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사시좌선(四時坐禪)

남송시대 좌선 방식 정례화
한·중·일 선원 ‘사시좌선’
일주향 피워 시간 측정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일본의 선원은 모두 하루에 4번 좌선을 한다. 새벽ㆍ오전ㆍ오후ㆍ저녁. 이것을 ‘사시좌선(四時坐禪)’이라고 하는데, 사시좌선이 제도화, 정례화 되는 것은 남송시대(1226년) 이후부터이다. 그 이전 즉 당ㆍ북송시대까지 좌선은 정례화 하지 않았다. ‘프리(free)’였다. 즉 좌선을 하고 싶으면 하고, 시간이 없는 사람은 하지 않아도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청규에서 처음으로 좌선의 횟수와 시간 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청규는 남송 후기에 편찬(1264년)된 무량종수의 〈입중수지(入衆須知)〉 ‘좌선’ 편과 남송 후기에 유면(惟勉)이 편찬(1274년)한 〈총림교정청규총요(叢林校定淸規總要, 함순청규)〉 ‘좌선좌당방참(坐禪坐堂放參)’ 편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청규인 장로종색의 〈선원청규〉(1103년, 북송 후기)에는 좌선에 대하여 일체 언급이 없다. 언급이 없다는 것은 종래와 같기 때문이다. 종래 제도를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에(당ㆍ북송시대에는 좌선을 정례화하지 않았음, 프리였음),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좌선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는 앞의 두 중국 청규의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시기적으로는 〈입중수지〉가 10년 앞서지만, 내용적으로는 〈총림교정청규총요〉가 좀 더 구체적이다. 그러나 사시좌선(四時坐禪)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청규는 영평도겐(道元, 1200~1253)의 〈영평청규〉 ‘판도법’(1245)이다. 도겐(道元)은 24세(1224년) 때 천동사 천동여정의 문하에서 약 4년 간 좌선 판도(辦道ㆍ수행) 후 28세에 귀국하여 일본 조동종을 개창한 선승이다. 그의 ‘판도법’은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다. 앞의 〈입중수지(入衆須知)〉(1264년)보다는 19년 앞서고, 유면(有?)의 〈총림교정청규총요(일명 함순청규)〉(1274년)보다는 29년이나 앞선다. 따라서 좌선의 제도화, 정례화나 또 하루 횟수에 관한 청규의 기록으로는 가장 앞선다고 할 수 있다. 도겐의 〈영평청규〉 ‘판도법’과 〈입중수지(入衆須知)〉, 유면의 〈총림교정청규총요(일명 함순청규)〉, 그리고 무착도충의 〈선림상기전(禪林象器箋)〉과 〈선학대사전(大修館발행)〉 등을 바탕으로 사시좌선에 대하여 정리해 보고자 한다.

사시(四時) 좌선은 새벽 좌선인 후야좌선(後夜坐禪), 오전 좌선인 조신좌선(早晨坐禪), 오후 좌선인 포시좌선(哺時坐禪, 오후 좌선), 그리고 저녁 좌선인 황혼좌선(黃昏坐禪)이다.

(1) 후야좌선(後夜坐禪, 새벽 좌선)

새벽 좌선. 후야(後夜)는 시간적으로 밤 자정(12시)부터 새벽까지를 가리키는데, 새벽 한 시부터 다섯 시까지의 시간을 가리킨다. 후야좌선을 주로 ‘효천좌선(曉天坐禪)’이라고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송시대 선종사원은 새벽 4시에 기상한다. 효천좌선은 새벽 4시 20분이나 30분경부터 시작하여 5시나 5시 10분이면 마친다. 그런데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사시 좌선’은 남송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남송 때에는 선종사원에서도 예불을 했다. 새벽 예불은 좌선 후에 하는데, 약 40~50분 정도이다.(필자의 책 〈당송시대 선종사원의 생활과 철학〉에서는 새벽 예불은 효천좌선 즉 새벽 좌선 전에 한 것으로 쓰고 있으나 오류이다.)

필자가 2018년 4월 일본 후쿠이에 있는 에이헤이지(永平寺)에 가서 좌선체험을 다녀왔는데, 대중들은 새벽 4시 20분경부터 시작하여 40분 좌선하고 5시경에 마친다. 이것이 효천좌선이다. 그리고 새벽 5시부터 약 40~50분 동안 조사당에서 헌다(獻茶)와 풍경(諷經, 독경) 등이 있었는데, 의외로 새벽에 대웅전에서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안내하는 스님에게 질문했더니 새벽에 불전(대웅전)에서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대웅전에서 하는 것은 사시공양과 저녁예불만 한다는 것이다.

