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에 사라진 불화들 제자리로 오려면…

천년고찰 포항 보경사에서 도난된 삼장보살도. 조선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성보이다.

한국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경상도에 위치한 사찰은 1970년대까지 20세기 전반에 작성된 사찰 귀중품 대장에 적힌 성보물들이 온전하게 남아있던 경우가 많았다. 특히, 사찰의 연혁을 알 수 있는 사적기가 남아있다면 유물과 비교하여 조선 후기 불교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이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찰이 포항 보경사이다. 보경사는 1500년의 역사를 가진 고찰이면서 임진왜란 이후에 건립된 전각과 성보문화재가 다른 사찰에 비하여 잘 보존되어 있다.

보경사(寶鏡寺)는 경상북도 포항시 송라면 보경로 내연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사찰의 창건설화를 보면, 지명(智明) 스님이 중국 유학 중에 어느 도인으로부터 팔면보경(八面寶鏡)을 받아 동해안 명당에 이 거울을 묻으면 왜구의 침입을 막고 이웃 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으며 삼국을 통일할 수 있다고 전해 듣고 귀국해서 왕과 함께 동해안 내연산(內延山) 아래 있는 큰 못 속에 팔면보경을 묻고 못을 메워 금당(金堂)을 건립한 뒤 602년에 보경사를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1500년 역사를 가진 고찰 보경사
임란 이후 현대까지 중수 거듭해

1970년대 수집 붐… 수난 시작
불화 등 4점만 도난 기록됐지만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돼


그 후 723년에 각인(覺仁) 스님과 문원(文遠) 스님이 “절이 있으니 탑이 없을 수 없다”고 시주를 받아 금당 앞에 오층석탑을 조성하였다. 745년에 철민(哲敏) 스님이 중창한 후, 1214년에는 원진국사 승형(圓眞國師 承逈)이 승방 4동과 정문 등을 중수하고, 종·경(磬)·법고(法鼓) 등도 구비하였다. 임진왜란 기간 중에 사찰이 소실되어 1677년에 도인(道仁) 스님이 3창 불사를 시작하여 1695년 가을에 준공하였으며, 삼존불상과 영산전(靈山殿)의 후불탱화도 조성하였다. 1725년에 성희 스님이 괘불을 중수하였다.

1916년부터 1921년까지 설산장욱(雪山壯旭) 스님이 많은 사재를 내어 전당(殿堂)과 탑을 중수하였으며, 1917년 10월에는 태인(泰仁) 스님이 명부전을 중수하였다. 1932년에는 대웅전과 상지전(上持殿)을 중수하였고, 1975년 이후 전각에 새롭게 단청을 하였다.

현재 보경사에서 도난당한 성보문화재는 조계종 총무원이 지난 2016년 발간한 〈불교문화재 도난백서 증보판〉에 대웅전 삼불회도와 삼장보살도(1997.10.10. 도난), 명부전 지장보살도와 팔상전 영산회상도(1999.5.14. 도난)가 올라가 있지만,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에는 1999년 5월에 도난당한 명부전 지장보살도(199㎝×183㎝)와 팔상전 영산회상도(245㎝×235㎝)만 신고되어 있다.

일제강점기까지 보경사에 소장되어 있던 성보문화재의 현황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된 보경사 재산대장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재산대장은 20세기 전반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각과 암자별로 불상과 불교회화 등을 정리하고, 석조물, 전적, 불구(佛具) 순으로 적혀 있다. 당시 보경사에 소장된 성보문화재는 149건 424점으로, 이 숫자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 말기까지 화재나 수해를 입지 않고 사찰이 잘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고미술품 수집의 붐이 불면서 1970년대 상당히 많은 성보물이 도난당한 시기에 보경사에서도 도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1978년 11월 18일 〈경향신문〉에는 이 같은 신문기사가 남아있다.

