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죽을 준비를 끝냈습니다”
“저는 죽을 준비를 끝냈습니다”
  • 정리=박재완 기자
  • 승인 2018.06.09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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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사형수 권갑석

아내와 지인 남편 살해 혐의
사고사 주장과 증거 불충분에도
정황만으로 사형 확정 받아
죽음에 대한 책임으로 판결 수용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둔 사형수처럼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지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형수 권갑석이다.

하루는 부산변호사회 총무인 박준석 변호사가 “대구교도소에 가시는 길이 있으면 한 사형수를 만나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권갑석이었다. 권 씨는 박 변호사가 무료로 변호를 맡았던 의뢰인이었다. 박 변호사가 최선을 다해 변호를 했으나 결국 권 씨에게는 사형이 선고됐다. 권 씨의 혐의는 살인이었다. 자신의 아내와 한 남자를 살해했다는 혐의였다. 사형이 확정되자 권 씨는 박 변호사에게 “변호사님 감사합니다”며 깍듯이 인사를 했다고 한다.

권 씨는 처음부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과실로 인한 사고사라고 주장했다. 또한 살인의 직접적인 동기와 증거가 부족했다. 그런 권 씨에게 사형이 확정됐기 때문에 변호를 맡았던 박 변호사는 변호사로서 마음이 많이 무겁고 미안했다. 그런 박 변호사에게 권 씨는 오히려 고맙다고 한 것이다. 박 변호사는 그런 권 씨의 모습이 한 동안 마음속에 진하게 남아있었다. 그러던 차에 권 씨로부터 박 변호사에게 편지가 오기 시작했다. 이유가 어찌됐든 자신으로 인해 두 사람이 죽었으니 자신의 사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죽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박 변호사는 형이 확정된 뒤 7년 동안 꼬박꼬박 보내오는 권 씨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박 변호사는 나에게 부탁을 해 온 것이다. 나보고 권 씨의 이야기를 들어봐 달라는 것이었다. 속이라도 풀리게 그의 이야기를, 진실이 무엇인지를 들어봐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신의가 있는 박 변호사의 인간성에 반해 사형수 권 씨를 만나보기로 했다. 면회실에 들어서는 권 씨는 키가 컸다. 그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나 같이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애쓰시는 스님이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고 인사를 했다. 나는 박 변호사의 애틋한 마음을 전하면서 억울한 부분이 있으면 나에게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저는 죽음을 맞을 준비를 끝냈습니다. 저 때문에 사람이 죽었으니 제가 책임을 지어야 합니다. 변호사님께 마음은 고마우나 더 이상 마음에 두시지 말라고 전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둔 사형수처럼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지난 이야기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평온했다. 그리고 그는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저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애 써주십시오. 고맙습니다.”며 먼저 일어섰다.

권 씨는 85년 6월 24일 부산에서 구속됐다. 평소 알고 지내던 여인의 남편을 살해하고, 이를 눈치 챈 자신의 아내까지 살해했다는 혐의였다. 그러나 권 씨는 처음부터 고문에 의한 조작이라면서 혐의를 부인했으나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증인이나 증거가 나오지 않아 끝내 사형수가 되고 말았다.

권 씨는 자신을 종교에 귀의시킨 수녀를 만나서도 아내의 죽음은 말다툼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였으며, 알고 지내던 여인의 남편 역시 살해가 아닌 교통사고였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정황이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재판해야 한다’는 원칙에 위배된 판결이었다고 아직도 말하고 있다.

1심 판결 후인 86년 세모 때, 담당판사였던 김모 씨는 권 씨에게 편지를 보냈다. 김 판사는 편지에서 “귀하의 행위에 대해 국법에 따라 형을 선고했으나 인격을 정죄한 것은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면서 신앙을 가질 것을 권했다. 그리고 권 씨도 이에 편지를 보냈다. 가혹한 형벌로 자신을 단죄한 판사에게도 권 씨는 “고맙다. 김 판사의 따뜻한 정과 인품을 존경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권 씨는 김 판사와 7년 편지를 주고받았다. 기독교신자인 김 판사가 보낸 성서(聖書) 한 권이 계기가 되어 권 씨는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권 씨에게는 대학생인 맏아들과 두 딸이 있었다. 또 병환 중인 노부모도 있었다. 교사였던 여동생은 결혼도 미룬 채 생활비를 보태고 있었다. 당시 대구에는 권 씨의 구명운동을 펼치는 ‘새생명회’가 있었다. 권 씨와 함께 잠시 미결로 있었던 사람들이 그 안에서 권 씨에게서 받은 감동 때문에 권 씨를 위해 탄원서를 준비했었다. 그래서 나도 그 때 판사를 만나기로 결심했었던 기억이 있다. 살려야 할 가치가 있는 생명이라면 어떻게든 살릴 수 있도록 힘쓰고 싶었다. 매일 죽음 한가운데에 서있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빛 한 줄기가 되어주고 싶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따뜻한 빛을 간절히 바라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권 씨는 1992년 형이 집행되어 세상을 달리했다. 중생에게 ‘죄’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인 것 같다. 태어나면서부터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중생 아닌가 싶다. 누구나 크고 작은 죄를 짓고 산다. 누구처럼 사형으로 죗값을 치러야 하는 죄도 있고, 마음으로 치러야 하는 죄도 있다. 죄를 지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눈으로 가려내 낼 수 없는 것들이 있어 억울한 벌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인간의 눈으로 가려낼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이 모든 안타까움과 슬픔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두 아이의 아빠였던 권갑석은 무죄를 주장했으나 끝내 사형수가 되어 세상을 달리했다.
두 아이의 아빠였던 권갑석은 무죄를 주장했으나 끝내 사형수가 되어 세상을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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