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붙잡아 주십시오
[기고]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붙잡아 주십시오
  • 박병기(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장)
  • 승인 2018.07.19 22: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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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기 한국교원대 교수가 "불교계 언론이 두 편으로 나뉘어 있어 중립적인 매체인 '현대불교'가 역할을 할 수 있겠다"며 본지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설악무산 스님의 49재를 즈음해 현재 불교계 상황을 염려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리며, 글의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주>

초복 지나는 칠월 하늘에 한 자락 구름이 지나고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흐르는 이 한여름에도 스님 계신 설악산에는 서늘한 바람 한 자락 지나고 있겠지요. 며칠 전 스님 49재 있었던 신흥사 건너편 산봉우리에는 다비식 감싼 솜털 같은 구름들 찬란한 군무 펼치고 있었겠지요.

불교계와의 인연이 넓지도 깊지도 않은 제게 스님과의 인연은 불교를 넘어서 시와 삶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계기를 열어주었습니다. 스승 가산지관스님과의 인연 이후, 어쩌면 두 번째로 제게 주어진 ‘스님’과의 만남이라는 의미로 새겨져 있는지 모릅니다. 이 시대를 수행자로 살아내는 일이 녹록치 않고, 그 과정에서 좌절하거나 막행막식으로 치닫는 스님들과의 애처로운 만남 또한 없지 않았습니다. 작은 권력이나 돈에 집착하거나 어줍잖은 알음알이 감당하지 못해 안달하는 스님들 또한 적지 않아 실망감으로 돌아서려던 무렵이었나 봅니다.

박병기 한국교원대 대학원장
박병기 한국교원대 대학원장

<불교평론> 발행인과 편집위원이라는 관계로 시작된 우리 인연은 매해 정초에 세배를 올리거나 스님의 드문 서울 나들이길에 맞춰 이루어지는 짧은 만남 정도로 이어졌지만, 가끔씩 펼쳐보는 <아득한 성자> 속 벼락같은 시어들 스미는 가르침으로 자주 뵙고 있다는 느낌을 늘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정초에는 편집위원장이라는 자리를 맡아 뵙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주신 ‘어느 날 문득 눈 들어보니/ 사방이 천 길 낭떠러지인 절벽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실존적인 화두(話頭)로 제게 내내 살아 있습니다.

스님! 지켜보고 계신지요? 지금 조계종단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습니다. 88세의 설조 노스님께서 종단의 변화를 사자후처럼 외치며 벌써 한 달 가까이 단식을 이어가고 있고, 종단은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스님들의 범계행위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채 허둥대고 있습니다. 스님 평소 말씀처럼 2천년 가까이 살아낸 고목 중 고목인 우리불교가 겪어야 하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고목이 나무라는 이름을 유지하려면 새해가 되면 파란 싹을 키워내는 힘을 보여주어야만 하는데, 과연 그런 싹들이 어디에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아 죽어가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만 주변을 휘감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 등불을 설조 스님께서 들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희망의 싹들이 우리 사부대중공동체 구성원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자리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스님께 결제나 해제법어를 들은 이 땅의 수좌들과, 선시(禪詩)를 통해 일상의 파고 넘어설 수 있는 기운을 얻은 재가자들이 희망입니다.

부디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 자리잡아 쉽게 자라나지 못하는 그 싹들을 붙잡아 주십시오. 스님과의 범상치 않은 인연, 49재라는 계기 맞아 겨우 되새기는 저의 불민함 또한 따스한 손잡음으로 흔쾌히 받아주실 것 같은 날이 시나브로 깊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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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소리 2018-07-22 21:05:38
뭔소리를 하는 건지. 교수넵하고 가식적인 말들을 쏟아내고 남들을 향해 맹목적인 비난을 쏟아내면서 자신은 윤리적인척 하는 인사. 당신들이 노스님 단식 부추기지말고 조용히 있으면 조계종 큰 문제 없을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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