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行二人, 코보대사 발자취 쫓는 도보 순례

시코쿠 순례자들이 전도를 펴놓고 순례 일정을 살피고 있다.

종교적 순례 의미 되새기며
신앙을 가진 많은 종교인이라면 한 번쯤 나서게 되는 성지순례. 세계 종교로 꼽히는 불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모두서 찾아볼 수 있는 이 종교적 여행은 신자들에게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어 보편화 돼 있다. 

예를 들어 가톨릭 교회에서는 25년에 한 번씩 희년(禧年; Iobeleus)을 두어 로마를 순례할 것을 권한다. 이 기간 동안 로마 전체서 다양한 종교 축제가 열려 많은 순례자와 관광객들이 이 곳으로 몰려든다. 또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힐링과 레저를 위한 순례로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이슬람교의 경우도 마카(Makkah)를 순례하는 것을 신자의 의무(Haji)로 삼고 있다.

이렇게 성지순례가 성행하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성지를 참배한다는 종교적인 측면과 여행이라는 내용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일상서 벗어난 자유로움과 새로운 체험 속에서 종교적인 성스러움과 만나는 것은 순례자의 육체와 정신에 새로운 힘을 얻게 해준다.

그렇다면 불교는 어떠할까? 초기경전인 <디가니까야>에서는 부처님께서 직접 탄생과 성도, 초전법륜, 열반이 이루어진 4대 성지를 순례하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불교역시 아주 이른 시기부터 성지를 순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중·일 삼국이 속한 동북아시아에서도 성지순례는 중요한 신행 활동의 하나로 출재가를 불문하고 유행했다.

일본 고승 엔닌(円仁)스님이 남긴 <입당구법순례행기>를 보면 문수 성지인 중국 오대산 가는 길가에 순례자들이 묵을 수 있는 집이나, 식사를 보시하는 곳이 있었다는 기록을 보아 당시에도 순례가 매우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근현대에 들어 교통이 발달하면서 해외 성지순례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특히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동남아를 대상으로 하는 성지순례가 인기가 많다. 그러나 대부분 이런 해외 성지 순례로는 관광을 겸한 순례가 해외 순례의 큰 목적으로 꼽히긴 하지만, ‘성지순례’를 명분으로 걸고 있는 이상 신심의 증장이나 자기 성찰이 조금이라도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실제 해외순례를 다녀온 많은 불자들이 종교적인 충만감을 느끼고 돌아오는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된다.

인도의 사상가 간디는 히말라야의 어느 힌두 성지에 차가 다니는 도로가 놓인다는 소식을 듣고 강력히 반대 했다고 한다. 신을 만나러 가는 길에 어떤 고행이나 난행이 없이는 깨닫는 게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기에 지금도 많은 힌두 수행자들은 걸어서 순례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불교에서도 난행고행의 순례로 불보살의 가피를 입었다는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근현대 중국 고승 쉬윈(虛雲, 1840~1959) 대사는 부모님 은혜를 갚기 위해 삼보일배로 오대산을 순례했다. 당장에 우리가 그러한 큰 신심과 원력을 갖고 똑같이 순례하기는 어렵지만, 직접 발로 밟으며 신심을 다질 수 있는 보석 같은 순례길이 있다.

코보대사 수행로 걷는 시코쿠의 길
흰 소복·삿갓 착용, 지팡이 의지해
1200km·88개 사찰을 도보로 순례

2011년 첫 순례 후 3번 더 완주해
유구한 역사의 시코쿠 순례 전합니다

코보대사 수행로 걷는 시코쿠 순례
최근 불교 순례길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시코쿠(四國)다. 이 이름은 옛날 이 섬이 4개의 쿠니(國)로 이뤄진 것에서 유래한다. 쿠니란 고대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존재한 일본의 행정구역을 말한다. 시코쿠에는 아와(阿波)·토사(土佐)·이요(伊予)·사누키(?岐)의 네 쿠니가 있었고, 현재는 각각 도쿠시마(德島)·고치(高知)·에히메(愛媛)·카가와(香川)의 네 현이 되었다. 시코쿠는 일본을 이루는 주요한 4개의 섬(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큐슈)중 하나이지만 이렇다 할 공업이 발달 된 것도 없고, 다른 주요 섬들에 비하면 발전이 더딘 지역이다.

