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동산법문

홍인, 초기 선종 승단 초석 마련
도신과 홍인의 선법 ‘동산법문’
〈문수사리반야경〉 ‘일행삼매’의지
〈능가경〉 오종관심 방편법문 기본

 

5조홍인(601-675)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동산법문’의 가풍일 것이다. 즉 그는 도신이 건립한 도량을 재정비하는 한편 대중이 모여서 수행하는 풍토를 조성하였다. 홍인은 7세에 출가를 해서 13살에 사미계를 받았고, 도신이 입적하자 바로 법석을 계승하고 도량을 건립 했다. 홍인이 지향한 동산법문은 적교오종(藉敎悟宗)과 교외별전(敎外別傳)등 점수돈오를 겸한 수행형태로 선종의 남돈(南頓), 북점(北漸)을 나눈 분기점의 초석을 다졌으며, 홍인을 통해서 초기선종 구성원 단면을 엿볼 수가 있다.

홍인은 ‘동산법문’의 개창자로 선종의 5조가 되며 본적은 심양(?陽ㆍ지금의 강서성 구강(九江)이다. 후에 기주(?州)황매 (현재의 호북성 황매)로 이주했다. 수나라 인수 원년(仁壽元年ㆍ601)에 태어났으며 속성은 주(周)씨이다. 당나라 고종(674)때 입적했으며 향년 74세였으며, 당 대종은 시호를 대만선사(大滿禪師)라고 했다. 도신 입멸 후에 홍인은 쌍봉산 법석을 계승했으며, 그 후 그를 따라서 참학하는 자가 점점 많아졌고, 쌍봉산 동쪽 풍무산(馮茂山)에 또 다른 도량을 건립해서 동산사라고 불렀으며 후세에 이러한 그의 정황을 통틀어서 ‘동산법문’이라고 일컫는다.

도신과 홍인 대에 이르러서 중국선종이 정식으로 형성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달마 이래로 중생의 ‘심성’에 관한 것을 곧 ‘불성’이라는 기본적인 개념으로 대체를 하였고, 많은 배척과 반대에 부딪치면서도 굳건히 본인들의 신념을 유지시켜서 초기 선종의 승단의 초석을 마련하면서, 비교적 안정된 승단의 단체생활을 보장 받기도 했다. 이후로 이들의 구성원은 오래지 않아서 불교의 내외 및 조야의 상하가 모두 주목을 하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오래지 않아서 당나라 왕조는 정식으로 선종을 승인하기에 이른다.

홍인은 아마도 지식분자에 속하는 선사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가 오조가 되고 대중의 영수가 되었던 이것은 아마도 선림의 생활 방면에 출중한 재주가 있었던 것과 궤를 같이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홍인과 같은 상황의 조건을 가진 승려들이 적지 않았다. 예를 들면 천태종의 2대 조사인 혜사(惠思)는 곧 ‘승려를 경영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서, 여름과 겨울에 공양하였다’고도 전해진다. 즉 사찰경영에 탁월한 재주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림, 강병호

따라서 홍인시대에 이르러서 중국선종은 획기적 발전 단계에 진입한 시기였다. 선수행자가 점점 늘어났으며 따라서 홍인 문도도 많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법을 전할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능가사자기〉와 〈역대법보기〉에는 11명이라고 전하고 〈전등록〉은 13인이라고 하고 종밀의 〈원각경대소초〉에서는 10인이라고 전하고 있다. 각각 다르게 설명 하는데 문도 숫자에 비하면 법을 펼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 것이다. 그중 신수(神秀), 지선(智洗), 유주부(劉主簿), 혜장(惠藏), 현약(玄約), 노안(老安), 법여(法如), 혜능(慧能), 지덕(智德)과 의방(義方)등이 있으며, 특히 신수(능가ㆍ점수ㆍ북종)와 혜능(반야ㆍ돈오ㆍ남종)이 가장 영향력이 있었다. 여기서 지덕(智德)은 고려의 승려로서 그의 법을 계승했다.

‘동산법문’의 중요한 내용은 도신과 홍인의 선법이다. 그리고 ‘동산법문’의 중요한 내용을 알고자 한다면 〈입도안심요방편문(入道安心要方便門)〉과 〈수심요론(修心要論)〉을 보면 된다. 〈입도안심요방편문〉의 명확한 종지는 즉 ‘입도안심(入道安心)’으로 여러 가지 방편 법문을 형성했다. 또 ‘입도안심’은 직접적으로 달마의 뜻을 전승하였다고 한다. 달마의 ‘입도(入道)’는 이입(理入)과 행입(行入) 및 안심벽관(安心壁觀)이다. 그러나 도신의 〈입도안심요방편문〉의 중요한 사상은 도리어 〈문수사리반야경(文殊師利般若經)〉을 의지해서 건립하였기 때문에 그의 선법은 〈문수사리반야경〉의 일행삼매 가운데에 안심(安心)법이 주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에 일찍이 기록이 되어있던 것으로 “나(도신)의 이 법요(法要)는 〈능가경〉의 ‘모든 불심이 제일이다.(諸佛心第一)’를 의지했으며, 또 〈문수사리반야경〉의 ‘일행삼매’를 의지했다”고 하고 있다. 일행삼매에서 ‘일행(一行)’은 ‘법계일상(法界一相)’을 가리킨다. 도신은 “법계는 ‘일상(一相)’으로 차별이 없으며, 무차별의 일상법계(一相法界)의 소연(所緣)은 곧 ‘삼매’를 성취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것은 〈문수사리반야경〉에서 말하는 ‘법계일상(法界一相)’이며, ‘여시일행삼매자, 진지항사제불법계무차별상(如是一行三昧者, 盡知恒沙諸佛法界無差別相)’이다.