“부산남부경찰서는 8일 전국 사찰을 무대로 문화재급 탱화와 향로 화병 등 30억 원 어치를 훔쳐온 김창욱(37, 전과3범), 구만춘(35, 전과1범), 백춘웅(34, 전과3범) 등 3명을 문화재보호법위반 및 특수절도혐의로 구속 영장을 신청하고 이성우(50, 부산시 남구 용호동20)를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중략〉 경찰에 따르면 이들 문화재 절도단은 지난 1월 6일 상오2시쯤 전남 승주(昇州)군 선암사에서 전남지방문화재 60호인 팔상전 후불탱화(싯가 1천만원) 등 8점을 훔친 것을 비롯, 지난 3월 5일 전북 고창군 선운사에서 전북지방문화재인 팔상전 후불탱화(싯가 1천만원) 등 4점을 훔치는 등 지난 76년 8월부터 포항 보경사,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 등 전국 유명 사찰 67개소에서 탱화 1백37점, 병풍 3점, 향로 1점, 동자상 5점, 업경대 2점, 목각 27점, 화병 1점, 촛대 3점 등 시가 30억원 상당의 문화재 1백 84점을 훔쳐 1점에 10만~30만원씩 고(高)씨 등이 경영하는 골동품상에 팔아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재청과 종단에 신고된 도난문화재는 4점의 불화로, 1997년과 1999년에 도난당한 것을 보면 이전에 잃어버린 성보문화재는 파악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보경사의 문화재 현황을 불교회화 중심으로 일제강점기재산대장과 2007년 간행된 〈한국의 사찰문화재〉에 수록된 현존하는 성보문화재와 비교해보면 재산대장에 언급된 53점 가운데 많은 불화가 외부로 유출됐지만, 도난신고가 된 4점을 제외하고 사진이 공개되어 있지 않아서 구체적인 형태를 알 수 없다.

보경사에서 도난당한 불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은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던 삼장보살도이다. 이 불화는 1778년에 혜화(惠和) 스님을 비롯하여 수민(守敏)·도청(道淸)·지연(智演) 스님이 그렸다. 화면 중앙의 천장보살과 그 좌우에 지지보살·지장보살을 두고 주위에 권속들이 둘러싼 형식이다. 상단 중앙의 천장보살 아래에 진주보살·대진주보살이 서 있고, 그 앞으로 2위의 권속이 배치되었다. 천장보살은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를 하였다. 화면 오른쪽의 지지보살은 경책을 들고 있으며 좌우에 용수와 다라니보살이 합장한 모습으로 협시하고 있다. 지지보살과 지장보살의 두광은 천장보살의 채색과 동일하나 신광은 연두색으로 칠하여 천장보살과 차이가 난다.

화면 왼쪽에 민머리의 지장보살은 조(條)가 있는 가사를 걸치고 결가부좌를 하였는데, 왼손에는 석장을 들고 가슴 앞으로 들어 올린 오른손에는 투명 보주를 들고 있다. 그 아래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주위에 명부 권속들이 배치되어 있다.
 

천년고찰 포항 보경사에서 도난된 삼불회도. 조선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성보이다.

또한 도난된 보경사 삼불회도는 대웅전에 후불도로 걸려 있던 불화로, 기존 자료에 의하면 1778년에 조성되었고, 크기는 일제강점기 재산대장을 근거로 가로 403cm, 세로 366.6c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화면을 상하로 나누어 상단에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불을 배치하였다.

중앙에 자리한 석가불은 키형 광배를 갖추고 오른손을 항마촉지인하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왼손을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았다. 착의법은 오른쪽 어깨에 편삼을 걸치지 않은 상태라 맨살이 노출되지만, 아미타불과 약사불은 대의자락이 오른쪽 어깨를 덮은 변형편단우견으로 걸치고 있다.

화면 하단과 측면에는 팔대보살과 사천왕이, 좌우와 상단에 불제자인 아라한과 신중들을 꽉 차게 그려 넣었다. 삼불회도는 세련된 필치로 각 존상의 얼굴과 신체, 문양 등을 표현하고, 적색과 녹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하여 18세기 후반의 전형적인 불화의 설채법을 따르고 있다.

팔상전 영산회상도와 명부전 지장보살도는 전해오는 사진이 전체 화면을 알 수 없어 세부 존상의 배치를 알 수 없지만, 본존 신광(身光) 내에 화려한 문양을 꽉 차게 그린 것이나 여래와 보살상의 형태 등을 비교해 보면 같은 시기에 동일한 불화승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포항 보경사 성보박물관이 지난해 12월 박물관 등록절차를 마치고 전시와 더불어 문화재의 체계적인 보존과 관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성보박물관을 중심으로 사찰의 역사와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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