그 날이 영원히 오지 않을 수 있다.

미루고 미루어서 오늘에 이르렀음에 다시 다음으로 미룬다면 어느 생에 다시 부처님 법을 만나고 심인법(心印法)을 만나서 대오견성((大悟見性)할 것인가. 내일도 기약하기 어려운 것이 인생(人生)이고 자연의 이치(理致)이다.

그러니 해제일 되었다고 화두를 내팽개치고 정신없이 돌아다녀서는 아니 되며, 산천에 마음을 빼앗겨 화두를 걸망에 넣어두고 유랑(流浪)을 다녀서도 아니 될 것이라. 가일층(加一層) 분발심을 가지고 정진의 끈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라.

 

부처님의 진리는, 인간의 모든 허상(虛相)과 모든 유형지물(有形之物)을 타파해야만 진리의 참모습이 현전(現前)되는 법이다. 모든 번뇌가 다하고 참모습이 드러난 거기에는 상대(相對)가 다 끊어지고 없다. 거기는 영겁(永劫)토록 나고 죽고 변하는 법이 없다.

이 우주는 이렇게 있다가도 여러 억만 년이 지난 후에는 반드시 없어진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다시 이루어졌다가 또 없어지고 하는데, 우주가 이러한 성주괴공(成住壞空)을 낙동강의 모래알 숫자만큼이나 무수히 반복한다 해도,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이 이 진리의 살림살이이다.

그러니 이러한 진리의 살림살이를 수용하여 생사안두(生死岸頭)에서 자유인이 되고, 살활종탈(殺活縱奪), 여탈자재(與奪自在)의 수완을 갖춘 대자재인(大自在人)이 되어야 비로소 대장부 할 일을 다 해 마친 사람이라 하리라.

화두가 있는 이는 각자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이 화두를 들고 오매불망(寤寐不忘) 간절히 의심하고 의심해야 함이로다.

화두를 챙기고 의심을 쭈욱 밀어주기를 하루에도 천 번 만 번 반복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화두의심 한 생각이 끊어짐이 없도록 혼신을 다해 참구해야 함이로다.

그렇게 혼신의 정력을 쏟아 무한히 노력하다 보면 문득 참의심이 발동하여 화두의심 한 생각만이 또렷이 드러나게 된다.

가나오나, 앉으나 서나, 밥을 지으나 청소를 하나, 일을 하나 잠을 자나, 일체처일체시(一切處一切時)에 화두 한 생각만 흐르는 냇물처럼 끊어짐 없이 흘러가게 된다.

이때에는 사물을 봐도 본 줄을 모르고 소리를 들어도 들은 줄을 모르게 되어 다겁다생(多劫多生)에 지어온 모든 습기(習氣)가 다 녹아 없어져 버리게 됨이로다.

이러한 상태로 몇 달이고 일 년이고,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소리를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남과 동시에 자기의 참모습이 환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로다.

 

중국의 당나라시대에 반산 보적(盤山 寶積)선사 밑에 보화(普化)존자라는 제자가 있었다. 보적 선사께서 임종(臨終)에 다다라 마지막 법문을 하시기 위해 상당(上堂)하여 대중에게 이르셨다.

대중은 모두 나의 모습을 그려오너라.”

이에 몇 백 명 대중이 모두 화상(畵像)을 그려다가 바쳤으나 모두 아니다라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상수(上首)제자인 보화 존자가 빈손으로 나와서는 말했다.

제가 그려왔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내게 가져오지 않느냐?”

보적 선사께서 물으시자, 보화 존자가 냅다 세 번 곤두박질을 치고는 나가 버렸다.

이것을 보시고 보적 선사께서 저 녀석이 장차 미친 거동으로 불법(佛法)을 펴나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모습을 그려오라고 했는데 어찌하여 곤두박질을 세 번 하였을까? 여기에 심오한 뜻이 있다.

그러니 곤두박질을 세 번 하는, 이것을 보시고서 보적 선사께서 보화 존자의 일생사(一生事)를 다 점검하셨던 것이다.

도인의 수기(授記)라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어 보고 일생사를 평()하는 것이므로 아주 무서운 것이다.

과연, 보화 존자께서는 일생을 머트러운 요사인(了事人) 생활을 하시면서 시내 복판에서 요령을 흔들고 다니며 법을 펴셨다.

하루는 임제(臨濟) 선사께서 기거하시던 절에 대중공양이 들어와서 그 근방에 계시는 스님 두 분을 초청했는데, 한 분은 목탑(木塔) 선사요, 한 분은 하양(河陽) 선사였다.

세 분이 함께 공양상을 받고 이야기를 나누며 드시던 중에, 우연히 보화 존자 이야기가 나왔다.