(2) 조신좌선(早晨坐禪, 오전 좌선)

오전 좌선을 가리킨다. 아침 공양 후 청소를 마치고 시작한다. 조참(아침 법문)이 있을 때는 그보다 더 늦게 한다. 오전 10시 40분 경에 고원(庫院ㆍ주방)에서 곧 점심 공양이 있게 됨을 알리는 화판(火板ㆍ庫院의 雲版) 소리가 나면 방선한다. 조신좌선은 대략 2시간 정도 좌선하는데, 40분 씩 좌선하고 15~20분 씩 경행을 한다. 사시 좌선 가운데, 가장 많은 좌선 시간이 할애된다.

(3) 포시좌선(哺時坐禪, 오후 좌선)

오후 좌선을 가리킨다. 포시는 시간적으로 미시(未時ㆍ1시~3시)를 가리키지만, 실제 좌선은 미시의 끝인 오후 3시에 해당하는데, 3시경에 시작하여 3시 40분경에 마친다. 오후 좌선인 포시좌선의 경우는 바쁜 사람은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

〈총림교정청규총요(함순청규)〉에는 “점심 공양 후에는 좌선을 알리는 판(板)을 치지 않는다. 공부하는 학인은 여기에 구애받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은 포시 좌선은 꼭 참석하지 않아도 좋다는 뜻으로서 개인의 시간 여하에 맡겼다고 볼 수 있다[隨意坐禪]. 오후 좌선인 포시좌선은 가사는 입지 않고 평상복 차림으로 좌선한다. 그 이유는 소임 등 일상적인 일을 하다가 좌선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4) 황혼좌선(黃昏坐禪)

저녁 좌선. 초야에 하므로 ‘초야 좌선(初夜坐禪)’이라고도 한다. 황혼좌선은 저녁 7시경에 시작하여 8시 30분경에 마친다. 좌선을 시작하기 전에 유나는 좌선이 있음을 알리는 좌선패(坐禪牌)를 승당(僧堂)과 중료(衆寮ㆍ대중방, 큰방) 앞에 건다. 그런 후에는 좌선판(坐禪板ㆍ좌선을 알리는 판)을 친다. 좌선판을 치면 수좌와 대중들은 가사를 입고 승당으로 들어간다. 오후 좌선인 포시좌선에는 가사를 입지 않는다. 모든 납자들은 자기 자리에 앉아서 면벽 좌선한다. 다만 수좌는 면벽하지 않는다(수좌는 감독하기 위하여 앞을 보고 좌선한다).

대중들은 모두 장련상(長連床)의 자기 자리에 앉아서 좌선을 하고 다만 주지는 의자에 앉아서 성승(聖僧ㆍ僧形文殊像)을 향하여 좌선한다(주지 즉 방장은 선당 가운데 모셔져 있는 문수상을 향하여 좌선한다. 의자에 앉아서 좌선하는데, 바닥이 복도로서 벽돌이기 때문이다).

남송시대 이후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일본의 선원은 모두 하루 4번 좌선을 하게 되었다. 새벽·오전·오후·저녁 4번 하는 ‘사시좌선’이다.

좌선 시간은 장향 일주향(長香一炷香, 40분)

이상과 같이 남송시대부터는 하루에 4번 좌선했는데, 오늘날 우리나라, 중국, 일본도 남송시대와 마찬가지로 하루 4회 좌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시좌선(四時坐禪)’이라고 하는 용어 자체도 정립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하루에 좌선할 수 있는 시간은 많아야 다섯 시간을 넘지 않는다. 당송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남송시대에도 모든 일을 전폐하고 오로지 좌선만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상당법문과 조참ㆍ만참ㆍ독참, 그리고 각자 맡은 바 소임 등을 하고 나면 실제 좌선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다만 비교적 한가한 겨울에는 좀 더 했고, 또 선칠(禪七, 7일간 용맹정진) 등 특별 정진 기간에는 3시간 정도만 자고 좌선하는 때도 있었다.

그리고 좌선을 할 때는 장향 일주향(長香一炷香)을 피웠다. 일주향을 피우는 이유는 시간을 체크하기 위해서였다. 향이 다 타려면 약 40분이 걸렸는데, 한 번 앉으면 약 40분 정도 좌선했음을 알 수 있다.

당송시대에는 관아(官衙)는 물론이고, 선원총림에서도 향(香)을 피워서 시간을 체크했다. 그 향을 ‘일주향(一炷香)’ ‘장향 일주향(長香一炷香)’, 또는 ‘선향(線香)이라고 불렀는데, 향 한 개의 소진 시간은 약 40분이었다.

