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은 한국 정치의 민낯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이와 유사한 모습은 여야를 막론하고 자주 연출되는 익숙한 이벤트이기도 하다. 잘못했다는 현수막까지 내걸었지만 ‘정말 잘못을 느꼈을까’하는 의문이 들고, 어떻게 보면 잘못한 것이 아니라 몰랐다는 생각도 해본다. 

자유한국당과 야당의 참패를 두고 여러 가지 분석이 매스컴을 장식하고 하고 있다. 남북 관계의 극적인 변화, 당대표의 언행, 당구조의 비민주성, 보수의 분열과 보수 정권의 부정적 그림자 등 다양한 견해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원인들은 현상적인 것이지 근원적인 것이 아니라고 본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선거의 바다에서 ‘삼각파도’를 만나 난파가 된 것이라고 본다. 이러 저러한 누수의 구멍에서 배가 침몰한 것이 아니다. 

대중은 평소 침묵의 똬리를 틀다가
의사 표시 순간 이를 풀고 폭발한다

6.13 선거서 자한당 등 야당 참패 
여러 누수구멍에 침몰한 게 아니라
선거 바다서 ‘침묵의 파도’로 난파

이데올로기형 ‘기계형 사유’ 정치가고
한국 ‘정원형 사유’ 정치로 전환 중
상호 호혜 ‘연기의 정치’와도 맞닿아

이번 선거의 결과를 보면서 교수 초년시절에 번역 출판한  <여론의 정치사회학(The Spiral of Silence)>이 떠오른다. 이 책의 중요 개념 틀은 ‘침묵의 확산과 폭발’이다. 대중들은 침묵의 똬리를 틀고 움츠리고 있지만 정작 의사 표시의 순간이 오면 침묵의 똬리를 풀고 폭발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대중의 침묵과 의사 표시의 미묘한 관계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 분석하고 있다. 트럼프를 당선시킨 지난 미국 대선도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자유한국당은 침묵의 삼각파도를 만나 난파한 것이다. 이번 6.13 지방선거를 진보의 승리와 보수의 참패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필자는 기존의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에 대한 도전이고 불신이라고 본다.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는 선택을 해야 하는 ‘투표의 경쟁’에서 이겼을 뿐이다. 제대로 된 나침판과 항해 기술이 없으면 언제든지 침묵의 삼각파도에 난파될 수 있을 것이다.

방영준/성신여대 명예교수

지금 세계적으로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들어섰으며 새로운 정치 지성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주의 정원(The Garden of Democracy)>으로 새로운 정치비전을 제시한 에리 리우와 닉 하우어는 ‘기계형 사유’에서 ‘전원형 사유’로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기계형 사유’는 세계와 민주주의를 하나의 기계 장치로 보고 기계를 다루듯 정치를 한다. ‘전원형 사유’는 이 세계와 민주주의를 얽히고설킨 하나의 생태계로 본다. 20세기까지 ‘기계형 사유’가 주도하는 정치가 진행되어 왔으나 이제 그 적실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기계형 사유’가 이끄는 정치의 큰 문제점의 하나로 이데올로기적 정치 게임의 허구성을 파헤치고 있다. ‘기계형 사유’는 사물을 고정 불변하는 실체로 보면서 관리하고 규제하고  효율과 이익 그리고 승리를 강조한다. 

반면 ‘정원형 사유’는 모든 존재는 고정된 것이 아니고 관계적인 것으로 보면서, 상호의존적이며, 호혜적이고, 자율과 자치, 승패의 이분법 극복 등을 제시하고 있다. 아름다운 정원은 우리가 함께 가꾸는 것이다. 정원은 결코 기계 다루듯 관리해서는 안 된다. 정원의 모든 존재들과 상호호혜하고 서로 즐겁게 노닥거리면서 정원을 일구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참패는 ‘기계형 사유’의 정치 틀에 너무 집착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나는 기꺼이 말하고 싶다. 우리 국민이 이제 ‘기계형 사유’의 정치 틀을 벗어나서 ‘정원형 사유’의 정치 틀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그런데 정치인들이 ‘정원형 사유’의 틀을 가지기는 매우 힘들다. 정치는 권력의 장악에 있기에 그러하다. 권력은 기계를 다루는 기술에서 나오기가 쉽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경험이 한국 정치문화의 큰 교훈이 되길 기대한다. ‘정원형 사유’의 정치는 바로 붓다가 제시한 ‘연기의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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