보화가 시내 한복판에서 미치광이 짓을 하는데 그 녀석이 범부(凡夫)인가, 성인(聖人)인가?”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언제 왔는지 보화 존자께서 방으로 들어오셨다.

임제 선사께서 보화 존자를 보고, “자네가 범부인가, 성인인가?” 하시니, 보화 존자께서 도리어 물으셨다.

자네들이 한번 일러 보게. 내가 범부인가, 성인인가?”

그러자 임제 선사께서 즉시 벽력같은 ()’을 하시니, 보화 존자께서는 목탑은 노파선(老婆禪)이요, 하양은 신부자(新婦子), 임제 소시아(小?兒)는 일척안(一隻眼)을 갖추었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범부냐, 성인이냐?”는 물음에 목탑 선사가 답을 못하고 멍하게 앉아 있으니, 나이 많은 노보살들이 참선한다고 하면서 힘없이 흉내만 내고 앉아 있는 것에 비유하여 노파선(老婆禪)이라 한 것이다.

그리고 하양 선사를 신부자(新婦子)라고 한 것은 마치 신부와 같이 얌전에 빠져서 꼼짝을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시아()라는 말은 심부름하는 아이를 일컫는 것인데, 임제 도인을 심부름하는 아이로 취급하여 그가 진리의 눈을 갖추었다고 한 것이다.

그러니 임제 선사께서 이 도적놈아!” 하시자, 보화 존자께서는 도적아! 도적아!” 하면서 그만 나가 버리셨다.

 

대중은 알겠는가?

두 도적이 상봉(相逢)하여 왼쪽에서 젓대 불고 오른쪽에서 장단 맞추니, 청아(淸雅)한 소리가 온 우주에 가득함이로다.

보화 존자께서 항상 거리에서 요령을 흔들면서 외치고 다니시기를,

明頭來明頭打(명두래명두타) 暗頭來暗頭打(암두래암두타) 四方八面來旋風打(사방팔면래선풍타) 虛空裏來連架打(허공리연가타)

밝은 것이 오면 밝은 것으로 치고 어두운 것이 오면 어두운 것으로 치고 사방팔면에서 오면 회오리바람으로 치고 허공 속에서 오면 도리깨로 친다.

하시면서 밤낮으로 동행(東行)하고 서행(西行)하셨다.

 

임제 선사께서 하루는 시자(侍者)를 불러 이르셨다.

네가 거리에 나가 보화 존자께서 요령을 흔들며 외치실 때, 뒤에서 허리를 꽉 끌어안고서 그 네 가지가 모두 오지 아니할 때에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고 여쭈어 보아라.”

그래서 시자가 임제 선사께서 시키신 대로 행하며 여쭈니, 보화 존자께서는 내일 대비원(大悲院)에 재()가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진리의 눈이 열리면 어떠한 법문을 가져다 물어도 이렇게 척척 응()하는 자재(自在)의 수완을 갖추게 되는 법이다.

대중은 알겠는가?

산승(山僧)이 만약 당시의 보화 존자였더라면, 시자가 꽉 안고서 모두가 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할 때 이 주장자로 묻는 자를 삼십 방 때렸으리라.

그러고 난 후에 필경에는 어떠합니까?”라고 물을 것 같으면, 冬至寒食百五日(동지한식백오일)이라. 동지와 한식 사이가 백오 일이니라.

 

또 하루는, 보화 존자와 임제 선사께서 어느 단월(檀越)의 집에서 공양(供養)을 받으시게 되었다. 공양중에 임제 선사께서 보화 존자께 물으시기를 가는 털이 큰 바다를 머금고 조그마한 겨자씨 속에 수미산(須彌山)이 들어간다고 하니, 이것이 신통묘용(神通妙用)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인가, 진리 자체가 그러한 것인가?” 하니, 보화 존자께서는 냅다 공양상을 뒤엎어 버리셨다.

그러자 임제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크게 머트럽구나.” 하니 보화 존자께서 호통을 치셨다.

이 속에 무엇이 있기에 머트럽다거나 세밀하다고 할 것인가?”

그 다음날, 보화·임제 두 분 선사께서 또 공양청(供養請)을 받아서 어느 단월가에서 공양하시게 되었다.

임제 선사께서, “오늘 공양이 어찌 어제와 같으리오.” 하시니, 보화 존자께서 또 전날과 같이 공양상을 뒤엎으셨다.

이것을 보시고 임제 선사께서, “옳기는 옳지만 크게 머트럽구나!“라고 하시니, 보화 존자께서 또 호통을 치셨다.

이 눈 먼 놈아! 불법(佛法)에 어찌 추세(?細)를 논할 수 있느냐?”

