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손 형상화에 필수적인 마음가짐
자비손 형상화에 필수적인 마음가짐
  • 지운 스님
  • 승인 2018.06.2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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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비수관 - 3) 자비수관 명상하는 방법

자비손의 접촉은 촉(작의(作意((()라는 심리현상을 일으킨다. 사물을 만질 때 만져지는 대상과 감각기관이 만나는 것이 접촉이다. 자비손을 몸에 접촉하면 마음의 동요가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하게 일어난다. 이것은 몸[대상]으로 향하게 하는 경각심인데 이것이 작의이다. 경각심인 작의는 성유식론成唯識論3에 의하면 무의식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아뢰야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갖가지 정보[種子]를 이끌어 일으킨다. 갖가지 정보는 감각[]과 표상작용[]을 통해 나타나고 사()에 의해 선악으로 채색되고 조작되기도 한다. 그리고 자비손에 의해 접촉되어 나타나는 몸의 구성요소인 흙···바람·허공인 5대의 갖가지 현상이 느낌으로 나타난다. 딱딱함, 흐름, 차갑거나 따뜻함, 형상과 빛깔 등이다.

느낌을 통해 5대 갖가지 현상이 느낌과 동반하여 식물, 동물, 풍광, 과거에 있었던 일 등 갖가지 영상으로 나타나면, 나타난 현상에 선악의 조작 같은 갖가지 의식작용이 일어난다. 물론 이러한 현상들도 종자의 현현이다. 종자는 명언종자라고 한다. 명칭과 언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수행현상들이 언어문자로 표현되는 모두 아뢰야식의 종자이기 때문에 진실은 아니다. 그래서 이러한 언어문자와 결합한 현상은 과거, 현재, 미래로 순간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며, 변화하여 간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변화하는 순간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관찰했을 때 언어문자의 외피로 입혀져 있는 것이 거짓임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언어문자는 대상을 고정 독립시키고, 분리되고, 실체를 가지고 스스로 존재하는 것 같이 나타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어문자로 표현되는 삼라만상 우주는 모두 마음이 만든 환영과 같은 것이므로 있다’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나 그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그 견해들은 모두 거짓이다. 예를 들어 찻잔은 던지면 깨진다. 그러나 찻잔이라는 명칭은 던져도 부서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물과 언어문자는 별개의 것이다. 현상을 무상으로 관찰하게 되면 언어문자에서 벗어나게 된다.

즉 마음이 만든 종자를 진실이라고 생각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언어문자에 의해 고정되고 독립된 것으로 실체로써 보이고 들리는 것이 변하게 되면, 말하자면 좋아하는 물건이 바뀌거나 좋아하는 연인이 변심하거나 영원히 살고 싶은데 죽는다는 것에 괴로움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거짓을 진실로 알고 있던 것이 변하면 불만족의 괴로움이 일어나는 것이다.

불만족과 괴로움은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어 무아이다. 자기 뜻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흔한 감기도 없어지게 하고, 늙음을 멈추게 하고,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면 유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무아라고 하는 것이다. 무상··무아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변화는 현재 이 순간에 일어나는 현실이다. 접촉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알아차리면 접촉도 관찰할 수 있게 되고, 이 감각과 접촉을 무상관찰하면 과거는 지나가서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아 없으며, 현재는 머물지 않음을 아는 이 무상의 앎으로 번뇌를 소멸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리()로써 번뇌를 제거한다고 한다. 또한 무상을 알 때 그 앎을 지혜라고 한다. 그래서 접촉 자체가 연기 실상임을 알면 깨달음이고, 모르면 무명으로 감각과 형상이 생기고 조작하는 갖가지 의식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비수관 체험하기
지금부터 자비손을 시각화하여 몸을 관찰해보도록 한다. 먼저 몸과 마음의 상호관련성을 살펴본 다음, 직접 자비손을 만드는 수행을 해보겠다.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

[커지는 모습 확인]

두 손바닥을 맞대고 두 손의 손목 선을 맞춘다.

이때 양 손가락의 길이가 어떤지 살펴 기억한다.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도 있으므로 원래 길이를 잘 보고 기억해둔다.

한 손을 세운다. 눈을 감고서(눈을 떠도 무방) 들고 있는 손가락이 엿가락처럼 길어져 천장을 뚫고 나가 허공 위로 올라가서 무한히 길어진다고 30초 동안 연상한다.

