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 전 상서]15. 조희룡의 ‘일정화영첩’
[초의 전 상서]15. 조희룡의 ‘일정화영첩’
  •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 승인 2018.08.1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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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초의에게 法敎를 청하다
조선 후기 여항시사를 이끌었던 조희룡이 지은 〈일정화영첩〉. 추사의 제자였던 만큼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다. 금강산을 유람하며 느낀 점을 시로 묶어냈으며, 이를 초의에게 보내 그 경지를 점검해줄 것을 청했다.
조선 후기 여항시사를 이끌었던 조희룡이 지은 〈일정화영첩〉. 추사의 제자였던 만큼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다. 금강산을 유람하며 느낀 점을 시로 묶어냈으며, 이를 초의에게 보내 그 경지를 점검해줄 것을 청했다.

조선 후기 여항시사를 이끌었던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초의와 깊은 인연을 맺는다. 원래 그의 집안은 양반 출신이었지만 조부 때부터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고 여항인(閭巷人)들과 어울린 화가이기에 중인 그룹으로 분류한다. 그의 자는 이견(而見), 치운(致雲)이요, 우봉(又峰), 철적(鐵), 호산(壺山), 단로(丹老), 매수(梅) 등을 사용했다. 마치 “학이 가을 구름을 타고 훨훨 날아가듯이 길을 걸어 다녔다”고 할 정도로 병약했다고 한다. 이런 약골임에도 천수를 누렸던 그는 특히 매화를 좋아하여 기벽(奇癖)이라 이를 만하였다. 그가 매화를 잘 그린 것은 이런 매화벽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늘 매화 병풍을 치고, 매화 벼루를 수집해 곁에 놓고 즐겼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의 예술적 취향은 추사의 문하에서 더욱 그 가치를 발하였다. 개방적인 인품의 소유자였던 추사는 신분을 따지지 않고 교유하였기에 조희룡도 그의 문하에서 공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조희룡이 추사체를 본받아 방불한 글씨를 썼던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추사와의 깊은 학연으로 초의를 알게 된 그는 불교에도 친숙한 성향을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불로(佛老)라는 호를 사용했던 흔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초의에게 증시첩을 보내 법교를 청했으니 이것이 바로 〈일정화영첩(一庭花影帖)〉이다. 이 첩의 크기는 24.7×13.4cm이며 그가 초의를 위해 지은 총 5수의 시를 묶어 첩으로 완성했다. 겉표지에 초의선사 사수(草衣禪師査收), 철축도인 기(鐵道人 寄)라고 쓴 묵서가 있는데, 철축도인은 바로 조희룡의 호이다. 중인 출신이었지만 시·서·화(詩書畵)에 능했다.

특히 시에 밝았던 그는 초의가 1838년경 금강산을 유람할 때 지은 시를 애송했으니 이는 당시 초의와 교유했던 경향의 문사들 사이에서 유행된 일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초의법사께서 금강산을 돌아보시고 쓴 시는 지금 저에게 있으니 때때로 다시 꺼내 읽습니다. 해악에서 돌아 온 후, 처음으로 산을 보는데도 삼매의 경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草衣法師金剛望遊詩 今在余所 時復取讀於海岳 歸來之後 始知爲看山三昧)”라고 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희룡의 시와 글씨, 그리고 초의와의 관계를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인 〈일정화영첩〉의 일부 내용을 소개 하면 다음과 같다.

도道로 향하는 선남 선녀이여,
번뇌와 고통을 없애려고
머리를 조아려 금강저에 비누나.
내 천하의 책을 다 보지 못했으니
누가 장차 이런 경계를 쓸 것인가.
신선의 땅, 부처의 세계를 유생이 올랐지만
스스로 흰 연꽃 피웠다는 소식, 듣지 못했네.
안개 피어오른 바다, 비바람 맞는 게 두려워
신선에게 나루터를 묻는 마음이어라.
패옥 소리 댕그랑 울려도 머물 곳이 없으니
다만 노을 바라볼 뿐, 마음대로 가지 못하네.
큰 부끄러움 일어나도 큰 손으로 쓸 수 없어서
공연히 세상을 향해 소리를 내는 듯하네.
세간의 문자란 오목한 절구 구멍이라.
어찌 모양 밖을 다 들 수 있으리.
만약 천고로 통한 사다리와 배가 있다면
여기에서 공덕을, 황왕을 칭송하리.
72집을 봉선(封禪)한 일이라
빛나는 옥문갑(玉文匣), 금니(金泥)를 모으리.
홀로 갈성루(歇城樓)에 올랐습니다. 사람이 이 묘제(妙諦)를 증명할 이 없어 이것을 기록하여 포연스님(浦蓮上人)에게 보내니 돌려서 초의선사에게도 보냅니다. 아울러 법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철축도인 고
초의법사께서 금강산을 돌아보시고 쓴 시는 지금 저에게 있으니 때때로 다시 꺼내 읽습니다. 행악(海嶽)에서 돌아 온 후, 처음으로 산을 보는데도 삼매의 경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시는 곧 기린훤을 면했을 뿐입니다.

