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선승(禪僧)의 다비(화장)와 유품 경매

다비 후 가사 등 유품 대중경매
‘물욕에 탐착하지 말 것’ 의미

선승의 다비(茶毘)
당송시대에는 한 총림에 적어도 100여 명 이상이 함께 수행했다. 그 가운데는 이승과 작별을 고(告)하는 납자도 종종 있었다. 그를 망승(亡僧)이라고 한다. 망승의 마지막 절차인 장송 장면은 다비(茶毘) 곧 화장(火葬)이다. 다비는 공(空)의 이치, 제행무상의 이치를 100% 보여 주는 인생 드라마다.

선종 사원에는 정식 다비장(茶毘場)이 갖추어져 있다. 정식 화장(火葬)은 장소가 넓어야 한다. 좁으면 불꽃이 튀어 산불이 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다비 순서는 먼저 참나무 장작을 2미터 가량 높이 쌓은 다음 그 위에 망승의 시신(屍身)이 들어 있는 감(龕, 棺)을 올려놓는다. 그런 다음 또 장작을 쌓아 올리고 점화한다. 이것이 정식 다비(화장)이다. 요즘은 정식 다비를 할 수 있는 넓은 장소가 없으므로 TV에서 보여 주는 것과 같이 대부분 약식 다비를 한다. 약식(略式) 다비는 땅을 약 50센티 가량 파서 고랑을 만들고 그 위에 장작을 1미터 정도 쌓고 관을 올려놓고 또 장작을 올린다. 그런 다음 물에 젖은 볏짚으로 여러 겹 영을 두른 후 다비를 하면 불꽃은 튀지 않고 하얀 연기만 피어오른다.

선승의 장례와 장송의식은 규율과 행사 담당인 유나(維那)가 주관, 집전한다. 유나의 지시에 따라 망승의 관(棺)을 다비장으로 옮겨서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불을 붙이는데, 그것을 ‘하화(下火)’ 또는 ‘병거(秉炬, 횃불을 잡다)’라고 한다. 하화(下火)나 병거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주지 외의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주지가 횃불을 잡으면 유나는 감(龕, 관)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염송한다.

“오늘은 신원적(新圓寂) 쫛쫛상좌가 인연에 따라 순적(順寂, 입적에 순함)하였나이다. 이에 법에 의거하여 다비하나이다. 백년 동안 불법을 홍도(弘道)한 몸을 화장하나이다. 한결같이 곧장 열반(涅槃)으로 가사이다. 존귀한 대중들의 법력에 의거하여 각령(覺靈, 영가)의 열반길을 자조(資助, 돕다)하고자 하나이다. 나무서방극락세계 대자대비 아미타불. (아미타불을 열 번 하고 마친다. (〈칙수백장청규〉 7권 ‘대중’ 편. 維那向龕念誦云. 是日則有新圓寂某甲上座, 隨緣而順寂. 乃依法以茶毘. 焚百年弘道之身, 如一路涅槃之徑. 仰憑尊衆資助覺靈. 南無西方極樂世界 大慈大悲阿彌陀佛. 十聲罷)”(대정장 48권, p.1148c).

하화(下火, 點火) 후에 다비가 완전히 마무리되자면 하룻밤이 지나야 한다. 이때 납자들은 여러 명이 함께 다비장을 지키고 앉아서 영가가 가는 길을 돕는다. 다음 날 아침에 날이 밝으면 납자들이 유골을 수습하여 대중들의 공용탑인 보동탑(普同塔)에 안치한다. 주지(방장)나 고승의 경우는 다비 후 별도로 사리탑을 조성하여 그 속에 안치한다. 이것으로써 다비 절차는 끝난다.

망승의 마지막 절차인 장송 장면은 다비(茶毘) 곧 화장(火葬)이다.

망승의 소지품 경매―창의(唱衣)
망승(亡僧)의 가사, 발우 등 유품 일체는 다비 다음 날 대중들에게 경매(競賣)한다. 이것을 ‘옷값을 부르다’는 뜻에서 ‘창의(唱衣)’라고 한다. 일반 승려뿐만이 아니라 주지(방장) 등 고승의 유품도 특별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경매한다. 망승의 유품을 대중들에게 나누어 주거나 사중(寺中)에 귀속시키지 않고 굳이 경매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장로종색의 〈선원청규〉 6권 ‘망승(亡僧)’ 편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무릇 망승의 의물(衣物)을 창의(唱衣, 경매)하는 것은 이는 이른바 간심(心, 貪心)을 파(破)하고, 망승과 인연을 맺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장로종색, 〈선원청규〉 6권 ‘亡僧’ 편. 凡唱亡僧衣物, 此謂對破心, 及與亡僧結緣.)” (〈신찬속장경〉 63권, p.541b).