하지만 예로부터 시코쿠란 이름은 성스러운 땅으로 그 이름이 높았다. 서일본 최고봉인 이시츠치산(石鎚山, 1982m), 츠루기산(山, 1955m)과 같은 영산(靈山)들과 태평양과 직접 맞닿은 해변의 절벽은 수행자들의 고행처로 사용됐다. 더더욱 시코쿠는 일본 불교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 코보대사 쿠카이(弘法大師 空海·774~835)가 태어난 땅이다. 이 코보대사가 수행한 자리에 세워진 절들을 일주하는 순례가 바로 ‘시코쿠 88개소(四國八十八カ所)’이다. 약 1200km의 순례길로 모두 1번부터 88번까지 번호가 매겨진 사찰로 이루어져 있는 이 순례는, 각 현에 맞춰 발심·수행·보리·열반의 도량으로 불리며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예로부터 이 시코쿠를 찾아오는 순례자들은 시코쿠를 두루 돈다는 뜻에서 ‘오헨로상(お遍路さん)’, 혹은 시코쿠를 순례하는 사람이란 뜻의 ‘오시코쿠상(お四國さん)’이라고 불렸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시코쿠 순례에 나선 이들은 모두 ‘하얀 소복에 삿갓과 지팡이’라는 복장을 갖춘다. 일본에서 전통적으로 이 복장은 수의, 즉 사자(死者)의 복장이다.

왜 불보살을 찾아뵙는 순례에 사자의 옷을 입는 것일까? 전통적으로 이에 대해서는 ‘새로운 탄생을 위한 죽음’이라고 설명된다. 순례를 하는 동안 순례자는 죽은 이로써 자신의 업장을 참회하고 그간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순례자들은 마지막 88번 사찰에서 흰 옷과 지팡이를 내려놓으면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탄생을 위한 시코쿠 순례를 돌기 위해 현재는 연간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코쿠 순례를 위해 섬을 찾아온다.

시코쿠 순례길 전도. 카가와·에히메·코치·토쿠시마 네 곳의 지역에 걸쳐 88개 도량을 순례하는 것이 ‘시코쿠 순례’의 핵심이다.

시코쿠 순례길 만든 쿠카이
순례길을 만들었다고 전하는 코보대사 쿠카이는 일본불교사는 물론 동북아시아 불교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어느 불교학자는 “중국서 정체된 불교의 담론은 일본으로 건너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으라면, 쿠카이와 신란”이라고 할 정도로 그의 사상적·수행적인 업적은 어마어마하다.

코보대사는 774년 지금의 카가와현 젠츠지시의 75번 사찰 젠츠지(善通寺)서 지방호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는 유학을 배웠으나 불도에 뜻을 두고 돌연 스스로 출가하여 유명한 산과 바닷가를 돌며 수행하였다. 시코쿠 순례길 위의 사찰과 관련된 수행지들은 대부분은 이때 시작되었다고 한다.

20세가 되던 해 나라의 허가를 받아 정식으로 출가해 수행을 이었지만, 당시 일본의 불교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804년, 당으로 유학을 떠나 당시 진언종의 7대 조사인 혜과(惠果)를 만나 모든 법을 전해 받고 진언종의 8대 조사가 되는데, 이때 신라의 유학승들과도 교류가 있었다고 전한다. 실제 진언종의 계보에서 코보대사는 <왕오천축국전>으로 유명한 신라의 혜초 스님의 조카뻘이 되고 코보대사 스스로 남긴 기록 중에도 신라의 승려들과 만난 기록들이 보인다. 명확한 사료적 입증이 부족하지만, 쿠보대사의 외가가 백제계 도래인이라는 설도 존재하니 한국과의 인연이 돈독한 스님이다.

