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 봉사하며 ‘마음 수리 바라밀’…“봉사는 저에겐 평생 ‘공부’였어요”
집수리 봉사하며 ‘마음 수리 바라밀’…“봉사는 저에겐 평생 ‘공부’였어요”
  • 박재완 기자
  • 승인 2018.07.21 0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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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배(62·세기건축설비 대표)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집수리봉사팀 ‘천수천안회’ 팀장
사용배 팀장은… 1956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30세 때 사업을 시작해 번창했지만 한 때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어려움을 겪으며, 봉사에 눈을 뜨게 됐다. 1997년부터 열린사회시민연합의 집수리 봉사팀에서 봉사를 시작했고, 2002년 태풍 매미로 많은 수해피해가 발생했을 때 직원들과 함께 거제 칠전도에서 집수리 봉사를 했다. 2000년 시작된 MBC ‘러브하우스’에도 참여했다. 2006년부터 조계종사회복지재단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2015년부터는 집수리 봉사팀 ‘천수천안회’ 팀장을 맡고 있다. 현재는 1999년 설립한 세기건축설비를 운영하고 있다.
사용배 팀장은… 1956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30세 때 사업을 시작해 번창했지만 한 때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어려움을 겪으며, 봉사에 눈을 뜨게 됐다. 1997년부터 열린사회시민연합의 집수리 봉사팀에서 봉사를 시작했고, 2002년 태풍 매미로 많은 수해피해가 발생했을 때 직원들과 함께 거제 칠전도에서 집수리 봉사를 했다. 2000년 시작된 MBC ‘러브하우스’에도 참여했다. 2006년부터 조계종사회복지재단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2015년부터는 집수리 봉사팀 ‘천수천안회’ 팀장을 맡고 있다. 현재는 1999년 설립한 세기건축설비를 운영하고 있다.

 

봉사에 눈 뜨게 한 시간들
중2때 수해로 집 침수당해
이웃의 배려 고마움 경험
10년 사업 하루아침에 도산
사기죄 뒤집어쓰고 형사 입건
구치소에서 <천수경> 사경
“뜻 몰랐지만 사경은 큰 공부”

 

대부분의 사람은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만큼 인간에게 있어 누군가와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쉽지 않은 일도 누군가는 늘 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렇게 때문에 이 세상은 어두운 듯 어두운 듯해도 꺼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보시는 보살행의 첫 번째 덕목이 되었을 것이다. 육바라밀의 첫 번째인 ‘보시’가 일상이 된 이가 있다. 그이의 보시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남을 돕는 것이다. 그는 20년 가까이 어려운 이들의 낡은 집을 고쳐주고 있다. 3년 전부터는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의 집수리봉사팀 ‘천수천안회’를 이끌고 있는 사용배 팀장이다.

수해를 겪고
사 팀장이 중학교 2학년이던 1972년 여름. 많은 비가 내렸다. 사 팀장이 살고 있던 서울 가양동에도 많은 비가 내렸고, 사 팀장의 집은 안타깝게도 침수되고 말았다. 사 팀장과 가족들은 간신히 몸만 빠져나왔다. 처음 겪는 ‘난리’였고 ‘황망’ 그 자체였다.

“집안으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방마다 물이 들어차기 시작했죠. 순식간이었어요. 책상이 잠기고 교과서가 물에 잠겼어요. 더 이상 집에 머물 수 없게 되었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빈 손으로 집을 나와야 했어요.”

잠시였지만 생활의 터전이었던 집을 잃는다는 것은 어린 사 팀장에게 큰 충격이었다. 사 팀장과 그의 가족들이 황망함 속에서 힘겨워하고 있을 때, 그들을 바라본 것은 다름 아닌 이웃이었고, 그들의 배고픔을 덜어 준 것은 대한적십자사였다. 사 팀장과 그의 가족들은 비가 그칠 때까지 집이 침수되지 않는 이웃의 집에 머물면서 비를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라면 두 박스와 냄비를 구호품으로 받았다.

“두고 온 젖은 교과서가 자꾸 생각나고, 당장 먹을 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어린 마음에도 막막하고 걱정됐는데, 기꺼이 방을 내어준 이웃이 너무나 고마웠고, 누구의 손에서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없는 라면 두 박스가 너무나 따뜻했어요.”

