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 지상중계] “‘죽음’ 아닌 ‘열반’을 준비하자”
[법문 지상중계] “‘죽음’ 아닌 ‘열반’을 준비하자”
  • 정리=김지원 수습기자
  • 승인 2018.06.2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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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백중지장기도 3재 법회…흥교 스님

주제 : 영가천도로 되새기는 생사관

음력 7월 15일은 백중(百中)이다. 이날 불가에서는 스스로 허물을 참회하고 돌아가신 부모형제나 조상의 넋을 기리며 천도재를 지낸다. 금정총림 범어사(주지 경선)는 6월 21일 부산 범어사 설법전서 창원 성주사 회주 흥교 스님을 초청해 백중지장기도 3재 법회를 봉행했다. 스님은 “백중날 오히려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며 “일체중생을 위해 사는 보살로서 죽음이 아닌 열반을 준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흥교 스님은… 1959년 동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60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상원사·범어사·칠불사·만덕사·벽송사 등에서 참선수행을 했다. 범어사·대각사·성주사 주지, 5·6·8·9대 중앙종회의원, 재단법인 대각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종정상, 총무원장상,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흥교 스님은… 1959년 동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60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상원사·범어사·칠불사·만덕사·벽송사 등에서 참선수행을 했다. 범어사·대각사·성주사 주지, 5·6·8·9대 중앙종회의원, 재단법인 대각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종정상, 총무원장상,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영가장애 동력원은 부정적 상념
백중 천도재로 되새기는 生死觀
생사윤회 집착 않는 보살 자세로
열반 향한 진리의 삶 살아야한다

천도하러 여기 오신 여러분에게 오늘은 영가 이야기, 천도 이야기, 돌아가실 때 어떤 마음으로 돌아가셔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영가에 대한 분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떠도는 영혼이 허다하게 많습니다. 인간적인 생을 가지고 살면서 활동하고 또 우리와 교류하고 있는 영혼인 것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영가’란 악령에 의해 우리들 잔상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장애를 이야기합니다. 특히 영혼 외에도 인간이나 동물에 남아있는 상념이 사후에 그 영가와 같이 교류하는 것을 ‘영가가 장애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영가의 장애는 스스로 나쁜 짓을 하지 않습니다. 영가는 원인이 있고, 기회가 있음으로써 우리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이지 스스로 와서 사람들을 괴롭히지는 않습니다.

그럼 영가에 대한 분류를 해보겠습니다. 영가는 공간에 집단적으로 떠돌아다니는 염파, 일반적인 나쁜 상념의 집단 염파, 과거에 전사한 자가 천도되지 않은 염파 즉, 파장이 우리에게 남아있을 수 있어요. 그리고 태아가 천도되지 않는 염파. 그걸 우리가 수자령 영가라고 그러죠? 알고 모르게 이렇게 넘어가는 영가. 인간의 나쁜 영가는 천도되지 않는 이 영가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자살한 영가, 큰 병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원한으로 죽은 영가, 무인(巫人)의 영가, 행방불명으로 떠돌다가 죽은 영가, 이렇게 구분될 수 있습니다.

이런 영가는 천도할 수 있고, 또 왕생극락을 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가들이 결국에 보면 악신, 귀신, 사신, 야차 이렇게 분류가 됩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거나 기도를 할 때 흔히 ‘마장이 끼었다’고 그러지요. 마장 중에서 먼저 지마(地魔)란 것은 토지나 건물이나 부처 간 나쁜 상념이나 혼령을 이야기해요. 토지의 나쁜 염파, 묘지, 사당, 옛터, 전쟁터, 예전에 우물, 하천 이런 곳에 영가가 떠돌다 간 그 파장과 상념이 남아있는 거예요. 지마는 천도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여러분이 경전을 놓고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독경을 해드리면 됩니다. 스님들을 불러서 하면 좋지만 보살님들이 직접 해도 된다는 이야기예요.

그리고 천마(天魔)는 구름이 잔뜩 낀 상태, 여러분들 마음에 조금 밝지 못한 데 천마가 생깁니다. 어둠을 결합해서 커다란 힘을 가진 것으로 하늘을 덮고 검은 구름과 같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천마는 퇴진시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정화시키는 것은 어려워요. 정화를 시키려면 스님들이 한 50, 60명 모여앉아서 하는 의식이 있어요. 우리가 여기서 백중날 하지요? 그때는 이 천마를 정화시킬 수 있는 겁니다.

왜 천마를 정화시키기 어려운가 하면 첫째로, 좋은 기운을 전혀 갖지 않는 나쁜 기운 일색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둘째로, 살아있는 자에게서 시시각각 방대한 나쁜 염파가 생산되어 어두운 공간에 살고 있는 영가에게 에너지를 보급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거대 결집한 나쁜 염파 덩어리는 에너지 위력이 매우 셉니다. 이런 것은 우리가 기도·정진하고 큰스님들이 해결할 수 있는 거예요.
 

