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난다여, 너는 나를 대신하여 샤카족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도를 구하는 마음이 있으면 다시 법을 설해 주려무나. 나는 등이 아프다. 잠깐 누워야겠다”. 아난다는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붓다는 옷을 넷으로 접어서 깔고, 발을 포갠 다음 오른쪽 겨드랑이를 아래로 하고 누우셨다. 위의 글은 초기 경전 잡아함경에 실린 내용이다. 필자는 붓다께서 등의 아픔을 호소하시며 휴식을 원하시는 이 장면의 글을 읽고 애처로움과 함께 붓다와 일체감을 느낀 기억이 생생하다. 붓다와 나의 육신이 다름이 없다는 사실에서 붓다와 가까워 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다.

폭염이 태풍처럼 계속 몰아치고 있고 이제 휴가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20대 후반 몇 년간 대기업체에서 근무했는데 그 때의 휴가 기억이 지금도 생각난다. 신입직원 입사 후 첫 휴가인데 왜 그렇게 불안 했는지? 마치 해고당한 느낌으로 며칠간의 휴가를 소비한 것 같다.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에 이미 쇠뇌당한 세대라 휴식에 익숙하지 못한 것이리라. 일 할 때는 휴식을 생각하고 휴식할 때는 일을 생각한 것이다.

제대로 된 휴식 의미 모르던
20대 후반 대기업 재직시절
매년 휴가 때마다 불안했다

이젠 ‘워라밸·주52시간’ 도래
쉼이라는 생활 양식 ‘구체화’
휴식, 삶의 질 결정 중요 요소

붓다의 가르침이 최고의 휴식
이번 여름휴가엔 禪·내려놓기를

 

이제 세상이 변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라는 용어가 유행이다. 주 52근로시간 제정 등 제도적으로도 ‘쉼의 삶의 양식’이 구체화되고 있다. 휴식은 일의 반대가 아니라 동반자이고 상호보완적인 관계로서 서로를 완벽하게 만들어 주는 관계임을 강조하는 시기가 왔다. 이제 휴식은 단순한 쉼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제일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일하기 위해 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쉬기 위해 일하는 것이라는 사고가 등장하면서 휴식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폐기시키고 있다.
 

방영준/성신여대 명예교수

독일 학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병철 교수는 저서 ‘피로사회’에서 오직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통해서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자아는 피로해지고 황폐해진다고 말한다. 즉, 자기가 스스로 설정한 목표와 요구에 성과를 내지 못해 좌절하게 되고, 이 좌절감은 우울증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회를 ‘성과사회’로 보고 이러한 사회는 그 구성원을 피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과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시스템의 진화과정에서 나온 결과로 본다. 더 큰 성과를 올려서 더 큰 성공을 거두고자 하는 개개인의 욕망을 부추 킴으로서 성과주체는 자기도 모르게 자기 자신을 착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욕망의 수레바퀴에 빠져 스스로가 가해자가 되고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한 교수는 성과사회의 과잉성을 극복하기 위해 사색적 삶, 새로운 영감을 주는 무위와 심심함, 타자와의 관계 회복 등을 역설하면서 휴식의 가치를 강조한다. 휴식의 가치가 강조되면서 휴식의 방법과 지혜에 대한 책과 글도 많아지고 있다. 휴식에 관련 자료를 탐색 탐독하는 과정에서 크게 느낀 점은 바로 불교가 휴식의 종교이고 붓다의 가르침이 휴식의 최선의 방법이고 지혜라는 것을 알았다. 갈애와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에 대한 인식, 하심(下心)과 ‘내려놓기’, 참선과 위빠사나 명상 등 붓다 다르마와 수행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저서들이 불교적인 저자들에 의해 지어진 것이 아니고 불교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음에도 결론은 불교의 인식 방법과 수행론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그렇다. 이제 휴식의 가치가 살아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그런데 불교는 휴식의 종교다. 그리고 한국 불교는 명산 곳곳에 전통 사찰을 가지고 있으니 천혜의 휴식처를 가지고 있다. 한국 불교가 이 피곤한 사회의 피곤한 중생을 위한 진정한 휴식처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는 저절로 나온다. 이를 어쩌라. 한국불교와 불자들의 할 일은 이처럼 태산처럼 다가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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