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사회노동위 등 불교계 중재 노력 재조명

KTX노조·사노위 수년간 연대
대법원 패소 후 떠안은 빚더미
종교계의 중재안으로 감축돼

투쟁 장기화로 지친 노조에는
정신적 버팀목 역할한 불교계
“스님들 보여준 진심에 늘 감사”


2006년 코레일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다 해고된 KTX 승무원들이 12년여 만에 극적으로 일터에 복귀하게 됐다. 이로써 4,526일간 이어진 갈등이 일단락되면서 각계 환영입장이 나온 가운데 긴 시간 동안 해고승무원들과 함께한 불교계의 숨은 노력이 재조명받고 있다.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지부장 김승하, 이하 KTX노조)와 한국철도공사(사장 오영식, 이하 코레일)는 오는 11월 30일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해고승무원 180여 명 중 희망자 전원을 6급 사무영업 경력직으로 특별채용하기로 7월 21일 합의했다.

해고승무원들 “불교계 도움 컸다”
이번 합의결과를 두고 KTX노조 당사자들은 복직문제 해결 전까지 종교계의 도움이 컸으며, 그 중 불교계가 가장 큰 힘이 됐다고 한 목소리로 전했다. 해고승무원 오미선 씨는 “(복직투쟁 과정서)경찰에 연행되는 등 오늘에 이르기까지 힘든 시간을 버텨왔다”며 “동료들마저 중도 포기하는 상황에서도 불교계가 시종일관 함께 해주시고 위로를 건넨 게 큰 힘이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불교계는 2006년 6월 7일 불교인권위원회(대표 진관)가 ‘제4회 박종철인권상’을 KTX 해고승무원들에게 수여한 때부터 KTX 갈등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해고승무원들 파업 100일을 하루 앞둔 날로, 이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나가는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 씨는 “20대에 승무원 일을 하다 예정에 없던 파업에 뛰어든 우리는 인권상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며 “13년 청춘을 다 바쳐 정당한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운 동료들은 이제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됐다. 지금 돌이켜보니 아무나 받을 수 없는 뜻 깊은 상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한동안 KTX 갈등문제 해결에 나서지 못한 불교계는 2012년 조계종이 지금의 사회노동위원회 전신인 ‘노동위원회’를 출범하면서 본격적으로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앞장섰다.

특히 해고승무원들이 2008년 코레일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서 1·2심 모두 승소했으나 2015년 대법원서 판결이 뒤집히며 빚더미를 안았을 때 불교를 비롯한 종교계 중재가 빛을 발했다. 당시 대법원 파기환송으로 승무원들은 각종 소송비용 등 1인당 8700만원을 부담할 처지에 놓였고,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을 비롯한 4대 종교지도자들이 오영식 코레일 사장을 만나 중재안을 제시했다. 그 결과 대전지방법원은 2018년 1월 “승무원은 원금 5%인 총 1억4256만원(1인당 432만원)을 2018년 3월 말까지 철도공사에 지급한다. 철도공사는 나머지 청구를 포기한다”고 권고했다. 이에 KTX노조는 곧바로 조계종을 예방해 불교계에 감사인사를 전했다.

김승하 지부장은 “힘든 투쟁을 지속한 가운데 현실적으로 금전적 비용의 압박은 실로 어마어마했다”며 “설정 스님을 포함한 종교계 지도자들이 먼저 나서 비용 문제를 해결해주셔서 직접 찾아뵙고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현장서 끝까지 호흡한 불교
이뿐만 아니라 불교계는 해고승무원들의 고된 투쟁과정서 늘 함께 현장을 지킨 점에서 이웃종교보다 더 많은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7년 5월, 조계종 사회노동위는 위원회 노력만으로 KTX 갈등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판단에 이웃종교·시민사회단체와 ‘KTX 해고 여승무원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그 중심에는 20여 명의 사회노동위 실천위원 스님들과 양한웅 집행위원장이 있었다. 이들은 투쟁 장기화로 점점 지쳐가는 해고승무원들을 ‘자타불이(自他不二)’ 정신으로 다독이고, 쉽지 않은 일들을 주도했다. 사회노동위원회는 △광화문 정부청사~서울역, 서울역~청와대 구간 오체투지 △격주 목요일 복직염원 법회 △기자회견 및 성명 발표 등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활동에 앞장섰다. 올 여름에는 최고기온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도 서울역 천막 앞에서 59일간 ‘복직 염원 108배’를 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몸을 사리지 않은 사회노동위의 열정에 처음에는 오체투지조차 생소했던 노조원들도 차츰 스님들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후문이다.

해고승무원 정미선(KTX노조 총무) 씨는 “처음 오체투지 제안을 받았을 때 내 몸을 학대한다고 생각해 망설여졌다. 문득 낮은 자세로 계신 스님들을 보고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꼈다”며 “당사자도 하기 어려운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해 함께 연대한 스님들의 결심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스님들과 함께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장서 함께한 서원 스님(사노위 실천위원)은 “사실 파업 10년차부터는 국민 대부분이 그랬듯 나 역시 이들을 차츰 잊어갔다. 그럼에도 밝은 표정을 한 승무원들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있어선 안 되는 일로 인해 고통 받으면서 웃고 있는 그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미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님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력투쟁이나 말싸움이 아닌,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해주는 것뿐이었다. 같이 해준 마음을 잃지 않겠다는 승무원들의 말에 오히려 우리가 힘을 받았다”며 “해단식 날, 불편한 교통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서 찾아온 다른 스님들과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덧붙였다.

KTX 갈등문제 해결에 톡톡한 역할을 한 사노위는 앞으로도 불교계를 대표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함께 한다는 계획이다. 양 위원장은 “완전한 해결은 아니지만 직접 고용이라는 결과는 소중하고 큰 의미를 갖는다. 끈질긴 기다림 끝에 비로소 회향할 수 있었다”며 “국민들은 KTX사태를 절대 잊지 말고 쌍용차노조 등 다른 장기투쟁장 문제들도 관심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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