그 다음, 눈을 뜨고 양손을 손목 선에 맞대고 손가락 길이의 변화를 확인한다.

[작아지는 모습 확인]

앞의 커지는 모습 에서 하듯이 양 손가락의 길이를 확인한다.

한 손을 세워 들고 눈을 감고서(눈을 떠도 무방) 들고 있는 손가락이 작아져 아기의 손과 같이 된다고 30초 동안 연상한다.

그 다음, 눈을 뜨고 양손을 손목 선에 맞대고 손가락 길이를 확인한다.

손가락 길이의 변화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고 변화가 나타나는 시간의 차이도 다양하다. 분명하게 확인되는 것은 집중된 마음에 따라 몸의 일부나 몸 전체가 물리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몹시 슬프면 눈에서 눈물이 나기 마련이다. 매우 화가 나면 온몸을 떤다든지 위장이 굳어져버려서 배고프다는 생각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일곱 달이나 여덟 달만에 태어난 아기도 어머니가 쓰다듬어 주면 아기는 정신적 안정을 얻고, 정상적으로 태어난 아기처럼 건강하게 성장한다는 사례에서 우리는 몸에 영향을 줌으로써 마음에도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인 심리를 반영하는 자비손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몸과 마음은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자비로운 마음의 손은 곧 몸의 반응을 일으킨다.

자비손을 만들기 위해 먼저 손을 상상으로 만든다. 잘 만들어지지 않으면 할머니나 어머니의 손 또는 성인(관세음보살)의 손을 연상하면 된다. 물론 만든 손이나 빌려 온 손이 선명하지 않아도 된다.

간혹 손이 만들어지지 않거나 만들어도 손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과 연민심을 일으키면 자비손이 만들어지는 효과가 있다. 자비손 만들기가 순조롭지 못한 분들은 본인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성격이 과격하거나 화를 잘 내거나 급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자비손을 만들기가 어려울 수 있다. 설령 만들더라도 빨리 없어질 수도 있는데, 화를 잘 내고 급하면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표면상으로는 아닌 것 같지만 속으로 증오심이나 원한을 품고 있다면, 아무리 애를 써도 자비손이 만들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럴 때 자기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떠올리며 자비심을 일으키면서 대상을 형상화하거나 시각화할 수 있다. 그것이 마음이다. 그래서 연민심을 일으키라고 하는 것이며, 연민의 손을 만들라는 것이다. 또한 수행할 때 수행자의 몸 상태와 심리 상태에 따라 잘 만들어지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자비손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관찰 중에 자비손 모양이 사라졌다고 해서 다시 손을 만들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손의 형상이 보이지 않을 뿐 움직이는 의식이 없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자비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손의 모양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연민심을 일으켜도 안 되는 경우 또한 있을 수 있다. 이때는 우선 마음속으로 자비손이 있다고 생각하고 시작하면 된다. 원래 모양이 없어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마음이지만 대상과 접촉이 있으면 반응하는 것도 마음이다.

아직 자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형상화가 잘 안 되더라도 그냥 무형의 손이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으로 원을 둥글게 그리면서 몸에 접촉하기를 계속하면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손의 모양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만약에 손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몸은 반응한다. 처음부터 시각화한 손이 뚜렷이 나타나고 쓰다듬는 것이 명확하게 보인다면 집중이 아주 잘된 상태이다.

구체적으로는 손 모양을 가져오는 방법도 있다. 대상의 모습 그대로 사진을 찍듯이, 3D프린터로 출력하듯이 자기의 손을 보고 그 손의 모양을 복사하여 손 옆으로 옮겨 놓는 연습을 반복하면 손의 이미지가 형성된다.

이렇게까지 해도 안 된다면 몸에 대해 참을 수 없는 혐오감이 있다거나 아니면 자비수관 수행법을 애초부터 불신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그럴 경우 자비수관 수행에 대하여 정확한 이해를 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자비손이 생겨도 관찰 중에 자비손이 가짜니까 일어나는 현상도 가짜가 아닌가 하고 의심이 들 수도 있다. 형상화한 손은 가짜이지만 그 손은 의식의 형상화이고 의식은 가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의식이 만든 자비손에 의하여 몸이 반응하기 때문에 그 현상도 가짜가 아님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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