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교리의 원융으로 구현한 극락정토

무량수전에 담긴 교리와 차경으로 경영한 소백산 연봉들.

무량수전은 색채 장엄보다는 역학성의
구조미로써 조형의 의장미를 대신한
노동집약적 장인정신이 밴 설치예술

화엄사상과 아미타신앙의 조화

부석사 가람은 하나의 완결된 통일성의 유기체에 가깝다. 지형과 건축, 불교교리, 서사의 맥락들이 긴밀하게 통합되어 있다. 부석사 가람경영에 발휘한 절묘한 지혜는 무엇보다 입지선정의 탁월한 안목에 있을 것이다. 국토의 등뼈 백두대간은 태백산에서 몸을 비틀어 서남으로 아스라이 내달려 소백산의 연봉들로 굽이친다. 비로봉, 연화봉, 도솔봉 등등, 그 연봉들은 이름에서부터 불교세계관을 반영한다. 불국의 연봉들을 안산(案山)으로 삼은 부석사는 첩첩산산 소백산의 봉우리들을 담대히 끌어들여 무한히 확장된 법당 마당으로 경영했다. 수준 높은 안목으로 산지지형을 탁월하게 재해석하여 화엄교리와 극락정토 구품세계를 대담하게 구현했다.

부석사 가람경영에 구현된 불교교리는 〈60화엄경〉의 7처 8회 34품에 따른 ‘십지론(十地論)’, 혹은 〈관무량수경〉에 바탕을 둔 구품왕생 극락정토사상으로 해석한다. 〈화엄경〉의 세계는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이고, 〈무량수경〉 등 정토신앙은 아미타여래, 곧 무량수불의 극락정토세계다. 그런데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스님의 화엄사상은 아미타신앙과 조화를 이루는 특징을 갖는다. 의상스님이 출가한 경주 황복사 삼층석탑에 봉안한 순금제 아미타불상, 낙산사에 전해지는 관음신앙 등에서 화엄사상에 흐르는 아미타 극락정토 신앙의 바탕을 읽을 수 있다. 일승의 입장에서 아미타 극락정토는 화엄의 연화장세계와 원융 상즉하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것은 극락정토가 타방세계에 실재하는 불국토가 아니라 깨달음의 세계, 곧 중생의 마음속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의상스님의 화엄학은 아미타신앙의 바탕 위에 새로운 화엄사상을 조화롭게 통합한 일승 아미타불의 특징을 갖게 되었다. 그 사상의 특성은 부석사의 건축조영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부석사의 조망과 축선들이 광대무변의 파노라마로 펼쳐진 소백산 능선의 비로봉, 연화봉, 도솔봉 등을 끌어안아 아미타여래 극락정토와 원융을 이룬 화엄의 연화장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그 장면은 마치 〈화엄경〉 ‘화장세계품(華藏世界品)’에서 큰 연꽃 안에 금강륜산(金剛輪山)이 한 바퀴 둘러쳐 있으며, 그 안에 무수한 불국 세계종(世界種)이 있다고 설법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광대한 스케일로 펼쳐진 소백산 자락의 산봉우리들을 교리체계와 거시적인 통일을 이루게 한 참으로 놀랍고도 대범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석단과 계단, 프레임의 다양한 변주

가람경영에서 나타나는 높은 축대의 구성 역시 화엄계 사찰의 특성에 가깝다. 불국사나 해인사, 범어사, 구례 화엄사 등 화엄종찰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이다. 높낮이가 다른 축대로 경사진 산지지형을 기승전결 형식으로 경영해나가는 특성을 갖는다. 건축장치들의 조영과 배치들도 대단히 창조적이며 탁월하다. 석단과 계단의 중첩, 반복, 굴절 등을 통해 수직, 수평, 사선이동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계단을 오르게 하고 평지에서 숨을 돌리게 한다. 게다가 틈틈이 건축 프레임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능수능란하게 공간을 열고 숨겨둔다. 프레임 너머 공간에 대한 심리적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해서 자연스러운 동선으로 유도하는 대목은 기발한 연출에 가깝다. 경사진 지형에 장치한 계단이나 프레임, 시선의 굴절을 통해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해석하여 이끌어간다. 가파른 경사 길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심리를 다루는 능력이 감탄할 만하다. 자연, 종교, 지형을 통합하고 아우르는 전지적 가람 경영능력은 무량수전에서 대미를 장식한다. 자연과 교리를 일체화한 거시의 안목에서 건축가구의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건축미학의 완결성이 결집한 공간이다. 무량수전은 부석사 모든 지형해석의 결절점이면서 성스러운 교의가 현현하는 상징 성소, 곧 히에로파니(hierophany)다.

독존으로 모신 아미타불.

 

역학의 구조 미학과 수리적 비례 미학

무량수전은 뼈대의 건축이다. 가구식 결구의 역학성을 그대로 노출해서 목조건축의 구조적 아름다움이 진솔하게 드러난다. 색채나 장식을 절제한 직선의 뼈대에서 가식 없는 윤리의 미의식을 느낄 수 있다. 장식성의 세부 요소는 절제하면서 정연한 논증처럼 체계의 조화로움을 추구한다. 인체의 뼈대 같은 위상학과 역학의 필요성만으로 결구한 간결함 속에서도 통일된 숭고한 힘이 흐른다. 역학 공간의 경영에 고전주의의 질서와 비례, 균형의 덕목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비례와 균형의 안정감은 수리비율, 대칭, 착시효과에 대한 교정 등으로부터 파생한 미감이다. 무량수전 평면비례에 나타나는 수리비율은 황금비에 근사한다. 무량수전의 평면구성은 정면 5칸(18.7m), 측면 3칸(11.6m)의 규모로 이뤄져 있다. 측면 세로를 1로 보았을 때 정면 5칸 가로의 값은 1.62로서 황금비 1.618로 나타난다. 무량수전의 높이도 측면의 길이와 거의 같은 11.7m이다. 무량수전을 입방체로 보았을 때 가로: 세로: 높이의 비가 1.618: 1: 1의 비를 가진 대단히 안정된 황금비의 구도를 보인다. 무량수전에서 느끼는 비례의 안정감은 건축에 내재된 수리적 비례, 곧 황금비의 체감에서 비롯함을 알 수 있다.

