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갑숙(68덕ㆍ德山)

이갑숙의 문학과 불교
고교 때 소설가 꿈 꿔
단편소설 한 편이 마지막
평생 문학과 먼 공직생활
‘나’없는 삶에 회의 느낄 때
아내 인연으로 불교 만나
40여 년 불교 공부

이갑숙 작가는… 1950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1975년 행정고시에 합격했고, 영국 웨일즈대학교에서 해운경영학 석사를 마쳤다. 1975년 해운항만청 서기관을 시작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주영국대한민국대사관 참사관, 해양수산부 해양정책국장(이사관), 인천지방해양수산청 청장, 부산지방해양수산청 청장, 사조산업 대표이사 등을 지냈으며, 해양대학교 초빙교수, 한국 항만항해학회 회장, 제2대 부산항만공사 사장, 제3대 부산해양연맹 회장 등을 지냈다. 현재 의왕 청계사 108 선원순례단 단원으로 신행하고 있다. 사진=박재완 기자

 

 

‘불교문학’에 책 한 권이 더해진다. 지난 해 12월, 법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이갑숙의 장편소설 〈꺼지기 쉬운 빛〉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 소설을 비롯한 불교문학 전반이 활발하게 전개되지 못하는 시절에서 책 한 권의 의미는 적지 않다. 또한 〈꺼지기 쉬운 빛〉은 저자인 이갑숙 작가의 데뷔작이며, 그 ‘데뷔’에는 조명할 의미가 있다. 이번 작품과 출간은 이 작가가 문학을 꿈꾼 지 50년만의 일이며, 그 문학의 뼈와 살이 ‘체험의 불교’라는 것이다. 이제는 소설가로 불러야 하는 이갑숙의 만다라다.

가슴에 묻은 꿈, 문학
70을 바라보는 이 작가는 최근까지 문학과는 먼 세계에서 살았다. 25세 때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 작가는 2013년까지 대부분을 공직자로 살았다. 문학을 꿈꿨던 이갑숙에게 문학은 그야말로 ‘꿈’이었다. 그저 품어보는 것으로 그 의미를 다한 어린 시절의 ‘꿈’이었다.

이 작가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문학에 대한 꿈을 품기 시작했다. 독서를 좋아했던 이갑숙은 단편소설을 좋아했다. 당시 주류였던 한국 작가들의 단편소설들을 찾아 읽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이갑숙의 삶에는 ‘삶’이 있었다. 그에겐 문학 인자가 있었다. 그 때, 이갑숙이 소설을 읽으며 처음 품은 꿈은 국어교사였다. 책을 읽고 있을 때 가장 행복했던 이갑숙은 늘 문학과 책 속에 있고 싶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자신과 같은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었다.

학년을 더하면서 청년 이갑숙의 가슴에는 소설들이 쌓여갔고, 쌓인 소설들이 다시 소설이 되어갔다. 이갑숙의 문학 인자는 책을 읽는 것에서 끝나는 인자가 아니었다. 가슴 속에 쌓인 글들이 다시 새로운 글이 되어 피어올랐다. 그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공부는 따로 없었다. 독서가 전부였다. 그가 처음 쓴 습작 단편소설 원고는 당시 이갑숙의 국어 선생님 책상 서랍 속에 들어간 뒤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느덧 이갑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그의 문학도 졸업을 맞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갑숙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사는 것’이었다. 살아가기 위한 삶, 그 것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문학은 ‘먼’ 것이었다. ‘당장의 삶’을 해결할 수 있는 답이 될 수 없었다. 문학을 할 수 없다면 국어교사 역시 이갑숙에겐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 행정고시에 합격한다. ‘당장의 삶’과 가장 가까운 것은 그것이었다.

