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평생 신행의 키워드…‘三寶守護’ “포교는 수행이자 보살행”
반평생 신행의 키워드…‘三寶守護’ “포교는 수행이자 보살행”
  • 하성미 기자
  • 승인 2018.06.22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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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분남 부산불교 삼보회 회장(61)
2002년부터 삼보회를 이끌고 있는 정분남 회장은 올해 1월, 포교사단 부산지역단 단장으로 선출 됐다. 포교사단 부산지역단은 700여 명의 회원이 전문 포교 활동을 펼치는 모범 포교사단 중 하나이다. 이곳 700여 명의 포교사들이 정 회장을 믿고 전법 원력에 함께 동참하고 있다.  사진=하성미 기자
2002년부터 삼보회를 이끌고 있는 정분남 회장은 올해 1월, 포교사단 부산지역단 단장으로 선출 됐다. 포교사단 부산지역단은 700여 명의 회원이 전문 포교 활동을 펼치는 모범 포교사단 중 하나이다. 이곳 700여 명의 포교사들이 정 회장을 믿고 전법 원력에 함께 동참하고 있다. 사진=하성미 기자

기복으로 시작한 불연
결혼 직후 남편 병 얻어
병명 모른 채 투병생활
천도재 지내고 남편 쾌차
부처님 가피 알고 불교귀의
기복으로 불교 귀의했지만

삼보수호, 포교 원력 신행佛法
만난 후 삼보 가치 알아
삼보회 창립, 도량순례 34
매월 팔공산·108사찰순례도
<성지순례기도문> 매년 배포
동대 불교심리상담학 석사 예정
포교사단 부산 단장으로 선출

 

불제자 대중에게는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고,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 세 가지 있다. ()()(), 삼보(三寶)이다. 각자(覺者)가 되신 부처님과 부처님이 펼치신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을 받들고 중생 제도의 불사를 이어가는 출가자를 우리는 삼보라 부른다. 불법(佛法)에 귀의한 대중의 본분은 삼보를 수호하고 따르는 일일 것이다. 삼보 수호의 본분을 일대사로 여기고 여법하게 불제자의 길을 걷는 이가 있다. 전국의 도량을 돌며 불사마다 손을 보태고 대중공양과 성불의 기도를 놓지 않는 정분남(61·자재천) 부산불교삼보회 회장이다.

 

버스가 곧 도량, ‘삼보회태동

매년 해가 바뀌고, 음력 16일 이른 새벽에 관광버스가 줄을 서서 사람들을 기다린다. 관광지로 여행을 가는 화려한 옷차림도 없고 나들이로 들뜬 마음을 쏟아내는 수다스러움도 없다. 단정하게 법복을 입고 손에는 성지순례기도문을 들고 있는 불자들이 보일 뿐이다. 버스 한 대당 45, 18대의 버스에는 불자들로 가득 찼다. 어림잡아 800여 명이 함께 불보종찰 통도사, 법보종찰 해인사 그리고 승보종찰 송광사로 향하는 관광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올라타자 사람들은 일제히 성지순례기도문을 펼쳐 예불문을 읽는다.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불자들의 그윽하고 낮은 음성이 버스 안을 가득 채우고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는 불자들의 신심이 관광버스를 법당으로 바꾸었다.

새해가 되면 불승 삼보종찰을 어김없이 방문해 삼보수호의 본분을 다하는 부산불교삼보회의 불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새해 뿐 아니라 매달 음력 8일 그리고 음력 26일이면 관광버스에 오르는 불자들을 볼 수 있다. 음력 8일에는 정기적으로 대구 팔공산을 올라 기도를 하고 음력 26일에는 전국에 있는 사찰을 찾아 순례한다. 정분남 회장이 팔공산 기도처를 개인적으로 찾은 건 1984년 부터였고, 본격적으로 불자들을 모아 성지순례를 시작한 건 2002년부터다. 1984년부터 치면 3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삼보회란 이름을 정식으로 만들어 활동한 것은 2003, 정 회장은 단체 이름을 지을 때 단순하게 떠오르는 대로 적었다고 무심히 답했다.

