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희망씨앗 월드웨어 프리마켓 자원봉사자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에 옮기며 부처님의 말씀을 지켜나가는 이들이 있다. ‘NGO 희망씨앗 월드웨어 프리마켓’ 자원봉사자들이다. 왼쪽부터 백영애 대표, 유신자, 장선교, 김남희, 강문자 회원.

NGO 희망씨앗 월드웨어
티베트 난민 돕기 위해 창립
헌 옷 보내 창업 일자리 창출
범국 스님 SNS로 희망씨앗 알려
배송비 마련 프리마켓 개장
국내 취약계층 지원금 후원
티베트 유학생 장학금 지급
상생공동체협동조합으로 도약

희망씨앗 자원봉사 도반들
봉사가 삶의 우선순위로
봉사는 남 아닌 자신 돕는 일"
도시락 챙기며 도반들 격려
넉넉한 도반의 마음에서
부처님의 마음 배워요"
프리마켓은 '보시바라밀' 장터
채식도시락 사업 위해 대만 유학

더불어 사는 삶, 이 시대를 사는 인류에게 그 무엇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이 아닐까. 부처님의 말씀 역시 그것을 위한 가르침일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알고 있지만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 이 시대의 어려움일 것이다. 결국 더불어 산다는 것은 서로를 살피는 것이고, 살피다보면 서로를 돕게 되고, 종국엔 함께 행복해지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런 삶이 늘어나는 만큼 세상은 정토에 가까워지리라. 그렇게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에 옮기며 부처님의 말씀을 지켜나가는 이들이 있다. ‘NGO 희망씨앗 월드웨어 프리마켓(이하, 희망씨앗)’ 자원봉사자들이다. 평범한 주부, 피아노 학원 원장, 교사였던 그들은 어려운 이 시대를 위해 한 사람 한 사람과 더불어 살고 있다. 울산 서장사에서 법향 가득한 도반들을 만났다.

‘희망씨앗’을 설립한 범국 스님(사진 왼쪽)이 2017년 8월 울산 길상사에서 티베트 스님과 유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봉사에 눈 뜨다희망씨앗

희망씨앗불사는 현재 희망씨앗을 이끌고 있는 범국 스님(울산 서장사 주지)이 인도 내 티베트 난민들을 걱정하면서 시작됐다.

범국 스님은 2012~2014년까지 인도 다람살라 사라대학에서 공부했다. 그 때, 인도에는 티베트 난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의 삶은 대부분 힘겨웠다. 범국 스님은 그들의 삶을 곁에서 보게 되었고, 그 가운데에서도 청년들에게 마음이 쓰였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미래가 불투명했다. 범국 스님은 그들을 돕고 싶었다. 당시 범국 스님의 삶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었다. 인연은 그렇게 서로에게 다가가고 다가오는 것일까. 범국 스님이 고민 속에 있을 때 우연히 스님은 한국에서 의류를 기증받게 됐다. 티베트 난민 청년들을 돕기 위해 고민하고 있던 스님은 기증 받은 옷들을 그들에게 보시했다. 스님은 한국에서 온 옷을 입고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발원했다. 단순히 그들에게 일상에서 입을 헌 옷을 보시하는 게 아니라 생계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판매용 의류를 보내주는 것이었다. 희망씨앗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014년 한국으로 돌아온 범국 스님은 경주에 큰마음 절을 열고 포교와 원력의 실천을 시작했다. 스님은 인도에서 겪었던 일을 대중에게 들려주며 마음에 품고 있었던 희망씨앗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스님의 설법에 대중은 하나 둘, 마음을 내기 시작했다.

경주 성건동에 문을 연 큰마음 절에서 범국 스님이 희망씨앗을 시작하겠다고 하셨어요. 스님은 법인 인가 서류를 준비하고 사람들에게 도장도 받으셨죠. 그 때 저도 도장을 찍고 불사에 동참했어요.”

희망씨앗 자원봉사자 중 맏언니인 강문자(환희심67) 회원이다. 창립 이후 자리를 세 번이나 옮기면서도 변함없이 스님과 함께 희망씨앗의 자리를 지켜온 강 씨다. 그녀는 처음엔 스님의 권유로 자원봉사를 시작했지만 그녀의 봉사는 보시바라밀의 의미를 알아가는 신행과 수행으로 이어졌다. 특히 도반들과 한마음으로 함께 하는 시간들을 통해 서로 가족이 되어가는 것을 느낀 그녀는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범국 스님은 매일 아침 SNS를 통해 인연이 있는 불자들에게 부처님 말씀과 함께 희망씨앗에 대해 전했고, 전국의 불자들은 헌옷과 중고용품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휑한 공간에 헌옷이 들어찼고 정리하기 바빴어요. 청소를 시작했고 필요한 집기류도 설치해야 했어요. 도반들은 청소를 도왔고 헌옷을 분리 정리해 판매를 시작했지요.”