고(苦)의 끝에서 불교를 만나다
이 작가의 첫 직장은 해운항만청이었다. 가정도 꾸렸다. 문학을 꿈꾸던 이갑숙은 이제 없었다. 세상 속으로 뛰어든 이갑숙에게 삶은 이제 ‘사는 것’이었다. ‘삶’이라는 함축된 글자로 쓸 수 없는, 구체적 글자의 ‘살아가는 것’이었다. 글씨를 쓸 수는 있었지만 글을 쓸 수 없었고, 가슴은 있었지만 가슴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상사의 생각이 자신의 가슴이었고, 조직의 규칙이 삶의 규칙이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어디로 가는 가?”

이 작가가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3~4년이 되었을 때였다. 이 작가는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하루하루에 ‘나’가 없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작가처럼 산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작가처럼 크고 작은 회의를 느끼면서 사는 것도 사실이다. 이 작가도 모르지 않았다. 산다는 것에 대한 회의와 자신에 대한 의문들을 묻어가면서 모두는 다시 ‘그렇게’ 사는 것이라는 것을.

“나하고 절에 가요.”

이 작가의 삶에 대한 회의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어느 날, 힘겨워하는 이 작가의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한 이 작가의 아내가 함께 절에 가자고 권한다. 이 작가의 아내는 불자였다. 하지만 이 작가는 불교의 ‘불’자도 모르는 비불자였다. 불상에 절을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을 만큼 불교와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날, 아내의 권유가 다른 날과는 다르게 느껴졌던 이 작가는 아내를 따라 길을 나섰다. 당시 조계사에서 강화도 보문사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있었다.

아내와 함께 보문사 마애불 앞에 선 이 작가는 한참 동안 마애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내를 따라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아내의 손에 이끌려 길을 나섰던 것처럼, 아내를 따라 이 작가는 난생 처음 불상에 절을 했다. 그 의미 없다고 늘 생각해왔던, 절을 하고 있었다.

“불상에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절을 하는 것이라 것을 알았어요. 절은 나를 낮추고 마음을 비우는 수행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나를 던지고 보니 그 뜻을 알겠더라고요.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알겠더라고요. 아내가 왜 절을 하는지 그 때 비로소 알게 됐죠. 그리고 불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는 독경 소리와 찬불가 소리에 가슴이 뜨듯해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이후로 이 작가는 불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평생 고단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 그 고단한 삶을 덮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불교가 그 일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틈틈이 불교에 관련된 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그의 가슴에 소설이 쌓였던 것처럼 이 작가의 가슴에 부처님의 말씀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 작가는 아직도 자신을 불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불자로 불리기 싫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 말에 충분한지에 대한 의심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가는 이미 누구보다 충분한 불자다. 그의 삶 한 가운데 늘 불교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5년 전부터 그의 아내와 함께 의왕 청계사 108선원 순례단을 이끌고 있다.

이갑숙 작가(좌측 세번째)는 2017년 12월 15일 제2회 법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갑숙 작가(맨 우측)는 5년전부터 의왕 청계사 108선원순례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50년 만에 문학의 꿈 이뤄
퇴임 후 다시 문학 꿈 꿔
佛法의 위대함 다시 깨닫고
문학으로 전법 서원
소설 〈꺼지기~〉5년여 집필
제2회 법계문학상 대상 수상
불교소설의 새 유형 모색
소설과 신행수기 접목
자신의 깨달음 소설에 녹여
“불가적 문학 이어가고 싶어”

 

다시 문학 속으로
2013년, 이 작가는 40여 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자연인으로 돌아온다. ‘살아가는 것’을 모두 놓고 다시 진지하게 ‘삶’ 앞에 선다. 그는 오래 전 국어 선생님 책상 서랍 속에 들어가 세상으로 다시 나오지 못했던 그 습작의 원고를 떠올렸다. 이제 이갑숙의 삶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은 ‘문학’이었다. 이 작가는 다시 문학을 시작한다.