처음에 버스 한 대만 갔을 땐 이름이 필요가 없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버스가 3대로 늘어나고 보니 협조 공문을 보내야 했어요. 그 순간 떠오른 이름이 삼보였습니다.”

부처님 법을 만나 행복에 기뻐 불승에 귀의하고 전법의 원을 세운 후 한 시도 놓지 않은 이름이었을 것이다. 삼보는 정 회장에겐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매번 예불 때마다 외우는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의 뜻처럼, 생명까지 바치는 지극한 마음으로 불승에 귀의하고 정성을 다해 공양을 올리는 삶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정 회장은 부처님의 가피를 알고 그 가르침을 배워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다고 했다.

부처님은 어리석은 저를 사성제와 팔정도를 알게 해 부처님의 법으로 이끄셨고 참된 행복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뿐 만이 아닙니다. 돌이켜 보면 부처님의 가피로 가난에도 벗어나고 안정된 가정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이 주신 행복을 여러 불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정 회장(우측 세번째)은 올해 1월, 포교사단 부산지역단 단장으로 선출 됐다. 사진은 부산지역단 연수 활동 모습.
정 회장(우측 세번째)은 올해 1월, 포교사단 부산지역단 단장으로 선출 됐다. 사진은 부산지역단 연수 활동 모습.

남편 위한 천도재로 불연 시작

정 회장은 1958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얼굴과 따뜻한 온기는 기억에 없었다. 정 회장이 5살 때 죽음이란 것도 알지 못한 나이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정 회장의 어머니는 결혼 후 10년 동안 아이를 갖지 못해 정성으로 불공을 올렸다. 어머니는 꿈에서 아이가 없을 사주이지만 아이를 원하니 주겠지만 그 대신 너의 명은 짧을 것이다라는 말이 들려왔다고 한다. 그 후 정 회장의 어머니는 33녀를 낳고 정 회장이 5살 그리고 정 회장의 동생이 백일 쯤 되었을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 회장은 어머니의 빈자리를 느끼기도 어려웠을 나이에 상실의 아픔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옛날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정 회장은 26살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신혼여행을 다녀온 첫 날부터 남편은 아프기 시작했다. 고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정 회장은 갑작스런 남편의 병이 자기의 잘못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 정 회장은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녀야 했다.

남편이 결혼을 하자마자 아프니 모든 게 제 잘못인가 싶어 걱정이 몰려왔습니다. 전국의 유명한 병원을 찾아 다녔지만 병명을 알 수가 없었고 단순히 위염 아니면 십이지장궤양이라고만 했죠. 새벽마다 남편은 일어나 밤이 새도록 온 방을 뒹굴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정 회장은 죽음이 떠올랐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무의식 가운데 몰려와 어떻게 해서든 낫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찼다. 남편과 함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답답해하던 중에 셋방집 주인 할머니가 정 회장을 불렀다. 주인 할머니의 절에 함께 가 물어보자는 말에 정 회장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절을 찾았다. 부산 초읍에 있는 한 사찰에서 만난 스님은 정 회장에게 조상 천도재를 권했다. 당시 천도재가 무엇인지도 몰랐다는 정 회장은 필사적으로 부처님께 기도하고 매달렸다.

그리고 얼마 후, 남편의 병이 기적처럼 나았다. 정 회장은 너무나 기뻤다. 그리고 정 회장은 그것이 부처님의 가피라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였다. 정 회장은 부처님 가르침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싶어졌다.