절 한 편에 마련된 프리마켓에선 인도로 보낼 옷들을 모으고, 배송비 마련을 위한 판매도 진행했다. 당시 교사로 근무했던 강 씨는 일을 마치면 어김없이 회원들을 위한 도시락을 싸들고 바로 희망씨앗 프리마켓으로 달려갔다. 강 씨는 주부인 회원들이 도시락을 싸오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회원들이 퇴근하고 난 후에도 강 씨는 남아서 매일 3시간 씩 나머지 일을 해야 했다. 그렇게 강 씨는 도반들과 동고동락했다.

초창기라 일도 많았을 때였는데, 모두들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어요. 많은 이들의 손길이 거쳐 갔어요. 그동안 함께 봉사해 준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희망씨앗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이젠 초창기 멤버는 지금 저와 김남희 씨가 남았어요. 진심으로 함께 해줬던 모든 이들에게 감사합니다.”

강 씨 건너편에서 김남희(명심화·47) 씨가 밝게 웃고 있다. 현재 그녀는 채식 요리를 배우기 위해 대만에서 유학 중이다. 가족들과 떨어져 1년 간 공부를 하고 잠시 한국에 들렀다. 다행히 대만에서 진행하는 불교 캠프가 늦춰져 출국일이 지연됐고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었다. 김 씨가 늦은 나이에 대만 유학까지 하게 된 것은 희망씨앗 때문이다. 희망씨앗이 마을기업을 통해 새롭게 시작하는 채식 도시락 사업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김 씨는 처음 불교 기초교리를 가르쳐준다는 현수막을 보고 큰마음 절을 찾았다. 그 후 봉사를 통해 삶의 전환점을 맞았다. 평범한 주부로 11녀를 키우며 살고 있는 김 씨는 마지막 죽음의 순간이 왔을 때, 지난날을 돌이켜 본다면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김 씨는 봉사를 통해 개인을 위한 삶이 대중을 위한 삶으로 바뀌고 나눔과 봉사를 통해 넓어진 자신을 경험했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은 손해가 아닙니다. 그들을 위해 마음을 쓴 만큼 제 자신도 특별해지고 커집니다. 20대는 다른 이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시간을 보냈고 30대는 가정에서 육아에 전념했어요. 40대 중반에 들어서 부처님 법을 만난 후 제가 죽을 때를 생각해봤죠. 그 때 자신 있게 후회 없는 삶이라 말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 씨는 헌옷이 도착하면 정리해 포장하는 일을 담당했다. 처음엔 해운 콘테이너 박스로 크게 담아 다람살라로 보내려 했으나 인도세관에서 판매 수익사업으로 의심해 무산됐다. 그래서 우체국 택배 박스로 다시 일일이 포장을 해야 했다.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한 해운운송은 가격도 저렴하고 편리했지만 사용할 수가 없었다. 우편으로 보내기 위해선 포장을 단단히 해야 했고 비닐로 두세 번 재포장을 해야 했다. 그리고 비싼 운송비가 또 다른 문제였다. 우체국 박스는 20kg 이상 담을 수도 없었고 해외 배송을 하려면 5박스에 100만 원 정도가 필요했다. 모아서 정리 한 옷이 20박스가 넘을 땐 비용 부담이 너무 커졌다. 희망씨앗은 프리마켓을 통해 직접 옷을 판매하는 것으로 배송비를 마련했다. 그리고 난민 학생을 위한 장학금, 국내 취약 계층을 위한 후원까지 나섰다. 희망씨앗은 매년 장학금 800만원, 취약계층 후원 지원금 600만원, 티벳 난민들이 운영하는 노인 요양원에 1000만원 상당의 후원금과 물품을 지원하고 있다.

일은 점점 더 많아지고 힘든 일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김 씨는 봉사를 그만두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김 씨의 삶에서 우선순위가 바뀐 것이다. 삶의 우선순위가 바뀐 김 씨로서는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수익금의 사용처를 알기에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스님 원력의 깊은 뜻과 의미를 알기에 그만 둘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달라진 제 삶이 그 길을 가게 하는 것입니다. 대만으로 유학을 가는 것도 처음엔 남편이 설마 가겠어?’란 의구심으로 바라보더군요. 그러나 지금은 저를 응원하는 든든한 우군으로, 학비까지 보태주고 있습니다.”

인도 다람살라에 거주하는 티베트 난민들이 ‘희망씨앗’에서 보낸 의류로 장터를 열고 있다.