“고등학교 시절, 습작으로 단편소설을 한 번 써 본적이 있어요. 소설로는 처음이자 마지막 습작인 셈이죠. 그 경험은 내 가슴 한 편에 늘 남아있었어요. 뒤늦게 글을 쓰기 위해 동네 도서관과 서점을 기웃거리며 주로 인문학과 철학 분야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동서양의 모든 인문ㆍ철학의 노력과 궁극적 솔루션은 모두 불교 속에 있는 것들이었어요. 불교가 모든 것들을 해결해 주고 있었어요. 40여 년 동안 불교를 놓지 않고 살았다는 게 큰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으로 마애불 앞에서 절을 했을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이갑숙의 뒤늦은 문학은, 소설은 그 두근거림에서 시작됐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주는 감동과 떨림을 대중에게 전하고 싶었다. 무명의 중생을 밝은 빛으로 밝혀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전할 수는 없더라도, 삶의 궁극적인 답이 불법(佛法)에 있다는 사실만은 알리고 싶었다.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이 작가가 할 수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문학이었다.

이 작가는 공직자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문학에 대한 ‘생각’을 늘 가지고 살았다. 문학을 할 수는 없었지만 문학을 생각하는 일은 할 수 있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면 서점을 찾았는데, 다른 것은 몰라도 문예지 한 권 씩은 꼭 사들고 나갔다. 이 작가는 고등학생 이갑숙을 떠올리며 다시 문학을 시작한다.

“처음엔 저의 자서전을 쓰려고 했어요. 문학적인 지식이나 경험이 일천한 제가 할 수 있는 문학은 자서전 정도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가 알게 된 불법(佛法)에 대한 가치와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어요. 물론 불법의 위대함은 이미 많은 방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갑숙의 문학으로도 알리고 싶었어요.”
그는 집필을 시작한다.

소설 〈꺼지기 쉬운 빛〉
“집필에 들어간 지 5년의 시간이 흐르고, 소설 〈꺼지기 쉬운 빛〉이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을 때, ‘법계문학상 공모’를 보게 됐어요. 처음엔 다른 매체에 응모할 생각이었는데, ‘글에도 인연이 따로 있는 것인가’ 생각했어요.”

2017년 12월 15일, 운문사에서 제2회 법계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이갑숙의 장편소설 〈꺼지기 쉬운 빛〉이 대상을 받았다. 앞서 말했듯 소설의 뼈와 살이 ‘불교’인 소설 〈꺼지기 쉬운 빛〉은 작가와 작품 모두 여러 가지로 조명할 의미들이 있다.