영가천도와 구제의 의미
천도재를 지내고 구제한다는 것은 착한 마음, 착한 성질 같은 절대적으로 선한 광명 에너지를 주입시켜주는 거예요. 우리가 재를 지낼 때 그렇잖아요. 모셔다 놓고 ‘영가이십시오’ ‘영가 이리 앉으십시오’ ‘스님들의 법문을 들으십시오’ ‘공양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기쁨을 얻어서 왕생극락 하십시오’, 이게 천도예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나하나 하는 것이 스님들 염불 아니에요. 팔만대장경에서 나오는 골수, 하도 유명한 말씀만 만들어서 해 놓은 것이 영가법문입니다. 영가법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육체를 버리고 금방 다른 생명을 받아서 그리로 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러지 못하고 몇십년 동안 방황하는 영가들도 많습니다. 방황하는 영가는 백중 날 여러분들이 가정에서 보이지 않는 영가가 있을 거예요. 윗대에 누가 죽었다든지 또 형제간에 할아버지, 아버지든 나가가지고 들어오지 않은 경우는 제사를 안 지내잖아요. 이 경우도 우리가 백중날 천도를 해 줘야 합니다. 집안과 직접적인 인연이 없는 영가를 모시고 공양을 하는 것, 이런 것도 좋은 일이다. 자비한 마음으로. ‘조상들이 돌아가신지 오래됐는데 지금 지내도 공양을 받으시고 축원을 한다 해도 영험이 있습니까?’라고 나한테 묻는 이가 있었는데, 있다고 그랬어요. 있는 건 있다고. 그런 파장들이 있는 겁니다.

우리가 목숨을 다 하고 나면 끝나는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은 영원불멸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살아생전에 근본도리를 깨닫고 우주 아들로 영원히 승화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거예요. 바로 죽어가지고 바로 몸 받아서 가면 얼마나 좋아요.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방황하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 대부분 인간들은 끊임없이 원망, 시기, 질투, 분노, 탐욕, 성내는 것, 복수심, 슬픔, 삿된 욕망 이런 것들이 꽉 차 있잖아요. 세상 살다보면. 무한한 집착 속에서 우리가 사는 거예요. 무한히 어지러운 세상을 살고 있는 거예요. 그런 집착 속에서 살다가 삶을 등지는 탓에 영혼이 제 갈 길로 가지 못하고 가족들 주위에서 빙빙 도는 거예요. 

영가가 가족을 직접 해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집안에 먹구름이 끼어있는 거예요. 그래서 천도를 해줘야 됩니다. 만일 사람이 선업을 수행하고 바른 선행을 닦아서 선엄을 갖춘다면 그 사람에게는 백천의 신의 수호가 돌봐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조상 수호신이 또는 부처님 모시는 사천왕들이 항상 수호해주기 때문에 사는 거예요. 나도 마찬가지고. 그렇다는 것을 이걸 가지고 우리는 열반의 의미, 절대 긍정적인 열반을 이야기합니다. 이와 같이 세상 사람들이 귀신 때문에 재앙을 받는 자도 있고, 또 그 귀신 때문에 원호를 받는 자도 있습니다. 
 

선과 악 모두 잊어라
우리는 삶의 행로를 어떻게 엮어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았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죽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열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죽음으로 받아들이면 문제가 많이 생겨요. 그러나 열반으로 받아들이면 그렇지 않거든요? 격렬하게 타오르는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은 번뇌의 불꽃이 항상 들끓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번뇌의 불꽃이 사라지고 상쾌하고 청량한 마음으로 살면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어요. 그래서 열반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세상을 가도 가야지, 그냥 죽는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절에 들어와서 기도하고, 정진하고, 모든 번뇌를 없애도 욕망과 탐애를 없애기는 상당히 어려워요. 이것을 없애는 길은 보살로 살아야 된다는 겁니다. 보살로 산다는 것은 자기를 버리고 일체 중생을 위해서 산다는 걸 뜻해요. 여러분들은 나를 얼마만큼 버리고, 내 가정, 내 이웃, 내 형제를 위해서 사는가 한번 뒤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욕망의 의지처로 삼은 신체를 관(觀)함으로써 번뇌가 꽤 적어진 상태를 ‘유여의 열반(有餘涅槃)’이라 합니다. 그러나 광명, 생명, 신체가 궁극적인 안락에 도달하지 못하고 죽으면 진정한 열반이 될 수가 없어요. ‘무여의 열반(無餘涅槃)’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백중을 쇠는 데 조상 천도만 생각하잖아요. 보이지 않는 영가도, 생각지도 못하는 영가도 있을 겁니다. 죄도 그렇잖아요. 자기도 모르는 채 짓는 죄가 많아요. 생사윤회의 세계서 벗어나 절대 안락·열반의 세계에서 한번 쉬고, 또 생사윤회로 되돌아와서 보는 것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체의 부정열반의 경지가 있다는 것이 ‘무주처열반(無主處涅槃)’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불교에서 파도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물은 물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물은 파도도 될 수 있고, 얼음도 조각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은 물이에요. 그때그때 상황이 바뀌는 거예요. 사람 사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나타나서 사라진다고 하는 것은 유여·무여의 열반이라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파도라고 하는 단계에서 나타나고 또 사라진다고 하지만 역시 물은 물, 마음은 마음인 거예요. 나쁜 마음이든 좋은 마음이든 항상 물 자체라고 하는 근본·진정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주 본래 나이기 때문에 고요한 것이고, 우주로 돌아오는 보살로서 한 번 태어나서 활동하면서 그 자유자재의 세계에 열반이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열반을 준비하지 죽음을 준비하지 마세요. 개체로 받아들이지 말고 전체 우주로 받아들이십시오. 가능하면 무주처열반 개념을 가져야 합니다. 무주처열반 경지에 들면 행복, 불행, 손해, 악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전부 물로 돌아가는 겁니다. 이런 경지를 아뢰야식이라고 합니다. 걸리지 않는 것, 철저하게 정화하는 것, 반드시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긍정하는 것, 세계에 남아있는 안목을 유지하며 절대 긍정의 세계를, 자유세계를 누리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악도 선도 다 잊어버려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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