무량수전의 내부는 목조건축의 뼈대 미학이 돋보인다. 수직과 수평, 사선의 건축부재들이 중첩, 대칭, 반복 등의 질서정연한 짜임으로 공간 속의 공간으로 분할하고 심층화 한다. 연대하고 분화해서 중중무진의 법계우주를 구현하고 있다. 아미타불(무량수불)은 협시보살 없이 독존으로 서쪽에 모셔 동향으로 바라보게 했다. 서방 극락정토에 상주하시는 아미타불의 교리에 따른 배치임을 알 수 있다. 내부 고주의 수직 열주들과 가로 부재들로 형성되는 프레임의 중첩 속에 바라보게 함으로써 숭고함의 깊이를 극대화 한다. 그런데 왜 무량수전의 아미타불은 보처보살도 없이 독존으로 계시는 것일까? 1054년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하는 〈부석사 원융국사비문〉에 그 대목이 나온다.

“일승(一乘) 아미타불은 열반에 드는 일이 없으며, 시방정토를 체(體)로 삼고 생멸상이 없다. (중략) 그런 까닭에 보처보살을 조성하지 않으며 탑도 세우지 않으니 이것이 일승의 깊은 뜻이다.”

일승법이라는 것은 곧 깨달음에 의해 부처가 되는 것이다. 그 궁극적인 한 길만을 제시하므로 소승의 아라한도, 대승불교의 상징인 보살도 조성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또한 열반에 들지 않고 생멸상이 없으므로 열반에 든 석가모니를 모신 석탑도 조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승법의 화엄사상이 근원에 깔린 독특한 아미타 정토신앙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무량수전 내부.

 

고귀한 거룩함과 적멸의 아우라

무량수전의 내부천정은 건축부재들을 생김 그대로 노출한 연등천정이다. 기둥과 대들보, 도리, 서까래, 대공 등 골조를 이루는 나무들이 더불어 숲을 이룬다. 수직과 수평, 사선들이 공간을 지배하듯 종횡무진 한다. 보와 도리 등 핵심 부재들을 선분처럼 비교적 짧고 곧은 부재로 충당함으로써 초공이라든지 짧은 장여, 뜬창방 등 다양한 보조 보강재들이 뒤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간결한 선 형태의 부재들이 짧고 단단하게 결합하여 구조역학의 힘과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그것은 마치 에펠탑 같은 철골 구조물에서 평면이 사라지고 대신 무한한 공간의 짜임과 골조미를 드러낸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건축부재의 길이, 굵기, 무게감에 다채로운 변화와 강약의 악센트를 준 것이 무엇보다 인상적이다. 길고 짧은 것, 굵고 가는 것, 무겁고 가벼운 것 등 상대성의 형상들이 엮이고 결구되는 모양에서 산조가락의 미묘한 장단을 느끼게 한다. 직선의 뼈대로 리듬 갖춰 정교하게 조영한, 노동집약의 장인정신이 밴 설치예술에 가깝다. 내부의 단청은 뇌록색 가칠이나 긋기단청에 머문다. 단청을 통한 색채 장엄보다는 역학성 구조미로써 조형의 의장미를 대신한다. 서양의 고딕건축이 그러하듯이 구조역학을 통해 종교의 거룩함에 다가가고, 또 신심을 이끌어낸다.

질서정연한 직선의 뼈대들은 하중을 분산하고 대동의 연대를 구축하면서 전기회로처럼 내부 에너지를 실어 나른다. 특히 내부에 일렬로 이어지는 고주(高柱)의 행렬은 고딕성당의 내부처럼 열주의 수직행렬이 공간의 엄숙함과 깊이를 자아낸다. 열주들은 공간의 깊이를 심화함과 동시에 아미타불께서 계신 곳으로 강한 방향성을 암시한다. 열주의 긴 흐름이 이어지는 서쪽방향으로 세로 기둥의 프레임 속에 바라보게 함으로써 깊은 공간에 적멸로 계신 고귀한 거룩함을 예경하게 한다.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취하고 계신 진금색의 아미타불은 높이 2.8 m에 이르는 흙 재질의 소조(塑造)불상이다. 석굴암 본존불만큼이나 엄중하고 근엄한 상호를 가지셨다. 다포를 치밀하게 짜 올린 중중무진의 아(亞)자형 닫집과 3.8m 높이의 금빛 광배는 부석사 경영의 전지적 관점이 어디로 귀의하는 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아미타불의 거룩한 상호와 찬란한 광배에 대체될 수 없는 숭고한 아우라가 흐른다. 무량수전 뼈대의 미학 내면에 극락정토의 연꽃에 화생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극락정토는 사람 저마다의 청정한 마음이 경영한 것이니, 무량수전은 누구나의 마음자리에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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