소설 〈꺼지기 쉬운 빛〉은 1인칭 화자가 안데스산맥 트래킹을 하면서 죽은 아내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고 딸 지서와 진정한 관계 맺기를 기원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강숙(화자), 진태, 연희 등 세 남녀가 어린 시절 함께 자라며 우정과 사랑을 나누다 성인 된 후에 질투와 오해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지만 속죄와 화해를 추구한다는 단선적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생이 본래 면목인 불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소설 〈꺼지기 쉬운 빛〉은 저자 이갑숙의 첫 번째 작품으로, 고등학교 시절의 습작 단편소설 한 편이 문학 이력의 전부였던 이갑숙이 50년 만에 이룬 문학의 꿈이다. 그리고 소설의 근간이 되고 있는 불교적 내용과 구성들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겪은 작가의 극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소설 〈꺼지기 쉬운 빛〉은 1인칭 화자의 진술에 의해 모든 사건이 전개되는 서사 방식을 띠고 있다. 그 서사의 많은 부분이 작가(화자)의 직접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화자 강숙은 안데스산맥을 트래킹하면서 순간적으로 얻은 깨달음을 ‘꺼지기 쉬운 빛’으로 받아들으면서 그 빛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현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성찰한다. 작품 속 강숙의 ‘꺼지기 쉬운 빛’은 작가 이갑숙이 40여 년의 세월 속에 쌓아온 불교인 것이다. 소설 〈꺼지기 쉬운 빛〉이 ‘자전적 소설’이며, 소설(허구)과 신행수기(사실)의 경계에 있다고 평가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꺼지기 쉬운 빛〉이 가진 그 유형적 특징은 불교문학사에서 많은 이야기를 불러올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또한 이 소설의 의미 중 하나이며, 새로운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소설 〈꺼지기 쉬운 빛〉을 한국 불교소설사에서 바라볼 때도 조명할 것들이 있다. 한국불교소설은 몇 가지 유형적 패턴을 보이고 있다. 첫째, 작품의 작중 인물이 출가자이거나 출가했다가 환속한 경우다. 김성동의 〈만다라〉, 한승원의 〈아제아제바라아제〉 등이 그렇다. 두 번째는 주인공이 출가자는 아니더라도 작중 인물에 영향을 주는 인물이 출가자이거나 배경이 사찰인 경우다. 김동리의 〈등신불〉, 남지심의 〈우담바라〉 등이 속한다. 세 번째는 인연, 윤회연기 등 불교적 진리가 주제인 경우다. 이 유형의 작품에서도 출가자와 사찰이 주요 배경이 된다. 한국의 불교소설을 이처럼 유형적으로 나누어 볼 때, 이갑숙의 〈꺼지기 쉬운 빛〉은 이 세 가지 유형 가운데 어디에 포함시켜야 할지 쉽게 판단할 수 없다. 〈꺼지기 쉬운 빛〉은 지금까지 한국 불교소설의 유형적 구분법에서 나와 다른 길을 모색했다. 물론 이 소설에서도 사찰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작중 인물이 사찰을 순례하며 스님을 만나 법문을 듣는 장면 등 불교적 설정과 장치가 동원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유형들과 비교할 때, 비슷함보다는 다름이 더 많아 보인다. 인물의 설정이나 역할보다는 불교의 가르침들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심사를 맡았던 장영우 심사위원은 “〈꺼지기 쉬운 빛〉의 이러한 독특한 점이 한국 불교소설의 새로운 이정(里程)이 될지, 또는 작품의 미숙성을 증거하는 지표로 지목될지에 대해서는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소설에 주목한 가장 큰 이유는 이 작품이 한국 불교소설의 유형화를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려는 노력으로 보였기 때문이다”고 심사평에서 말하고 있다.

40년 공부가 만들어낸 불연
“내 가슴 속에 진하게 남아 있는 법문이 있습니다. ‘자기를 위한 기도는 세 번으로 족하며, 마음에 생긴 여유에 남을 들여놓고, 그런 후에는 부처님을 대신해 자신이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제도하라’였습니다. 다름 아닌 대승의 요체인 ‘상구보리하화중생’이었습니다. 절하는 것이 자신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는 수행이라면, 글쓰기는 더불어 사는 대중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계문학상은 제게 불교를 소재로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기회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졸고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히 많지만 앞으로도 계속 불가적(佛家的) 글쓰기를 놓지 말라는 인연으로 생각합니다. 제 문학이 부처님 말씀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소설 〈꺼지기 쉬운 빛〉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인 이 작가가 불법(佛法)을 만났고, 불법에 귀의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귀의가 많은 불연을 짓고 있는 것이다. 그 소중한 귀의 역시 앞선 불연 중의 하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가의 아내가 아니었다면, ‘절에 가자’는 아내의 그 말 한 마디가 없었다면 이 작가는 불법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말 한 마디가 많은 불연의 씨앗이었던 것이다. 아내의 불연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그렇게 우리는 다 알고 사는 듯해도 정작 알고 사는 것이 없는 것이다. 각자의 삶이 누군가의 말 한 마디에 달려 있음을 우리는 모르고 사는 것이다. 이갑숙의 소설 〈꺼지기 쉬운 빛〉 속의 문장 하나하나 역시 누군가의 삶에서 소중하고 중요한 인연의 시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소설 〈꺼지기 쉬운 빛〉이 많은 불연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법계문학상은
운문사 회주 법계 명성 스님이 역량 있는 불교문학작가 발굴을 목적으로 제정했다. 응모 분야는 장편소설과 장편동화이며, 상금은 2천만 원이다. 작품 응모마감은 매년 10월 30일이며, 당선작은 책으로 출판된다. 문의/ 법계문학 운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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