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이미 마음을 알고 있다/한자경 지음/김영사 펴냄/1만 3천원

우리는 진정 자신의 마음을 잘 알고 있을까? 우주 만물은 모두 알되 그렇게 아는 자기 자신은 왜 모를까? 세상 모든 것은 드러난 모습이 서로 다르지만 근본에 있어서는 하나임을 이미 아는 마음이 ‘공적영지(空寂靈知)’이다. 이 말은 인간의 본래 마음을 밝혀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짚어보고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이화여대 한자경 교수의 사유 결정체이다. 한 교수의 이번 책은 경쟁사회서 소외와 우울,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근본적인 치유의 길을 제시하고 진정한 행복의 길로 안내한 교양 철학서이다.

표층에 머무르는 의식은 옷은 보되 옷 입은 사람은 보지 못하고, 말은 듣되 말하는 사람을 알지 못하는 의식이다. 마음의 본성을 알지 못하므로 자신과 남에 대해서도 오직 드러난 모습에 따라 판단하고 단정한다. 상(相)을 따라 떠다닐 뿐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다. 현대인은 표층에 부유하면서 바닥에 닻을 내리지 못하는 방랑자들이다.

모든 경계를 허무는 인간의 본래마음, ‘공적영지’
우리는 왜 ‘대상’만 알고
대상을 아는 ‘마음’은 알지 못하는가
표층의식 너머 ‘공적영지’에서 답을 구하다
‘본래마음’으로 인간과 세계 고찰한 사유 결정체


보이는 것이 없는 허공(空)과 같은 마음, 들리는 것이 없는 적적한(寂) 마음이 자신을 신령하게(靈) 아는 공적영지이다. 이 심층 마음의 빛을 우리는 본래 갖추고 있다. 이것을 자각함으로써만 세상 모든 것이 드러난 모습은 다르지만, 근본에서는 서로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표층에서의 부유를 멈춘다.

인간의 심층 마음을 일관되게 연구해 자신만의 고유한 사유체계를 정립한 ‘일심의 철학자’ 한자경 교수가 그의 사유의 정수만을 모아 쉽고 명쾌하게 풀어낸 대중 철학서이다. 이미 저자는 1993년 제5회 서우철학상(<칸트와 초월철학: 인간이란 무엇인가>), 2008년 제2회 청송학술상(<불교의 무아론>), 2012년 제3회 원효학술상(<불교철학과 현대윤리의 만남>), 2013년 제10회 불교출판문화상 대상(<대승기신론 강해>), 2017년 제7회 반야학술상(<심층마음의 연구>)을 수상하며 국내 학계서 호평 받은 바 있다.

서문에서 저자는 “그동안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배우고 생각해 얻은 결론들을 가능한 군더더기 없이 간략히 표현해 보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듯, 이 책은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간단명료하면서도 그간의 연구가 알알이 녹아있어 심오한 사유를 가능케 한다.

사람들은 선과 악, 미와 추,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나와 나 아닌 것, 몸과 마음 등 일체를 크게 둘로 나눠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원적 사고는 차이를 본질로 규정하면서 공통점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이는 개인주의로 이어진다. 분별은 둘 사이의 경계인 장벽을 세우고 소통을 막으며 둘 중 하나에 나를 가둔다. 장벽 이쪽은 나이고, 장벽 저쪽은 너이다. 둘의 관계는 시소와도 같아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한쪽이 내려간다.

하지만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는 것처럼, ‘나’가 ‘나’인 것은 ‘나 아닌 것’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개별자는 자신이 아닌 것을 통해 자신이 되는 ‘상즉(相卽)’의 존재이다. 그런데 ‘나’는 내 앞의 사과를 ‘나 아닌 것’으로 여기지만 그 사과를 먹으면 그것이 나의 살과 뼈가 되는 것처럼, ‘나 아닌 것’이 ‘나’가 된다. 그리고 그 사과는 지구의 땅과 물, 햇빛과 공기 등을 통해 자라났기 때문에 그 사과에는 ‘우주’가 포함되어 있다.

즉 일체는 ‘상입(相入)’의 관계에 있으며, 이는 우리를 전체의 하나로 인도한다. 전체의 하나는 절대 무한의 마음이다. 무한으로 나아간 마음은 그 안에 보이는 것이 없는 허공과 같은 마음이고 그 안에 들리는 것이 없는 적적한 마음, 공적의 마음이다. 그 마음은 본래적 각성으로 깨어있는 ‘아는 자’로서의 마음이기도 하다. 공적의 마음이 자신을 신령하게(영) 아는(지) 이 것을 공적영지라 한다. 현대인은 공적영지를 망각하고, 의식되는 것을 자기 밖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표층의식이 마음활동의 전부라고 여긴다. 이는 ‘꿈꾸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나’를 ‘꿈속의 나’로 착각하는 것과 같다. 표층에 머무르는 의식은 심층의 본성을 알지 못하므로 자신에 대해서도 남에 대해서도 오직 드러난 모습인 상(相)을 따라 판단하고 평가하며 단정한다. 현대인은 상을 따라 표층에서 부유할 뿐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다.

심층을 망각하고 세상을 보면 존재하는 것은 모두 표층 개별자일 뿐이다. 분별 이전의 공통의 기반은 모두 사라지고 개별자들은 허공에 부유하며 오직 자신만을 위한 삶을 도모한다.

이런 삶은 타인을 나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보게 하고, 상대를 비교와 경쟁의 대상으로만 여기게 한다. 친구도 동료도 경쟁 대상이 되고, 우리는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살게 된다. 비교와 경쟁에 익숙해지면 현재는 오로지 성공하는 미래를 위한 수단이 되고, 결국 현재가 없는 삶이 된다. 성공 지향적 인간은 행복을 느끼기 어렵다. 행복은 현재의 느낌인데 현재가 늘 비어있기 때문이다.

 

보물은 현재 내가 갖지 못해 새롭게 획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언제나 갖추어져 있어 내가 그 소중함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의식의 문턱 아래 있는 것,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기본에 속한 것이다. 그 기본 중의 기본이 바로 우리를 깨어있게 하고 살아있게 하는 심층마음이다. 진정한 행복은 비교와 경쟁을 멈추고 내 본래마음을 알아차림으로써만 도달할 수 있다. 경쟁사회 속에서 우울과 불안, 소외를 안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돌아보고, 심층 마음으로 지금 여기의 ‘나’와 내 눈앞에 펼쳐진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함으로써 진정한 행복과 평안을 얻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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