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불교아카데미 특별법문...종범 스님

주제 : 깨달음과 한국불교

(사)대한불교삼보회(이사장 유억근)는 7월 8일 서울 삼보정사서 삼보불교아카데미 학장인 종범 스님을 초청해 특별법문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스님은 “부처님과 관련된 모든 방편은 깨달음이란 실상을 깨우치기 위함일 뿐이다”며 “한국불교의 조사선풍에 따라 금강경으로 수행입문해 보리심으로 발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범 스님은… 1963년 통도사서 벽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 69년 구족계를 수지했다. 스님은 통도사 강원 강주, 중앙승가대 불교학과 교수, 조계종 중앙상임포교사, 중앙승가대 4대 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삼보불교아카데미 학장을 맡고 있다.

가르침은 방편, 깨달음은 진실
손가락만 쳐다보면 非道요
결국 달을 바라봐야 正道다
형식 자체보다 깨우침에 목적을


오늘은 조금 특별한 법문을 하고자 합니다. 먼저 깨달음에 대해 말씀드리고, 자료를 본 다음 마치겠습니다. 

법문은 깨달음 위한 방편
불교에는 불상, 불탑, 불경 즉, 상·탑·경이 있는데 전부 부처님과 관련된 예경의 대상입니다. 불상은 부처님 당신 모습, 불탑은 부처님 몸에서 나온 사리, 불경은 부처님 말씀입니다. 부처님은 당신 몸·뼈를 보이고, 말을 듣게 하려고 세상에 나오신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몸·뼈·말 모습은 바로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을 보이기가 쉽지 않으니 방편을 이용하신 것이지요.

‘개방편문 시진실상(開方便門 示眞實相)’이란 말이 있습니다. 방편문을 열어서 진실상을 보이는 것이죠. 불교는 어떤 형식으로 설명을 하든 방편이란 뜻입니다. 그 설명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설명을 통해 깨달음의 길로 가는 것이 법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할 법문 주제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을 받으면 참 속상해요. 물을 필요가 없잖아요. 천 마디, 한 마디를 해도 깨달음이 주제입니다.

설명 아닌 증입 통해 깨달음으로
‘이지표월(以指標月)’이라,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방편문을 연 것입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왜 가리킵니까? 그 목적은 손가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달에 있습니다. 달이 바로 진실상을 상징합니다.

가리킴을 본 뒤 그 가리킴을 본 사람이 할 일은 ‘인지견월(因指見月)’이라 합니다. 손가락으로 인해(통해서) 달을 본다. 달을 보는 것이 곧 달 가리킨 것을 본 사람이 할 일입니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점은 손가락에 매달려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불교는 손가락(방편문)을 통해 달(진실상)을 보이는 것인데, 그렇지 못하고 ‘집지위월(執指爲月)’하면 그것은 비도(非道)입니다. 인지견월은 정도(正道)요, 손가락을 달이라 우기면 그것은 도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한국불교는 집지위월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며칠 동안 철야정진을 했고, 불교교학에 대해 아는 것이 많다고 하는 등 전부 손가락을 달이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가르친 것은 방편문이고, 깨우친 것은 진실상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가르치신 분이 아니고 깨우치신 분이라고 해야 합니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로 하는 게 가르침이고, 보일 수 없는 것을 형상으로써 보여주는 게 깨우침입니다. 보일 때 볼 수 있는 것을 통해 볼 수 없는 세계를 깨달으면 그것이 바로 정도입니다. 볼 수 있는 것에만 매달리면 비도요, 잘못된 도는 사도입니다.

불교를 믿는다고 할 때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을 배웁니다. 어떤 가르침이라 할지라도 결국 깨달음을 위한 것입니다. 가르침은 일체 허망한 것도, 최종 진실한 것도 아닙니다. ‘불가설 유계합(不可說 唯契合)’이라, 말할 수 없고 오직 합할 뿐이에요. 이를 방에 비유한다면, 밖에서 문 열고 방을 설명해봐야 방 전체를 설명할 수 없어요. 그저 방 안에 들어오면 됩니다. 턱 앉으면 방이 내가 되고 내가 방이 되는데 이게 바로 계합이고, 증입(證入)입니다. 깨달음은 이처럼 몸소 들어가는 것입니다.

한국불교는 조사선풍(祖師禪風)
한국불교의 주된 경전과 교전은 〈금강·법화·화엄경〉 그리고 〈선어록〉입니다. 그리고 사원은 전체적으로 당으로 형성돼 있습니다. 당은 법당을 의미해요. 이때 법당이 어떻게 배치됐는지를 가람배치라고 해요. 가람배치는 법규와 형식이 있어야 합니다. 대웅전이 있어야 하고, 동탑, 서탑, 다보탑 등을 세우고 하는 규식들이 전부 법화경에 나오는 법도들이에요. 그래서 한국불교의 전통은 〈법화경〉으로 사원 규식을 삼습니다.

