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서 빠져 나오는 방법은
그 고통 속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뚫고 나오는 것이다

제 2회 법계문학상 수상작 〈꺼지기 쉬운 빛〉은 삶의 빛을 발견하기까지 지난한 여정을 거친 주인공이 마침내 빛을 발견하고 그것을 지켜가는 이야기다. 빛은 삶의 목표이며 희망이다. 사막과도 같은 삶, 칠흑같은 밤길을 걷다가 저 멀리서 흐릿하게 빛나던 불빛을 대면했을 때 밝음의 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 밝음에 익숙해져 당연시하고 또 누군가는 절대로 잊지 못할 고마운 것으로 기억한다. 청춘의 대부분을 바다에서 살아온 주인공이 철저하게 혼자라고 생각했던 순간에 발견한 그 빛, 그것은 무엇이며, 그는 어떻게 꺼지기 쉬운 빛을 지켜 갈지 작가는 이야기한다.

법계문학상은 운문사를 한국 최고의 비구니 교육기관으로 성장시키며 비구니 교육과 권익증진에 평생을 바친 법계 명성 스님의 서원으로 제정된 불교문학상이다. 불교와 문학이라는 두 개의 명사 중에서 선행된 명사, 불교는 문학을 수식하는 용어로 쓰인다. 그러므로 〈꺼지기 쉬운 빛〉을 단순히 불교적 소재를 다룬 종교소설로 분류할 수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관계 맺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책이다.
 

꺼지기 쉬운 빛/이갑숙 지음/얘기꾼 펴냄/1만 3500원

이 책은 30여 년의 공직 생활을 마치고 인생 후반에 들어선 한 남자가 써 내려간 자기 고백이다.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 한번 받은 적 없는 작가는 5년간 공을 들였고, 그 결과 법계문학상이라는 작지 않은 영예를 얻었다. 그렇다면 쟁쟁한 후보작들을 뒤로하고 우리가 이 작품에 주목하게 하는 그 힘은 어디서 왔을까. 작가는 유년을 가난에 찌든 시기였다고 회상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하는 아픔을 겪고, 어린 시절을 함께한 두 친구와의 우정은 어그러져 돌이킬 수 없는 오해와 질투로 변질됐다. 세속적 욕망과 비루함으로 무장한 채 살기 위해 달려왔던 길을 이제야 뒤돌아본다. 그것은 무명 속을 헤매던 어둠의 세계였다. 더 이상 미래는 없어보였고, 주변이 온통 어둠이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고통서 빠져 나오는 방법은 그 고통 속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뚫고 나오는 것이다” 그러한 어둠과 고통에 굴하지 않는 용기가 이 책을 끌고 가는 힘이었다. 고통을 마주한 그는 자신의 내면으로 눈을 돌린다. 자신이 누구이고 마음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끝없이 찾아다니던 중, 먼 나라로 떠난 트레킹에서 드디어 한줄기 빛을 발견한다.

“짙은 안개를 뚫고 한줄기 빛이 내리비치더니 안개 너머로 잉카의 유적이 드디어 속살을 드러냈다. 아, 순간적으로 울림이 왔다. 숨이 멎었다. 생각이 멎고 마음이 정지되는 무념의 순간이었다. 깨달음이라기엔 너무 얕은, 그러나 어떤 알아차림이 한줄기 빛과 함께 내게 다가왔다. 맑고 투명한 빛이었다. 해맑은 어린아이의 눈빛 같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빛이었다. 가슴이 떨리고 눈물이 났다.”

그가 찾은 빛은 우리가 그토록 동경하는 순수한 상태의 빛, 모든 것이 분별심으로 갈라지기 이전의 원초적 상태의 빛이었다. 우리가 잊고 있었지만 원래 우리 안에 있었던, 그래서 낯설기도 하고 낯설지 않기도 한 태초의 빛. 무명을 벗겨내는 지혜의 그 빛을 그가 찾아내고야 만다. 그것은 깨달음의 빛이었고 그 빛을 통해 그는 비로소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꺼지기 쉬운 빛. 깊은 바다 같은 평온함이거나 어머니 품속 같은 아늑함에 전율하던 순간도 잠시, 그러한 깨달음은 찰나에 불과해 금세 꺼지기 쉬운 빛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 빛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는 것이지만 쉬이 꺼지는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온갖 환상이 주는 분별로 여전히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그러나 마음의 눈이 뜨이면 분별이 주는 무명에서 벗어나 그것을 이겨낼 것이라고. 그런 빛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늘 내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러면 우리의 어느 하루는 이제, 여느 하루와는 다른 일상이 될 것이라고…”

‘순간의 빛’이지만 그 빛을 본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의 삶은 다르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우리의 인생은 빛을 찾아가는 끝없는 여정이며 우리 각자는 나름의 방법으로 깨달음의 빛을 향해 가고 있다고 말한다. 어리석음의 환영에서 벗어나면 깃털처럼 가벼운 자유가 찾아온다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면, 그래서 ‘꺼지기 쉬운 빛’을 놓치지 않으려 오늘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면, 이 책을 펼쳐 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 보아도 좋겠다.

장영우 평론가는 이 책을 이렇게 해설한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이 한국 불교소설의 새로운 이정(里程)이 될지 또는 작품의 미숙성을 증거하는 지표로 지목될 지에 대해서는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소설에 주목한 가장 큰 이유는, 이 작품이 한국 불교소설의 유형화를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려는 노력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교와는 특별한 인연이 없던 작중인물이 친구와 아내를 잃고 정신적으로 방황하다 사찰을 순례하며 차츰 마음의 안정을 찾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꺼지기 쉬운 빛’의 찰나적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 다소 거칠지만 진솔하게 서술된 이 소설의 서사전략 또는 구성과 관련된다”라고.

이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던 것은 저자가 불법(佛法)을 만나 귀의했기 때문이다. 이 작가의 아내가 아니었다면, ‘절에 가자’는 아내의 그 말 한 마디가 없었다면 이 작가는 아마도 지금처럼 불법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말 한 마디가 많은 불연의 씨앗이었던 것이다. 아내의 불연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그렇게 우리는 다 알고 사는 듯해도 정작 알고 사는 것이 없는 것이다. 각자의 삶이 누군가의 말 한 마디에 달려 있음을 우리는 모르고 사는 것이다. 이 책 속의 문장 하나하나 역시 누군가의 삶에서 소중하고 중요한 인연의 시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많은 불연으로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한편 경남 함안 출생인 저자의 불명은 덕산(德山)이다. 1975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30여 년을 공직에 몸담았다. 퇴직 후 늘그막에 글 쓰는 작업에 뛰어들었다. 2017년 법계문학상 공모에 장편소설 ‘꺼지기 쉬운 빛’이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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