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사형수 노동춘

도둑으로 오해한 친구 살인
한국 최초 토막 살인범 추정
밥알로 인형 만들며 참회

1972년 성탄절이었다. 대구교도소에서 만난 사형수 노동춘으로부터 돼지인형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노 씨는 가톨릭에 귀의한 사형수였기 때문에 특별히 대화를 많이 나눈 사이는 아니었다. 그가 나에게 선물한 돼지인형은 노 씨가 교도소 안에서 밥알을 이용해 정성스럽게 만든 인형이었다. “사형수 교화를 위해 수고가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이 뵙지는 못했지만 사형수인 저로서는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별 것 아니지만 정성으로 받아주세요”라면서 인형을 건네는 그의 표정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초등학생 같았다. 그런 그의 표정을 보고나니, 노 씨의 죄목이 궁금해졌다. “이렇게 아이 같은 얼굴을 한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은 것일까” 나는 교도관을 통해 그의 죄목을 알았을 때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국 최초의 토막살인범이었다. 그의 죄목을 알고 난 나는 노 씨를 다시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노 씨의 표정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그는 매일 참회하는 마음으로 자기에게 배식된 밥에서 3분의 1가량을 따로 떼어 코끼리ㆍ돼지ㆍ아기인형ㆍ성모마리아상 등 밥풀공작 인형을 만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인형들을 자신을 위해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늘 음식에 대한 부족함으로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는 것으로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있었다. 노 씨의 그런 노력은 한 인간을 잔인하게 살해한 자신의 죄를 조금이나마 참회하고 용서받기 위한 마지막 몸짓이었다.

손목시계가 빌미가 되어 결국 사람을 죽게하고 사형집행을 받은 노동춘(사진 왼쪽).

노 씨는 경북 울진에서 시계 수리공으로 일하며 살고 있었다. 어릴 때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심하게 절게 된 노 씨는 일찍이 생업을 위해 시계 수리 기술을 익혔다. 어느 날, 친목계원인 한 친구가 자기 아내의 결혼 예물시계가 고장이 났다며 수리를 부탁해왔다. 노 씨는 정성껏 수리를 마친 후 잘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노 씨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시계방 주인과 크게 싸우고 일을 그만 두게 되었다. 노 씨는 이 번 기회에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에 대구로 이사를 했다. 하지만 노 씨는 새로운 일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갔고, 노 씨는 점점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노 씨는 할 수 없이 이삿짐에 묻어온 친구의 시계를 팔았다. 운명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노 씨는 2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대구역 앞에서 시계를 맡겼던 그 친구를 만나게 됐다. 노 씨는 반가운 마음에 오랜 만에 만난 친구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그럴 수 없었다. 친구는 “도둑놈! 이 날강도!”라며 노 씨의 멱살을 쥐었고, 욕설을 퍼부었다. 노 씨는 그간의 사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친구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노 씨는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가 술 한 잔을 하면서 다시 차분하게 사정 얘기를 했다. 그리고 곧 형편이 나아지는 대로 빚진 시계 값을 갚겠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는 여전히 노 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신고를 하겠다며 노 씨의 말을 듣지 않았다. 친구는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노 씨에게 “병신 주제에 도둑질까지 해!”라며 고함을 쳤다. 어려서부터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온 노 씨였다. 다른 사람들과 달랐던 다리는 노 씨에게 늘 아픔이었다. ‘병신’이라는 말에 노 씨는 이성을 잃었다. ‘병신’이라는 말은 노 씨에게는 흉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노 씨가 느낀 모멸감과 분노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세 치 혀가 휘두른 그 말은 칼보다 무서운 것이었다. 이성을 잃고 분노한 노 씨는 얼떨결에 책상 위에 있던 시계수리용 망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친구의 머리를 내리치고 말았다. 친구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노 씨는 자신이 벌인 일을 믿을 수 없었다. 무섭기도 했다. 노 씨는 어떻게든 자신의 범행을 감추고 싶었다. 노 씨는 자신의 범행을 숨기기 위해 친구의 시신을 토막 냈고, 토막 낸 시신을 시멘트 포장지에 넣어 대구 북쪽에 있는 배자못에 버렸다.

사건 발생 7일 만에 노 씨는 체포되었다. 체포된 노 씨의 왜소하고 온화한 얼굴에 경찰들조차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저히 ‘토막살인’이라는 끔찍한 범행과는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 노 씨였다. 노 씨는 후회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한 순간의 실수가 그야말로 인생 전체를 뒤바꿔놓고 말았다.

사형이 확정된 후, 노 씨는 곧 가톨릭에 귀의했다. 노 씨를 귀의시킨 마리아수녀는 노 씨를 끝까지 보살폈다. 노 씨는 자기 손에 귀한 생명을 빼앗긴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자신의 죄를 참회하기 위해 진실한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노 씨에게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노 씨의 사형이 집행됐다. 마리아 수녀가 집행장에 입회했다. 마리아 수녀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수녀님 울지 마세요. 제가 먼저 천주님 곁으로 갑니다. 그 동안 저를 위해 애써주셨는데, 보답도 못하고 이렇게 떠납니다.”

노 씨의 사형이 집행되고 3일 후에 나는 마리아 수녀를 통해 그의 소식을 들었다. 나는 노 씨가 내게 준 돼지인형을 바라보면서 노 씨가 꼭 이 땅의 죄업을 씻고 다음 생에 다시 이 땅에 다시 태어나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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