空의 세계로 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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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불뉴스
  • 승인 2018.07.2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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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선승의 입적과 장송(葬送) 의식

납자 입적 후 화장·장송의식
일반승려 2~3일장 후 장례·다비

(1) 죽음이란 공성(空性)의 실현
선승의 죽음을 열반ㆍ입적ㆍ입멸ㆍ원적(圓寂)이라고 한다. 또 육체와 동시에 번뇌의 불이 완전히 꺼졌다는 뜻에서 무여열반(無餘涅槃)이라고 한다. 모두 번뇌가 사라진 상태 즉 적멸(寂滅)을 뜻한다.

‘죽음’이란 곧 공(空)과 합일이다. 그리고 일체 존재의 귀착지는 ‘무(無)’이고 ‘공’이다. 무와 공으로 돌아가는 길을 바꿀 수 있는 존재는 아직은 없다. 우리의 붓다도, 그리고 달마도 공으로 돌아갔다. 그것이 선승들이 말한 안심입명처(安心立命處)이기도 하다.

선종사원에는 납자들이 입적하면 화장(火葬)을 거쳐 장송(葬送)의식을 행한다. 그 과정은 시종일관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일체개공(一切皆空)의 관점에서 시행되는데, 고승과 일반 승려의 경우가 좀 다르다. 고승이나 주지(방장)의 경우는 왕실과 관청, 사대부, 그리고 인근 사찰 등에 부고를 보내는 등 법식과 절차가 매우 많다. 그러나 일반 승려의 경우는 그런 것 없이 간소하게 연수당(열반당)이나 중병각에서 이루어진다. 다음은 일반 승려의 장의 절차이다.

(2)열반당과 병승(病僧)의 입적
병승(病僧ㆍ환자)이 발생하면 열반당주(堂主ㆍ혹은 연수당주)는 먼저 수좌ㆍ감원ㆍ유나 등 상위 소임자들에게 보고한다. 그런 다음 병승을 연수당이나 열반당으로 옮겨서 치료한다.

그런데 병승(病僧)이 열반당에 들어온 지 3일이 지나도 아무런 차도가 없거나 병이 더욱 악화되면, 간병은 병승을 일반 환자실인 열반당에서 중환자실인 중병각(重病閣)으로 옮긴다.

중병각에서도 차도가 없거나 악화되면 대중들은 병승의 침상 앞에 불상을 모시고 향촉을 밝힌 다음 경전을 염송(念誦)하고,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등 10불 명호를 외우면서 쾌유의 기도를 한다. “엎드려 바라건대 일심(一心)이 청정하고 사대가 편안하며 수명과 혜명을 연장하여 육체도 법신처럼 견고하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이 점점 더 악화되면 다시 대중들은 병승을 위하여 아미타불을 100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청정대해중보살을 각각 10번 부른다. 그리고는 “엎드려 원컨대 지금 병에 든 비구 ○○는 인연이 아직 다하지 아니했다면 속히 쾌유하게 하여 주사이다. 만일 대명(大命ㆍ죽음)을 벗어나기 어렵다면 속히 안양국(정토)에 태어나게 하사이다.”라고 기원ㆍ염불한다.

장로종색의 〈선원청규〉 6권 ‘망승(亡僧)’ 편에는 병승이나 망승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만약 병세가 점점 더 악화되면 연수당주(간병)는 유나ㆍ감원ㆍ수좌ㆍ장주ㆍ서기ㆍ지객과 함께 상의하여, 병승으로부터 유언을 받아 기록해 두고, 사부(祠部ㆍ도첩, 면정유, 수계첩, 좌하유)와 의발, 도구 등을 모아서 함(函)에 넣어 유나실에 보관한다. 수좌는 함(函)에 봉인(封印)을 하고 자물쇠로 잠근다. 그런 다음 지사(유나)는 (병승 발생 사실을) 관청에 신고한다. 만약 병세가 위독해지면 재차 위독하다고 신고하고, 천화(遷化ㆍ입적)하면 관청에 신고한 다음 장송(葬送ㆍ장례)을 청한다. 병승(病僧)이 입적하면 3일 안에 사부첩(祠部牒)을 반납해야 한다” (장로종색, 〈선원청규〉 6권 亡僧. “如僧人病勢稍困, 堂主, 計會維那監院首座藏主書記知客, 同共抄箚口辭收祠部. 衣物入堂司收掌. 首座封押收掌匙, 知事申官, 如加病勢, 再申困重. 如已遷化, 又申官乞行殯送. 三日內納祠部.”(〈신찬속장경〉 63권, p.541a)

당송시대 불교는 거의 국가의 관리 하에 있었다. 당시 종교를 관장하는 관아는 예부(禮部) 산하의 사부(祠部)였다. 사부에서는 승려의 도첩(승려허가증), 계첩(수계첩), 면정유(免丁由ㆍ부역면제증) 등 ‘사부첩(祠部牒)’을 관리해야 하고 승려의 변동 상황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 승려가 되거나 병승이 발생하거나 입적하면 수시로 관아에 그 사실을 자세하게 보고해야 한다.