이에 임제 선사께서는 혓바닥을 쑥 내미셨다.

두 분 선사의 거량처(擧揚處)를 알겠는가?

 

老賊相逢互換機(노적상봉호환기)

銅頭鐵眼倒三千(동두청안도삼천)

늙은 도적들이 서로 만나 기틀을 주고받으니 동두철안이라도 삼천리 밖에서 거꾸러짐이로다.

 

보화 존자께서 열반(涅槃)에 다다라, 요령을 흔들며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고 다니셨다.

누가 나에게 직철(直綴)을 만들어 줄 자 없느냐?”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장삼을 지어 드렸는데 존자께서는 받지 않으셨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임제 선사께 말씀드리니, 선사께서는 원주(院主)를 시켜서 관()을 하나 사오게 하셨다.

그 때 마침 보화 존자께서 오시므로, “내가 그대에게 주려고 직철을 하나 준비해 두었네하시며 임제 선사께서는 보화 존자 앞에 관을 내놓으셨다.

임제가 과연 나의 심정을 아는구나하시고 보화 존자께서는 곧바로 그것을 짊어지고 시내 사거리로 나가서 큰 소리로 외치고 다니셨다.

임제가 나에게 직철을 만들어 주었으니, 내가 동문(東門)에 가서 열반하리라.”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는 미친 스님 열반하는 모습 좀 보자며 다투어 동문으로 몰려가서 기다렸다. 종일토록 기다려도 존자께서는 모습을 나타내시지 않더니, 저녁 무렵에야 관을 짊어지고 오셔서 말씀하셨다.

오늘은 일진(日辰)이 나쁘니 내일 남문(南門)에 가서 열반에 들리라.”

그 이튿날, 사람들이 다시 남문에 모였는데도 존자께서는 열반에 드시지 않았다. 또 그 다음날에 서문(西門)에서 열반하시겠다고 하여 사람들이 몰려갔으나, 그 날도 역시 허탕이었다.

그러고는 다음날에 다시 북문(北門)에서 열반하시겠다고 선언하셨지만, 삼일 동안을 계속 이와 같이 하셨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믿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흘째 되는 날, 북문에는 아무도 오는 사람이 없었다.

보화 존자께서는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혼자 스스로 관 속에 들어가셔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관 뚜껑에 못을 쳐달라고 부탁하셨다.

그 사람이 못을 쳐서 관을 봉()해 드리고는 성내(城內)에 와서 그 사실을 이야기하니, 소문이 삽시간에 번져, 사람들이 다투어 북문으로 몰려갔다.

보화 존자께서는 이미 열반에 드셔서 몸뚱이는 관 속에 벗어놓으셨는데, 공중에서는 일생 흔들고 다니셨던 그 요령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대중은 보화 존자를 알겠는가?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에 대구 동화사(桐華寺)에서 설석우(薛石友) 선사의 추모재일(追慕齋日), 효봉(曉峰) 선사께서 상당(上堂)하시어 대중에게 물음을 던지셨다.

옛날 보화(普化)는 전신(全身)을 관 속에다 벗어 버리고 허공중에 요령소리만 남기고 가셨거니와, 이제 보화(普化)는 어떻게 가셨느냐?”

이에 당시 동화사 금당(金堂)선원 입승(立繩)을 보던 명허(明虛) 스님이 일어나서 벽력같은 ()’을 했다.

!”

그러자 효봉 선사께서, “그런 쓸데없는 함부로 하지 마라!” 하고 호통을 치시니, 명허 스님은 제가 한 뜻도 모르시면서 어찌 부인하십니까?”하였다.

이에 효봉 선사께서, “옛날 중국에 흥화 존장선사 회상에서 대중들이 동당(東堂)에서도 을 하고 서당(西堂)에서도 을 해대니, 흥화 선사께서 상당하시어 만약 대중이 할을 해서 노승(老僧)을 삼십삼천(三十三天)까지 오르게 하여, 노승이 거기에서 땅에 떨어져 기식(氣息)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난다 해도, 그 할을 옳지 못하다고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고인(古人)의 말씀을 들면서 을 그만하라 하시고 대중에게 다시 물으셨다.

다시 이를 자 없느냐?”

그래서 산승(山僧)이 일어나 답하기를, “옛날 보화도 이렇게 가셨고, 이제 보화도 이렇게 가셨습니다하니, 효봉 선사께서 만면에 웃음을 띠고 모름지기 답은 이러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필경(畢竟)일구(一句)는 어떠한가?

 

萬古徽然何處覓(만고휘연하처멱)

月落三更穿市過(월락삼경천시과)

만고에 아름다운 것을 어디에서 찾을꼬 삼경에 달이 지니 저자를 뚫고 지나감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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