입선(入禪)할 때는 유나가 석목(析木ㆍ각목 두 개. 우리나라는 죽비를 친다)을 한 번 치고 인경(引磬)을 세 번 치면 입정(入定, 入禪)을 한다. 그와 동시에 일주향을 피운다. 향이 다 타면 향을 관리하는 향사(香司)가 유나에게 고(告)한다. 이어 유나가 석목을 치면 주지, 수좌 순서로 일어나서 경행을 한다. 경행 시간은 약 10~15분 가량이다.

그리고 평소 개별적으로 더 좌선을 하고 싶을 때는 야좌(夜坐)를 이용한다. 야좌는 밤 9시 취침종이 울린 이후에 혼자 밖에 나가거나 마루 등 다른 공간에서 혼자 하는 좌선[獨坐]을 말한다. 또 정규 좌선 외의 정종좌선(定鐘坐禪)이 있다. 정종 좌선은 저녁좌선인 황혼좌선을 마치자마자(8시 30분경) 곧바로 하는데, “정종좌선이오(定鐘坐禪)이오”라고 말하면 잠시 경행을 한 후 계속 좌선을 한다. 영평사 도겐(道元) 선사가 천동여정 문하(천동사)에서 수행할 적에 밤 10시까지 좌선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마도 야좌나 정종좌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 선종사원에서는 포살이나 불사, 행사, 보청(울력)이 많은 날이나 행사가 있는 날 등에는 좌선을 하지 않는다. 한여름 무더울 때도 좌선을 하지 않는다(방선). 무덥고 피곤하면 졸음이 와서 좌선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농사 등 잡무가 별로 없는 겨울과 납월 팔일(臘月八日. 성도일)에는 선칠(禪七, 7일 특별 용맹정진), 또는 가행정진(加行精進)등 특별 정진을 한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처럼 잠을 전혀 자지 않고 하는 것은 아니고, 하루 3, 4시간 정도는 자면서 좌선한다.

경책(警策, 죽비)

당일 선당의 당번(當番)을 직당(直堂, 해당 일의 당번)이라고 하는데, 직당은 ‘경책(警策)’이라고 쓴 큰 막대를 메고 복도를 왕래한다. ‘경책(警策)’이란 경각(警覺)ㆍ책려(策勵)한다는 뜻인데, 끄덕끄덕 조는 사람이나 허리가 굽은 사람, 두 엄지손가락이 떨어져 있으면 죽비로 어깨를 친다. 살살 치지 않고 매우 강하게 친다. 경책은 길이가 4척 2촌으로 약 140센티가 된다. 손잡이 쪽은 원형이고 끝 쪽으로 가면서 얇고 평평하다. 참나무과에 속하는 단단한 나무로 만든다.

경책을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장군죽비(將軍竹?)’라고 하는데, 이는 선원청규에는 없는 말로서,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비속어이다.

‘장군죽비’라는 말은 백파긍선(白坡亘璇ㆍ1767~1852)의 〈선문수경〉 간당십통설(看堂十統說)과 〈작법귀감〉 하권(139쪽)에도 나온다. 〈선문수경〉에는 “장군죽비를 한 번 치면 벽을 향하여 앉는다(將軍竹?一聲 向壁而坐).” 그리고 〈작법귀감〉에는 “장군죽비를 벽에 한 번치면 무명의 껍질을 타파한다(將軍竹? 擊壁一聲 打破無明殼).”고 서술되어 있는데, 이로 본다면 ‘장군죽비’라는 말은 백파 이전부터 사용되었던 것 같다. 조선시대부터 장군죽비는 좌선 시에 경책(警策)용으로도 쓰였고, 시식문(施食文)에서 영가 천도용으로도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운허 스님의 〈불교사전〉 ‘장군죽비(將軍竹?)’ 항목에는 “절의 큰 방 어간 문설주에 걸어 두는 장척(長尺). 대중의 행좌(行坐)와 위열(位列)을 바르게 하는 것인데, 시속(時俗)에서 이것을 장군죽비라 함은 잘못된 말이다.”고 지적하고 있다. 운허 스님이 ‘시속(時俗)’이라고 한 것을 보면 처음에는 세속인들이 그렇게 불렀는데, 선원에서도 점차 오염되어 통용된 것 같다.

경행을 할 때는 대중 모두가 장련상(長連床, 좌선상)에서 내려와 좌차(座次, 앉는 순서)에 따라 한 줄로 줄을 지어서 선당 중앙의 복도를 왕래한다. 경행법은 한 호흡에 반보행(半步行)으로 오늘날과 같다. 경행 시간은 약 15분 전후인데 이때 동사(東司ㆍ화장실)에 갈 사람은 동사에 가고, 물을 마시고 싶은 사람은 물을 마실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1시간을 주기로 50분 좌선하고 10분 경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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