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학술원 ABC사업단, '무량의경소' 원본 영인·간행

일본 오츠시 사이쿄지에 소장된 '무량의경소' 원본. 한동안 린쇼 스님이 895년에 집필한 것으로 알려졌었지만, 일본 불교학자들의 연구로 신라 원측 스님이 저술한 '무량의경소'를 린쇼가 필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동국대 ABC사업단은 수년 간의 노력 끝에 처음으로 원본을 영인하는 성과를 냈다.

신라 원측(613~696) 스님이 저술한 것을 알려진 일본 사이쿄지(西敎寺) 소장 <무량의경소>가 원문 그대로 영인됐다. 일본 국보인 <무량의경소>가 원문 영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동국대 불교학술원 ABC사업단은 “일본 사이쿄지에서 소장돼 있는 원측 스님의 저술 <무량의경소>가 수년 간의 노력 끝에 처음으로 영인·간행됐다”고 6월 19일 밝혔다.

원측 스님이 편찬한 <무량의경소>는 법화삼부경 중 하나인 <무량의경>에 대한 주석서로는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문헌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라졌다가 최근 사이쿄지 소장돼 있는 중세 일본 사본 대장경에 포함된 <무량의경소>가 원측 저술임이 밝혀지면서 소재가 확인됐다.

원측 저술한 <무량의경> 주석서
日 사이쿄지서 발견… 국보 지정
불교고전 원본 영인사업 첫 성과
“관련 연구에 귀중한 자료” 평가

'무량의경소' 경문. 빨간색 표기가 훈점이다. 린쇼와 그의 제자들이 해석하며 표시한 훈점은 일본 훈점 관련 자료 중 가장 오래된 사례다.

日승려, 연구위해 원측 저술 필사
사이쿄지에 소장된 <무량의경소>가 원측 스님의 저술일 것이라는 추정은 이미 1960년대에 일본의 천태 학자인 다이라 료쇼(平了照) 씨에 의해 제기되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후 일본 유식학 연구자인 기츠가와 도모아키(橘川智昭) 씨가 그 주장을 보다 심화시켜 지난 2008년 5월 한국학계에 보고하면서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무량경의소>는 일본 천태종 승려인 린쇼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두 학자들의 발표를 통해 사이쿄지의 <무량의경소>가 원측 스님의 저술이라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사이쿄지의 <무량의경소>는 895년 린쇼 스님과 그 제자들이 필사한 책으로 원측 스님이 찬술한 때로부터 약 200여 년 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가장 오래된 필사본일 뿐만 아니라 거의 유일한 사본으로 확인된다.

천태종 승려인 린쇼 스님이 유식학자인 원측 스님의 <무량의경소>를 필사하고, 이후 일본 천태종에서 이 책을 소중하게 간직해 온 이유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천태종에서 중시하는 <법화경>의 개경(開經; 경전 개설의 의미를 해설한 경전)으로서 <무량의경>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무량의경>은 <법화경>, <관보현보살행법경>과 더불어 ‘법화삼부경’ 중 하나이다.

이에 대해 동국대 불교학술원은 “천태종의 입장에서는 법화삼부경의 하나인 <무량의경>에 대해 연구해야 했는데, 당시에 <무량의경>의 주석서로서 가장 유력하고 권위 있는 문헌이 바로 원측 스님의 <무량의경소>였던 것”이라며 “종파적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필사하여 연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 안에 훈점, 日훈점 연구 중요자료
린쇼 스님은 <무량의경소>를 필사하였을 뿐 아니라 책의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붉은 색으로 교정을 하고 특히 해석을 명확하게 해야 할 곳에는 역시 붉은 색의 훈점(訓點, 한문 문장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붙인 점으로 된 부호)을 붙였다.

린쇼 스님이 제자들과 함께 이 책의 내용을 깊이 있게 연구하기 위해 붙인 이 훈점은 일본의 훈점 관련 자료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사례 중 하나로서, 일본 훈점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사이쿄지가 소장하고 있는 <무량의경소>는 특별히 1천 년 이상 된 귀중한 책으로서 이미 1937년에 일본의 국보로 지정돼 사이쿄지의 대표적 성보로 중시됐다. 근래 들어 사이쿄지는 <무량의경소>의 안전한 보존과 관리를 위해 오츠시 역사박물관에 관리를 위탁했다. 이후 이 책은 일반인은 물론 연구자들에게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국내 학자들 노력 끝에 영인 결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동국대 ABC사업단이 <무량의경소>의 영인을 할 수 있던 것은 최연식 동국대 사학과 교수(ABC사업단 부단장)의 역할이 크다. 최 교수는 2008년 학술회의 현장에서 기츠카와 씨의 발표를 듣고 지속적으로 <무량의경소>에 관심을 갖게 됐고, 2012년 한국과 일본 불교문화교류에 대한 공동연구팀 소속으로 일본 시가현 방문 당시 <무량의경소>를 친견하게 됐다.

지난 2016년 동국대 ABC사업단에 참여하게 된 최 교수는 해외에 전해진 한국 불교고전의 원본을 영인·간행하는 사업을 제안했다. 정승석 단장(불교학술원장)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으로 도왔고, <무량의경소> 영인본 간행 사업이 추진돼 올해 결실을 맞게 됐다.

동국대 불교학술원 측은 “일본의 국보를 한국 연구기관에서 영인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사업”이라며 “사찰이 소장하고 있는 고문헌을 외국의 기관을 위해 영인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영인본 간행 이후에 관련 사진 자료 등이 소장처의 허가 없이 무작위로 유포될 가능성이 있어 처음부터 일본의 태도는 냉랭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국립중앙박물관, 일본 오츠시 역사박물관 관계자를 비롯해 한·일 양국 불교학자들의 협력도 많은 도움이 됐다”면서 “이번에 발행한 원측 스님 저술 <무량의경소> 영인본은 관련 분야의 전문 연구자는 물론 관심 있는 불교학자들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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