向道善男與善女/煩惱苦趣共欲除/稽首願乞金剛杵/吾生未窮天下書/誰將是境下箋/仙都佛界登楮墨/未聞自成白芙/恐被風雨飄烟瀛/可惹遊仙問津情/環冷冷無處所/只見雲霞無恙橫/發皇愧無大手筆/空向海內擬響/世間文字是臼/安能象外可擧悉/若使千古通梯航/功德向此頌皇王/七十二家封禪事/玉檢金泥聚煌煌//
獨上歇惺樓 無人證是妙諦 錄此寄示浦蓮上人 轉呈草衣禪師 請法敎
鐵道人稿
草衣法師金剛望遊詩 今在余所 時復取讀於海岳 歸來之後 始知爲看山三昧 余詩卽不免麒麟耳

초의가 금강산을 유람한 것은 1838년경이다. 두 번째 상경 길에 금강산을 유람하고자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1838년에야 뜻을 이룬 셈이다. 그런대 초의가 금강산에서 쓴 시가 경향의 문사들 사이에서 애송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시에 능했던 조희룡도 초의의 금강산 시를 애송했으며 그 자신도 금강산을 유람한 후에야 산을 보는 묘미가 무엇인지를 알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바로 시의 후미에 “초의법사께서 금강산을 돌아보시고 쓴 시는 지금 저에게 있으니 때때로 다시 꺼내 읽습니다. 행악(海嶽)에서 돌아 온 후, 처음으로 산을 보는데도 삼매의 경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시는 기린훤을 면했을 뿐입니다”라고 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시가 기린훤(麒麟)을 면했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바로 초의의 시를 보고 산을 보는데도 삼매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부터 그의 시 또한 겉만 그럴 듯한 것이 아니라 실속이 찬 시를 완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기린훤의 유래는 〈태평광기(太平廣記)〉권265 ‘영천령(盈川令) 경박일(輕薄一)’에 다음과 같이 서술되었다.

기린은 상서로운 동물이다. 당(唐)나라 때 기린으로 분장한 나귀를 기린훤이라고 불렀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하나 실제로는 아닌 것을 이른다. 여기에서는 본질적으로 기린으로 분장한 나귀처럼 다른 신분에 따라 정해놓은 법질서가 무너진 것을 이른다.

기린은 남방에서 자란다. 춘추시대 공자는 기린이 잡혔다는 말을 듣고 세상을 주유하던 일을 그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제자를 양성했다. 상서로운 동물 기린은 성인의 출현을 예견하는 상서로운 징후라 여겼다. 그런대 당나라 때에는 나귀를 잘 꾸며 기린처럼 분장한 것을 기린훤이라 불렀다. 바로 가짜인 셈이다. 그러므로 조희룡이 자신의 시가 기린훤을 면했다는 것은 시삼매의 본질을 관통했다는 말이 아닐까.

한편 〈일정화영첩〉은 원래 초의에게 보낸 것은 아닌 듯 한데 이는 “사람이 이 묘제(妙諦)를 증명할 이 없어 이것을 기록하여 포연 스님(浦蓮上人)에게 보내니 돌려서 초의 선사에게도 보냅니다. 아울러 법의 가르침을 청합니다”라고 한 것에서 드러난다. 포연 스님이 누구인지를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첩은 초의에게 법교(法敎)를 청하면서 보낸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첩의 후미에 조희룡의 안목이 유점사를 유람하면서 “천하의 이치가 어느 것이든 무(無)로서 유(有)를 하고 유로서 무를 하지 않음이 없으니 모두 옳습니다. 나는 우선 일어난 것을 이와 같이 보는데 초의법사께서 바로 잡아 주십시오(天下之理 何所不有 以無爲有 以有爲無 皆是也 我姑作如是觀 草衣法師正之)”라고 말한 대목이 눈에 띈다.

그의 문리는 이처럼 대오한 경지를 드러냈으니 금강산 유람은 사람의 안목을 넓히기에 제 격이었던가 보다. 아무튼 자신의 경계를 초의선사의 법안(法眼)으로 점검해 달라는 것이니 당시 초의는 인천(人天)의 스승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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