망승의 유품(가사ㆍ발우 등 일체)을 다비 직후에 곧바로 경매하는 이유가 대중들로 하여금 간탐심(心ㆍ貪心)을 제거하게 하고, 경매 물건을 통하여 망승과 인연을 맺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즉 살아 생전에 물건에 탐착해 봤자 죽으면 다 경매되어 버리므로 탐착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경매를 지켜보고 있는 생자(生者)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창의(唱衣, 경매)는 주로 점심 공양 후에 하는데, 주관자는 유나(維那)이다. 유나는 경매에 들어가기 전에 망승의 유품에 대하여 기본 값, 즉 시초가를 책정한다. 이것을 고의(衣)ㆍ고직(直)ㆍ고가(價)라고 한다. 고의(衣)는 주지ㆍ수좌ㆍ감원ㆍ유나 등이 참여하여 책정한다. 고의는 절대로 처음부터 값을 높게 정하지 않는다. 경매를 하는 의도가 금전을 모으기 위한 것이 아니고, 탐착심을 제거해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매 장소는 승당 앞이나 법당 안에서 한다. 경매 준비가 완료되면 유나는 종두(鐘頭)로 하여금 종과 북을 쳐서 대중들을 모이게 한다. 일반인은 경매에 참여할 수 없고 스님들만 참여할 수 있는데, 참여 여부는 자유이다. 그런데 의외로 경매에 참여하는 납자들이 많았다. 또 경매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어서인지 적지 않은 대중이 모였음을 알 수 있다. 대중들이 다 모이면 유나는 인경(印磬, 경쇄의 일종)을 한 번 치고 나서 게송을 읊는다.

“뜬 구름 흩어져서 그림자마저 사라졌네. 남은 촛불 다하여 그 빛은 저절로 소멸했네. 지금 여기에 고창(唱, 경매)하나니 그것은 일체가 무상함을 나타내기 위함이네. 우러러 대중을 의거하여 쫛쫛상좌를 위하여 받드나니, 각영(覺靈, 영가)은 이것을 바탕으로 정토에 왕생하소서. 염(念)하나이다. 청정법신비로자나불” (〈칙수백장청규〉 7권 ‘대중’ 편. “浮雲散而影不留, 殘燭盡而光自滅. 今唱用表無常, 仰憑大衆奉某甲上座, 資助覺靈, 往生淨土. 念. 淨法身毘盧遮那佛.”)(〈대정장〉 48권, p.1149a).

여기서도 유나는 ‘고창(唱, 경매)하는 것은 일체가 무상함을 나타내기 위함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어서 유나는 또 한 번 인경을 친 다음 창의(唱衣, 경매) 방법에 대하여 고지(告知)한다.

“이 창의(唱衣)의 법은 오래 전부터 상규(常規)로서 이어온 것입니다. 물건이 새것인지, 오래된 것인지, 또는 장단점에 대해서는 스스로 잘 파악해야 합니다. 창의가 결정되어 인경을 친 다음에는 번복할 수가 없습니다. 삼가 아룁니다.”(〈칙수백장청규〉 7권 대중 편. “夫唱衣之法, 蓋稟常規. 新舊短長自宜照顧. 磬聲斷後不許悔. 謹白”)(대정장 48권, p.1149a).

낙찰은 최고가를 쓴 사람에게
경매는 최고가를 써 낸 사람에게 낙찰시킨다. 그런데 한번 낙찰이 결정되면 절대 번복해서는 안 된다.

유나는 경매 대상 물건에 대하여 낱낱이 번호를 매겨서 대중 앞에 나열한다. 물건 번호는 천자문(千字文) 순서를 따른다.(즉 天-地-玄-黃-宇-宙-洪-黃 순서) 예컨대 첫 물건의 경우는 ‘천자일호(天字一號)’이고, 다음 물건은 ‘지자이호(地字二號)’, 세 번째 물건은 ‘현자삼호(玄字三號)’라고 써 붙인다. 이렇게 하여 물건이 20가지라면 ‘왕자 이십호(往字 二十號)’까지 나간다. 번호를 매기는 것은 경매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인데, 천자문에다가 숫자를 합하여 빈틈없도록 했다.

이어 유나는 행자로 하여금 경매할 물건을 들어서 대중들에게 보이게 한다. 경매하는 물건이 새것이면 ‘신(新)’이라 하고, 헌것이면 ‘구(舊)’, 좀 찢어지거나 손상된 것이면 ‘파(破)’라고 한다. 그런 다음 “천자일호(天字一號) 쫛쫛물건, 값 쫛쫛요”라고 부르면(唱), 유나실의 행자는 다시 큰소리로 대중들을 향하여 복창한다. 낙찰을 받고자 하는 이는 나무 판에 자기 법명을 쓴 다음 “청수(請受, 매수)요”라고 써서 나무 판을 올린다. 더 높은 가격의 응찰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유나는 “천자일호(天字一號)의 쫛쫛 물건은 값 쫛쫛에 쫛쫛상좌 청수(請受, 매수)요. (혹은 打與합니다)”라고 말하면 낙찰이 결정된 것이다.