불교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처음엔 병을 낫게 해주셨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만이 가득했는데, 부처님 법을 배우면 배울수록 불법(佛法)이 왜 진리인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지요. 부처님의 진리인 사성제팔정도는 제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당시 대구 만불회 회주였던 학성 스님이 부산 동부터미널에서 만불불사 법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정 회장은 어린 아이를 등에 업고 빠짐없이 법회에 참석했다. 아기를 들쳐 업고 법회에 참석하는 정 회장의 열정에 한 할머니는 성철 스님을 소개했다. 정 회장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백련암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성철 스님의 법문집을 받아보게 되었다. 정 회장은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정 회장은 성철 스님의 법문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정 회장은 고민 끝에 백련암에 전화를 걸어 법문집 받아보는 것을 중단했다. 그리고 정 회장은 바로 기초 교리부터 차분히 배울 수 있는 곳을 알아봤다. 성철 스님의 법문을 어려움 없이 듣고 싶었다. 금강 같은 법을 눈앞에 두고도 알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 안타까웠던 것이다. 정 회장은 부산 남천동에 위치한 해인정사를 찾아 기초 교리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108참회문을 처음 접하던 날 정 회장은 절을 하면서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께 참회의 기도를 올렸어요. 불법에 대한 기쁨으로 불교대학을 가게 된 계기도 됐죠.”

정 회장은 당시 통도사 부산 포교당을 방문해 불교대학에 입학했고, 전법에 대한 원력을 세우며 포교사에 도전해 합격했다. 이후 정 회장의 불법(佛法)에 대한 목마름은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하는 동력이 됐고, 정 회장은 대학원에서 불교심리상담학을 전공해 오는 8월 수료할 예정이다.

처음에는 기복으로 시작했어요. 하지만 불법을 만나 팔정도의 진리를 알았습니다. 팔정도를 믿고 실천하면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가정도 안정되고 남편도 건강하게 되니 이 좋은 부처님 말씀을 전하면서 살겠다는 원을 세우게 됐죠.”

정 회장은 포교 방법에 대해 먼저 고민했다. 불교는 불승 삼보가 없으면 맥을 이어 갈 수 없고 가장 소중하게 지켜나가야 할 보물임을 다시 떠올렸다. 정 회장은 불승 삼보에 먼저 공양 올릴 것을 다짐했다.

삼보회라는 이름이 아직 없었던 2002, 장 회장과 회원들은 처음으로 통도사와 해인사, 송광사를 방문했다. 회비를 모아 각 사찰에 쌀 한 가마니와 소금 한 가마니를 올릴 수 있었다. 한 가마니씩 대중공양을 올리며 정 회장은 좀 더 많은 양을 올릴 수 있기를 기원했다. 정 회장은 당시 셋방에 살고 있었고, 남편 사업이 어려워 넉넉한 살림이 아니었다. 하지만 불자를 이끌어 십시일반 함께 하면 어려울 것도 없어 보였다. 2002, 한 대의 버스로 충분했던 삼보회는 2003년에 버스가 두 대로 늘어날 만큼 회원이 늘었고, 이후 매년 참여 인원이 늘었다.

올해 2018년 정초에는 총 18대의 버스가 움직였다. 삼보회 회원들은 삼보사찰을 방문해 대중공양을 올렸다. 정초 성지 순례를 계기로 정 회장은 전국 25교구본사로 시작해 108 사찰순례를 진행했다. 매달 처음 오는 회원이 급격히 늘어났고 해마다 1천 권씩 제작하는 성지순례기도문이 부족할 정도였다.

삼보회는 회비를 모아 투명하게 운영하고 가장 필요한 곳을 수소문 해 도움의 손길을 펼쳤다. 그리고 그것이 입소문을 탔다. 불우이웃돕기 뿐 아니라 어려운 사찰을 찾아 낸 후 다음 순례지로 선정했다. 시골에 전기와 수도가 안 들어오는 사찰을 방문해 불사 지원금을 후원했다. 군법당 포교 지원비는 물론이고 국가 재난으로 힘든 곳은 반드시 방문했다. 지난 포항의 지진 당시에는 경북 포항 보경사를 찾아 지진피해 복구를 기원하며 기금을 전달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에는 삼보회 이름의 장학 재단이 있다. 16년 동안 대중공양 올리며 도움을 준 기금이 총 3억에 이른다.

108사찰순례 참가 도장을 들어 보이는 정 회장.
108사찰순례 참가 도장을 들어 보이는 정 회장.

