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신앙 오롯이 간직한 고찰들

부처님 사리 모신 불보사찰 영축산 영축총림 통도사
 

통도사(通度寺)는 경상남도 양산시 영축산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로 조계종 제15교구본사이다.

통도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사찰(佛寶寺刹)’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통도사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봉안하지 않고 건물 뒷면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해 부처님의 법신(法身)을 상징하는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신라시대에는 계율 근본도량이 되어 수사찰(首寺刹)의 위치에 있었으며, 또 고려를 지나 조선초기에는 나라에서 각 사찰을 기도장소로 지정할 때 수위사찰(首位寺刹)이 되었다. 대한제국 당시 정부에서 관리서(管理署)를 두어 전국 16개 수사찰을 정할 당시 경상남도의 수사찰이 되었고, 또 전국에 본산을 정할 때에도 선교양종대본산(禪敎兩宗大本山)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의상대사·선묘낭자 설화 담긴 도량 영주 봉황산 부석사

부석사(浮石寺)는 경상북도 영주시 봉황산 중턱에 위치한 사찰로서 조계종 16교구에 속한 사찰이다.

부석사는 신라 의상대사(義湘大師)가 676년 중국 당나라 유학 후 돌아와 처음으로 지은 절이다. 사찰 이름을 ‘부석사’라 한 것은 무량수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부른 데서 비롯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의상대사와 선묘(善妙) 낭자의 인연에 얽힌 이야기 또한 전해지고 있다.

부석사는 의상대사가 세운 이른바 ‘화엄 10찰’ 가운데 한 곳으로 예로부터 우리나라 화엄종의 본사로 여겨졌으며, 창건 이래 의상대사의 법을 전하는 제자들에 의해 지켜져 온 중요한 사찰이다.

부석사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무량수전(국보 제18호)과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사당벽화(국보 제46호)는 부석사의 유구한 역사를 일깨워준다.

태화천 잔잔하게 흐르는 물절(水寺) 공주시 태화산 마곡사

조계종 제6교구본사 마곡사(麻谷寺)는 충청남도 공주시 태화산에 자리 잡고 있다.

마곡사가 위치한 곳은 예로부터 동방 제일의 복된 땅(福地)이라 일컬어지던 길지이다. 절 앞에는 태화천이 잔잔히 흐르는데, 조선시대 문인인 이순인(李純仁)은 골짜기의 풍경을 읊은 시에서 마곡사를 ‘물절(水寺)’이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마곡사는 화승(畵僧) 계보로도 유명해 남방화소(南方畵所)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화승을 대대로 배출하였다.

마곡사는 구한말 독립운동가였던 백범 김구와도 깊은 인연이 있다. 명성황후 시해에 참가했던 일본인 장교를 죽인 죄로 옥살이를 하던 중 탈옥한 김구는 마곡사에 숨어지내다가 출가해 원종 스님으로 지냈다. 김구가 지냈던 백범당에는 김구의 사진이 있으며, 대광보전 앞에는 김구가 광복 후에 마곡사 시절을 회상하며 심었다는 향나무가 있다.

부처님 법 머무는 미륵신앙 요람 보은 속리산 법주사

법주사(法住寺)는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에 위치한 조계종 제5교구본사이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법주사는 553년(진흥왕 14)에 의신조사(義信祖師)에 의해 창건됐다. 법주사라는 절 이름은 의신조사가 천축으로 구법여행을 떠났다가 불경을 싣고 돌아와서 머물렀기 때문에 ‘부처님의 법(法)이 머무는(住) 절’이라는 뜻이 법주사라 이름을 지었다.

속리산이라는 산명(山名) 또한 법주사와 연관이 있다. <삼국유사> 권4 ‘관동풍악발연수석기’에 따르면 766년 진표율사가 미륵보살의 계시로 금산사에서 지금의 속리산으로 가던 중 소달구지를 탄 사람을 만났는데, 진표율사 앞에서 우는 소들을 보고 달구지를 탄 사람이 신심을 얻어 입산한 곳이라 하여 ‘세속(俗)을 떠난(離) 산’이라는 뜻의 속리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현재 법주사는 금동미륵대불로 유명한 미륵신앙의 요람으로 사적 제503호로 지정돼 있으며, 속리산 법주사 일원 또한 명승 제61호로 지정돼 있다.

最古 목조 건축물 간직한 고찰 안동 천등산 봉정사
 

봉정사(鳳停寺)는 경상북도 안동시 천등산에 위치한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16교구에 속한다.

봉정사는 안동뿐만 아니라 경상북도의 명소로,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도 손꼽을 만큼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가람을 지니고 있다. 봉정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인 극락전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불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 수련과 휴식 등 현대인들에게 산사의 매력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장소이다.

때문에 예로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과 방문이 있었던 곳인데 고려시대에는 고려 태조(太祖)와 공민왕(恭愍王) 등이 행차하였고, 최근 1999년에는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안동의 전통마을을 방문하면서 봉정사에 들러 우리의 불교 문화의 일단을 살펴보고 갔는데, 이로 인해 봉정사는 세계인의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

많은 고승 배출한 고요한 수행처 순천 조계산 선암사

선암사(仙巖寺)는 호남 명산중의 하나인 조계산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

조계산은 원래 중국에 있는 지명인데, 〈송광사지(松廣寺誌)〉에 의하면 “1209년 고려 희종이 어릴 적부터 존경하던 보조국사가 옛 길상사 터에 수선사(修禪社)를 세우고 정혜결사(定慧結社)를 펼친다는 보고를 받고 기뻐하여 ‘조계산 수선사’라는 편액을 내리고 널리 찬양해 조계산으로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고요한 수행처인 선암사에는 세 가지가 없다. 첫째로는 사천왕문이 없는데, 조계산의 주봉이 장군봉이라 장군이 지켜줄 것이라 따로 호법신인 사천왕상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두 번째는 대웅전에 협시보살상이 없다는 것이다. 대웅전 석가모니불상의 수인은 항마촉지인인데, 마군에게 항복을 받던 그 순간을 나타냈기 때문에 협시보살상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세 번째로는 대웅전 어간문이 없다. 어간문은 깨달은 분만이 통과할 수 있는 중앙문이다. 따라서 사람이 지날 수 없는 문이라 하여 선암사에는 어간문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선암사는 봄이면 피어나는 선암매(천연기념물 제488호)와 진입로의 승선교(보물 제400호) 등 아름다운 문화재로도 유명한 절이다.

서산대사 의발 보관한 호국도량 해남 두륜산 대흥사

조계종 제22교구본사 대흥사(大興寺)는 우리 국토 최남단 전라남도 해남군에 위치한 두륜산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사찰이다.

두륜산(頭崙山)을 대둔산(大芚山)이라 부르기도 했기 때문에 대둔사와 대흥사라는 사찰명 중 몇 번의 개칭이 오고가다 2003년에 대흥사로 명칭을 다시 바꾸었다.

일찍이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으로 만년동안 흐트러지지 않을 땅(萬年不毁之基)”이라 하여 그의 의발(衣鉢)을 이곳에 보관토록 하였다. 이후 대흥사는 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호국도량으로 변모하였고, 13명의 대종사(大宗師)와 13명의 대강사(大講師)가 이곳에서 배출되기도 하였다.

또한, 13대종사 가운데 한 명인 초의선사로 인해 대흥사는 우리나라 차문화(茶文化)의 성지로도 자리매김하게 됐다.

〈사진제공=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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