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사이몬, 잡지 인터뷰서 불교인연 밝혀

유명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에드워드 사이몬(Edward Simon). 사진출처=트라이시클

세계 최고 뮤지션 목표 세우고
본질적 인간에 대한 갈망 지속
‘자비희사’ 가르침 깨닫게 된 후
존재 자체 대한 ‘감사함’ 느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에드워드 사이몬(Edward Simon·49)의 음악활동에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불교’다. 그는 음악으로 충족되지 않는 삶의 가치를 불교에서 찾았다고 말한다. 또 불자들에게 과거의 한 좋은 경험에 집착할수록 결국 현재를 놓치고, 그 경험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잃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불교 잡지 ‘트라이시클(Tricycle)’이 최근 그와 실시한 인터뷰 일문일답.


Q.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12살에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어떻게 불교에 빠져들게 됐나.

A. 20년 전 나는 스스로 세계 최고의 뮤지션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것(목표)은 실질적으로 내게 ‘인간 존재’로서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나는 삶에 많은 불만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불교에서 내 존재에 대한 만족감을 느낄 방법을 찾았다.

불교의 네 가지 범주(거룩한 마음)인 자애·연민·타인 재산에 대한 축하·평정, 즉 자비희사(慈悲喜捨)는 나에게 큰 감명을 줬다. 타인을 향해 자애로운 마음을 갖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행복과 자유를 추구하는 근본적인 인간 욕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마음은 나를 매우 근본적인 상태로 연결해 준다.


Q. 불교가 음악적인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A. 불교가 나의 작사와 작곡에 영향을 준 것은 매우 ‘무심코’ 일어났다. 당신이 하는 일에서 더 잘되기를 원한다면,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이 더 나은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불교의 길에 들었을 때 내 음악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더 큰 기쁨을 가져다주길 원했다. 그 전에는 생각해본 적 없던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내 음악을 모두가 좋아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불교 실천에서 배우는 것처럼 ‘의도’는 매우 강력하다. 만약 그 의도가 선량하다면 저절로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Q. 재즈와 클래식 장르를 라틴 아메리카 음악과 결합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떻게 할 수 있었나.

A. 나에게 있어서 음악 구성은 고전 장르에서 가장 정교한 수준으로 발전해 왔다. 반대로, 순간순간의 즉흥 연주는 연주자 간 대화가 매우 높은 수준에서 이뤄지는 재즈라는 가장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다. 수년 동안 위대한 고전 작곡가의 작곡을 연주하고 분석함으로써, 그 표기법 기술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여기서 ‘표기법 기술’이란 명확한 방법으로 (듣는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한다.


Q. 음악적 우상과 불교 멘토는 누군가.

A. 베트남 불교 스승 ‘틱낫한’은 나를 계속해서 격려한다. 나는 그의 책에서 불교를 배운다. 2013년 틱낫한의 메인 센터인 프랑스의 플럼빌리지에서 열린 여름 수련회에 참석한 좋은 기회가 있었다. 그건 놀라운 경험이었다. ‘놀라운’이라고 표현하기에도 부족하다. 내가 (글로)배운 가르침을 매 순간 진정으로 구체화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음악의 경우에는 나는 트럼펫연주가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를 열광적으로 추종한다. 게다가 그를 둘러싼 몇몇의 음악가들, 색소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웨니 쇼더나 키보디스트이자 작곡가인 킥 코리 등도 좋아한다.


Q. 음악가들이 몸 밖에서의 경험이나 완전한 존재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무대 밖에서는 특정 명상의 효과와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이런 것들 경험한 적 있나.

A. 그렇다. 미국의 재즈 플루리스트 허비만과 함께한 콘서트가 생각난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산토 도밍고에서 열린 재즈 페스티벌이었다. 나는 20대 초반이었다. 그때의 느낌을 생생히 기억한다. 연주하는 동안 전체적으로 나 스스로 자아가 사라진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그와 함께한 순간 음악과 온전히 연결된 것처럼 느꼈다. 내가 거기에 없는 것과 같았다. 근데 나는 완전히 거기 있었다. 그 경험은 매우 즐거웠다.


Q. 그 경험을 되풀이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나.

A. 그렇다. 하지만 모든 일은 힘들이지 않은(자연스러운) 감각과 함께 정확히 일어났다. 그 다음날 밤이나 다음 콘서트에서 그것을 반복하고 싶은 자연적인 욕심이 있었지만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을 시도하려는 노력을 하면 결국 그것을 잃는다.


Q. 그건 마치 한 순간 경험에 대한 애착의 한 형태처럼 들린다.

A. 맞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엇이든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면 (도리어)배우게 된다. 그러나 초반에는 고통의 원인이 된다. 나는 그 후로 여러 밤을 그날 밤과 비교해 봤다. 나는 “오 세상에, 오늘 밤 내 연주가 싫어”라고 느끼거나, 또는 음악이 같은 수준에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비교는 누구에게나 필연적이다. 특히 아티스트들의 초창기에는 더욱 그렇다. 나에게 나쁜 느낌을 남겼다.

그 무대, 한 번의 경험을 통해 성장하지만 그날 밤을 재현하는 게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걸 배웠다. 그날 밤의 나는 그날 사라졌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이 상황에서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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