“가난한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살았죠”
사 팀장은 30대에 접어들던 1986년에 사업을 시작한다. 냉난방, 급배수, 전기, 가스, 주방 등 건축설비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나날이 커져갔다.

“흙수저까지는 아니었지만 금수저도 아니었죠. 스스로 일궈야 했죠. 자그맣게 사업을 시작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사업은 번창했어요. 그렇게 사업이 잘 되다보니 세상엔 가난한 사람이 없는 줄 알았어요. 일만 하면 누구나 돈 많이 버는 줄 알고 살았죠. 제 눈에 가난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어요.”

그렇다. 세상은 자신의 형편에 따라 달리 보인다. 형편이 어렵지 않은 사람은 세상이 어렵지 않게 보인다. 그러다보니 어려운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세상이 어렵게만 보인다. 어려움이 무엇인지 알다보니 어려운 사람들의 심정을 알 수 있고, 그러다보니 어려운 사람들의 일이 자신의 일처럼 가슴에 와 닿는다. 어려운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늘 그렇게 쉬울 수만 있을까. 그렇다면 이 세상엔 어려운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나날이 사업이 번창하던 사 팀장에게 시련이 날아들었다. 사업가에게 가장 치명적인 ‘부도’였다. 그리고 설상가상 사기죄까지 뒤집어썼다. 세상은 혼자만의 힘으로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사 팀장이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째 되던 1996년이었다. 사 팀장은 공사를 수주한 원청으로부터 사기를 당해 공사대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고, 본의 아닌 부도를 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원청의 대표가 잠적했고 원청이 저지른 사기로 인해 사 팀장은 사기죄로 형사입건 됐다. 그는 10년 동안 쌓아온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다. 그리고 구치소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세상은 힘겨운 곳이었다. 가난한 사람도 있었고, 힘겨운 일도 있었다.

“구치소에 갇히고 나니 세상엔 가난한 사람과 힘겨운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죠. 늘 똑같은 세상인데 어제까지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오늘은 보이더라고요. 비싼 수업료 낸 거죠(웃음).”

어머니의 <천수경>
“저보다 가족들이 더 놀랐고, 가슴 아파했죠. 특히 어머니가 많이 걱정하셨죠. 저 역시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가족들이 걱정됐죠. 가족을 책임져야 할 가장이 가족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게 힘들었죠.”

그랬다. 세상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다. 그의 말대로 세상사가 모두 ‘공부’였다. 그리고 그 공부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구치소의 생활이 그랬다. 사용배라는 한 인간은 순식간에 집을 잃고 전혀 다른 집에서 살게 된 것이다. 우선 가족의 따뜻한 말과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람들과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곳엔 힘겨운 사람들뿐이었다. 그는 그 속에 있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는 세상의 다른 곳을 보게 되었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생각들과 마주하게 된다.

힘겨운 날들이 시작될 때, 사 팀장을 또 다른 세상으로 이끈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사 팀장이 구치소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사 팀장의 어머니가 <천수경>을 들고 사 팀장을 찾았다. 사 팀장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녔다. 부처님이 누군지, 불교가 무언지 알지도 못했지만 절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사 팀장에게 불교는 집에서 입는 옷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절에 가는 것이 ‘불교’였던 아이였다. 사 팀장의 어머니는 힘겨워하는 아들에게 <천수경>을 주고 갔다.

사 팀장은 어머니가 주고 간 <천수경>을 바라보았다. 어머니와 함께 절에 다니던 어릴 적이 옛날이야기처럼 지나갔다. 사 팀장은 뜻도 모르는 경전 속의 글자를 옮겨적기 시작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면서 힘겨운 시간을 견디었다. 그의 시간은 시계의 초침 대신 <천수경>의 한 글자 한 글자로 흘러가고 있었다.

“저는 그 때 알았어요. 불교가 꼭 경전 속에 있거나 선지식의 법문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 뜻도 모르는 글자를 쓰고 또 쓰다 보니 공부가 되더라고요. 한 글자 한 글자 써나가는 그 순간순간이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고, 그것이 공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잠시라도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 팀장에게 <천수경>의 뜻 모를 글자들이 공부가 되어가고 있을 때, 사 팀장은 구치소를 나오게 된다. 사 팀장은 어머니의 <천수경>으로 6개월을 살았다. 더 없는 공부였다고 그는 말했다.

