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동 변호사(57· 법무법인 동연 대표)

장준동 변호사는… 1961년 3월 남해에서 태어났다. 진주고등학교를 졸업 후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장준동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이후 부산분권혁신운동본부공동대표와 제53대 부산지방변호사회 회장,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법무법인 동연 대표 변호사로 활동하며 부산밥퍼본부 운영이사, (사) 부산자원봉사포럼 공동대표, (사)부산 장애인재활협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부산불교교육대학 포교봉사단 단장, 총동창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부학장으로 포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5년 제52회 법의 날을 맞아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표창장을 받았으며, 부산지방변호사회로부터 공로상, 여성평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으로부터 감사패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나와 모두 위한 변호사의 길
중학교 은사 만나 공부 시작
1986년 사법시험 통과, 개업
형사 사건 다수, 무죄입증 달인
의뢰인 무한 신뢰가 승소 비결

최근 개봉한 영화 신과 함께2’가 전작에 이어 흥행가도를 달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영화의 웹툰 원작에서는 진기한이라는 변호사가 등장하는데, 그는 사후 세계에서 열리는 재판에서 망자의 변호를 맡는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진심으로 의뢰인을 돕는 진기한은 어찌 보면 중생을 위해 지옥이 텅 빌 때까지 성불을 미룬 지장보살을 닮았다. 진기한이 지장보살을 닮았듯이 진기한을 닮은 이 시대의 변호사가 있다. 그는 마음을 다해 의뢰인을 돕는 것은 물론이고, 법정 밖에서도 끊임없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 나선다. 부산 지역 변호사들로 구성된 아름다운인연 봉사단을 창단해 밥 짓고, 밥 나눠주고, 연탄, 김치 배달하는, 일명 밥퍼 변호사장준동 변호사가 그 주인공이다.

 

또 다른 세상에 눈 뜨다

장 변호사의 고향은 경남 남해다. 작은 섬 창선도에서 9남매 중 8번째로 태어났다. 장 변호사의 부모는 장 변호사가 어렸을 때부터 장 변호사에게 어선을 운영하면서 평범하게 가업을 이어갈 것을 권했다. 어린 장 변호사 역시 부모님의 생각에 다른 생각이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소를 먹이고 어선 일을 돕는 평범한 시골 아이였다. 특별히 입신양명을 위한 뜻을 세울 필요도 없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에게 학업은 특별한 의미가 없었다. 그랬던 장 변호사의 삶은 어느 날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장 변호사는 새로운 생각을 품기 시작한다. ‘자체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의 삶에는 어촌의 삶 말고도 여러 가지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시작은 생물 선생님으로부터 시작됐다.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고, 유신헌법 제정과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 거세지기 시작했던 시절이었는데, 생물 선생님은 당시의 정국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계셨어요. 정치는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걱정이라고 하셨어요. 그 때, 선생님의 이야기는 제게 너무나 새롭고 충격적인 이야기였어요. 제가 알고 있는 세계 속엔 없던 이야기들이었어요. 세상엔 바다와 어선일 말고도 많은 것들이 있었어요.”

그 후 장 변호사의 삶에 대한 생각은 많이 달라진다. 세상은 넓고 꿈꿀 수 있는 일은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지금까지의 꿈을 넘어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꿈이 무엇이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시골에서는 방과 후에 소를 먹여야 했어요. 소를 끌고 산에 가서도 책을 놓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사법고시 공부할 때 보다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장 변호사는 그 후 당시 명문고로 이름이 높았던 진주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더 넓은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는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고, 198611월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무고한 사람 없도록 최선봉사는 나의 삶

 

불국토 꿈꾸며 봉사의 길
2011년 부산변호사회장 선출
특권의식 버리고 대중 속으로
아름다운 인연 봉사단창립
변호사 170, 총 회원 220
전국 유일의 변호사 봉사단체

보이지 않는 곳, 숨은 봉사
노동자 부당해고·전직 구제
택시운전자 면허취소 구제활동
여성 인권 자문, 성폭력 상담
마을변호사 등 다양한 봉사

재가불자 위한 불교운동도
부산불교교육대학 교리반 수료
공부한 것 실천해야 참 불자

 

실력이 곧 자비

장준동, 그가 맡으면 달랐다. 형사 사건을 많이 맡아 온 장 변호사는 뛰어난 직관력으로 많은 의뢰인의 무죄를 입증했다. 자칫 짓지도 않은 죄를 덮어쓰고 힘겨운 시간을 보낼 뻔 한 무고한 사람들에게는 장 변호사가 진기한이고 지장보살인 것이다.

최근 장 변호사는 여대생 강간 미수로 구속된 20대 젊은 대학생의 변호를 맡았다. 동기 여대생을 강간하려했던 혐의로 구속된 피고인은 장 변호사의 도움으로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항소심에 올라온 성폭력 사건을 무죄 판결로 이끌어 내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의 열정과 실력이 만들어 낸 기적이다.