 

희망씨앗, 행복나무로 발돋움

20178월 경주 큰마음 절은 울산으로 자리를 옮기고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길상사 1층에 새롭게 문을 연 희망씨앗 프리마켓은 더욱 활기를 띄었다. 강문자, 김남희 회원은 기차를 타고 울산까지 다니며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새로운 도반들이 동참하기 시작했다. 울산 지역의 도반들이 힘을 보탰다. 그들 역시 봉사를 통해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실천을 이어가면서 자신들의 삶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우리들이 살아온 삶의 방식이 얼마나 이기적인 삶에 가까웠는지 알게 되었고, 하루하루 이타행을 쌓으며 함께라는 말의 진정한 뜻을 알게 됐다고 했다.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은 당시의 저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울산에서 새롭게 합류한 백영애(정진화48) 회원이다. 그는 쉽지 않은 그 상황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했다.

자세한 설명은 어렵지만, 봉사를 위해 나갈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저에게 지금은 봉사를 할 때가 아니다고 했지요. 그 때 마다 저는 마음이 흔들렸고요. 하지만 이제는 확실히 마음을 굳혔습니다. 봉사는 편안할 때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백씨에겐 봉사가 곧 기도가 됐다. 현재 그녀는 희망씨앗 대표를 맡고 있다. 그녀는 자신은 대표직을 맡을 그릇이 아니지만 믿음으로 밀어주고 함께 해주는 도반들이 있기에 감당할 수 있었다며 웃었다. 백씨는 함께 봉사하는 도반들의 넉넉한 마음씨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힘든 상황에 마음이 무거워질 때마다 도반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살아갈 힘이 됐다. 백 씨가 겪고 있던 힘든 상황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봉사와 그 일을 함께 한 도반들의 향기가 백 씨의 삶에 관여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백 씨가 곁에서 미소 짓고 있는 유신자(53) 회원과 장선교(선연지50) 회원을 바라보며 많은 것을 가르쳐 준, 고마운 도반들입니다.”고 했다.

장 씨는 커피봉사를 담당한다. 봉사이기에 더욱 전문성을 갖추고자 동국대 경주 캠퍼스에서 전문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다. 장씨는 봉사이니까 더욱 진실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격증을 취득했다프리마켓에 찾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제대로 된 차를 대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말했다.

유 씨는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봉사를 통해 새로운 경제관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천 원 이천 원 하는, 저렴한 물건을 사면서도 굳이 값을 깎아 달라는 사람이 있더군요. 그 순간 세상의 경제관에 맞춰진 제 마음이 습관처럼 나오면서 언짢아졌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때, 여기 희망씨앗 프리마켓은 세상과는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는 곳이란 걸 깨달았어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함께 행복한 삶을 위해 스스로 낮아져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희망씨앗이 되는 것, 희망씨앗 프리마켓의 또 다른 존재 이유입니다.”

2017년 9월, 범국 스님이 티베트 난민들이 운영하는 노인요양원에 물품과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상생공동체협동조합으로 성장

길상사는 올해 5월 울산 북구 천곡동으로 자리를 옮기고 서장사로 이름을 바꿨다. 길상사로 이전 한 지 일 년 만에 이룬 중창 불사이다.

희망씨앗은 서장사 바로 옆에 상생공동체협동조합으로 새롭게 문을 열 계획이다. 채식 도시락을 판매하는 마을기업을 만들어 국내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또한 티베트 난민들이 제작한 불교용품 판매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플라스틱 및 비닐 사용을 자제하고 친환경 사업 모델을 제시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새로운 불사를 위해 희망씨앗 봉사자 도반들이 새롭게 마음을 준비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난 다음 날, 아침 일찍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희망씨앗 프리마켓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들이 보낸 문자에는 그동안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혹시라도 그들의 노력이 글에서 빠질까 걱정이 앞서 서둘러 보낸 흔적이 역력했다. 매실과 파인애플 식초를 직접 만들어 보시금 조성에 동참한 공양주, 가족봉사단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 봉사하기 위해 찾아오는 류현희 불자, 배달을 맡은 현월 법사 등 모두 적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법명과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도움을 준 모든 이에게 감사 인사를 꼭 하고 싶다는 당부도 거듭 반복했다. 전국에 이름 없이 헌옷 보내기에 동참한 불자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동참자들이 그들에겐 희망씨앗이었다. 행복나무로 자라 부처님의 숲을 이룰 씨앗들인 것이다.
 

NGO 희망씨앗 월드웨어는?

20145, 티베트 난민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시작됐다. 프리마켓을 운영해 국내 헌옷 및 생활중고 용품을 모아 인도 다람살라에 보내 창업과 일자리 만들기에 앞장섰고, 국내 중고 용품 판매로 취약계층 후원, 장학금 지급, 티베트 난민 노인요양원을 후원했다. 올해 5, 상생공동체협동조합 법인 인가를 받았으며, 채식 도시락 사업을 위한 마을기업을 운영해 국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을 줄 계획이다. 아울러 티베트 불교 용품 판매 활동을 펼쳐 티베트 난민 후원 활동도 이어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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