810년 일본조정으로부터 진언종의 포교를 인가받아 널리 포교하였고 또 이 기간에 다시금 시코쿠를 방문하여 사찰들을 건립하고 저수지등을 만드는 등 민중을 구제하는 활동을 하였다. 시코쿠 순례에서는 순례길의 시작을 이 시기로 소급하기에 그 역사를 1200년이 넘는 것으로 잡게 된다.

816년에 진언종의 근본도량으로 고야산(高野山)을, 823년엔 사가천황으로부터 교토의 토지(東寺)를 하사받아 진언종의 가르침을 더욱 널리 펴다가 835년. 고야산에서 7일간 명상에 들어앉은 채로 열반에 들었다.

제자들은 코보대사의 법구를 화장하지 않고 고야산의 석실(石室)에 모셨는데, 후에 소식을 늦게 듣고 온 제자가 석실을 열어 보자 머리카락이 자라있고, 얼굴에 혈색이 돌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일본에서는 “코보대사는 입적에 드신 것이 아니고, 미륵보살이 도래할 때 까지 깊은 선정에 들어 계신다”는 신앙이 생겨났다. 현재 그 석실은 고야산서 가장 성지로 불리는 오쿠노안(奧之院)이 되어있다.

이제 떠납니다. 시코쿠 순례!
필자가 처음 시코쿠 순례를 나서게 된 것은 지난 2011년의 여름이었다. 산티아고 순례를 위해 자료를 찾던 중 우연히 일본에 불교 순례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본어에 대한 자신도 있었고, 불자로서 이왕이면 불교의 순례를 나서자는 마음에 시코쿠 순례를 덜컥 결정해 버렸다.

당시 시코쿠 순례는 국내에 자료가 거의 없었다. 유명 여행작가 김남희 씨가 연재한 순례기와, 다른 작가분이 출판한 순례기가 전부였다. 그러나 그 내용은 대부분 개인적인 경험과 순례에 대한 감상이었고 정작 필요한 실용적인 자료는 드물었다. 결국 일본 순례자들이 올린 순례기와 정보들을 참조하여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순례를 준비하면서 지금은 입적하신 13번 사찰의 前주지 오쿠리 코에이 스님이 하신 “불연(佛緣)이 있는 분들은 생에 한번 순례자가 됩니다”라는 말을 보게 되었다. 순례를 준비하는 한사람의
불자로서 가슴이 뛰는 말이었다. 또 정년퇴임 후 순례길을 걸은 한 일본인 순례자의 말도 순례에 대한 감정을 고무시켰다.

“시코쿠 순례길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코보대사가 일체 중생들을 위해 아직도 순례를 하고 있다고. 그렇기에 시코쿠 순례길에서는 그 누구라도 한 번은 (코보)대사님의 화신을 뵙게 된다고. 나는 적어도 한 번은 뵌 것 같다고 확신한다.”

그렇게 떠난 첫 순례는 지금껏 해왔던 모든 순례를 모두 잊게 하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경비를 아껴보자고 노숙하며 미숫가루를 먹던 기억, 작열하는 태양과 몰아닥치는 태풍들. 순례 중에 만난 감사한 인연들은 나를 시코쿠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2012·2013년 그리고 2015년에 다시 완주를 하게 되었다. 워낙 순례를 가다보니 아예 내가 일본에 건너가 사는 것으로 아는 지인도 있었다. 왜 계속해서 이렇게 시코쿠 순례를 나서게 되는 것일까? 당장 일본 현지에서도 이렇게 계속해서 순례에 나서는 것을 ‘시코쿠병’혹은 ‘버릇’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시코쿠 순례에는 엄청난 매력이 있다.

시코쿠 순례를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말은 ‘동행이인(同行二人)’이다. 홀로 걷더라도 내 곁에는 코보대사가 함께 한다는 뜻이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아름다운 시코쿠 순례길. 순례를 통해 불자로서 배우고 느낀 점을 이제 하나씩 펼쳐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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