 

봉사로 보시바라밀행
열린사회시민연합서 봉사 시작
1999년 제2의 창업 재기
2002년 ‘매미’때 집수리봉사
칠전도에서 수해 집 7채 수리
조계종사회복지재단 교육 이수
설거지, 승려복지재단 등 봉사
2006년 숙원 집수리봉사팀 창설
20여 년 동안 봉사 수십 채 수리
집수리 경비 모두 회원 회비로
후원 유치 위해 동분서주

 

또 다른 <천수경> ‘봉사’
힘겹고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 팀장은 구치소를 나왔지만 세상은 예전의 세상이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막막했다. 사 팀장은 작은 일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만만치 않았다. 남의 일은 쉽지 않았다.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구치소 때와 마찬가지로 사 팀장에게 시간은 여전히 힘겨운 것이었다. 그는 구치소에서 <천수경>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던 것처럼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그 때 그는 ‘봉사’와 만나게 된다. 사 팀장은 우연히 지인을 통해 ‘열린사회시민연합’이라는 단체를 알게 되고 그 안에 봉사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낡은 집을 고쳐주는 봉사팀이었다. 사 팀장은 ‘이거다’ 싶었다.

“집수리 봉사팀이라는 말에 마음이 갔어요. 집수리는 내가 제일 잘 하는 일인데, 그것을 써먹을 수 있는 일이었어요. 그것도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었죠. ‘봉사’라는 말에 마음이 일었어요.”

그는 난생 처음 ‘봉사’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구치소에서 힘든 시간을 살 수 있게 해 주었던 <천수경> 같은 것이었다. 힘든 시간 속의 ‘사용배’에게 봉사는 또 다른 <천수경>이었다. 그는 또 다른 사경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남는 시간엔 봉사팀 일에 매달렸다.

“처음엔 힘든 시간을 잊고 싶어 시작했는데, 구치소에서 읽고 쓰던 <천수경>처럼 하루하루 어려운 사람의 집을 바라보고, 그 집들을 고쳐주면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들도 들리는 것 같았어요. 꼭 구치소의 <천수경> 같았어요. ‘공부’였어요.”

그랬다. 공부였다. 그것이 공부가 안 된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그는 구치소에서 6개월을 보냈던 것처럼 힘든 하루하루를 내일을 위한 하루하루로 만들어 갔다. 그리고 1999년 2월, 다시 자신의 사업을 시작한다.

태풍 ‘매미’… 수해 현장으로
2003년 9월 12일 밤, 태풍 매미가 경남지역 해안으로 상륙한다. 초속 54m의 엄청난 바람을 이끌고 한반도를 지나간다. 그리고 매미가 지나간 자리는 초토화 된다. 쓰러지고, 부서지고, 잠기고,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인명피해 130명(사망 117명, 실종 13명), 재산피해 약 4조원. 그보다 더 큰 피해는 삶의 터전을 잃은 피해지역 이재민의 슬픔과 아픔이었다. 온 국민의 눈과 귀는 ‘매미’에 가 있었다. 뉴스를 보고 있던 사 팀장은 직원들을 불러 모으고 보일러 두 대와 자재, 공구들을 싣고 바로 거제의 칠전도로 향했다.

“그냥 앉아만 있을 수가 없었어요. 망가진 집들의 영상 위로 어릴 적 가양동 집이 떠올랐어요. 물에 잠겨가던 책상과 교과서가 다시 생각났어요. 그리고 황망해 하고 있던 우리 가족에게 방을 내어 주던 이웃과 적십자사에서 나누어준 라면박스가 생각났죠. 그 순간 생각할 것도 없었죠.”

사 팀장의 눈에 어려운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일까. 어려운 시간을 건너온 사람만이 어려운 시간을 볼 수 있는 것일까. 사 팀장은 젖은 집들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사 팀장은 칠전도에서 일곱 채의 집을 고쳐주고 돌아왔다. 사 팀장에게 봉사는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면 해야 하는 일이었다.

기왕이면 부처님 마음으로…‘천수천안회’
“기왕이면 불자들과 함께 일을 하고 싶어졌어요. 불자들과 함께 하면 더욱 더 부처님 마음으로 일할 수 있고 의미 있을 것 같았어요.”