병승(病僧)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위독한 상태가 되면 연수당의 당직 행자인 직병자(直病者)는 연수당주에게 고하고, 연수당주는 수좌와 감원, 유나 등에게 알린 다음 함께 병승 앞에 와서 유언을 받아 적는다. 유언을 구사(口詞)라고 하는데 정해진 양식은 다음과 같다.

“병승(病僧) ○○는 본관은 ○주(州)이고, 성(姓)은 ○인데, ○○해(年)에 ○○곳에서 도첩을 받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년에 ○○사(寺)에 괘탑(掛塔ㆍ입방)하였으나, 지금 와서 포병(抱病ㆍ병에 걸림)하니 지수화풍 부정(不定ㆍ일정하지 못함)할까 염려됩니다. 몸에 소유하고 있는 행리(行李ㆍ의발과 도구 등 소지품)를 기록하여 주시고 사후 문제는 모두 총림의 청규에 의하여 장송(葬送)해 주시기 바랍니다. ○년 ○월 ○일 포병승(抱病僧) ○○는 유언하나이다.” (〈칙수백장청규〉 7권, 病僧念誦. “抱病僧某. 右某本貫某州某姓幾. 歲給到某處度牒僧. 某年到某 寺掛搭. 今來抱病. 恐風火不定. 所有隨身行李合煩公界抄箚. 死後望依叢林規津送. 年月日 抱病僧 某甲口詞(〈대정장〉 48권, p.1147c).

유언장의 요점은 사후 처리 및 소유하고 있는 의발, 도구 일체를 모두 총림에 위임하니 청규에 따라 장송(葬送)해 주기 바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유언 내용으로 보아 개인의 귀중품 등 재산에 대하여 제자나 속가의 가족들이 개입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었던 모양이다. 유언을 받은 다음에는 그 스님이 가지고 있던 물건은 모두 함궤 속에 넣고는 봉인(封印)한다. 다만 상하복(上下服ㆍ즉 直)과 괘락(掛絡ㆍ5조 가사)ㆍ속옷ㆍ염주ㆍ행전ㆍ신발ㆍ수건 등은 시신(屍身)을 염할 때 필요하므로 남겨 둔다.

선종사원에는 납자들이 입적하면 화장(火葬)을 거쳐 장송(葬送)의식을 행한다.
선종사원에는 납자들이 입적하면 화장(火葬)을 거쳐 장송(葬送)의식을 행한다.

 

(3) 장례 절차
일반 승려의 장례는 며칠 장(葬)으로 했는지 청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도첩은 3일 안에 반납해야 한다.” 또 〈선원청규〉 ‘망승’ 편에 “이날 밤에 법사(法事)와 송계(誦戒ㆍ염불, 독경)를 하여 회향한다. 다음날 아침이나 점심 공양 후 바로 진송(津送, 葬送)한다(是夜法事誦戒向, 來日早晨或齋後津送)”라는 문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반 승려들의 경우는 입적한 다음 날이나 그 다음날에 바로 장례와 다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

병승이 완전히 입적하면 연수당주는 감(龕ㆍ棺)과 욕선(浴船ㆍ시신을 물 위에 놓고 목욕시키는 배)을 준비한 다음 조두(豆ㆍ비누)를 사용하여 망승(亡僧)의 시신을 깨끗하게 목욕하고 삭발을 시킨다. 그리고 속옷과 상하의(上下衣)와 오조가사를 입혀서 나무로 만든 통(桶) 속에 가부좌 자세로 앉힌다(눕히는 것이 아님). 그런 다음 다시 감(龕ㆍ棺)에 넣어서 연수당 내에 안치하고 위패를 써서 관 앞의 탁자 위에 놓는다.

위패를 쓰는 방식에 대하여 장로종색의 〈선원청규〉에는 “歿故(몰고) ○○上座之靈”이라 되어 있고, 후대에 편찬된 〈칙수백장청규〉에는 “新圓寂 ○○上座 覺靈”이라고 되어 있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新圓寂 ○○○○ 覺靈”이라고 쓰는데, 이는 〈칙수백장청규〉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임 주지의 경우는 “前住 ○○寺 ○○禪師之靈”이라고 쓰고, 나머지는 직함에 따라 쓴다(참고 - ‘몰고(歿故)’는 ‘고인(故人)’과 같은 뜻으로 죽은 이에 대한 존칭이다. ‘신원적(新圓寂)’이란 ‘금방 입적했음’을 뜻하고, ‘상좌(上座)’는 존칭이고 ‘각영(覺靈)’은 ‘영가(靈駕)’와 같은 말인데 그냥 영가가 아니라, 깨달은 영가를 말한다).

