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떠오른 대체복무제, 불교 역할은?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제 없는 병역법 5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 신설 논의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2000년대 불자들의 양심적 병역 거부 선언이 있던 불교계서 호스피스와 안전요원, 간병인 등 군사훈련이 제외된 대체복무제를 정부에 선도적으로 제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군사훈련 없는 대체복무제
201912월 내 마련 예정
스님·불자 해당될 수 있어

그간 논의 소극적이던 불교
전문가들 의견 수렴 당부
교리적 뒷받침 위한 연구도

헌법재판소는 628일 병역의 종류를 현역·예비역·보충역·병역준비역·전시근로역으로 규정한 병역법 제5조를 내년 1231일까지 개정하라고 결정했다. 이는 대체복무제가 없는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처벌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다.

불교계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오계(五戒) 중 첫째인 불살생계와 맞닿는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짙다. 직접적으로 산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군사훈련이 살생의 기술을 포함하기 때문에 부처님 가르침과 배치된다는 견해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다만 스님과 불자 중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하는 사례가 극히 드물고, ‘호국불교라는 특수한 한국불교의 이미지로 인해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움직임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과거와는 다른 해석을 내놓으면서 불살생의 종교인 불교계부터 살생(殺生)’이 아닌 활생(活生)’의 대체복무제를 논의하자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온다.

불교계가 대체복무제 제안을
2000년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대표를 역임한 효림 스님은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종교를 떠나서 사람 죽이는 훈련을 거부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부여돼야 한다. 단순히 병역을 넘어 엄연한 인권문제라며 이미 10여 년 전부터 사회적 논의를 통해 호스피스나 간병인 등과 같은 대체복무안은 수차례 제시됐다. 불교가 소극적으로 다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앞서 사회에서 논의된 바 있는 대체복무안인 호스피스, 양로원·고아원 봉사활동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구체적 방법 제시와 불교계 입장 정리를 위한 토론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유정길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은 불교계는 사회적 현상에 대한 해석과 논의가 부족하다. 이제는 불자를 비롯한 국민을 계몽할 수 있는 범불교적인 운동이 필요하다대체복무의 가능성이 열린 만큼 군복무에 버금갈 정도로 힘들면서도 생명 살림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대안을 불교계가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견해를 말했다.

김응철 중앙승가대 교수도 앞으로 스님과 재가불자 사이에서 대체복무를 원하는 목소리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김 교수는 그동안은 헌법에서부터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여서 사례가 많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체복무 희망자가 예상되는 불교계서 의견을 모아 정치권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군사훈련이 배제된 대체복무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불살생의 종교인 불교계서는 '활생'의 가치를 담은 대체복무제를 논의하자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온다. 사진출처=PxHere

호국불교’ ‘승군해석 어떻게?
대체복무제 마련에 불교계가 앞장서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견해에도 걸림돌은 있다. 바로 고려시대 항마군(降魔軍)’과 조선시대 승군의 역사다. 이는 승려들이 직접 전쟁터에 나가 무기를 들고 싸운 사례로, 대체복무제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문제제기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복무제 연구와 더불어 호국불교에 대한 교리적·철학적 해석이 뒷받침돼야 함을 강조했다.

불교사회정책연구소장 법응 스님은 임진왜란과 같은 역사적 상황 때문에 불교계서도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딜레마는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각 종단과 시민단체, 학계가 머리를 맞댄 활발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불교는 큰 틀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 유지를 위해 노력해야 함을 잊어선 안 된다고 밝혔다.

2001년 불자로서는 최초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하고 수감생활 한 오태양 씨는 승군의 사례와 대체복무제를 놓고 불교적으로 해석하긴 쉽지 않겠지만, 양심적 병역 거부의 결과가 감옥뿐인 것은 문제라며 원효대사가 군인 신분으로 전쟁에 나갔다가 친구의 죽음을 목도하고 출가했듯이 불교계서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응철 교수는 실제 스님들이 전쟁터에 나간 사례는 임진왜란 정도다. 이는 아주 특별한 상황이라며 역사 속 승군이 살생을 위해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다. 성벽이나 제방을 쌓고, 민초를 위로하는 등 현재 논의하는 대체복무제와 같은 활생의 가치를 가진 일이 더욱 많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또한 불교국가인 대만의 대체복무제도가 활생의 의미를 잘 살리고 있어 검토해볼 만하다는 견해도 덧붙였다. 대만의 대체복무 기간은 4~6개월(현역 4개월)이며, 합숙형태로 근무한다. 신청자는 2년 이상의 신앙생활을 증명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 대면으로도 검증받는다. 복무 분야는 경찰·소방·병원·양로원·공공건물 관리 등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불교계 양심적 병역 거부 선언은 오태양(정토회김도형(대불련) 불자 등 서너 건이 있었다. 오태양 씨는 2004, 김도형 씨는 2006년 병역법 위반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이에 대한불교청년회, 불교인권위원회,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참여불교재가연대 등은 성명을 내고 양심적 병역거부 권리와 대체복무제도가 국제적 기준에 맞게 보편적 기본권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조계종을 비롯한 종단들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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