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 스님 사퇴 ‘초읽기’… 종정 교시 “용퇴 존중”
차기원장 선출로 갈등 예상, 내홍 장기화 조짐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의 사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설정 스님은 7월 27일 기자회견서 “종도 의견을 수렴해 진퇴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최근까지 교구본사주지협의회 등을 통해 8월 16일 소집되는 중앙종회 임시회 전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특히 종단 법통의 상징이자 정신적 최고 지도자인 종정 진제 스님이 8월 8일 내린 교시에서 “설정 스님은 항간에 제기된 의혹에 사실유무를 떠나 종단 화합과 안정을 위해 용퇴를 거듭 표명했다. 종단제도권서 엄중하고도 질서 있는 명예로운 퇴진이 동시에 수반돼야 한다”고 사퇴의사를 존중하면서 설정 스님의 구체적인 사퇴시기 조율만 남은 것으로 예상된다.
설정 스님 “임시회 전 사퇴”
종정도 명예로운 퇴진 당부
16일 임시회 신상발언 관심
전국승려대회 23일 예고에
총무원장 퇴진 찬반 여론이
세력다툼으로 번지는 형국
설정 스님의 공식적인 사퇴 선언은 중앙종회 임시회서 이뤄질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앞서 6~7일경 특별담화를 통해 사퇴를 선언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으나 설정 스님의 갑작스런 건강악화와 8일 소집 예정이던 원로회의가 오는 22일로 미뤄지면서 중앙종회 임시회 당일 신상발언을 할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쏠린다.
7월말부터 감지된 용퇴론
설정 스님의 용퇴론은 지난달 27일 갑자기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날 전국선원수좌회 대표단 20명이 설조 스님 단식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승려대회를 통한 개혁위원회 구성을 주장하면서부터다. 그러자 설정 스님은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조속한 시일 내에 종단의 안정과 화합을 위한 길을 진중히 모색해 진퇴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 직후에는 단식 중이던 설조 스님을 찾아가 “마음을 비웠다”고 말했다. 또한 이날 저녁 원로의원 10인이 총무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어 30일에는 설조 스님이 단식 41일째 병원에 이송되고, 원로회의 소집 일정마저 앞당겨지면서 설정 스님 용퇴론이 한층 거세졌다. 8월 1일에는 용퇴론에 방점이 찍혔다. 교구본사주지협의회가 설정 스님을 예방해 즉각적인 사퇴를 권하자 설정 스님은 “16일 중앙종회 임시회 전에 용퇴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설정 스님은 8월 9일 신임 총무부장에 성문 스님, 기획실장에 진우 스님을 임명했다. 사퇴의사를 표명한 설정 스님의 갑작스런 결정을 두고 일각에서는 사퇴 이후 권한대행을 맡을 인물을 선임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중앙승가대 총장으로 취임한지 6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성문 스님이 총장직을 사임하고, 현재 임기마저 불확실한 총무부장을 수락했기 때문이다.
설정 스님이 사퇴하면 종단은 종헌종법에 따라 총무원장 궐위 60일 내 차기 총무원장선거를 치러야 한다. 이때까지 권한대행은 총무부장이 맡는다. 다만 올해는 11월 8일 임기가 만료되는 중앙종회의원 선거가 10월에 열릴 예정이어서 총무원장선거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전국승려대회 최대 분수령
이처럼 설정 스님의 사퇴가 기정사실화되면서, 이제는 논란의 발단이 된 설정 스님 친자의혹 사실 여부보다 차기 총무원장 선출방법을 두고 내홍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의혹 규명으로 시작된 총무원장 퇴진 찬반여론이 세력다툼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과 전국선원수좌회,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등은 오는 23일 오후 1시 조계사에서 전국승려대회 개최를 예고했다. 현재 승려대회 준비위원회를 구성, 상임추진위원장으로 원인(청정승가탁마도량 상임대표)·퇴휴(실천불교전국승가회 명예대표)·월암(전국선원수좌회 의장) 스님을 추대했다. 이들은 “전 종도들의 참정권을 되찾아 승가본연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권승들이 만들어놓은 불합리한 종헌종법을 개정해 국민과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종단을 만들고자 한다”고 승려대회 취지를 밝혔다. 이들은 총무원장 선출제도를 직선제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반면 교구본사주지협의회는 8월 1일 기자회견서 “일부세력이 개최하려는 승려대회는 인정할 수 없다. 적극 반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종정 진제 스님도 교시에서 “우리 승가는 율장 정신을 받들어 종헌을 준수하고, 종헌종법 질서 속에서 사부대중과 국민여망에 부응해 여법하게 선거법에 의하여 차기 총무원장을 선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종정 스님의 이 같은 교시는 직선제를 주장하는 승려대회를 인정하지 않고, 현행 선거법을 통한 총무원장 선출을 지지하는 것으로 읽힌다. 결국 향후 소집되는 중앙종회와 원로회의 입장도 진제 스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종단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따라서 조계종 사태는 23일 열리는 전국승려대회가 최대 분수령으로 꼽힌다. 다만 이번 승려대회가 1994년 종단개혁 당시와 같은 초법적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데다 인정받지 못할 경우 세력 간 갈등은 더욱 심화될 양상이어서 종단 위신을 가린 먹구름이 걷히는 데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