사 팀장은 지금까지 살면서 ‘불자’를 내세우며 살지 않았지만 사 팀장의 마음속에는 어려서부터 젖어온 불심이 있었다. 귀로만 들었어도 염불은 염불이고, 눈으로만 보았어도 부처님은 부처님이다. 귀로만 듣고 눈으로만 보았어도 그것은 귀한 인연이고, 귀한 인연은 반드시 마음 한 구석에서 자라기 마련이다. 사 팀장 역시 그 귀한 인연의 씨앗이 세상을 살면서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운 것이다.

2006년 사 팀장은 우연히 서울 조계사 앞을 지나다가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의 자원봉사자 기본교육과 모집에 관한 현수막을 보게 된다. 그는 바로 기본 교육을 이수하고 복지재단에서 봉사를 시작한다.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설거지 봉사부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하고 있다. 승려복지회 봉사도 하고 있다. 하지만 사 팀장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집수리 봉사’였다. 그는 꾸준히 집수리 봉사팀의 필요성을 건의하고 신설을 추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5년 집수리 봉사팀 ‘천수천안회’가 만들어진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중생을 돕는 관세음보살님처럼 힘겹고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의 집을 고쳐주고 싶었어요.”

팀장을 맡은 그는 매월 둘째 주 일요일에 회원들과 집수리 봉사를 나간다. 장애인, 독거노인, 저소득 가정의 집을 찾아 보일러와 에어컨을 고치고, 도배, 장판, 화장실 수리, 집안 청소까지 한다. 도배를 한 다음 날엔 온 몸이 쑤신다. 하지만 몸이 힘든 것은 즐거운 훈장과도 같은 것이기에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사 팀장의 마음을 늘 무겁게 하는 것은 충분히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다. 중고 보일러가 아니라 새 보일러, 새 에어컨을 놔주고 싶고, 더 많은 집의 도배와 장판을 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사 팀장이 마음껏 해줄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다. 부족한 재정 때문이다. ‘천수천안회’ 발족 이후 봉사팀은 이렇다 할 후원 없이 집수리에 필요한 장판과 도배지, 페인트, 공구까지 모두 회원들의 자체 회비로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사 팀장 개인의 인맥으로 현금 지원, 공구와 자재들을 공급받아왔다. 일창산업의 정규선 대표와 ㈜아이삭, 김수진 내과 원장 등 사 팀장과 마음을 같이 하는 도반들이 조금씩 그를 돕고 있을 뿐이다. 아쉬운 대목이다. 아니 안타까운 대목이다.

사 팀장은 천수천안회에서만 20여 채의 집을 수리했고, 20여 년 동안 수십 채의 집을 수리했다. 천수천안회는 이미 오래 전에, 집을 잃어봤던 한 소년의 마음속에서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20년이라는 세월을 자라온 것이다.

“지난해까지 회비가 만원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회비를 걷지 않아요. 돈 만 원도 이제는 서로 미안해졌기 때문이죠. 워낙 모두 힘들잖아요. 그래서 제가 여기저기서 조금씩 해결하고 있어요. 공구나 자재는 제가 어떻게든 구해 오고, 밥은 라면이라도 먹으면 되니까, 그냥 서로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 간혹 우리가 정부나 복지관에서 지원받아 일하는 줄 아는 사람들이 저희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가 조금 섭섭하고 기운 빠지죠.”

오늘도 사 팀장은 뙤약볕 아래서 회원들과 땀을 흘린다. 그리고 자장면 한 그릇으로 점심을 먹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사 팀장은 오늘 고치고 온 할머니의 낡은 보일러가 걱정이다. 새것으로 바꾸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한 달 후에 사 팀장은 또 어떤 걱정을 지고 돌아오게 될까. 이 또한 우리 모두가 짓고 있는 업은 아닐까. 후원문의 / (02)723-5101(조계종사회복지재단).

사용배 팀장은 천수천안회에서만 20여 채의 집을 수리했고, 20여 년 동안 집수리 봉사를 통해 어려운 이웃의 낡은 집 수십채를 수리했다.
사용배 팀장은 천수천안회에서만 20여 채의 집을 수리했고, 20여 년 동안 집수리 봉사를 통해 어려운 이웃의 낡은 집 수십채를 수리했다.
집수리를 마친 후 ‘천수천안회’ 회원들과 기념사진. 윗줄 맨오른쪽 사용배 팀장.
집수리를 마친 후 ‘천수천안회’ 회원들과 기념사진. 윗줄 맨오른쪽 사용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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