어린 남자 대학생이 술에 취한 동기 여학생을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었어요. 당시 가장 확실한 증거로 여자 측에서 제출된 전화 녹음 자료가 현장에서 조작됐음을 증명했고 술에 취한 동기 남학생에게 돈을 갈취하려는 조작극임을 밝혀냈죠.”

장 변호사는 전화 녹음자료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조사를 의뢰했고, 사건 상황을 재 추적하기 위해 현장 조사를 시작했다.

의심스러운 내용이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사건 후 재판이 있기 전, 여자 측에서 변호사를 데리고 나와 당시 의뢰인에게 먼저 합의를 제안하며 3천만원을 요구했더군요. 조사해보니 같이 동행한 변호사도 가짜였어요. 돈을 먼저 요구한 것과 녹음 증거자료 조작 등 의심스러운 정황을 증거로 무죄를 주장했고 승소 했죠.”

부산 사하구에서 장애인을 위해 교통 봉사를 하던 개인택시 운전사의 억울한 사연도 유명하다. 개인택시 운전사가 지적 장애인을 태워주는 봉사를 매 주일마다 진행했는데, 당시 조수석에 탔던 장애인이 운전기사를 성추행 범으로 신고한 것이다. 1차 재판에서 운전기사는 6개월을 감옥에서 살게됐고,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후 항소했다. 항소 재판에서 피해자인 장애인 여아는 증인으로 참석이 어려워 녹취 자료에만 근거해 1차 재판 결과를 뒤집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재수사를 처음부터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장 변호사는 증거를 수집했고 마을 주민을 상대로 증언을 모았다. 이후 진짜 범인은 집 앞 중국집 배달부라는 것이 밝혀졌고 이번 사건도 부모들이 합의금을 노린 자작극임이 드러났다.

저는 저를 찾아 온 의뢰인을 최대한 신뢰하며 최선을 다해 변호합니다. 죄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많은 사람들은 1차 재판에서 구속되면 쉽게 합의하고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럴 때, 저는 끝까지 합의하지 말고 저를 믿어 달라고 하죠. 합의 후에는 평생 꼬리표처럼 강간 미수범 혹은 성폭력범이란 죄목이 평생 따라다니게 되기 때문이죠.”

감옥에 갇힌 극한 상황에서도 구속된 피고인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항소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인지 물었다. 장 변호사는 신뢰라며 저는 의뢰인이 무죄라고 말하는 진술을 믿는다고 답했다. 그리고 장 변호사는 자신이 의뢰인을 믿는 만큼 의뢰인에게 변호사인 자신을 믿어 줄 것을 부탁한다. 그는 최선을 다해 증거를 찾을 테니, 진짜 무죄라면 합의 하지 말고 참고 기다리라고 했고, 최선을 다한 것이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무고한 중생을 구하는 자비심의 발휘는 진심어린 마음과 실력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실력을 갖추기 못하면 아무리 자비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자비심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장 변호사가 어렸을 때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해야 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변호사로서의 능력과 실력을 갖춰야 했다.

‘아름다운 인연 봉사단’에서 무료급식 봉사하는 장준동 변호사(왼쪽 두번째)

대중과 함께 하는 변호사

장 변호사는 삶의 최종 목표로 모두가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꿈꾼다. 변호사라는 신분으로 사회의 공공선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매 순간 찾으며 살아왔다. 그는 2011년 부산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선출 된다. 회장으로 선출된 그가 제일 먼저 했던 일은 대중과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변호사라는 다소 높게 인식되어온 을 허무는 것이었다.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대중과 함께 하는, 아니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변호사가 되는 것이었다.

당시 변호사에 대한 인식이 자신의 이익과 영리만을 추구하며 견고한 자신들의 성을 구축한 이익 집단이란 평가가 많았습니다. 대중에게 먼저 다가가는 변호사로, 열린 마음으로 활동하는 단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장 변호사가 취임 후 가장 먼저 시작 한 일은 봉사였다. 그는 2011820아름다운 인연 봉사단을 창단했고, 소속 변호사, 그의 가족들과 함께 매달 셋째 주 토요일 부산 시청에 위치한 녹음 광장에서 무료급식 봉사를 시작했다. 무료급식 뿐 아니라 연탄 배달과 김치 나눔 활동까지 담당하며 소외된 이웃을 위해 활동했다.

