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 개혁 꿈꿨지만, 범계 의혹 넘지 못해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8월 21일 사퇴 기자회견 직후 조계사 대웅전에서 삼배를 올리고 있다. 사진= 박재완 기자

조계종 제35대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사퇴했다. 총무원장 취임일인 지난해 11월 1일 이후 294일만이다.

시작은 화려했다.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으로 불교계 안팎에서 많은 존경을 받던 설정 스님은 지난해 10월 12일 열린 총무원장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됐다. 당시 선거에서 설정 스님은 319명의 선거인단 투표서 총 234표를 획득해 82표를 얻은 기호2번 수불 스님을 압도적인 표차로 제쳤다. 역대 최고 득표였다.

11월 1일 조계사에 열린 설정 스님의 취임법회에는 정재계 인사와 불자 등 약 1만 명이 운집했다. 당시 설정 스님은 신심과 원력, 공심으로 한국불교를 발전시킬 것을 대중에게 약속했다.
이후 스님은 신년 기자회견 등을 통해 “임기 내 오계 운동과 선거 제도 개선, 승려 복지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신심·원력·공심’ 내세워
역대 최고 득표로 당선
선거 과정 범계 의혹들
명확한 해명없이 결백만

PD수첩·설조 스님 단식
종단 내외 비판 이어져
교권자주혁신위 구성 등
대응 나섰지만 한계 봉착
불신임 가결 초유 사태까지

지난해 11월 1일 열린 설정 스님의 취임법회 모습. 1만여 대중이 운집했다. (현대불교 자료사진)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범계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는 설정 스님의 10여 개월의 임기 내내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했다.

특히, 올해 부처님오신날 전후한 5월 1일과 29일 방영된 MBC PD수첩 ‘큰스님께 묻습니다’에서 제기된 설정 스님의 범계 의혹은 설상가상으로 다가왔다. 당시 조계종은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MBC가 조계종과 관련한 의혹 수준의 문제제기 내용을 프로그램으로 제작·방영한 것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조속한 해명을 약속했지만, 종단 안팎의 여론은 급격히 차가워졌다.

잇단 악재에 6월 11일 조계종은 원로, 본사주지, 중앙종회, 율사 등이 참여하는 종령기구인 ‘교권자주 및 혁신위원회’를 발족했다. 교권자주 및 혁신위원회는 前원로의장 밀운 스님이 위원장으로 ‘종단 자주권 수호위원회’와 ‘의혹 규명 및 해소위원회’, ‘혁신위원회’로 나눠 활동했다. 특히 의혹 규명 및 해소위원회는 설정 스님에게 제기된 의혹들을 해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후 의혹 규명 및 해소위원회는 “친자의혹 진위 판단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놓고, 유전자 검사가 의혹 해소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인하게 된다.

교권자주 및 혁신위원회가 발족했지만, 불교계시민사회단체와 승가단체, 일반 사회단체 등의 설정 스님을 향한 비판은 전방위로 이뤄졌다. 이들은 조계사 앞에서 매주 목요일 촛불법회를 개최하며 설정 스님을 압박했다. 종단 원로인 설조 스님의 단식은 더욱 불을 당겼다. 설조 스님은 41일 간 총무원 청사 앞 우정총국에서 단식을 이어가며 설정 스님의 퇴진과 종단 개혁을 주장했다.

7월 27일 결국 설정 스님은 기자회견을 열고 “종도들의 의견을 수렴해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인 사퇴 의사가 담기진 않았지만, 용퇴 분위기에 무게가 실렸다. 설정 스님은 8월 1일 열린 교구본사주지협의회 등을 통해 8월 16일 소집되는 중앙종회 임시회 전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전했고, 종정 진제 스님도 8월 8일 내린 교시에서 “종단제도권서 엄중하고도 질서 있는 명예로운 퇴진이 동시에 수반돼야 한다”고 사퇴 의사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종단 안팎에서는 설정 스님의 구체적인 사퇴 시기 조율만 남은 것으로 예상됐다.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8월 16일 열린 중앙종회 임시회에서 인사말 직후 퇴장하고 있다. (현대불교 자료사진)

하지만, 설정 스님은 8월 13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종단개혁 초석 마련 후 12월 31일 사퇴하겠다”고 기존의 입장을 번복했다. 이러자 불교광장 측 중앙종회의원과 교구본사주협의회 등은 즉각적 반발하고 스님의 용퇴를 촉구했다.

결국, 8월 16일 열린 중앙종회 제211회 임시회서 찬성 56표로 총무원장 불신임 안이 통과되기에 이른다. 조계종 역사상 첫 총무원장 불신임 가결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것이다.

불신임안 가결은 설정 스님이 종단 내부 지지를 받지 못해 이뤄진 결과라는 게 중론이다. 특히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MBC PD수첩 등 공중파를 통해 문제제기가 이뤄져 종단 위상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또한 명확한 해명 없이 오로지 결백만을 주장한 부분도 종도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결국 불신임안 인준을 위한 조계종 원로회의를 하루 앞둔 8월 21일 설정 스님은 총무원장 직을 내려놨다. 그리고 다시 산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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