위패를 지키는 행자를 ‘직영행자(直靈行者ㆍ영가를 지키는 당직 행자)’라고 한다. 직영행자는 출상(出喪) 때까지 조석으로 영단(靈壇)에 죽(아침엔 죽)과 밥(점심에는 밥)을 올린다. 유나와 수좌 등은 하루 3번 차(茶)를 올리고 향을 사른다. 초하루와 보름 그리고 경명일(景命日, 천자 즉위일)에는 출상(出喪)하지 않는다. 초하루와 보름엔 총림에 정기적인 상당법어 등 행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망승의 시신을 목욕시킬 때 사용한 천은 목욕시킨 사람에게 주고 수건은 삭발시킨 사람에게 준다.

출상(出喪), 다비(茶毘ㆍ화장)하는 날, 즉 장례일에 유나스님은 아침 공양이 끝나자마자 백퇴(白槌ㆍ망치의 일종)를 한 번 치고 나서 대중에게 알린다.

“대중스님들께서는 죽후(粥後ㆍ선원에는 아침은 죽. 만일 점심 공양 후에 다비를 할 경우는 ‘齊後’라고 함)에 종을 치면 각기 가사를 수하고 망승을 보내는 법사(法事)에 동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각 요사의 책임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제히 나와 주십시오. 삼가 아룁니다.” (장로종색, 〈선원청규〉 6권 亡僧. “白槌一下云. 大衆粥後(或齋後), 聞鐘聲各具威儀, 普請送亡僧. 除諸寮頭首皆齊赴. 謹白.”(〈신찬속장경〉 63권, p.541a).

곧이어 종과 북이 울리면 연수당 앞에서 망승(亡僧)을 보내는 장송의식이 거행된다. 대중들이 모두 모이면 주지화상부터 차례대로 향을 사르고 합장한다. 이어 유나가 장중한 음성으로 염송(念誦, 독경, 염불)을 마치면 북을 친다. 대중들은 북소리와 함께 감(龕), 즉 관(棺)을 들어서 다비장으로 이운(移運)한다. 나머지 대중들은 번(幡ㆍ세속의 輓詞)과 향로 등을 들고 뒤를 따른다.

운구(運柩)가 다비장에 도착하면 장작더미 위에 관(棺)을 얹어 놓고 망승(亡僧)의 왕생정토를 위하여 염불 등 법식을 행한다. 주지 이하 6지사, 6두수 등 중요 소임자들이 마지막으로 향을 사르고 합장한다. 이어 주지가 횃불을 잡고서 장작더미에 점화(點火)를 한다.

주지화상은 점화 후에 무상법문(제행무상을 설하는 법문)을 한다. 대중들은 모두 함께 아미타불을 십념(十念)하면서 다비식을 마친다. 다음 날 아침에 연수당주와 유나는 다비장으로 가서 유골을 수습하여 물에 뿌리든가 아니면 보동탑(普同塔)에 안치한다. 보동탑은 대중 모두의 유골을 안치하는 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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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 2018-07-30 00:41:07
혹 선사들이 《능엄경》을 수지하는 것에 대해 불자들이 사견을 가질까 두려워 몇 자 적었습니다. 필자께서도 《능엄경》을 정밀하게 독송하시면《금강경》 《유마경 》못지않게 선의 종지를 담은 경전이란 것을 쉽게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물론 선가에서 능엄주 밀교의식을 거행하게 된 것과 당시 시대상황이 아주 무관하다고 보진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능엄경》의 선불교적 종지를 신봉하며 겸하여 《능엄경》의 밀교적 내용까지 아우른 것이라고 봐야지 밀교 등 다른 종파의 가르침과 뒤섞여 선가의 가르침과 수행이 핵심을 잃고 변질되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밀교는 주문과 의식 등 외적인 면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가르침을 자세히 살펴보면 선불교가 추구하는 바를 한 맛으로 포괄하고 있습니다..

길동 2018-07-30 00:27:52
'송말·원대 禪… 밀교적으로 변색·변질'
기사에 대한 반론 몇 자 적습니다. 지난 기사에 관한 내용인 점 양해바랍니다.

티벳불교에는 《능엄경》 전승이 전무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능엄경》은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만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경전입니다. '직지인심 견성성불'하는 돈오의 원리를《능엄경》에서 자세히 설명하였기에 일찌기 선가에서 《능엄경》을 신봉하였습니다. 단적인 예로 삼예논쟁에서 중국의 마하연 화상은 티벳 논사인 까말라쉴라에 맞서 《능엄경》 내용을 돈오의 경전적 근거로 들었습니다. 그렇게 선사들이 《능엄경》을 소의경전으로 삼으며 자연스레《능엄경》내용의 일부인 능엄주를 선수행을 돕는 방편으로 독송했다고 보아야지 전적으로 티벳 밀교의 영향인 것인 양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