‘일행삼매’의 경계에 들어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의 방편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방법은 ‘염불’과 ‘안심’을 이용해서 ‘일행삼매’에 도달하는 것이다. 도신은 ‘염불즉시염심(念佛卽是念心), ‘구심즉시구불(求心卽是求佛)’이라고 여겼다. 왜냐하면 ‘식은 형상이 없고(識無形)’, 부처도 형상이 없고(佛無形)’, ‘부처는 모양이 없기(佛無相貌)’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이와 같은 도리를 안다면 곧 그것은 ‘안심’이 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도신이 주장하는 염불 안심법문은 정토종에서 주장하는 염불과는 크게 다르다. 비교하자면 정토종에서 주장하는 염불을 통해서 성취하는 ‘삼매’는 곧 ‘현전삼매(現前三昧)’를 말하며, 도신이 주장했던 염불은 곧 ‘부처가 없는 것을 보는 것이며(無佛可見)’, ‘부처가 없는 염불을 하는 것(無佛可念)’이다. 이 점에 대해서 도신은 〈입도안심요방편문〉에서 좀 더 부연 설명하기를 ‘무소념자, 시명염불(無所念者, 是名念佛)’라고 했다.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도신의 이러한 〈염불안심방편법문〉은 〈능가경〉의 여래장심과 〈반야경〉의 실상염불을 바탕으로 건립된 것이다.

도신은 또 〈능가경〉을 의지해서 오종 관심(觀心) 방편법문을 건립하였는데, 이것은 ‘동산법문’의 기본내용이다. 이 다섯 가지는 모두 심(心)과 관계가 있다. 다섯 가지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 번째는 지심체(知心體), 두 번째는 지심용(知心用), 세 번째는 상각불정(常覺不停), 네 번째는 상관신공적(常觀身空寂ㆍ항상 몸이 공적한 것을 관하는 것), 다섯 번째는 수일불이(守一不移)이다. 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일불이(守一不移)’의 수행법이라고 한다. 달마선법과 수일불이(守一不移)의 수행법을 비교해 보면 대체로 닮아 있다고 한다. 달마는 ‘응주벽관(凝住壁觀), 무자무타(無自無他), 범성등일(凡聖等一), 견주불이(堅住不移)’, ‘무유분별(無有分別), 적연무위(寂然無爲)를 주장했다면, 도신의 수일불이(守一不移)는 곧 ‘상관자신공정(常觀自身空淨)’, ‘이차공정안(以此空淨眼)’, ‘임의간일물(任意看一物)’, ‘종일간불이(終日看不已)’, ‘민연심자정(泯然心自定)이라고 하였다.

비록 홍인이 도신의 선법을 계승했다고 하지만, 다만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조금은 차이가 있다. 도신은 〈반야경〉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지며, 전통적으로 〈능가경〉을 의지해서 선법을 건립하는 동시에 〈반야경〉의 ‘일행삼매’를 용합해서 ‘염불심시불(念佛心是佛)’, ‘정심시불(淨心是佛)’이라는 자기만의 독특한 선법을 수립했다고 한다. 그러나 홍인은 도신의 〈입도안심요방편문(入道安心要方便門)〉’을 계승할 때 도리어 ‘수심(守心)’을 중시했다. 이것이 바로 도신이 ‘수일불이(守一不移)’의 부분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홍인 시대에 이르러서 도리어 전통적인 〈능가경〉을 의지한 ‘관심(觀心)’의 선법으로 회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관심(觀心)은 곧 수심(守心)의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홍인은 이외도 ‘수일(守一)’, ‘수본진심(守本眞心), ‘수본정심(守本心)등의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한편 도신이 ‘수일불이(守一不移)’에 대해서 피상적으로 언급을 했다면, 홍인은 비교적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홍인은 ‘차수심자, 내시열반지근본, 인도지요문, 십이부경종지종, 삼세제불지조(此守心者, 乃是涅槃之根本, 人道之要門,十二部經之宗, 三世諸佛之祖)’라고 하였다. 이것은 홍인의 ‘심(心)’의 중요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편 그가 말하는 ‘수심(守心)’을 닦는 것에 대한 선행조건으로 본인 스스로가 본래 청정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러한 연후에 비로소 ‘수본진심(守本眞心), ‘수본정심(守本心)’을 하면 망념이 불생하고, 아소심(我所心)이 멸하며, 자연스럽게 불과 같이 평등해질 것이라고 여겼다. ‘수심(守心)’을 닦는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端坐正身, 令氣息調(다정히 앉아서, 기를 조절하는 것이다)’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동산법문’은 홍인의 많은 제자들에게 전승되어서 정중종(淨衆宗), 선습종(宣습宗), 노안선문(老安禪門), 법여선문(法如禪門) 등의 종파를 파생시켰으며, 더욱이 혜능과 신수로 대표되는 남돈, 북종이라는 선종의 역사적인 분기점 마련의 초석을 다졌으며, 이러한 홍인의 선법은 중국선종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용해되어서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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