낙찰이 확정되면 유나는 전표를 끊어서 낙찰 받은 스님에게 준다. 지객은 그 스님의 이름과 물건, 값 등을 장부에 기록하고, 행자는 물건을 바구니에 담아서 전표와 교환한다. 낙찰은 번복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경매 과정에서 좋은 물건의 경우 과열되기도 하다. 응찰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낙찰가는 계속 올라가는데, 낙찰가가 예정가보다 너무 높아질 경우 유나는 대중들에게 “다시 모름지기 자세히 살피시오. 나중에 후회한들 번복하기 어렵습니다(維那云. 更須子細, 後悔難追).”라고 하여 주의를 환기시켜 준다. 그런데도 낙찰이 과열되면 그 물건을 유찰시켜 버리는데, 이것을 ‘쌍파(雙破)’라고 한다. 양쪽 모두 낙찰을 파(破)해 버린다는 뜻이다. 유찰된 물건은 재경매를 한다.

경매에는 특혜가 없다. 청규에는 설사 주지나 수좌 등 상위직 소임자라 해도 망승의 유물을 취득하고자 할 경우에는 반드시 경매를 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망승이 일반 승려가 아닌 6지사(知事)나 6두수 등 총림의 요직을 역임한 선승의 경우에는 개인 소유물도 꽤 많고 값이 나가는 물건도 있어서 경매 수입도 높았다.

창의(唱衣)에서 얻어진 수익금은 장례비용으로 쓰고, 남을 경우에는 영가 앞에서 독경한 스님들과 장례식에 참석한 이들, 그리고 창의 주관자 등에게 골고루 나누어 보시한다. 그러고도 남는 것은 사중(寺中) 수입으로 계정(計定)한다. 경매가 끝나면 다음 날(열반 3일째)에는 바로 경매와 관련된 수지(收支) 명세서를 방(榜)에 붙여 공개하는데, 그것을 ‘판장식(板帳式)’이라고 한다. 단 매수자의 이름은 쓰지 않는다.

총림에서 망승의 물건을 경매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매우 체계적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경매 방법과 별 차이가 없는데, 이것이 선종사원에서 시작한 것인지, 당시 세속에도 이런 경매방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장로종색의 〈선원청규〉에 기록되어 있는 장의법(葬儀法)은 당대(唐代)에서 북송 때까지의 장의법이라고 할 수 있고, 〈칙수백장청규〉에 기록되어 있는 장의법은 남송 중기에서 원대까지의 장례법이라고 할 수 있다.

망승의 유물 경매과정에서 과열현상을 빗기도 했는데 그에 대하여 〈칙수백장청규〉 7권 ‘대중’ 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증휘기(增輝記)의 내용을 인용하여 언급하고 있다.

“불교제도(佛制)에 망승의 옷을 나누는 뜻은 지금 남아 있는 이들로 하여금 저 망승의 물건이 여러 대중에게 나누어지는 것을 보고 사유(思惟, 제행무상)하게 하기 위함이다. 망자(亡者)의 물건이 이미 이와 같이 되었으니 그 물건이 나에게 돌아와도 똑같이 될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탐구(貪求, 탐욕)심을 다스리게 하기 위함이다. 지금 탐심을 성찰하지 않고 오히려 창의할 때 값을 다투어 시끄럽게 하는 것은 어리석음이 심한 것이다.” (〈칙수백장청규〉 7권 대중 편. “增輝記云. 佛制分衣意, 令在者, 見其亡物分與衆僧, 作是思惟. 彼如斯, 我還若此. 因其對治息貪求故. 今不省察, 於唱衣時爭價喧呼, 愚之甚也”)(〈대정장〉 48권, p.1149a).

“창의(唱衣, 경매)할 때 시끄럽게 값을 다툰다. 어리석음도 심하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망승의 물건을 경매하는 과정에서 아름답지 못한 일도 종종 일어났던 것 같다. 세속인들이 경매에서 서로 다투는 것은 ‘생’을 위한 것이므로 굳이 ‘흉’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선원의 수행자들이 경매 물건을 놓고 다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본질적으로는 부처지만 아직은 깨닫지 못한 부처이기 때문이 아닐까?

원대(元代)에는 창의(경매) 과정에서 오는 문제점, 즉 과열 등을 보완하기 위하여 구염법(拈法)을 채택했다. 구염법이란 ‘제비뽑기’ 방법인데, 천자문 순서대로 전표를 두 장씩 만들어서 한 장은 응찰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한 장은 통 속에 넣고 모두 섞는다. 그런 다음 통 속에 있는 전표를 한 장 뽑는다. 해당 번호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에게 응찰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데, 낙찰에 응할지 여부는 응찰자의 자유였다. 낙찰받기 싫으면 응찰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다시 추첨한다. 구염법을 도입한 이후에는 잡음이 적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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