봉사단은 창단 당시 참가한 변호사만 170명이었으며 사무직원 50명 등 220명으로 구성됐고 가족들도 동참해 화제를 모았다. ‘아름다운 인연 봉사단의 봉사활동은 전국변호사협회에서도 모범이 됐고 전국에서 유일한 변호사 봉사단체로 주목을 받았으며, 봉사의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소속 변호사들은 솔선해 먼저 나눔을 실천했고, 그로 인해 자신들의 삶도 변화되기 시작했다. 봉사가 주는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제가 알고 있는 변호사 중에는 기부금이 17천만원이 되는 변호사가 있고 부산 지방변호사회에 소속된 변호사들이 그 후 개인적으로 기부한 금액을 모아보니 17억이 넘었어요. 나눔과 봉사를 통해 자신의 변화를 체험하고 스스로 실천한 나눔이라 더욱 기뻤어요. 함께 참여한 법조인들이 봉사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활동임을 알게 된 것이지요.”

아름다운 인연 봉사단은 단체를 만들기까지 장 변호사의 모범적인 꾸준한 활동과 수많은 변호사들이 그를 따라 일군 결과였다. 그의 숨겨진 활동으로는 노동자 부당해고와 부당전직 구제 활동, 개인택시운전자를 위한 면허 취소 구제활동, 여성 인권을 위한 자문활동, 마을변호사 및 성폭력 무료 상담까지 셀 수가 없을 정도이다.

장 변호사는 철저하게 특권 의식을 버리고 먼저 대중에게 다가갔다. 장 변호사가 자신이 받은 많은 표창장과 상패들 가운데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국내 어린이 후원재단에 10년 동안 변함없이 후원하고 받은 감사패였다.

종이로 제작해 만든 이 작은 감사패가 사실 가장 자랑스럽습니다. 화려함보다는 10년이란 세월이 담겨 있는 이 상패가 저를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이웃의 삶을 돌보고 억울한 사람을 변호하며 같은 동료인 변호사들이 함께 보람된 삶을 살도록 도와줬다면, 그것은 분명 보람된 삶이겠지요.”

장준동 변호사(왼쪽 두번째)가 연탄배달 봉사를 하고 있다.

 

 

재가자 위한 대중 불교앞장

장준동 변호사의 불교는 모태였다. 하지만 그가 불교 공부를 제대로 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경부터였다.

부모님의 불교를 보면서 자랐지만 그때까지 사실 무늬만 불자였죠. 경전 하나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까막눈이나 마찬가지였죠.”

장 변호사는 2010년 도반의 권유로 부산불교교육대학 교리반에 입학했다. 그리고 체계적으로 불교를 공부했다. 장 변호사는 본격적인 불교공부를 이어가며 더욱 불교의 위대함을 깨달아 갔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일반 재가자를 위한 전문 공부처가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수재라는 칭찬을 받으며 자란 그였지만 공부는 하면 할수록 어려웠다.

한번은 <대승기신론>을 배웠는데 강의를 들어도 모르겠고 쉽게 설명해주시길 요청했지만 법사 스님은 경전은 깨달아야 하는 것이라 답하셨어요. , 작은 예로 대선사라 불리는 어느 스님의 법회에 참석했는데 재가자 500여 명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질문을 하자 갑자기 선문답을 하시더군요. 황당했죠. 어려운 걸 알기 쉽게 가르쳐야 진정한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장 변호사는 재가자 교육에 있어서 재가자와 거리가 먼 지금의 교육법은 문제가 있다고 조언했다. 장 변호사는 부산불교교육대학은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곳이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묻자 재가자를 위한 대중 불교의 포교현장으로 가장 적합하고 불교 대중화의 희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고 했다.

평균 200여 명, 많을 때에는 300여 명이 등록합니다. 부산불교교육대학은 대단히 중요한 포교 활동처입니다. 체계적인 교육과 포교를 위해 불교문화포교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부산불교교육대학은 문화포교로 눈높이 교육을 강조하며 지난 해 처음으로 불교문화학과를 개설하고 불교문화포교사를 배출함으로써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장 변호사는 부산불교교육대학에서 진행하는 불교문화포교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저는 1기 졸업생이자 불교문화포교사 민간자격증 1번을 취득했어요.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장 변호사는 2013년에는 부산불교교육대학 포교봉사단 단장, 2015년에는 부산불교교육대학 부학장을 담당하고 지금도 부학장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6년에는 부산불교교육대학 총동창회장으로 활동하며 회원들을 이끌었다. 포교봉사단 단장으로 활동하던 당시 장 변호사는 포교법사단이라는 명칭을 포교봉사단으로 바꾸고 봉사하며 나누는 삶을 강조했다. 배운 것을 실천해야 공부의 완성이라는 원칙 때문이다.

불교대학을 찾는 불자들이 배운 것을 꼭 실천해 나눔으로 회향하길 바란다그러면 정말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겠지요? 어릴 때 꿈꾸던 그 세상,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다름 아닌 불국토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저는 지금도 꿈을 꾸고 있습니다. ‘다 함께 잘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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