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기 한국교원대 교수가 "불교계 언론이 두 편으로 나뉘어 있어 중립적인 매체인 '현대불교'가 역할을 할 수 있겠다"며 본지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설악무산 스님의 49재를 즈음해 현재 불교계 상황을 염려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리며, 글의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주>

초복 지나는 칠월 하늘에 한 자락 구름이 지나고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흐르는 이 한여름에도 스님 계신 설악산에는 서늘한 바람 한 자락 지나고 있겠지요. 며칠 전 스님 49재 있었던 신흥사 건너편 산봉우리에는 다비식 감싼 솜털 같은 구름들 찬란한 군무 펼치고 있었겠지요.

불교계와의 인연이 넓지도 깊지도 않은 제게 스님과의 인연은 불교를 넘어서 시와 삶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계기를 열어주었습니다. 스승 가산지관스님과의 인연 이후, 어쩌면 두 번째로 제게 주어진 ‘스님’과의 만남이라는 의미로 새겨져 있는지 모릅니다. 이 시대를 수행자로 살아내는 일이 녹록치 않고, 그 과정에서 좌절하거나 막행막식으로 치닫는 스님들과의 애처로운 만남 또한 없지 않았습니다. 작은 권력이나 돈에 집착하거나 어줍잖은 알음알이 감당하지 못해 안달하는 스님들 또한 적지 않아 실망감으로 돌아서려던 무렵이었나 봅니다.

박병기 한국교원대 대학원장

<불교평론> 발행인과 편집위원이라는 관계로 시작된 우리 인연은 매해 정초에 세배를 올리거나 스님의 드문 서울 나들이길에 맞춰 이루어지는 짧은 만남 정도로 이어졌지만, 가끔씩 펼쳐보는 <아득한 성자> 속 벼락같은 시어들 스미는 가르침으로 자주 뵙고 있다는 느낌을 늘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정초에는 편집위원장이라는 자리를 맡아 뵙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주신 ‘어느 날 문득 눈 들어보니/ 사방이 천 길 낭떠러지인 절벽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실존적인 화두(話頭)로 제게 내내 살아 있습니다.

스님! 지켜보고 계신지요? 지금 조계종단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습니다. 88세의 설조 노스님께서 종단의 변화를 사자후처럼 외치며 벌써 한 달 가까이 단식을 이어가고 있고, 종단은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스님들의 범계행위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채 허둥대고 있습니다. 스님 평소 말씀처럼 2천년 가까이 살아낸 고목 중 고목인 우리불교가 겪어야 하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고목이 나무라는 이름을 유지하려면 새해가 되면 파란 싹을 키워내는 힘을 보여주어야만 하는데, 과연 그런 싹들이 어디에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아 죽어가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만 주변을 휘감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 등불을 설조 스님께서 들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희망의 싹들이 우리 사부대중공동체 구성원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자리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스님께 결제나 해제법어를 들은 이 땅의 수좌들과, 선시(禪詩)를 통해 일상의 파고 넘어설 수 있는 기운을 얻은 재가자들이 희망입니다.

부디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 자리잡아 쉽게 자라나지 못하는 그 싹들을 붙잡아 주십시오. 스님과의 범상치 않은 인연, 49재라는 계기 맞아 겨우 되새기는 저의 불민함 또한 따스한 손잡음으로 흔쾌히 받아주실 것 같은 날이 시나브로 깊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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