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말 한 마디가 부른 살인
사소한 말 한 마디가 부른 살인
  • 정리=박재완 기자
  • 승인 2018.07.07 17: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⑬ 사형수 노동춘

도둑으로 오해한 친구 살인
한국 최초 토막 살인범 추정
밥알로 인형 만들며 참회

1972년 성탄절이었다. 대구교도소에서 만난 사형수 노동춘으로부터 돼지인형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노 씨는 가톨릭에 귀의한 사형수였기 때문에 특별히 대화를 많이 나눈 사이는 아니었다. 그가 나에게 선물한 돼지인형은 노 씨가 교도소 안에서 밥알을 이용해 정성스럽게 만든 인형이었다. “사형수 교화를 위해 수고가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이 뵙지는 못했지만 사형수인 저로서는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별 것 아니지만 정성으로 받아주세요”라면서 인형을 건네는 그의 표정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초등학생 같았다. 그런 그의 표정을 보고나니, 노 씨의 죄목이 궁금해졌다. “이렇게 아이 같은 얼굴을 한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은 것일까” 나는 교도관을 통해 그의 죄목을 알았을 때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국 최초의 토막살인범이었다. 그의 죄목을 알고 난 나는 노 씨를 다시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노 씨의 표정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그는 매일 참회하는 마음으로 자기에게 배식된 밥에서 3분의 1가량을 따로 떼어 코끼리ㆍ돼지ㆍ아기인형ㆍ성모마리아상 등 밥풀공작 인형을 만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인형들을 자신을 위해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늘 음식에 대한 부족함으로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는 것으로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있었다. 노 씨의 그런 노력은 한 인간을 잔인하게 살해한 자신의 죄를 조금이나마 참회하고 용서받기 위한 마지막 몸짓이었다.

손목시계가 빌미가 되어 결국 사람을 죽게하고 사형집행을 받은 노동춘(사진 왼쪽).
손목시계가 빌미가 되어 결국 사람을 죽게하고 사형집행을 받은 노동춘(사진 왼쪽).

노 씨는 경북 울진에서 시계 수리공으로 일하며 살고 있었다. 어릴 때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심하게 절게 된 노 씨는 일찍이 생업을 위해 시계 수리 기술을 익혔다. 어느 날, 친목계원인 한 친구가 자기 아내의 결혼 예물시계가 고장이 났다며 수리를 부탁해왔다. 노 씨는 정성껏 수리를 마친 후 잘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노 씨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시계방 주인과 크게 싸우고 일을 그만 두게 되었다. 노 씨는 이 번 기회에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에 대구로 이사를 했다. 하지만 노 씨는 새로운 일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갔고, 노 씨는 점점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노 씨는 할 수 없이 이삿짐에 묻어온 친구의 시계를 팔았다. 운명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노 씨는 2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대구역 앞에서 시계를 맡겼던 그 친구를 만나게 됐다. 노 씨는 반가운 마음에 오랜 만에 만난 친구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그럴 수 없었다. 친구는 “도둑놈! 이 날강도!”라며 노 씨의 멱살을 쥐었고, 욕설을 퍼부었다. 노 씨는 그간의 사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친구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노 씨는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가 술 한 잔을 하면서 다시 차분하게 사정 얘기를 했다. 그리고 곧 형편이 나아지는 대로 빚진 시계 값을 갚겠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는 여전히 노 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신고를 하겠다며 노 씨의 말을 듣지 않았다. 친구는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노 씨에게 “병신 주제에 도둑질까지 해!”라며 고함을 쳤다. 어려서부터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온 노 씨였다. 다른 사람들과 달랐던 다리는 노 씨에게 늘 아픔이었다. ‘병신’이라는 말에 노 씨는 이성을 잃었다. ‘병신’이라는 말은 노 씨에게는 흉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노 씨가 느낀 모멸감과 분노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세 치 혀가 휘두른 그 말은 칼보다 무서운 것이었다. 이성을 잃고 분노한 노 씨는 얼떨결에 책상 위에 있던 시계수리용 망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친구의 머리를 내리치고 말았다. 친구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노 씨는 자신이 벌인 일을 믿을 수 없었다. 무섭기도 했다. 노 씨는 어떻게든 자신의 범행을 감추고 싶었다. 노 씨는 자신의 범행을 숨기기 위해 친구의 시신을 토막 냈고, 토막 낸 시신을 시멘트 포장지에 넣어 대구 북쪽에 있는 배자못에 버렸다.

사건 발생 7일 만에 노 씨는 체포되었다. 체포된 노 씨의 왜소하고 온화한 얼굴에 경찰들조차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저히 ‘토막살인’이라는 끔찍한 범행과는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 노 씨였다. 노 씨는 후회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한 순간의 실수가 그야말로 인생 전체를 뒤바꿔놓고 말았다.

사형이 확정된 후, 노 씨는 곧 가톨릭에 귀의했다. 노 씨를 귀의시킨 마리아수녀는 노 씨를 끝까지 보살폈다. 노 씨는 자기 손에 귀한 생명을 빼앗긴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자신의 죄를 참회하기 위해 진실한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노 씨에게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노 씨의 사형이 집행됐다. 마리아 수녀가 집행장에 입회했다. 마리아 수녀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수녀님 울지 마세요. 제가 먼저 천주님 곁으로 갑니다. 그 동안 저를 위해 애써주셨는데, 보답도 못하고 이렇게 떠납니다.”

노 씨의 사형이 집행되고 3일 후에 나는 마리아 수녀를 통해 그의 소식을 들었다. 나는 노 씨가 내게 준 돼지인형을 바라보면서 노 씨가 꼭 이 땅의 죄업을 씻고 다음 생에 다시 이 땅에 다시 태어나길 기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