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론/가츠라 쇼류/고시마 기요타카 공저, 배경아 옮김/불광 펴냄/2만 5천원

기원후 2세기경 남인도서 활약한 용수(龍樹)는 그의 저서 〈중론(中論)〉을 통해 ‘제2의 붓다’로 추앙받았다. 그만큼 붓다의 진의를 명확히 밝힌 논서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중론〉을 불교에 국한된 종교 문헌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중론〉은 인도를 포함한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근대에 이르러 서양 철학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불교 논서 중 하나이다. 이처럼 〈중론〉이 세계 사상사에 한 획을 긋고, 서양 사상가들의 마음마저 사로잡을 수 있던 이유는 인간의 언어가 갖는 필연적 허구성을 ‘공(空)사상’으로 정밀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특히 날카로운 논리로 언어의 모순을 지적해 ‘있음(有)과 없음(無)’ 등의 양극단을 부정하는 논법 형식은 현대 논리학과 언어철학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운문 형식의 축약적 표현이 주는 난해함과 내용 이해를 위한 방대한 사전 지식의 필요성은 일반인들의 접근을 쉽게 허용치 않았다.

〈중론〉이 출간 된 후 지난 2천 년 동안 인도와 중국, 티베트의 많은 학승들이 ‘용수의 진의’를 파악키 위해 다양한 주석과 해석 등 근대 불교학자들의 〈중론〉 연구 논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이러한 수많은 견해가 오히려 〈중론〉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의 장벽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중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랜 역사적 흐름을 파악하고 요점을 정확히 짚을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중론:용수의 사상·저술·생애의 모든 것〉은 〈중론〉의 복잡한 역사적 맥락의 실타래를 풀고,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한 내용을 독자에게 알려준다. 여기에 산스끄리트 원전의 획기적인 현대어 번역과 게송마다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개요를 붙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중론〉의 저자로 알려진 용수의 생각과 삶, 그리고 그가 저술했다고 알려진 많은 문헌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한다. 세계적인 불교논리학자이며 범어 학자인 가츠라 쇼류 박사와 용수 연구의 권위자인 고시마 기요타카 박사, 두 저자의 신뢰할 수 있는 원전 번역과 해설은 지금까지 난해한 〈중론〉의 참뜻을 파악하는 데 최고의 안내서로 손색이 없다.

세계 유명 불서 〈중론〉의 획기적 완역
저자 용수와 ‘공(空)사상’ 파헤쳐
공성으로 논파하지만, ‘공’조차 부정
'개인’ 아닌 ‘문화 현상’ 용수 조명


이 책은 크게 ‘번역 편’과 ‘해설 편’으로 구성돼 있다. 번역 편은 산스끄리트 원전을 바탕으로 한 귀경게 2게송, 본문 27장 445게송 전체의 번역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개요를 달았다. 해설 편은 최신 학술 연구 성과를 토대로 용수의 사상 · 저술 · 생애에 관해 면밀히 분석한다.

이 책 본문에 따르면 〈중론〉을 이해한 핵심은 귀경게(歸敬偈)에 있다. 귀경게란 저술의 첫 부분에 위치하는 게송으로, 논서의 취지가 담겨있다. “소멸하지 않으면서 생겨나지 않고, 끊어지지 않으면서 항상 있지 않고, 동일하지 않으면서 다르지 않고, 오지 않으면서 가지 않고, 희론을 적멸하면서 상서로운 연기를 설한 설법자 중 최고의 설법자 붓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귀경게〉

흔히 팔불중도(八不中道)라 불리는 이 귀경게는 ‘① 소멸 ② 생겨남, ③ 끊어짐 ④ 항상함, ⑤ 동일함 ⑥ 다름, ⑦ 오는 것 ⑧ 가는 것’의 여덟 항목을 부정한다. ① ~ ⑥은 용수 생존 당시, 번잡한 이론 체계에 매몰된 불교 아비달마 부파와 베다교의 유력한 학파인 바이쉐시까·니야야 학파 등의 실재론을 부정한 것이고, ⑦과 ⑧은 언어의 불멸성을 주장하며 제식(주문·주술)의 중요성을 강조한 인도 문법학자들의 세계관을 부정했다.

이처럼 용수는 귀경게서 안으로는 불교 부파의 이론을, 밖으로는 베다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이와 같은 논의들을 모두 희론(戱論, 궤변)으로 간주하며 ‘연기(緣起)’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선언한다. 따라서 〈중론〉은 당시 존재한 인도의 모든 종교 · 사상가들에게 도전장을 던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희론들을 하나씩 논파해 가면서 ‘매거법(枚擧法)’이라는 논법을 통해 ‘존재 = 공성(空性, 실체가 없음)’임을 드러낸다. 매거법이란 모든 견해를 하나하나 들어 공성으로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용수는 ‘공’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서 용수는 게송에 분명히 명시한다.

“인도불교를 통틀어 붓다 이후 가장 저명한 인물, 제2의 붓다, 대승불교의 아버지, 8종(宗)의 조사(祖師)” 〈중론〉의 저자 용수를 지칭하는 찬사이다. 그의 〈중론〉은 대승불교 사상서 두 갈래의 큰 흐름인 중관 학파와 유가행유식 학파의 사상적 원천을 제공했다. 이와 같은 업적을 남긴 용수를 이해하려면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 사후 약 500년이 흐른 시점서 불교 교단은 분열해 저마다의 교리 해석에만 몰두했고, 기존의 인도 베다교 무리는 불교 세력을 견제키 위해 불교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도전해 왔다. 불교도 입장서 보면 온통 사상적 논쟁만이 난무할 뿐 붓다의 본뜻은 점차 훼손되던 시기였다. 이때 이타 행위를 강조한 보살 사상과 함께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대승불교 운동이 서서히 전개되기 시작했고, 용수는 바로 그 시기에 활약한 인물이다.

아직 대승이 대승으로 불리기 직전의 시대, 공성을 무기로 갖춘 〈중론〉은 불교 교단뿐만 아니라 베다교에도 큰 영향을 끼쳤고, 용수의 〈중론〉은 인도사상사서 끊임없이 회자됐다. 더욱이 〈중론〉의 주장은 대승불교의 지향점과 많은 부분이 일치했고, 이후 〈중론〉은 대승불교 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 점이 용수가 대승불교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이유이다.

이러한 용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신화적이고 영웅적인 인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또한, 여러 대승불교 문헌의 저자로 알려지면서 ‘용수문헌군’이 출현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며 무엇이 진정한 용수의 저술인지 아직도 의견은 분분하다. 이러한 다양한 용수상(龍樹像) 속에서 어쩌면 용수는 ‘개인’이 아닌 ‘문화 현상’으로 파악해야 하는 대상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신화적인 용수의 모습을 함께 조명하며, 당시의 시대상과 〈중론〉의 진의를 새롭게 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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