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정국토청정, 그림=조향숙

 

6근이 6경 인식하는
연기적 관계가 ‘세상’
인간중심 존재론적 세계관

눈·귀·코·혀·몸·마음(眼耳鼻舌身意)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여섯 개의 인식기관(六根)의 작용이 ‘세상의 생겨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세상과 육근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봅시다.

* 어느 날 생문 바라문이 부처님께 찾아와서 질문했습니다.

“일체(一切)란 무엇입니까?”

당시 인도에서 ‘일체’라는 말은 ‘모든 것’을 의미하는 우주 전체를 가리키는 대명사였습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 또는 세간과 같은 개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바라문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일체란 12처(處)에 포섭되는 것이다. 눈과 색(色),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촉감, 마음과 법을 일체라고 한다. 만약 이 12처를 떠나 다른 일체를 시설하겠다면 그것은 말일뿐 물어봐도 모르고 의혹만 더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식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잡아함 권 13>

부처님은 우주의 삼라만상은 12처에 거뜬히 포섭된다면서 12가지 이외의 것, 즉 인간에 의해 인식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셨습니다.

* 12처설은 그 12가지 속에 모든 것이 ‘들어온다’는 뜻을 취하여 처(處)라고 부르고, 이 교설을 12처설이라고 했습니다. 처는 마음과 마음작용을 생장(生長)시키는 문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12처는 인식기관인 6근(六根)과 인식대상인 6경(六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눈·귀·코·혀·몸의 5근과 이를 통솔하는 마음(意根)을 육근이라고 합니다. 육근이 인식하는 대상이 육경입니다. 즉 눈으로 보는 색·형태(色境), 귀로 듣는 소리(聲境), 코로 맡는 냄새(香境), 혀로 느끼는 맛(味境), 몸으로 느끼는 촉감(觸境), 마음으로 아는 생각(法境)입니다. 6근(六內處)과 6경(六外處)은 상응하는 대상을 만나 서로 의존적일 때 존재의 근거가 생기는 연기적 관계입니다.

* 12처설에서 우리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불교의 존재론적 세계관을 볼 수 있습니다. 인식주체가 되고 있는 6근은 그대로 인간존재를 나타내고, 인식객체가 되고 있는 6경은 인간의 자연환경에 해당됩니다. 우주의 모든 존재는 12처에서 비롯됩니다. 12처설은 불교의 기본교리인 연기설의 기초로서 6식(識)이 일어나 18계(界)를 이루는 기본바탕입니다.

육근 참회 수행이 있습니다. 6근으로 지은 죄업을 참회하면서 아상을 녹이면 육근이 청정해지는 닦음입니다. 안이비설신의가 깨끗할 때 그 대상인 6경을 있는 그대로 인식합니다.(如實知見)

세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12처에 있습니다. 12처가 세상입니다. 12처가 밝으면 세상이 밝습니다. 이러한 연기법을 보고 일체의 존재에서 무상과 무아를 보면 집착에서 벗어나 이고득락의 길이 보입니다.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 그리고 마음을 잘 챙깁시다. 6근 청정은 세상 청정입니다.

이 모든 말씀은 불법에서 가장 으뜸인 연기(緣起)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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