사원을 건립했으면 예경의범이 있어야 하는데, 이 예경은 전부 〈화엄경〉입니다. 화엄경교로 우의예경하고, 예경의범을 삼는 것입니다. 예경하면 발심 수행을 할 것 아닙니까? 이때 〈금강경〉으로 수행입문을 삼게 됩니다. 수행의 첫 걸음은 광대한 원력을 가지고 일체중생을 제도해 무여열반에 들겠다는 발심입니다. 〈금강경〉에서는 해탈과 중생교화를 하겠다는 보리심 없이 업적과 성과를 내고자 하는 발심은 인간계 복에 머무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오직 성불과 중생교화만을 위해 공덕을 닦는 것이 발심수행입니다. 그 다음 수행자성 할 때는 조사어록으로 수행을 삼습니다.

〈금강경〉으로 입문, 스스로 성취해 수행의 과덕을 이루게 되면 전부 조사가풍으로 돌아가요. 이것이 바로 한국불교예요. 수행이 점점 완성되고, 원숙하게 되면 조사선풍이라고 내려오는 가풍이 있어요. 조사어록으로 수행자성을 삼는 법풍을 일컬어 조사가풍이라 합니다. 바로 이 조사선 선풍 때문에 한국불교는 법덕이 높아질수록 경만 외면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사원규식이 법화경이요, 예경의범이 화엄경이요, 수행입문이 금강경이요, 수행자성이 조사어록이란 말은 어느 책에도 안 써있어요. 저 혼자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하고 있는 겁니다.

수시지송(隋時持誦) 게송 풀이
전통한국불교 예경의식문 가운데 1935년에 지어진 ‘성문의범’이 이른바 결정판인데, 거의 화엄경으로 형성돼 있어요. 또 조사어록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게 다 한국불교의 법풍(法風)이 의식집에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자료에 실은 다섯 게송을 하나씩 보도록 합시다.


첫 번째 게송은 통도사 사리탑 주련에 붙어있는 게송입니다. 태백산 정암사 자장 스님이 친히 지은 역사가 있는 게송이에요.
만대윤왕삼계주(萬代輪王三界主) - 세월이 흘러도 중생을 깨우치는 법의 주인(부처님)이
쌍림시멸기천추(雙林示滅幾千秋) - 두 나무 수풀서 열반을 보인지 몇 천년이 됐는가
진신사리금유재(眞身舍利今猶在) - 부처님 몸에서 나온 신골사리가 아직도 있으니
보사군생예불휴(普使群生禮不休) - 중생으로 하여금 예경을 그치지 아니하게 하도다.


두 번째 게송입니다. 깨달았다고 해서 자랑할 게 아닙니다. 깨우치는 것은 할 일을 당연하게 하는 것입니다. 전법도생으로 부처님 은혜를 갚는 것이 불교가 추구해 가야할 길입니다.
불신보변시방중(佛身普遍十方中) - 부처님 지혜의 몸이 온 시방에 널리 두루하니
삼세여래일체동(三世如來一體同) - 과거, 현재, 미래의 여래 지신(知身)이 일체 똑같다
광대원운항부진(廣大願雲恒不盡) - 부처님에겐 시방 가득한 서원의 세계가 다함이 없고
왕양각해묘난궁(汪洋覺海渺難窮) - 넓고 넓은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 아득하고 끝이 없네.


세 번째 게송은 불상 점안의식 게송입니다. 마지막으로 불상 눈동자를 그려넣는 것이 화엄경과 다르지 않아요. 깨달음에 다다르면 전부 계합할 뿐입니다. 그래서 한국 부처님은 모두 화엄경 부처님입니다.
전단목주중생상(?檀木做衆生像) - 향나무로 중생의 형상을 만들고
급여여래보살형(及與如來菩薩形) - 또 여래와 보살의 형상도 만든다네.
만면천두수각이(萬面千頭雖各異) - 만 얼굴과 천 개 머리가 비록 다 달라도,
약문훈기일반향
(若聞薰氣一般香) - 향을 맡아보면 모두가 똑같은 전단향이네.


네 번째는 화엄경 수미정상게찬품 제14에 있는 게송입니다. 어둠 속은 오온 즉, 중생의 마음을 뜻해요. 중생의 오온 속에 청정불성이 꽉 차있다는 뜻이에요.
비여암중보(譬如暗中寶) - 비유하건대 어둠 속 보배가 있는데
무등불가견(無燈不可見) - 등불이 없으면 볼 수 없는 것과 같아서
불법무인설(佛法無人說) - 불법도 말하는 사람이 없으면
수혜막능요(雖慧莫能了) - 비록 영리한 지혜를 가졌더라도 알 수 없다.


다섯번째는 마음공부를 하는 근본 게송입니다. 스스로의 근기가 감당하는 것에 따른다는 말은 자기 마음에 의해 중생도, 보살도, 여래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망상만 쉬면 바로 부처인데, 망상을 일으켜서 중생인 겁니다.
불시중생심리불(佛是衆生心裏佛) - 불이란 것은 중생 마음 속 부처요.
수자근감무이물(隨自根堪無異物) - 스스로 근기의 감당함을 따를 뿐 다른 것이 아니다
욕지일체제불원(欲知一切諸佛源) - 제불이 나온 근원을 알고자 할진데
오자무명본시불(悟自無明本是佛) - 자기 무명의 망상집착이 본래 부처인줄 알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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