성지 순례로 이어가는 전법

삼보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로 성지순례와 대중공양에 참여해 보시바라밀 공덕을 회향하는 원력은 큰 원력이다. 하지만 정 회장은 성지 순례로 얻는 포교 효과는 그 무엇보다 크다고 강조했다. 올해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심리상담학과를 수료하면서 정 회장은 불교 성지 순례로 얻는 치유 효과를 연구했다. 연구하는 과정에서 정 회장은 “108성지순례는 보살운동이며 상구보리하화중생의 길이다. 구법여행이며 일상에서 벗어나 참 나를 찾는 신행 여행임을 확신했다고 강조했다.

산사는 부처님의 청정법신이 머무는 곳으로 자신이 지은 업과 죄, 그리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며 가장 깨끗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릴 수 있 곳입니다. 성지순례 가운데 위암 3기였던 한 보살님은 순례 기도로 병이 깨끗하게 나은 사례도 있습니다. 우울증이 있어 자살을 생각하던 사람이 회복하는 사례는 더 많았고요. 타종교에서 개종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매월 진행하는 순례길에는 초심자가 대거 방문한다. 여행길처럼 여기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찾아왔다가 불교에 귀의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정 회장은 올해 1, 포교사단 부산지역단 단장으로 선출 됐다. 포교사단 부산지역단은 700여 명의 회원이 전문 포교 활동을 펼치는 모범 포교사단 중 하나이다. 이곳 700여 명의 포교사들이 정 회장을 믿고 전법 원력에 함께 동참하고 있다.

정 회장은 포교사단 부산지역단의 미래를 위해 다시 버스를 이용한 순례를 시작했다. 좀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하고 단합과 소통을 위해 더불어 불사금도 모으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부산 포교사단이 시작한지 18년이 됐지만 중심처가 될 사무실이 없습니다. 매달 월세 70만원을 내고 있어 어려움이 많습니다.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시작했습니다. 부산 포교사단에서 순례를 시작한지 3개월 정도 되었는데 1200만 원 가량이 모였습니다.”

포교사단의 사무실에 대해 이야기하며 정 회장은 이룰 수 있다는 확신으로 밝게 웃었다. 삼보를 위한 불사, 그 보이지 않는 노력은 바로 보살행이다. 순례는 곧 진리를 찾아 구도한 선재동자의 삶이다. 선재동자는 화엄경에서 53명의 선지식을 찾아 보살의 삶을 묻는다. 보살도와 보살행이 화두였다. 그 가운데 선재동자는 잊지 않고 일체 중생이 함께 깨닫는 법을 질문한다. 포교는 함께하는 행복의 길, 불법을 알고 믿도록 돕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도록 돕는 것이다. 포교사단은 포교는 곧 수행이다.”고 외친다. 하지만 정 회장은 다시 고쳐 말한다. 포교는 수행이며 아울러 보살행이며 보살의 삶이다. 53선지식을 찾아 나선 선재동자처럼 대중을 모아 사찰을 순례하는 정분남 회장의 삶이 곧 보살의 삶이다.

정분남 회장은?1958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2002년 삼보종찰 순례를 시작으로 2003년 삼보회를 설립했다. 2012년 동국대 불교학과 입학, 2016년 동국대 대학원 불교심리상담학을 전공했다. 〈불교성지순례의 치유효과〉를 주제로 논문을 집필했으며 2018년 8월 석사 수료 예정이다. 통도사 가사불사, 통도사 자비원 어르신 목욕봉사 등 봉사활동도 이어오고 있다. 현재 포교사단 부산지역단 단장을 맡고 있다. 2008년과 2016년 포교원장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정분남 회장은?1958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2002년 삼보종찰 순례를 시작으로 2003년 삼보회를 설립했다. 2012년 동국대 불교학과 입학, 2016년 동국대 대학원 불교심리상담학을 전공했다. 〈불교성지순례의 치유효과〉를 주제로 논문을 집필했으며 2018년 8월 석사 수료 예정이다. 통도사 가사불사, 통도사 자비원 어르신 목욕봉사 등 봉사활동도 이어오고 있다. 현재 포교사단 부산지역단 단장을 맡고 있다. 2008년과 2016년 포교원장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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